2008.5 |
[서평] 스타일
관리자(2008-06-09 22:40:08)
이미지 권력에 포획된 현대인의 초상
장미영ㅣ전주대 교수
스타일은 우리말의 ‘맵시’로 순화할 수 없다. 우리말의 맵시는 아름답고 보기 좋은 모양새를 위해 외관을 꾸미는 행동 지향적 용어이다. 이와 달리, 스타일은 육체에 깃들어 마음의 작용까지 지배하는 성격 지향적 어휘이다. 스타일은 이미지에 대한 지향이 몸 안에 자리를 잡을 때에야 비로소 탄생할 수 있는 기호이다.
여과 없이 드러낸 통속적 욕망
백영옥의 장편소설 『스타일』은 이미지에 매혹되어 이미지를 추구하는 현대 도시인의 통속적인 욕망을 재기발랄하게 드러낸다. 이미지는 문화화된 도시인들이 새롭게 창조한 삶의 형식이자 동시에 심리적인 경험이다. 도시인의 정서와 욕망은 이미지가 발산하는 논리의 맥락 속에서 작동한다.
‘오래된 바게트처럼 딱딱한 카페 의자’, ‘사하라 모래 같은 기미와 주근깨’, ‘마시멜로처럼 폭신하고 사랑스런 레이스 커튼이 달린 아일랜드식 부엌’, ‘죽어가는 야채들의 안치소가 된 냉장고’, ‘친근한 스킨십이 묻어나는 다량의 농담, 느슨한 심장을 뻐근하게 조이는 소량의 진담’, ‘변기 안의 지저분한 배설물을 처리하듯 버튼 하나로 간단히 내려버릴 수 없는 소문’, ‘장마철 잠수교같이 완전히 잠겨버린 목’ 같이 도시는 이미지를 따라 눈으로 생각하는 버릇을 키운다. 소설의 주인공처럼 대부분의 도시인은 자신이 목격한 몇 가지 경험들을 자기 멋대로 연결시켜 편협한 판단을 내리는데 익숙하다. 그래서 도시의 목격자들은 무엇인가 보자마자 곧장 심판관의 지위를 얻게 된다. ‘커피 값도 내지 않는 무례함’,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벌면서도 밥 한번 사지 않는 매너가 똥 같은 스타일리스트’ 등과 같이 타인에 대해 쉽게 판단을 내리는 도시인의 경박한 태도는 모든 존재를 단지 이미지만으로 결판을 내는 편협한 사고에서 기인한다. 정신의 퇴화라고나 할까? 이러한 험담은 도시인의 생활이 점점 더 긴밀하게 막스가 말한 하부구조에 달라붙어 정신적 품위를 추방하고 있다는 증좌이다.
작가는 패션지 8년차인 여기자 이서정을 주인공으로, 직장 내 권력 관계, 일과 사생활의 착종, 치열한 경쟁과 비굴함으로 꾸려지는 직업 세계 등을 감각적 문체로 속도감 있게 그려냈다. 작가의 현란한 필체는 명품, 음식, 연예계의 뒷이야기에서 그 빛을 발한다. 역사라는 단어를 추방하고 인간을 정신으로부터 해방시키기라도 할 듯이 작가는 이미지의 직접성에 전적으로 기대어 있다. 영화배우 장동건, 강동원, 정시연, 법정 스님, S대 출신의 가수 산울림, 김민기, 성철 스님, 할리우드 배우 케이트 모스, 기네스 펠트로, 안젤리나 졸리, 브래드 피트, 21세기의 기념비적인 남성복 디자이너 에디 슬리먼, 혁명가 체 게바라, 동물 행동학자 제인 구달, 파리 잡지 <엘르>, 이태리 잡지 <보그>, 듀안 마이클의 사진집, 영화 <아일랜드>, 스타벅스의 카페라떼, 샤넬 스카프, 성수대교, 동호대교 등 작가는 과감히 실명을 거명하면서 시니피에가 사라지고 시니피앙만 부유하는 이 시대의 얄팍하고 표피적인 삶을 익살스럽게 서술한다. ‘남자보다 마크 제이콥스의 핸드백에 키스하고자 하는 맹렬한 욕망으로 턱을 괴고 쇼윈도를 바라보는 여자’, ‘구찌의 하이힐 굽만큼 뾰족한 입술로 사람 한 명을 거뜬히 죽일 여자’, ‘비웃음에 어울릴 법한 가느다란 입술까지 옵션으로 장착한 완벽한 현대판 마녀’ 식의 짓궂은 익살이 그것이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심취했을법한 유명한 고유명사들과 속내를 까발리는 듯한 거침없는 독설은 생동감과 함께 작품에 대한 흥미를 한껏 부풀린다. 그래서 이 소설은 단숨에 읽히는 높은 가독성을 가진다.
익명성에 숨은 다중의 정체
이미지는 신체에 귀속된 몸의 일부처럼 공간을 차지하는 형상을 통해 도시의 삶을 물질적인 구조로 바꾸어 버린다. 과거를 기억하고 경험을 재구성하는 방식은 일단 시각의 프리즘으로 수렴된다. 시각의 원리를 따라 시각적 사유를 거친 상상력은 도시 생활의 비인간화 경향을 탐색한다.
‘손가락 한 개쯤 뜨거운 물에 지지고 있어도 비명 한번 안 지를 독종’, ‘지구 둘레만큼의 오해와 한줌도 안 되는 이해’, ‘인생이란 언제 끝장날지 모르는 부도 수표’, ‘불행이란 아귀를 딱딱 맞추듯 지독한 우연들이 몰려와 자석같이 들러붙는 것’, ‘거스러미같이 일어난 아픈 기억들’, ‘늘 신선한 소문 몇 개는 핸드백 안에 지참해 가지고 다니는 사람’, ‘시대의 유행과는 전혀 맞지 않는 구닥다리 뇌 구조’, ‘10년 만에 손녀를 만난 것처럼 구는 할머니 같은 게이들’, ‘직장 동료라는 이름의 굳은살은 손톱 깎기 같은 걸로 간단히 떼어내면 그만’ …
현대인이 추구하는 이미지는 ‘편집장’처럼 정체를 가늠하기 어려운 미스터리의 존재다. 이미지는 물질에 대한 욕망을 낳고 그 욕망은 사회를 분열시키는가하면 인류를 사물화 시키고 정신을 물질적 생산으로부터 유리시킨다. 주인공은 대한민국에서 기자로 사는 것의 비루함이 목구멍에 치밀던 날에도 편집장의 호통어린 특명에 솟구치는 저항을 스스로 묵살한다. 음식칼럼 하나로 유명 레스토랑들을 초토화시킨「A 매거진」 최고의 요리 칼럼니스트 '닥터 레스토랑'을 창간호 특집 기사로 취재하라는 것. 이 비밀스런 요리평론가는 매번 바뀌는 메일 주소만 알려졌을 뿐이다. 이름은커녕, 나이도, 주소도, 심지어는 성별조차 알 수 없는 ‘닥터 레스토랑’은 독자의 빗발치는 요구가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이다. 독자로 형상화된 이 시대의 다중은 ‘닥터 레스토랑’처럼 유명세라는 이미지에 제압당하는 희생양이기를 거부하기 위해 ‘익명성’을 내세운다. ‘에르메스 백과 마놀로 블라닉 슈즈에 대한 욕망과 아프리카 기아 어린이들을 후원하는 착한 욕망 사이를 넘나드는’ 주인공이야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다중의 진실이다. 17세기 스피노자로부터 시작되어 안토니오 네그리의 『제국』을 통해 본격적으로 드러난 ‘다중’이라는 개념은 자발적인 선택과 참여를 통해 스스로 자기 가치를 실현하고 욕망하는 실천의 주체이자 생산의 주체이다. ‘닥터 레스토랑’은 신자유주의적 무한경쟁에서 탈락한 수많은 무산자들의 맹목적 증오를 대변하는 희생자들의 주모자로 전락하지 않았다. 대신 작가는 ‘닥터 레스토랑’을 과감하고 통렬한 비판으로 사회 정의를 수호하려는 다중의 적극적인 생존전략으로 그려냈다. 세상에 존재하는 각기 다른 스타일의 이미지들, 이 소설은 다름 뒤로 사라지는 다중의 얼굴을 색다른 휴머니즘으로 그려냈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것은 정신과 물질이 결코 한통속일 수 없다는 깨달음이다. 감각적인 문체와 버무려져 불투명한 수채화로 남은 게 아쉽지만.
한진희/ 전북고창에서 태어났다. 경희대 미술교육과를 졸업하고 1998년부터 대안학교인 무주 푸른꿈고등학교에서 미술교사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