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5 |
[문화와사람] 성기석 전주국제영화제 정책기획실장
관리자(2008-06-09 22:36:11)
세상사는 재미 더해주는 영화제를 위해
개막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전주국제영화제 사무실은 그야말로 전쟁이었다. 모두들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휴대폰을 귀에서 떼지 못한다. 때때로 긴 한숨소리가 흘러나오기도 한다.
일반인들에게 ‘축제’란 일상에서 일탈해 환상의 시공간을 여행하는 경험이지만, 그것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축제’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폭탄’ 같은 것. 그래서 긴장의 고삐를 늦추기 힘들다.
전쟁터(?)의 한가운데서 성기석 전주국제영화제 기획운영팀장을 만났다. 그는 영화제에서 지원하는 해외연수로 1년간 프랑스 니스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지난해 6월에 귀국, 올해 영화제에서는 정책기획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지난 2001년, 제2회 영화제 때 홍보팀에서 인터넷 매체를 담당하는 일부터 시작해, 지난 7년 사이 프랑스 유학을 거쳐 정책기획실장까지 맡아서 일하고 있으니, 전주국제영화제와는 보통 인연이 아니다. 총 아홉 번의 영화제 중에서, 제1회와 프랑스에 있던 2007년을 제외하면 일곱 번의 영화제가 그의 손을 거쳐 간 셈이다. 웬만큼 영화에 대한 애착이 없다면, 가능하지 않은 일일터. 그런데, 그럴듯해 보이는 많은 일들이 전혀 그럴 듯 해보이지 않은 계기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듯, 그가 ‘전주국제영화제류’의 영화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 또한 조금 우습다.
“1992년인가 1993년인가 전북대 앞에 처음으로 비디오방이 생겼는데, 후배하고 함께 시간 보낼 궁리를 하다가 거길 한번 가보자고 했죠. 그때 우연찮게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을 봤어요.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작품이라던가 뭐 그런건 전혀 모르고, 단지 ‘이중생활’이라는 제목에 끌려서 봤는데, ‘아, 이런 영화도 있구나’하는걸 느꼈죠.”
그는 이때부터 이른바 예술영화를 찾아보고 영화잡지를 구독하며 영화에 대한 갈증을 풀어나갔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영화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아, 좋은 영화가 많은 비디오 가게를 순례하거나 영화 테잎을 수소문하는 것이 일이었다.
2001년 제2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성기석 씨는 홍보팀에서 인터넷 매체 담당을 맡게 된다. 산조예술제며 동문거리축제 등 당시 막 태동하기 시작하던 소규모 축제에서 일하고 있을 때 즈음이었다.
“처음에는 시민영화제를 도와줬는데, 전주영화제 인터넷 담당 자리에서 한번 일해보지 않겠냐고 해서 하게 됐어요. 힘들었지만, 나름대로 재밌기도 했었죠. 그때는 두 번째로 열리는 영화제라 상당히 어수선해서, 다들 119구조대였어요. 1회 때 팀이 거의 나가고, 거의 새 팀이 급조되어 준비되어 있던 것이 없었거든요. 홍보를 해야 할 시기에 맞춰 자료가 나오지는 못했죠. 그래서 직접 영화자료들을 찾아서 재구성 하고, 그것들을 토대로 새로운 자료들을 만드는 일이 재미있었어요. 덕분에 공부도 많이 됐구요.”
그렇게 전주국제영화제와 인연을 맺기 시작해 4회 때는 이벤트를 담당하게 되었고, 2004년 제5회 영화제 때는 기획운영팀장으로 일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전주국제영화제에 있어 없어서는 핵심 인력이 된 셈이다.
2006년, 제7회 영화제가 끝난 직 후, 그는 영화제의 지원을 받아 프랑스 니스 대학교로 유학을 가게 됐다.
“영화제는 다양한 전문인력을 필요로 해요. 영화제의 승부는 각 팀장들의 능력이 얼마나 되느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래서 영화제 쪽에서 사람을 키우려고 일년에 한명 씩 유학을 보내자고 한거에요. 운 좋게도 제가 처음으로 선정돼서 갔는데, 그때는 예산지원이 되질 않아 영화제 임원들이 십시일반 모아서 보내줬어요. 한달에 백만 원씩 지원받았는데, 덕분에 좋은 공부 많이 하고 왔죠.”
프랑스 니스대학교에서 그가 공부한 것은 문화예술 경영 석사과정이었다. 일단 공간이 있어야 그 공간에서 다양한 기획과 시도들을 해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프랑스의 문화정책과 환경들을 많이 접했어요. 프랑스의 문화정책들을 이미 소개가 많이 되어 있지만, 현장에서 직접 보고 경험한 것과 같을 수는 없겠죠. 특히, 작은 영화제들을 보면서 자극을 많이 받았어요. 전주국제영화제가 모델로 삼을 만한 것들도 많았죠.”
그가 프랑스에서 얻어온 가장 큰 자산은 영화제가 연중 지역내에서 문화를 확산시키고 교육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 실제로 프랑스에서 열리는 소규모의 영화제들이 그렇게 하고 있는 모습들을 보고 왔다.
“10회까지는 어떻게든지 영화제 일을 계속 해야죠. 그동안 10회 이후에도 꾸준히 사랑받을 수 있는 영화제를 만들기 위한 시스템과 인프라 등을 체계화 시키고 싶어요.”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는 영화제 이외에 두 개의 큰 숙제를 갖고 있다. 국제영화제작자연맹의 실사 준비와 ISO9001(품질경영관리시스템) 인증이 그것이다. 두 개의 숙제를 잘 풀어 낸다면, 전주국제영화제는 명실공히 세계가 인정하는 ‘국제영화제’의 반열에 올라 설 수 있다.
“사람들이 영화를 통해 세상사는 재미를 조금 더 느끼고,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 더 넓어 질 수 있는 그런 영화제가 되어야죠.”
다시, 휴대폰을 손에 쥐며 일어서는 성기석 씨의 말이었다.
최정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