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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5 |
[최효준의 숨쉬는 미술이야기] 미술의 기능
관리자(2008-06-09 22:36:39)
‘미술의 본질은 경이감과 신비감의 표현’ 미술사가 곰브리히는 그의 저서에서 ‘미술(Art)’이라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우리들이 '미술'이라고 부르는 것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전혀 다른 것을 의미하였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미술이란 서구가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 낸 발명품이고 과거의 사람들은 미술이라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으며 유명한 고대 미술품의 대부분이 인간의 감상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라는 줄리언 스팰딩의 말을 떠올리게 된다.       옛부터 인간 정신 활동의 정화(精華)로서 오늘날 우리가 ‘미술’이라는 범주 안에서 보고 ‘미술품’으로 간주하는 그 다양한 예술품들은 여러 다른 목적에서 만들어졌고 여러 다른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미술품이라는 것이 왜, 어떤 맥락에서 만들어졌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올바른 감상을 위하여 우리는 예술과 역사와 자기인식에 대하여 서구에서 주로 유래된 ‘현대적인 생각’을 잊어버리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점, 미술사의 여러 사조 구분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 다시 한번 강조된다. 원래 미술은 주술이나 마술과 관계가 있었다. 라스코 동굴이나 알타미라 동굴 벽에 그려진 벽화들은 그 사냥감들의 이미지가 대신해 주는 실제 사냥감을 제압하고자 수행한 의례의 흔적들이다. 미술의 그러한 기능이 고대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중세의 성상 파괴의 이슈나 오늘날에도 종종 시비 거리가 되는 우상 설치와 예배의 문제, 물체를 이용한 유감 주술 등, 이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미술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한다. 오늘날에도, 신비한 힘을 지녔다는 옛 성현의 그림이나 각별한 도상의 부적을 몸에 지니려는 이들은 이러한 ‘이미지의 힘’을 굳게 믿는다.     한편 미술의 장식적인 기능은 가장 보편적인 것이다. 사람을 꾸미고 공간을 꾸미고 만드는 대상을 꾸미려는 의지는 거의 본능적인 것 같다. 다만 과거에는 꾸밈의 목적이 큰 지향으로 뚜렷한 경우가 많았다. 고대 문명권 특유의 추상적인 장식, 복음서 표지의 정교한 장식이나 천상적인 이슬람 미술의 문양 등은 장식적이되 그 자체가 극도로 성스러운 목적으로 조성된 것이었다.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서나 지배자의 권위를 드높이고 그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화려하고 복잡한 장식으로 대상과 주변을 꾸몄다. 그것이 오늘날 만인의 찬탄을 자아내는 미술품으로 남았다. 옛날 옹기를 굽는 옹기장이가 옹기 배 위에 날렵하게 휘어진 한 획을 그어 마무리 하는 것이나, 오늘날 보도 불록이나 벽을 쌓을 때 장식 무늬를 넣는 것이나 아름답게 꾸미려는 고금 불변의 욕구가 그 바탕에 있다.     미술은 고래로 교화나 계몽의 수단이었다. 과거 글을 모르는 대다수 민중들에게 통치의 이념, 종교적인 교의를 확고하게 심어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은 이미지, 형상, 색채 등을 동원하는 것이었다. 열주의 끝, 궁륭이 아득하게 보이는 고딕식의 성당 안. 낮이면 장려한 스테인드 글래스를 통해 쏟아지는 빛살 속에서, 밤이면 수천 개의 등불에 비추어져 어른거리는 거대한 성화(聖畵)의 이미지 아래서, 그 누구인들 천국의 임재를 느끼지 못할 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근현대에 미술이 국가주의나 사회주의 등 정치적 이념의 선전 수단이 되고, 광고를 통해 상업주의적 삶의 양식의 확산 수단으로 기능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일 터이다.   물론 미술은 기록과 기념의 수단이었다. 사진이 발명되기 전까지 미술은 절대적으로 중요한 기록의 수단이었다. 금강산을 다녀 온 선비나 화원은 금강산도를 그려 벽에 걸어 놓고 와유(臥遊)를 즐겼다. 오늘날에도 용의자의 몽타쥬 작성과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는 미술이 기록의 기능을 발휘한다. 승전의 사실들을 기록한 기념물들을 과장되고 극적인 양식으로 조성하여 제국의 위세를 만방에 과시하였던 고대 국가들에 있어 미술의 기능은, 수많은 기념회화, 기념비, 영웅상, 개선문들이 제작, 건립되어 국가주의와 제국주의의 기세를 뽐내던 19세기 유럽에서의 미술의 기능과 다르지 않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과거 미술은 거의 종교와 정치의 시녀 역할을 하였다. 오늘 우리가 미술품으로 간주하는 것들을 창조한 이들은 동서를 막론하고 근세 이전까지는 작가라기보다 장인의 대접을 받았다. 근세에 이르러 비로소 이른바 ‘예술을 위한 예술’의 이념이 대두되었고 독립된 예술가로서의 미술가가 인정받게 되었다. 그렇다면 예술의 순수성이 표방되기 이전 과거의 미술은 모두 ‘순수’하지 못한 동기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비록 종교적, 정치적 목적에 종속되어 만들어졌을지라도 뭇 장인들의 자발적이며 독립적이며 죽살이치도록 치열한 표현 욕구, 창작 욕구, 자기실현 욕구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오늘날 그 훌륭한 미술품들을 볼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오늘날 우리가 진정으로 찬탄하는 것은 바로 그 측면일 것이다. 동양으로 가 보자. 동양인들은 한 폭의 그림에도 우주를 담으려 하였다. 그것은 소우주의 창조였다. 그들은 외관에 사로잡히지 않고 대상의 본질을 포착해 그것을 불멸의 것으로 만들려 하였다. 사실 고대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동서를 막론하고 그러한 예는 많다. 고대의 정신이나 비서구권의 세계관에 눈 뜨게 된 근대 이후의 서양에서도 미술은 인간 본성의 탐구나 인간 정신을 고양시키는 수단으로 자리 잡는다. 사실 추상 미술은 근대 서양의 발명품이 아니다. 현상을 넘어 본질을 추구하는 ‘추상화(抽象化)’의 전통은 고대에, 동양에, 엄존하였다. 19세기 20세기에 걸쳐 동양 미학과 동양 사상에 깊은 영향을 받아 서양에서도 미술은 수도(修道)의 한 수단이 되고, 미술품은 명상을 유도하는 현대적 만다라가 되며 현대 인간의 존재조건 문제에 매달리게 하는 시각적 화두로 기능하게 된다. 결국은 아무 것도 남지 않는 인디언이나 티벳 승려들의 모래 그림은 기능과 목적 면에서 현대 미술과 통한다. 잭슨 폴록의 흩뿌리는 회화가 인디언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 졌듯이.(다만 폴록의 그림은 엄청난 유물적 가치를 지닌 작품으로 남았다는 차이가 있지만.)   그런데 깨달음을 얻기 전에도 작가의 창작 욕구는 발동한다. 절망감이나 강박적 불안감의 표현과 그 표현을 통한 해소의 수단으로서, 자위적 행위로서 미술도 존재한다. 발산과 풀어헤침의 미술은 때로 우리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현대의 미술은 왕왕 파괴의 미학, 추(醜)의 미(美)를 추구하거나 분열된 우리의 내적 상태를 표현한다. 파괴하지 않는 예술은 예술이 아니라고까지 말해진다. 아름다운 것은 진실 그 자체라는 명제가 설득력을 가지며 ‘미술(美術)’에서 ‘미(美)’를 타기하며, 진실 그대로의 표현이라는 이름으로 현대의 미술은 왕왕 일탈, 탈실(脫實)을 유도하는 자극제로 기능한다. 이러한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서 다른 미술은 모두 진부하게 치부되어야 할 것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이렇게 하고 싶다. 현대에 이르러 자연은 엄청나게 파괴되었다. 그렇다면 자연의 본질이 변하였는가? 그렇지 않다. 인간성과 가정과 사회가 두루두루 파괴되고 분열되는 것 같은 이 시대에도 인간은 역시 인간이다. 우리가 변하지 않는 자연과 인간의 본질에 대한 믿음을 갖는다면 현기증 나는 미술의 변모 한가운데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예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미술은 본질적으로 경이감과 신비감의 표현이며, 오늘날 우리가 ‘미술품’으로 여기는바 시공을 초월하여 다양한 그 대상의 감상 역시 경이감과 신비감을 느끼는 과정이다”라고. 최효준/ 서울대 상과대학에서 경제학 전공. 미국 미시간주립대 경영학 석사과정과 서울대 인문대학 미술사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과정을 중퇴. 삼성미술관 수석연구원, 서울시립미술관 수석큐레이터를 지냄. 2004년 5월부터 전북도립미술관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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