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5 |
[명인명장] 내가 살아온 세상
관리자(2008-06-09 22:35:37)
“똥바가지를 젓어서 꿀떡꿀떡 먹었지”
구술 이일주 ㅣ 정리 김선경ㅣ 사진 유백영
이일주 약력
1936년 충남 부여에서 7남매 중 둘째로 태어남
14살 때부터 서편제 소리의 대가였던 증조부 이날치, 아버지 이기중 명창으로부터 판소리 사사
19살 때 공식 데뷔하여 남원, 전주 등에서 활동
1953년 박초월, 김소희 명창에게 사사
1974년 오정숙 명창에게 동초제 판소리 사사
1979년 44살에 전주대사습놀이 명창부 장원(대통령상)
1983년 49살에 전라북도 판소리(심청가) 무형문화재 지정
이후 도립국악원 교수 역임
1995년 춘향가 앨범 발매
2003년 심청가, 흥보가 앨범 발매
2005년 수궁가 앨범 발매
2007년 다섯바탕의 완결판, 적벽가 앨범 발매
현재 민소완, 조소녀, 방성춘, 송재영, 장문희 등 내로라하는 대사습 장원을 길러냈으며 지금도 쉬지 않고 전주시 우아동 자택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음
인터뷰를 몇 번이나 미루셨습니다. 완벽한 컨디션이 아니라면 남 앞에 나서기를 꺼려하는 성정. 판소리 5바탕을 12년에 걸쳐 녹음해내고야 만 고집. 살아 있는 서편제 최고 명창으로 꼽히는 이일주 명창입니다. 처음으로 아파트살이를 하고 보니 뜻하지 않게 감기까지 걸려서 제자들 가르치는 일도 당분간 쉬고 있습니다. 고운 얼굴 아니니 사진도 찍지 마라 하십니다. 늙은 것이 뭣 하러 무대 위에 올라 가냐고, 공연계획을 묻는 이에게 무안을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이일주 명창의 평생소원은 판소리 5바탕 완창녹음이었고, 마침내 그것을 다 이뤄내고야 말았습니다. 판소리 5바탕을 모두 부를 줄 아는 명창은 고 박동진, 김연수, 안숙선 등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입니다. 특히 5바탕 완창을 '음반'으로 남긴 소리꾼은 오정숙, 이일주 명창이 유일합니다. 일흔이 넘은 나이, 쉽게 나오던 소리도 요즘 부쩍 힘들어졌습니다. 그녀에게 남은 삶은, 제자들에게는 축복입니다. 기억도 까마득한 옛날, 그녀의 기억 속에는 ‘소리와 제자’들밖에 없습니다. 개인으로서의 삶, 여자로서의 삶은 없었습니다. 너무나 간결해서 고결하기까지 한 이일주 명창의 삶. 그녀의 목소리로 들어봅니다.
내가 선생님 목을 잘 따
내가 요새 감기가 들어가지고 목소리도 안 나오고 학생들이 하나도 못 갈치고 있어. 사진은 찍지 마. 저기 벽에 걸린 놈만 찍어 가. 재영(*송재영 명창/이일주 명창의 수양아들)이도 26일날 서울에서 발표회 있어서 바뻐. 적벽가 완창이여. 국립극장에서.
나는 어려서 아부지(*이기중 명창)헌티 소리를 배웠어. 나가 어렸을 때부터 목청이 좋았는가벼. 니가 크면 소리깨나 허겄다. 그런 말을 많이 들었는디 그 말이 맞은가, 어디에 좋은 선생이 있다믄 꼭 거그 찾아가서 공부를 했어. 내 소원이 국창한테서 공부허고 싶은 마음이 커서 그런 사람들을 찾아댕갰지. 박초월 선생님헌티 흥보가를 했어. 글고 나와 가지고 박초월 선생님 성음을 내가 고대로 팍 따버렸어. 박초월 소린지 나 소린지 몰라. 둘이 성음이 똑같응게. 그렇게 했는디, 허다 보니까 또 양이 안 차서 김소희 선생한테 가서 공부했어. 근디 그 양반 성음을 또 딴 거여, 내가. 선생님 목을 잘 따, 내가. 소리를 들어보면 인자 김소희선생님지 난지 몰라. 어떻게 그렇게 선생 목을 잘 땄는가 몰라.
좋은 선생이 있응께 배울랑가?
그렇게 허다가 인자 전주로 이사를 와 가지고 전주 오정숙 선생님이 발표허신다고, 심청가 발표허신다고 공부를 허던 때여. 한일식당을 혔어, 한일식당. 나 아는 성님이 소개를 해줘서 거그서 공부를 혔어. 성은순씨라고 하는 양반이 “어찌 다른 데 사람이 전주로 왔는가?” 그래. 금서 “좋은 선생이 있응께 공부를 헐랑가?” 그래. "그러면 가서 해야지요.” 허고 갔어. 갔더니 소리 한번 들어보자고 해서, 그 전에 허던 소리를, 박초월씨의 수궁가를 했어. 그랬더니 좋다고, 공명 좋고 소리 참 좋다 그려. 그래서 거그서 오선생님한테 공부를 허라고 그려. 근디 선생이 무서워가지고 허다 말다 허다 말다 그랬어. 선생님이 무서와. 그래서 허다 말었어. 근디 난중에 자꼬 델러와싸. 안 간다고 보내고 보내고 허믄 또 델러오고 근단 말여. 그래서 그냥 가서 공부를 허는 도중에 전주대사습 첫 회를 헌다고 글등만. 그 소리를 들응게 욕심이 바짝 생기데. 그래서 그 동안 우리 오선생님한테 심청가 배워서 나가까? 그런 생각이 들데. 그래서 공부를 했어. 해가지고 대사습 1회 때 대회를 나갔지. 우리 선생님이랑 같이 나갔어. 나는 오정숙 선생님이 나오신지도 모르고 대회장 가서 봉게 화장을 혀. 그래서 “어찌 나오셨어요?” 긍게 대회 나오셨다고 혀. “아이고 선생님이 나오시는디 제자가 어떻게 나간대요? 나는 안 나갈라요” 그랬더니 “아녀 아녀 제자하고 선생허고 같이 해도 괜찮여” 괜찮다고 자꾸 막 그러네. 그래서 했어. 같이 나가서 나는 장려상 받고 우리 오정숙 선생님이 장원을 했지. 그때는 대통령상은 못 허고 나중에 광주 가서 대통령상 했어.
박정희 대통령이 나 상주고 돌아가셨당게
그리고 나서도 나는 쭉 대사습 나갔지. 제자들 키움서. 2회 나가고, 3회 나갈랑게 우리 아버님이 돌아가셨네. 우리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소복 입고 대회에 나갈 수는 없어서 한 해 대사습을 꿇고 또 나간 거여. 그래서 6회 때 대통령상을 탔지. 박정희 대통령상을. 박정희 대통령이 나 상 주고 돌아가셨당게. 5월에 상 주고 10월에 돌아가셨어. 얼매나 울었는가 말도 못해. 그 양반 돌아가시고 1년이나 울었당게. 어찌나 죽겄던지 아주.
그때 나는 전주에서 셋방 얻어가지고 살았어. 대통령상 타고 전주 문화재가 됐어. 내가 전주로 와가지고 첫 번째로 문화재가 된 거여. 그 전까지는 판소리 문화재가 하나도 없었어. 하나도 없었는디 내가 전주로 와가지고 대통령상 타고 그런게 홍정택씨허고 둘이, 그 은순가 문화재를 맹글어주드만.
근디 나가 문화재 된께, 타관에서 와가지고 문화재 됐다고, 욕을 많이 혀. 선배들이 안 되고 내가 됐다고. 그래도 내가 문화재 되는 바람에 다른 사람들도 싹 문화재 됐어. 인자 전주에 문화재가 말도 못 허게 많아. 다 문화재 된께 마음은 좋긴 좋더만, 내가 구박 당하던 생각허면 속이 상해.
제자들이 대통령상을 열너덧 개 탓을 것이여
문화재 되고 나서 여그 국악단, 도립국악단 교수로 발령이 나서 8년인가 9년인가 있다가 나이가 차갖고 나왔지. 도립국악단은 완전히 공무원 생활이여 공무원. 제자들은 계속 길렀지. 전주 옴서부터 계속 길렀지. 민소완이라고, 그 제자부터 내가 길렀어. 그리고 인자 재영이 길르고, 내 제자들은 워낙 많아서 도립국악단 제자들까지 합하면 수천 명이 넘지. 그리고 머시냐, 혼자 나와갖고 저그 호반촌에서 주택하나 사서 제자들 갈쳤지. 그 집이 좋았는디 괜히 아파트로 이사왔당게. 아파트 안 살아보다가 처음으로 살았더니 별로야. 거그가 정원이 참 좋아. 거그서 삼서 인자 내집이 내방에서 제자들을 갈쳤지. 수도 없이 갈쳤어. 제자들이 대통령상을 한 열너덧 개 탔을 것이여. 또 문화재가 다섯 명이냐? 내 제자가... 조은숙이 민소완이 조소녀, 대구 방성춘이...문화재가 넷이여, 넷!나는 좋은 선생만 거쳤지, 좋은 선생만. 글다봉게 반듯이 트집기 안 잡게 소리를 배웠단 말이여. 내가 그렇게 소리를 배웠응게 내 제자들이 다 크잖여? 각 없는 선생한테 배운 것을 고칠라믄 골병 들어서 못 갈쳐. 앞으로 인자 대통령상 받을 제자들이 많이 있어. 한참 많다가 끊어졌는디 인자 또 나올 때가 됐어. 키운 놈들은 많은디 나이가 안 차서, 대사습은 서른 살 돼야 나갈 자격이 된게 그동안 묵힌 거여. 인자 나이가 거즘 찬게 인자 또 대통령상이 쏟아질 것이여.
동초제를 따라갈 소리가 없어
인자 제자들은 그렇게 갈치고 먹고 살고 그랬지. 내가 선생 성음을 그대로 땄는디 장문희가 그려. 장문희 알지? 대통령상 탄 지 3년 됐냐? 처음 나가가지고 일등 했어. 첫 번째로 나가서 일등 했어. 대통령상은 재영이가 먼저 타고 나중에 문희가 탔어. 재영이가 나가니까 장문희는 안 나갔지. 송재영이가 소리를 잘해. 재영이가 동초체 소리를 사방에 알리고 다녀. 인기도 좋고 인간성도 좋아. 머스마가. 사람들이 따라싸. 사방에서 오라고 허고, 발표회 해달라고 해싸. 옛날에는 동초제 소리 못 쓰겄다고 얼마나 구박받은지 알어요? 사방에서 욕허고 난리였어. 근디 내가 동초제를 해놓은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 오자가 있는가, 고칠 말이 있는가, 말 붙이고 이런 것이 동초제 따라갈 소리가 없어. 보성제 허는 사람들이 나보고 욕헐랑가는 몰라도, 좋은 건 좋다고 혀야지. 내 것을 무단히 좋다고 허면 그건 미쳤지, 사람도 아니지. 근디 오자도 없지, 못 쓰는 말도 없지, 책에다 딱 토를 달아서 아주 소리를 허투루 헐 수가 없어. 동초 선생님이. 재영이가 그것을 본받아갖고 무대에 올라가믄 동초 선생에서부터 오정숙 선생에서부터 나까지 전부 다 말을 허고 그 다음에 소리를 혀. 동초 선생님 소리가 어디에서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 사람들이 수천 명이여. 동초 선생님 바디를 오정숙 선생님이 허셨고 이일주 선생님이 오정숙 선생헌티 공부해가지고 지금 제가 이일주 선생님헌테 공부해가지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그러고 나서 소리를 혀. 그렇게 말 안허믄 동초제가 머신지 몰라. 근디 우리 재영이가 댕김서 동초 선생님, 우리 오정숙 선생님 찾아서 넣고 나까지 넣고 그래서 많이 알려졌지. 내가 동초제 소리를 허면 그렇게 좋다고들 혀. 내가 헐 소리는 아니지만. 안 좋은디 좋다고 허믄 맞아죽을 소리지만, 그 좋은 동초제 소리를 내가 소화를 해가지고 널리 보급을 시켰지, 내가 진짜.
옛날에는 보성제만 알지, 동초제는 몰라. 동초제는 이렇게 딱 덮어놔부러. 근디 우리끼리 해봉게 재미있고 좋고 말을 버릴 디가 없어. 긍께 인자사 서울서 동초제라믄 와아~ 허지. 제자들 양성해서 서울로 학교 갔지, 서울에 직장 잡았지, 내가 가서 소리를 들어보믄 알지. 동초제 몰랐는디 이렇게 동초제가 좋다고 사람들이 탄복을 혀. 인자는 사람들이 동초제를 알어. 내가 소리해서 보급을 시기고, 내가 오바탕을 다 했어, 오바탕 소리가 다 나와 있어. 그것이 서울로 다 보급되고 내 테이프 들어보믄 좋거든. 제자들이 중앙대, 서울대 막 댕김서 소리허고 그러면 “누구 제자여?” “이일주 선생님 제자요.” “얼레~ 잘허네. 좋네” 이렇게 해서 소문이 난 거여. 그 전에는 보성제만 알았지, 동초제는 동자도 몰랐어.
어혈 풀어지라고 똥물을 먹는 것이여
옛날에는 목이 안 나오믄 사람 인분, 그걸 먹었어. 나도 먹었응게. 나도 그걸 몇 그릇을 먹었어. 송재영이도 몇 그릇 먹었어. 내가 제자들 멕일라고 제자헌티 똥물을 부탁했더니 보리가루를 대에다가 올려서 큰 변소에다 푹 달아매갖고 넣고는 한 3년이나 있다가 끄집어 내갖고 그 놈을 갖다가 맥주병에다 받어갖고 저그 저 .... 은석골 가서 거기서 멕였어. 김연이 있지, 김연이? 연이가 소리 욕심이 많어. 똥물을 먹는디 똥찌게미가 입술에 붙었어. 그걸 보고 놀린게 내가 언제 똥찌게미 먹었냐고 그려. 긍께 지금은 소리 잘 허잖아? 알고도 먹어. 냄새 나는디 그걸 몰르겄어? 제자들 아홉 명을 쭉 앉혀놓고 너 먹어라, 너 먹어라, 이만한 대접에다 따라가지고. 근디 확실히 똥물은 효과가 있어. 소리공부를 많이 허면 몸속에 어혈이 차 어혈이. 그놈 어혈이 풀어지라고 똥물을 먹는 것이여. 긍께 처음부터 먹는 것이 아니고 소리를 많이 해가지고 어혈이 찼을 때 먹는 것이여. 맞아서 아퍼서 죽게 생긴 사람헌티 똥물 퍼서 멕이듯이, 그렇게 하는 것이지. 인분이 좋은 디는 참 좋은 것이여. 지금은 쥐가 있고 농약 치니까 똥물은 안 받는디 그 전에는 똥물을 받아가지고 그것만 삭혀. 그래서 먹고 그랬지. 내가 인자 조소녀하고 민소완이하고 저그 단석사 가서 백일 공부를 했는디, 주인 보고 똥물 좀 받으시오, 했더니 똥물을 받았어. 그래서 이만한 그릇에다가 민소완이꺼, 조소녀꺼, 따로따로 했는디, 그 냥반이 똥물 걸러내니라고 욕봤어. 그래서 인자 아침밥 먹기 전에 먹어야 허는디, 민소완이 얼렁 와서 요것 좀 먹어봐, 그랬더니 깜짝 놀라. 조소녀도 얼릉 와서 먹어봐 내가 거르니라고 욕봤응게, 했더니, 안 먹어요, 그래. 요놈 먹으면 목도 풀리고 어혈도 풀리고 좋은디 왜 안 먹어? 그래도 펄쩍 뜀서 안 먹는다고 그래. 민소완이는 안 먹는다고 허고, 조소녀는 아예 방에서 나오도 않고. 그래서 요놈 먹으면 좋다고 또 말했더니 민소완이가 대접을 딱 집어들고 꿀떡 꿀떡 꿀떡 먹어. 그래도 조소녀는 끝까지 안 먹었어. 그래서 민소완이는 5바탕소리 다 했잖아, 발표도 허고.
똥물 잘못 먹으면 태독 걸린다
그렁게 그 용기, 오기, 그것 가지고 허는 것이여. 내가 요놈 먹고 소리 잘해야것다는 욕심, 5바탕 해야겠다는 욕심이 그걸 먹게 하는 것이여. 첨에는 똥물을 어떻게 먹냐고 펄쩍 뛰지. 내가 여름 내내 모기장 뜯어다가 똥물을 받쳐서 멕였거든. 요즘 젊은 애들도 내가 먹으라면 먹어. 내가 요즘엔 똥물을 구해지 못해서 그렇지. 구해주면 먹어. 지들이 내가 먹으란디 안 먹어? 다 먹지! 나는 우리 아버님한테 배웠어. 우리 아버님이 공부 갈침서 똥물을 그렇게 잡숴 싸. 나한테도 먹으라고 하드만. 그래서 집에 갔더니 똥물 받아놓은 것도 없고 해서 변소간에를 들어갔어. 글고는 거르지도 않고 똥바가지를 젓어갖고 꿀떡 꿀떡 막 먹었지. 다 먹고 나서 생강을 먹은게 똥 냄새가 하나도 안 나. 생강이 아주 최고여. 그렇게 처음 똥물을 먹고, 또 서울을 가니깐, 박초월 선생님한티 공부를 했는디, 누가 거그서도 똥물을 먹어. 어떤 공부하는 여자가 어느 날 나한테 “저는 좋은 약 먹어요!” 그러데. 그래서 뭔 존약인지 나한테 일러달라 했더니 “안 일러드려!”그래. 그리고는 며칠 있다가 와서는 나한테 “선생님처럼 목 트는 법 좀 일러줘요.”그래, 나보고. 그래서 내가 일러줄 테니, 좋은 약도 알려달라고 했지. 그래서 그냥 목을 일러줬어. 그랬더니 나보고 귀를 대보라고 해. 그래서 댔더니 “똥물 먹어요!” 그래. 나는 진짜 좋은 약 먹는 줄 알았어. 하여튼 그래서 어디서 누구한테 똥물을 구해서 먹냐고 했더니, 박초월 선생님 가르치는 곳에 애들이 배우러 오니까 그 안 쪽에서 똥물을 팔고 있드만. 그래서 거그서 대두병으로 한 병을 샀지. 그때가 우리나라 화폐개혁이 했었을 때여. 그러고 나서 얼마 안 돼서 박정희가 대통령 되았어.
그 똥물을 먹는디 시상에, 낙원동에서 1원짜리 밥을 먹고, 그때는 1원으로 뭐든지 다했어, 1원으로 밥 한 그릇 먹었는디 그것 갖고 젊은 년이 양이 차나? 그렇게 고생을 허면서 서울서 공부를 했어. 근디 아부지 친구 분이 한 분 계셨는디, 그 냥반이 나 똥물 먹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서, 아가 아가 그것이 먼 일이냐? 그려. 내가, 그냥 먹어요, 그랬더니, 아이고 너 그렇게 먹으먼 태독 걸린다, 나랑 가자! 그래. 자기딸이랑 나랑 데리고 낙원동에 개고기 파는 디가 있었는디 그리 데리고 가. 오두막집겉이 생겼는디, 그리로 가더니만 이만한 판에다가 개고기를 이만큼 쌓아놓고 막 먹으래. 똥물 먹었을 때는 개고기를 먹어야 태독이 안 걸린다고. 그래서 그 냥반이 사줘서 빼갈 한 잔 먹고 개고기 그 놈을 맛있게 먹었단 말이여. 그래서 그 일이 그리 안 잊힌당께. 나가 어디 인터뷰 헐 때마다 그 이야기가 들어가네.
그렇게 개고기를 먹고 한 숨 자고 일어나서 어~ 헌게로 목이 확 나와부러! 참 좋아! 그렇게 소리 공부를 했어.
야, 너 소리 못허것다, 그냥 가!
오정숙 선생이 나보다 한 살 더 많은디, 처음부터 선생님이었응께 나한테는 항상 선생님이지. 제자는 항상 선생님을 받들어야 혀. 항상 우리는 그것부터 시작 혀. 우리 재영이는 나한테 참 잘혀. 공부 귀신이여 공부 귀신. 우리나라에 남창이 참 귀헌디 송재영이가 요새 소리가 괜찮아. 많이 좋아지고 있어. 지난 번 광주에서도 공연허는디 대환영 받고 아주 좋았어. 또 인자 26일날 서울 가서 해. 동초제는 가가 다 이름을 내고 있당께 지금.
첨에 어떻게 재영이를 만났냐면, 나 혼자 국악원 하나 열어갖고 있을 때인디, 어떤 머스마 하나가 찾아왔어. 여그서 공부 좀 헐 수 있어요? 그려. 너 어디서 왔는디? 그렁께 임실서 왔어요 그래. 그럼 그동안 공부는 했냐? 그랬더니 쪼금 했어요 그래. 그래? 그럼 한 번 들어와 봐라 그랬지. 그때 막 군인 제대하고 바로 왔드만. 그래서 소리를 한번 해봐라 그랬더니 소리가 발발성이 나와, 발발성이. 발발성은 소리가 벌벌벌 떠는 거여. 그래서 야 너 소리 못 허것다, 소리는 벌벌거리는 것이 있으면 안 되는 거여, 그냥 가! 그랬더니 아이고 선생님, 공부 좀 가르쳐 줄 수 없어요? 하면서 자꾸 사정을 허는 거여. 그래서 니가 꼭 허고 싶냐? 그런디 발발성이 없어질랑가 몰르겄다, 했더니, 노력허께요, 한 달 있다가 올게요, 그래. 나는 그냥 벌로 약속을 했는디 한 달 후에 딱 찾아왔어. 머리를 곱슬머리로 지져갖고.
니가 누구냐? 했더니 저번 날 왔던 사람이요, 그래.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했어. 앞으로 수궁가 해야지 흥보가 해야지 적벽가도 해야지 헐 일이 많어 앞으로. 공부를 해야지. 5바탕 다 해야된께. 제자들 중에서도 참 남다르지. 언제고 좋은 것 있으면 다 사멕이고. 내가 제자들도 많고 동기간이 6남매인디 누가 와서 밥 한 번 해 준 사람 있나? 재영이가 다 해줬지. 다 챙겨주고 밥 지어서 멕여주고, 밥맛 없어서 밥을 못 먹응께 맛있는 데 가서 좋은 것도 사주고 정성으로 다 해줘.
장문희도 나헌티 잘 혀. 하루에 한번씩 전화하고 맛있는 것도 사다 주고....장문희는 동생 딸이여. 8살 묵어서부텀 나한테 와갖고 그때부터 갈쳤어. 그때는 이렇게까지 잘할지 몰랐지. 중학교 3학년 정도 되니까 좀 잘헌다 싶드만. 대회만 데리고 나가면 상을 타갖고 옹께. 집안에 상장이 몇 갠지 몰라. 대회만 나갔다 허면 그냥 1등 해버링께. 장문희는 학생 대사습에서 장원했지, 일반부에서 장원했지, 명창부에서 장원했지. 아마 장문희처럼 장원한 경우는 한 번도 없었을 것이여. 원래부터 핏줄내림동 있는데다 맨날 내 소리만 듣고 있응께 저절로 공부가 되는 것이여. 근디 아무리 들어도 안 될 놈은 안 돼. 안 될 놈은 천하없어도 안 돼. 장문희가 타고 났응게 그러지. 송재영이는 타고난 것은 좀 부족해도 죽어라고 열심히 공부하는 형이여. 공부귀신이랑께.
인자 늙어서 무대에는 안 올라가
나도 소리공부가 안 될 때는 후회한 적도 있었지. 남들은 보약도 먹고 그런디 나는 돈이 없어서 보약도 못 먹어. 그래서 그런 사람들 보면 부러워 비여. 그렁게 소리 작파할 마음도 들어가고 막 울고 그랬어. 무단히 소리공부 했다고...그러고 중간에 나가 한번 소리작파 해갖고 한 2년 동안 공부를 안 했어. 긍게 인자 자꾸 소리했던 버릇이 있어 가지고, 남들이 “니는 소리를 허먼 대명창이 되겄다”는 소리를 자꾸 내 목만 들으먼 그 소리를 허네. 선생님들이 니는 대명창 된다, 대명창 된다, 다 그런단 말이여.
근디 내가 내 목소리를 들어도 좋아 그냥. 넘들이 들으면 어떻게 생각할까 몰라도, 내가 내 목소리에 취해 갖고 울고 그랬다니까 소리허먼서. 그렇게 울어싸. 내 목소리가 내 귀에 들어오먼 내 목소리가 내 애간장을 건드려. 내가 이런 소리 허면 지 목소리에 지가 취헌다고 욕헐랑가 몰르겄지만, 이건 내가 실지여. 실지 있는 일이여. 소리허다가 춘향이가 도련님허고 이별허고, 그 애타고 애절허고 허는 심정을 입으로 허면 그 애타는 곡성이 내 귀로 들링께 운다니까. 참 나, 미쳐, 내가 그런 짓을 많이 했당게. 그래서 내가 소리를 험서, 미쳤어, 내가 미친년이여, 속으로 그런당게, 내가.
그렁께 좋은 대목, 상청 팍 질러서 올라가믄 목 좋고 소리 앵길 적에 그렇게 그냥 울어싸. 지 소리를 듣고 지가 우는 사람은 내배끼 없을 것이여. 넘들이 들으면 뭐라고 헐랑가 몰라도 그렇게 눈물이 난당게. 심청가 허면서도 울고....내 목구성에 내가 빠져가지고 근당게. 노상 그렇게 울어싸. 흥보가도 형님한테 매맞고 오고 허는 것 생각하믄서 울고, 서울서 완창발표회 헐 때 많이 울었당게. 고수도 울고, 나도 울고. 내가 운게 고수도 따라서 울어. 그 고수가 주봉신이여. 그 양반도 그렇게 울어쌌어.
심청가는 더 말 헐 것도 없고, 춘향가도 그렇고. 적벽가는 울 디가 없는디, 부모 처자 다 버리고 쌈터에 나갈 때, 그때 먼 산 쳐다보고 고향 생각하면서 울어. 적벽가는 거그서 울어. 거그서 운당게 염병나게. (소리 한 대목) 고햐앙을~ 물끄미 바라아 보며~ 그럼서 운당게. 내가 인정을 빼면 뒤로 자빠진당께. 사랑허고 애통허고 이별허믄 죽게 생겠는디, 혼자 춘향이 심정을 생각하면 눈물 나서 안 울고는 못 배겨. 바보나 안 울까 다 울어. 심청가도 부모를 위해 몸 팔고 부처님한티 몸 팔고 삼백석에 몸 팔고 얼매나 심청이가 즈아부지 눈뜨게 헐라고 애를 쓰는지 얼마나 불쌍하고 애절헌지 말도 못해. 책으로 읽어도 눈물이 나는디 그걸 상청으로 질러봐 눈물이 나나 안 나나. 환장해 죽지. 귀신 성음도 입으로 나오는디 이히 이히...
무대에는 인자 늙어서 안 올라가. 안 혀. 요즘엔 밥만 묵으면 제자들 갈치는 것이 일이여. 근디 시방은 감기가 걸려갖고 목을 못 내질러. 병원에서 소리 지르지 말라고 허고 학생들도 말려서 쉬고 있어. 인자 다섯 바탕도 다 해부렀고 CD도 다 나왔응께 제자들 갈치는 것 말고는 헐 일이 없어. 인자 늙어갖고 무대에 서는 것도 미워서 안 혀. 나와 달라고 해도 안 나가고 시방은 방안귀신이여. 적벽가 녹음할 때 참말 고생을 많이 했어. 송재영이가 워낙 유식해갖고 발음 하나하나를 다 고친께 내가 아주 죽을 고생을 했지. 적벽가는 가사가 워낙 어려워서 나 혓바닥에가 안 붙어. 어찌나 혓바닥에 안 붙등가 내가 녹음하믄서 몇 번이나 울었능가 몰라 아주.
앞으로 더 국악 판소리가 발전돼 가지고 “우리 판소리 안 들으면 살맛이 없다”고 그럴 정도로 판소리가 발전돼 가지고 모다 제자들도 많이 양성 시기면서 세월을 보냈으면 쓰겄어. 인자 우리는 나이가 칠십이 넘어놔서 앞으로 살먼 얼매나 살겄어? 긍게 인자 제자들을 많이 양성시게야지. 판소리 발전만 많이 되기를 바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