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2 | [사람과사람]
다큐멘터리 영화 만드는 송원근 시철우
사각 카메라에 세상을 담는다
박종훈
객원기자, 원음방송 프로듀서(2003-04-18 17:29:01)
1997년 3월 중 하루 날씨 : 모호함
"내 마음속에 분명 뜨거운 욕구가 강요를 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너무 막연하다. 지금 내가 원하는게 무엇인지... 나의 생각을 영상으로 표현해 내고 싶은데 그저 막막하기만 하다"
막막하기만 했던 대학 1년생을 보내고 있던 송원근씨! 어느날 조성모의 'To Heaven'이란 뮤직비디오를 보고 영상연출을 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 후 99년 군 입대, 2001년 3월까지 영상연출을 위한 머릿속 시놉시스 작업으로 가득찬 정신세계와 군인의 육체를 공유한 채 3년을 보낸다.
제대 후 대학방송국(UBS) 김영호 선배의 제의로 경주의 '송화도예'의 모습을 다큐멘터리로 구성, YTN 대학생 영상대전에서 특별상을 수상한다. 그리고 그 해 추석 때 찍은 <어머니의 외출>이란 작품으로 SBS VJ 영상축제에서 우수상을 받게 되는데 보통 VJ 영상물은 다큐성격이 강한 리얼리티가 많은데 비해 이 작품은 연출 신이 많은 다큐드라마 형식으로 수상을 한 게 특이한 경우다. 하지만 알고 보면 진짜리얼리티는 작품의 형태가 아닌 스토리에 살아 있었다. 작품 '어머니의 외출'은 실제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 않은 원근씨의 어머니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해 제 2회 YTN 대학생 영상대전 때 <사라진 수인선>으로 최우수상을 수상하고 언론에서 주목받기 시작하는 젊은 감독으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된다.
범상치 않은 주제들로 다양한 수상경력을 자랑하는 송원근씨는 현재 전북대학교 경영학부 4학년, 27살의 청년이다. '영화인들이 말하는 시놉시스가 무엇이죠?' 첫 질문이었다. 젊다고 너무 무시한 내용 아닐까? 염려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사실 아무리 쉬운 단어라 하더라도 그것을 쉽게 또 단번에 설명하기란 그리 만만치 않다. 실례로 방송을 1년 넘게 하신 분들에게 '브릿지' 란 개념을 물어 보면 그 자리에서 우물거리는 경우가 많다. 이미지는 느끼고 있을지 모르지만 정확히 알고 설명하기란 오히려 어려운 일인 것이다. '시놉시스가 무엇?' 즉각적인 그의 반응을 보고 싶어서 내놓은 질문에 거침없는 답이 튀어 나왔다.
"기획의도가 들어있는 요약된 줄거리쯤이라고 할까요?" 만만치 않다.
안타까운 기억속의 '더 메모리즈(The Memories)'
원근씨가 어느날 우연히 휴대폰을 줍게 되었단다. 그리고 문득 생각한 것이 이런 물건처럼 다른 사람의 추억이나 기억도 주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발상이었고 그래서 시작한 작품이 <더 메모리즈(The Memories)!>
"어떤 한 남자가 사귀었던 시체말로 여자애를 차버리고 나서 또 새로운 여자를 만나게 되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자기 집 앞에서 휴대폰 하나를 줍게 되는데 알고 보니 예전 여자애에게 선물로 주었던 그 휴대폰이었습니다. 그 여자가 놓고 간 거죠. 하지만 이미 망각속에 묻어둔 휴대폰인지라 그 주인이 누군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번엔 반대로 새로운 여자에게 채이고 맙니다. 그런 일련의 상황 속에서 휴대폰 벨소리가 울리고 또 그 소리와 함께 예전 기억들의 장면 장면들이 클로즈업 되죠! 음, 자기가 받은 상처는 뼈아프게 느껴지지만 남에게 준 상처는 잘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기적인 성향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제작비 30만원! 촬영기간 10일, 여배우 2명의 개런티는 밥과 술값에 포함시켰다. 초 저예산의 작품인 것이다.
이때 등장하는 사람이 바로 원근씨와 함께 작품을 기획하고 남자 배우역할을 한 시철우(전북대 영문학과 4학년)씨다. 철우씨의 영상과의 인연 또한 '내 생각이 들어 있는 무엇인가를 표현해 보고 싶다' 라는 막연함으로 출발한다. 고등학교 시절 틀에 갇힌 환경으로부터 탈출을 모색, 어느 날 장선우 감독의 <나쁜영화> 속 주인공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 모습들을 진솔하게 담아내는 능력의 소유자, 영화감독이란 새로운 목표를 설정한다. 대학에 진학, 과 동아리 '미메시스'라는 연극동아리와 인연을 맺고 그곳에서 그가 발견한 것이 곧 '소통' 이다. 현실과 이상의 소통의 방법으로 연기와 연출을 택했던 것이다.
그가 원근씨와 만난 것은 제 2회 전주국제영화제, 이때 이재영(원광대학교 사회복지학과 3년)씨와도 의기투합하게 된다. 혼자가 아닌 '우리'가 되어 뭔가 해볼 수 있는 지우들을 얻은 것이다.
그리고 함께 고민하고 찰영한 작품이 바로 전주시민영화제 탈락 작품 <더 메모리즈!>. 탈락의 이유는 아직도 모르지만 어쨌든 3인이 함께 한 출발치고는 다소 불안한 듯 했다. 그러나 아직 혈기방장한 20대 중반, '첫 끝발이 ○끝발인 법' 그리 불안해 하지는 않는다.
그 후 원근씨는 <두꺼비강의 눈물>이란 작품으로 방송진흥원에서 주최한 대학생 영상페스티벌에서 대상을 받게 되는데 순창군 적성댐 수몰예정지역 주민들의 애환을 그린 내용으로 시기성이나 기획력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다. 그리고 또 한번의 재회, 전북대학교 영상사업단 영상제작워크샵에서 만난 원근씨와 철우씨는 제목만 들어도 내용이 짐작되는 솔직한 다큐 <야학이란 무엇인가?> 60분짜리 대작(?)을 제작한다. 지난 해 9월부터 3개월 동안 촬영한 이 작품은 야학교란 공간 속에서 선생님과 배우는 학생이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각, 각각의 주체들이 서로 다른 형태의 느낌으로 표현되는 야학의 세계를 여러 시점으로 영상에 담아냈다. 아직은 어느 영상제에도 출품은 하지 않았지만 왠지 '대박'의 느낌이 드는 작품이란다.
사실 원근씨와 철우씨의 영상색깔은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감성과 제작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오! 수정>의 홍상수 감독처럼 담백하고 사실적인 면에 <봄날은 간다> 의 허진호 감독의 서정성을 가미하고 싶습니다" 서로 이질적인 요소를 한 화면에 담고 싶다는 원근씨의 의도나 "언젠가는 희곡을 영화대본으로 바꾸는 작업이 하고 싶어요. 그 후 연극의 내용을 영화로 재구성해서 독특한 제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철우씨의 바람은 그리 녹녹치 않은 작업일거라는 느낌이다. 리얼리티와 서정성의 조화란 퓨전 성격의 다큐멘터리 PD 송원근, 연극이란 독특한 매개를 사용하는 영화감독 시철우!
10년후 그들만의 색깔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표현들이지만 아직은 그저 순수하게 그들의 자신감을 믿어주고 싶은 마음이 먼저라는 생각이다.
원근씨와 철우씨에게는 이런 연출에 대한 노력 외에도 환경적으로 비슷한 면이 많다. 둘 다 최근에 원근씨는 어머니를, 철우씨는 아버지를 여의었다. 그리고 장남, 집안의 경제력을 책임져야 하는 부담감을 가지고 항상 집안에 죄스러운 마음으로 일하고 있는 것도 비슷하다. 그리고 여담으로 준수한 외모와 함께 풍기는 약간 오만한 자신감까지 그렇다.
썩 괜찮아 보이는 두 청년과의 인터뷰는 서로 바쁜 일정 때문에 소주 한잔 약속의 여운만 남겨둔 채 끝이 났다. 하지만 그냥 가면 섭하지! 카메라를 많이 다루는 사람들이 곤란해 할 짓궂은 질문을 했다. '현장성이 강한 다큐를 제작하려면 때로 카메라를 들이대는 경우보다 먼저 도의적인 면이 우선시 될 때도 있는데 그때는 어떻게 하겠는가' 라는 물음이었다. 상대방의 위험을 감수시키면서까지 좋은 영상을 위해 촬영을 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었는데 그들의 대답에는 역시 주저가 없다.
"당연히 사람을 먼저 구하거나 보호하는 게 먼저죠. 특종이나 좋은 영상에 대한 욕심으로 도의를 저버린다면 그 사람은 카메라를 만질 자격이 없습니다"
아직은 실패에 더 익숙한 그들이지만 확실한 하나, 진정한 성공의 첫 단추를 제대로 꿰었음에는 틀림이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