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03.2 | [세대횡단 문화읽기]
신념이 있어 절망의 끝은 다시 희망이다 농민운동가 송병주, 윤양진
김회경 문화저널 기자(2003-04-18 17:27:03)
윤 : 항상 자주 보는데도 오늘은 격식을 갖고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 자리라 조금 어색하고 쑥스럽습니다만, 문화저널 독자들께 농민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고민이나 앞으로의 전망을 들려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 반가운 마음입니다. 송 : 항상 사석에서만 이런저런 이야길 나누던 처지였는데, 공식적인 자리가 갖춰지니까 부담도 좀 되고 무슨 이야길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걱정이 되긴 하지만 좋은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 윤 : 예. 선배님을 처음 뵌 게 서울 전농에서 근무하던 96년쯤이 아닌가 싶어요. 전농 교육사업을 진행하면서 지역에서 활동하고 계신 분들은 누구나 다 안면이 있었는데, 선배님도 그렇게 해서 처음 만났던 것 같습니다. 송 : 그랬던 것 같아. 이제는 같은 농사꾼으로 만나게 됐네. 작년에는 무슨 농사를 지었지? 윤 : 참외를 세필지 정도 지었어요. 많이 힘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초반에 태풍이 불어서 상당히 고생을 했거든요. 군인이나 후배들이 없었으면 아마 더 힘들었을 겁니다. 송 : 세필지면 적지 않은 규모인데, 협업체계로 한건가? 윤 : 예. 그런 셈이죠. 주변에서 반대도 많았는데, 참외 전문가 한 분을 운좋게 만나서 도움을 좀 받았어요. 10년 이상 해오신 분이 기술지원을 해주셨는데, 사실 나중에 지어놓고 공동 정산하려니까 남는 게 없더라고요. (웃음) 송 : 그래도 경험은 남았잖아. (웃음) 윤 : 예. 그런데 타격이 만만치 않았죠. 키운 것 중에서 삼분의 일이 죽었고, 딸 때쯤 해서는 줄기가 다 상해서 연작피해가 생기더라고요. 지금은 다 정리하고 쌀 농사만 짓고 있어요. 송 : 부부간에 둘이서만 하나? 윤 : 집사람은 사무실 나가느라 많이 도와주진 못해요. 면 회원들이 많이 도와줬죠. 저희 회원들은 좀 젊은 편이라 도움을 많이 얻었습니다. 그런데 참외 협업하면서는 마찰이 꽤 있었어요. 더군다나 남기지를 못해서 더 그랬죠. (웃음) 사실 얼마를 벌겠다는 것보다는 참외 기술을 가진 분이 형수와 애가 죽고, 참외농사도 다 날렸거든요. 건강도 좋지 못했고요. 같이 일하기엔 힘이 달리는데도 아는 형이 자립하고 자신감을 갖게 하는 기회를 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했어요. 그런 점에서는 제가 세운 목표는 일정부분 이룬 것 같아요. 송 : 요즘 협업하는 예들이 많긴 한데, 성공하느냐 못하느냐는 결국 사람 문제더라고. 협업 지도자가 모범이 되고 경제적으로 희생해야 할 각오도 서야 되는데, 자신이 기술력이 있다든지 투자를 했다든지 하면 이런 관계를 지켜나가는데 게을러질 수가 있거든. 인간성이 성숙돼야 그것도 성공하더라고. 어쨌든 경험 쌓는다는 게 중요하지. 1년정도 하고 나서는 지속이 안되고 다들 따로 흩어졌나? 윤 : 사실 지속할 계획은 아니었어요. 방금 말씀 드렸지만, 아는 형이 자신감을 얻게 돼서 나름대로 수확은 거뒀다고 생각하거든요. 협업은 기본적으로 같은 곳을 바라봐야 하는데, 생각이 다르면 의견을 일치해 가는 과정이 상당히 어렵더라고요. 선배들이라 저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었고요. 그런데 수익에 대해선 별로 계산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마음만 먹으면 시시콜콜 충분히 따져볼 수도 있지만, 일한 만큼 따질게 없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웃음) 별로 그러고 싶지 않더라고요. 송 : 젊은 활동가들한테 그 이야길 하고 싶어. 농촌 생활이 어려워질수록 수지 문제는 철저히 맞춰봐야 한다고 생각해. 그것에 맞춰서 절약할 것 절약할 수가 있고, 생산성을 제고할 수 있는 근거도 거기에서부터 나오지 않나 싶어. 젊은 활동가가 적응을 못하는 부분이 사실 경제적 어려움이 제일 큰데, 정치적 목표만으로는 극복하기 힘들단 말이지, 농민운동은 생활이니까. 나도 잘 하진 못하지만, 큰 테두리를 정하고 그때그때 적어가면서 상황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도 살피고 가능한 한 맞추려고 노력하는 편이거든. 절망 속에서도 사람만이 희망이다 윤 : 예. 활동가들이 많이 느끼는 부분인데 선배 활동가들 말씀대로 경제적 문제로 상당히 고민이 많아요. 대부분의 고민이 농가부채 문제고 어떻게 보면 특별한 활로가 없는데도 이상하게 표현을 잘 안하는 것 같더라고요. 늘 내재돼 있는 고민인데, 그 문제가 다른 식으로 분출되어 나오는 게 아닌가 싶어요. 제가 전농에 있으면서 전북 도연맹 활동가들을 보면서 느낀 게 있는데요. 일반적인 현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게 먹고 적게 쓰자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다른 경기도나 강원도 활동가들을 보면 많이 벌고 많이 쓰는 편이거든요. 만길이형 스타일도 그런 것 같고요. 송 : 그런가? 만길이나 진원이(후배 활동가) 같은 경우는 미안한 마음이 있어. 최근까지도 전업 활동가에 가까울 정도로 하다 보니까, 자기 생활을 둘러보지 못하는 상황이었거든.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할 순 없다고 봐. 윤 : 항상 고민되고 답이 없는 문제긴 한데, 우리나라 농업에 어떤 전망을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송 : 사실 나라고 뾰족한 대안이나 별다른 전망은 없지만, 우리가 농민운동을 하는 이유, 목표하는 것이 뭔지를 생각한다면 그 속에서 활로가 찾아지지 않을까 싶어. 농업현실이 어려워진다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포기한다면 한국농업 자체가 위기상황에 올 게 뻔하니까. 위기만 생각하면 쉽게 답을 못 찾을 것 같아. 결국은 용기와 희망을 갖고 꿋꿋이 진행해 가면 농민들에게 위로와 희망이 될 거라고 생각해. 미국놈들 같은 경우는 자기들이 포기 안할거라고 생각하는 건 어떤 경우에든 포기 안하잖아. 예를 들어 그네들 주식인 우유같은 것 말이지. 우리도 마찬가지야. 쌀이나 된장, 김치는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식품이고, 이 부분이 지켜져야 그 연관성 속에서 다른 식품도 지켜질 수 있다는 거지. 이 부분에 대해서 늘 고민하지만 이것이 답이다, 라는 건 사실 나한테도 어려운 문제더라고. 윤 : 항상 농업에 대한 전망을 이야기하거나 교육을 받아도 답이 없고, 결국은 우리가 답을 만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솔직히 희망이 뭐냐 할 땐 결국 주변 사람들의 변화와 발전이 우리의 힘이 아닌가 싶어요. 제가 작년까지 면 농민회 총무를 맡다가, 익산 사무국장이 되면서 주변에서 반대를 많이 했거든요. 상당히 고민스러웠습니다. 농사도 주변 형님들이 도와줘서 작년에 많이 늘렸고, 여러 가지 도움도 얻었는데 꼭 배신하는 것처럼 돼서 많이 죄송했죠. 익산시 농민회가 다른 대안이 없어서 결국은 맡긴 맡았는데 많이 힘들었어요. 면에서 활동할 때는 사람들 움직임이 빤하고 구체적이잖아요. 회원들과 같이 일하면서 즐거움도 느끼고 대화를 통해 사람들이 변해가는 것 보면서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됐거든요. 내가 농촌에 내려와 농민운동 하는 게 틀리지 않구나 하는걸 확인할 수 있었어요. 송 : 참 대단한거야. 서울에서 내려와 여기서 정착할 생각을 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텐데. 윤 : 주변분들의 도움이 많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선배님도 그렇게 생각하시겠지만, 저는 농민운동의 방식이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하는데, 주변에서는 여전히 과격하다는 이야길 하는 것 같아요. 저희한테는 생존이 걸린 문제라 늘 절박할 수밖에 없고, 이 문제가 또 농민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더 목숨걸고 싸우게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이제 싸우는 것만이 아니라 구체적인 대안도 함께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송 : 맞는 얘기고 거기에 좀 더 덧붙인다면, 과거 우르과이라운드 투쟁 과정에서는 소비자 단체 등 같이 옹호해줬던 기억이 있는데, 근래 들어서는 농업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적어지고 있다는 게 보이거든. 좀 면밀히 따져봐야 할 부분이긴 하지만, 우리 경제구조 자체가 농업을 무시하고도 제대로 갈 수 있는 상황에 온 것인지, 아니면 우리 농민운동 진영에서 국민적인 관심사로 만들어 내지 못한 부분에 대해 반성을 해야 하는 것인지 생각을 해봐야 된다고 봐. 과거엔 농민들이 노력한 것에 비해 쌀값이 싸다고 함께 항변해 줬던 풍토가 있었는데, 특히 IMF 터지고 나서는 농민만 어렵냐, 다 어렵다 이렇게들 이야기하고 있거든. 당장 목전에 있는 WTO 재협상 문제에서도 농민들의 힘만으로나 일부 운동진영만으로 돌파할 수 있겠느냐 하는거지. 그러려면 국민적인 관심사를 만들어 내야 가능하지 않겠냐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거기에서부터 우리가 풀어가야 할 숙제가 하나하나 생기는 거라고 봐. 우리가 해 나가야 할 중심 과제는 해 나가되, 주변에서 함께 할 수 있도록 지역과 국가적인 상황으로 확산시켜 나가야 되지 않을까 싶어. 간혹 자기 원칙이라는 입장에서 좀 보수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농업인 단체와 연대하는 걸 소홀히 하는 경향도 있는데, 그들 역시 농사를 짓는 사람이니까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방법도 찾아가야 될 거라고 봐. 정치세력화, 발언권 높이는 것부터 윤 : 예. 국민들의 의식이 가능하면 평화적 시위를 통해서, 국민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고 우리 의사를 전달하는 게 올바르다고 이야기하는데요. 우리 행동이 부담스러우면 안된다는 분들도 있고, 그런 속에서 투쟁의 방식도 바뀌는 것 같아요. 농업의 대안세력으로 농민회가 나서야 한다고 봐요. 예를 들어 협동화의 문제나 쌀의 경우 품질의 향상 등에 농민이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요구가 많잖아요. 전에는 원론적이었다고 한다면, 지금은 각론에 있어 풍부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만들어야 할 필요를 느끼고 있는 것 같아요. 송 : 나는 그렇게 생각을 하는데, 사업을 다양화시켜내야 한다는 거야. 농민운동이 좀 더 영향력을 가질 수 있으려면 농민들에게 줄 수 있는 게 있어야지. 그게 농업에 대한 전망일 수도 있고, 우리 그동안 이야기 해왔던 농업기술이나 생산력 발전에도 기여를 해야 한다고 봐. 윤 : 예. 그리고 농민이 농사짓는 사람이면서 지역 주민으로서 갖는 역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변화된 사회적 틀이 농민회 사업의 영역을 넓히게 한 원인이 됐고, 거기에 부합되는 노력들을 기울여 왔다고 생각하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송 : 나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를 하고 있어. 나 역시 같은 맥락인 것 같은데 예를 들어 익산도 지역 주민 숙원사업이나 주민들 삶과 밀접하게 연관된 환경문제들도 같이 해결하려고 노력해 왔던 것처럼, 가능한 한 지역 시민단체와 지역의 문제를 같이 고민하고 함께 활동해야 한다고 봐. 농민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수입농산물 개방정책이나 미국이 의도하는 세계 재편논리를 깨지 않으면 농민이 살 수 없다고 이야기 해왔잖아. 우리가 주민들과 같이 하고 그들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게 직간접적으로 다 연관돼 있으니까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라고 봐. 시민운동이 민주화 과정 속에서 시민의 권리 획득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아쉬움이라면 보다 어려운 계층, 흔히 말하는 민중에 대한 관심이 전에 비해 얕아진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어. 어찌보면 그네들이 우리와 함께 할 수 있도록 노력하지 못한 부분도 있는 것 같아. 지금의 농업정책은 농업이나 농민을 관리 차원에서만 바라보니까 경쟁력 없는 것은 없애버려라 하는 식이잖아. 그걸 수지 차원에서만 본단 말이지. 농민운동 진영에서도 이런 한계를 정치 세력화로 풀어보자는 이야기가 오가는 것 같은데, 이 부분에 대한 후배들의 생각이 궁금하더라고. 윤 : 정치세력화를 당 건설과 동일시하는 의견들이 많은 것 같아요. 개혁정당이나 민노당과 같이 가자는 이야기가 오가기도 하는데, 방법적인 건 더 고민해봐야겠지만 정치세력화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농민만이 참여하는 소수의 정당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농민과 지역주민을 포괄하는 정당을 만들 것인가 하는 문제는 고민이 필요하죠. 농민뿐만 아니라 국민들 대다수가 그동안 정당정치에 대해 실망하고 기대를 걸지 않고 있는 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대안세력화가 필요하다고 보는데, 소수 활동가 중심의 정당을 만든다거나 빠르게 진행해 가는 것 보다 다 함께 천천히 가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결국 정치세력화가 논의되는 이유는 농민회가 처한 현실 때문이라고 보는데, 그만큼 위기감이나 이대로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많기 때문인 것 같아요. 송 : 정치세력화가 필요하냐 불필요하냐는 따질 문제가 아닌 것 같아. 그건 우리 강령이니까. 하지만 거기에 대한 개념은 세워야 한다고 봐. 우리가 활동하는 공간,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는 것 같긴 한데, 농민 대중에게 듣는 이야긴 양 극단이더라고. 농업이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이 부분에 대한 해결이 먼저지 정치 세력화가 무슨 필요냐 하는 의견도 있고, 또 한편에선 그것만으로 해결이 안되니까 정치 진출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 나는 농민이 공통된 의견을 모아 하나의 방향을 설정한다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봐. 다수결은 결정적인 구속력이 없다고 생각해. 흔쾌히 동의하고 서로 설득되어야 한다고 보거든. 그렇다면 늘상 준비만 하자는 이야기냐고 따질 수도 있겠지만, 나는 섣불리 덤벼들어 실패하기보다는 천천히 준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일차적인 정치세력화는 지역주민과 연대하고 발언권을 높이는 것부터라고 생각하거든. 윤 : 예. 익산도 농민운동가가 시의원이 되는 경우가 있긴 한데, 마음에 안차게 하니까 불만족스럽고 그걸 보면서 정치세력화에 대한 회의가 이는 것 같아요. 그런 회의나 배신감 때문에 정치하려고 농민운동 하는 것 아니냐는 오해도 생기고요. 준비해야 한다는 말 속에는 사람과 내용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의미가 있다고 봐요. 선배들도 뜻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전문성이나 준비가 부족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훈련하고 준비하면서 주민들을 위해 활동하는 사람을 내놓아야 정치세력화도 힘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조금 딱딱한 이야기로 흘렀는데, 지금 한칠레 무역협상 문제가 국회비준만 남겨놓은 상태잖아요. UR 협정때와는 좀 다른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노무현 당선자는 특별법을 세워서라도 막아보겠다고 하는데, 저희야 늘 하는 이야기지만 독자들을 위해서 선배님이 한칠레 이후의 영향에 대해서 잠깐 말씀을 해주시면 어떨까요. 송 : 한칠레 협정이 이뤄지면 국부가 늘어날거라고 하는데 (웃음), 중국과의 마늘 협상이 좋은 본보기가 될 것 같아. 중국이 마늘 수입을 안하면 보복하겠다고 하니까 정부가 국가 전체 이익을 고려해야 한다면서 결국 마늘 농사를 희생시킨거잖아. 당시 여론상으로 논란이 된 건 중국으로 휴대폰을 수출해서 돈 번 사람이 남는 돈을 좀 할애해 농민들을 지원 할 수 있는 거 아니냐는 거였는데, 결국 업체들이 거부해버렸잖아. 칠레 협상을 하면 공산품에서 이득을 얻게 된다고 하는데, 공산품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다거나 큰 이득이 생기는게 아니라고 해. 농민들이 손해보는 부분에 대해서 보전책이 있느냐 하면 특별한 대책도 없단 말이지. 프랑스는 국민들을 설득해서 세금을 좀 더 걷더라도 농민을 보호하겠다고 하는데, 우리는 대책이라고 해봤자 아주 미비하고 실상은 거의 없는 거잖아. 중국이 WTO에 가입하면서 양곡은 상당히 수입을 많이 하고 있다는데, 그쪽 농민들도 대체할 소득작물로 축산이나 과수, 원예로 가고 있다고 해. 중국의 신선채소가 여기까지 실려오는데 3일이면 된다고 하더라고. 그렇게 되면 어렵지. 중국 농산물 같은 경우 검역과정이 우리나라 70년대 수준이라고 하는데, 그 문제가 해결되면 우리 농민들에겐 더 큰 타격이 되는거지. 양진이는 여기가 생활토대가 아니라 더 힘들 것 같은데, 나야 나서 자란 곳에서 농민운동을 하고 있지만. 윤 : 귀농이란 게 부모가 있는 곳으로 오는 경우가 있고, 또 다른 한 축은 어느정도 낭만성을 갖고 자리잡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저의 경우는 좀 다르고, 사실 농사짓는 일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죠. 송 : 귀한 경우지. 그만큼 대우를 받아야 하는거고. 농사꾼이라면 시내버스 기사한테도 무시당하는 부륜데, 농민들이 그런것도 훈훈한 품과 정으로 안아야지. (웃음) 농사꾼들은 늘 겸손하고 훈훈해야지. 아무리 옳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해도 그걸 어떻게 전할 것인가 기술도 필요하다고 봐. 뜻만 옳다고 해서 설득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인간의 정이나 훈훈한 마음이 오히려 설득력이 높다고 생각해. 투쟁 세력에서 대안 세력으로 윤 : 간부활동가들 교육 나가면 서로들 솔직히 빚이 얼마냐고 묻잖아요. 저나 활동가들 고민이 농가부채 문제로 모아지는 것 같아요. 잠자리에 누워서도 내 농사 규모나 쌀 값 하락하는 추세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정도 소득으로 자식 낳아 교육하는 데 희망이 있느냐 하는 걱정이 클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 정권에 거는 기대나 희망이 있을 것 같은데, 선배님은 어떠세요. 송 : 노무현 정권이 출범한다고 하니까 말은 안해도 생각들은 다 비슷할거야. 농민 문제를 해결해 줄거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아. 하지만 크게 다행이긴 하지. 노 정권 10대 정책을 보면, 농업 문제가 구체적으로 나와있진 않더라고. 그래도 농업계 의견을 수렴해서 건의할 건 건의하고 설득할 건 해야지. 젊은 사람들 기대는 어떤가?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은 누가 되든 뭐가 다르냐고 회의하고, 사실 누가 되든 농민 문제는 금새 해결되는 것도 아니니 말이지. 윤 : 노무현 당선자가 그동안 보여줬던 삶의 태도를 보면 줏대도 있고 지조 있는 모습이 있어서 농업 문제에도 그렇게 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는 있어요. 저는 그간의 집권 세력이 농업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갖지 못했던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봐요. 사실 농업이 진정으로 민족생존권의 문제라는 걸 인식한다면, 공적자금을 투자해서라도 살려야 한다고 보거든요. 농업이 가진 여러 기능을 볼 때도 반드시 살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느 나라도 농업을 포기하고 선진국이 된 사례가 없잖아요. 특히 유럽의 경우엔 반절 이상이 국가 지원으로 이뤄지고 있고요. 노 정권 출범은 정치적으로 농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부분이 있었다고 봐요. 노무현 당선자가 농업 관련한 핵심 정책은 자신이 직접 사인하겠다고 말한 부분이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직접 사인하겠다는 것은 내가 중요한 걸 결정하겠다는 의지로 들려서 작지만 희망으로 다가오는 부분이에요. 농민운동은 이제 열린 구조에서 함께 참여하고 비판한 내용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90년대 초반만 해도 수입개방 반대가 주요 운동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변할 수 없는 구호이긴 하지만, 이제 대안을 가지고 제안하고 법제화하는 데 좀더 많은 활동이 필요하다고 봐요. 송 : 그렇지. 농가부채는 대부분 뭔가 새로운 걸 모색하는 사람들이 많이 쓰는데, 빚진 죄인이란 말도 있고 빚 진 사람이 결국은 잘 못 한 것 아니냐 하는 말이 심심찮게 들려. 무분별하게 수입개방을 해놓고 대책이란 게 새 농법이나 다른걸 권유하는 식으로 몰아가는데, 국민들 보기엔 농업에 엄청난 돈을 쏟아붓는 것처럼 보이게 한단 말이지. 어차피 다 갚아야 할 돈인데 정부에서 마치 공짜로 주는 돈처럼 하면 국민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단 말이지. 김 대통령이 이자 감면이나 상환 연기 등 다급한 숨통을 트여주긴 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지. 소득보장이라는 근본 대책을 찾아주어야 한다고 건의했는데, 결국은 대책이란 게 없었던 셈이지. 윤 : 예. 그만그만한 사람들이 서로 연대 보증을 하는 바람에 한 동네가 완전히 붕괴되는 현상이 지금까지도 일어나고 있잖아요. 그런데 선배님, 그래도 희망은 없는 걸까요? (웃음) 송 : 이대로 두면 희망은 없는거지. 식량안보라는 말이 있는데 국가안보 차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고 그걸 국민들이 같이 봐주게 되면 국민들과 함께 희망을 만들어갈 수 있을거야. 결국 그런 희망은 우리가 만들어 가는거고. 윤 : 농민운동의 가장 큰 장점이 농업이 늘 우리 삶과 떨어져 있지 않았고 농민들이 밑바닥에서부터 역사를 만들었고 그것이 농민운동의 맥으로 연결돼 온거라고 생각해요. 전농이 건설되면서부터는 농민운동이 하나의 단일된 조직안에서 진행돼 왔는데, 의장님 같은 어른들이 굳건히 서 있는 게 큰 힘이 됩니다. 후배는 선배를 통해 큰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힘들게 활동해 오셨지만, 앞으로도 더 왕성히 활동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후배들한테는 선배들의 활동이 희망이 될 수 있거든요. 제 밑으로 더 젊은 후배가 나올게 될지 모르겠지만 후배들 역시 열심히 살고 열심히 활동하는 게 선배들에게 큰 힘이 될거라고 믿고요. 송 : 양진이 같은 젊은 사람이 없다면 큰 문제지. (웃음) 농촌인구가 이제 대부분 65세 이상 아닌가. 전엔 학생들도 뜻을 갖고 농촌에서 일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간혹 있었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별로 없잖아. 우리가 농사짓고도 잘 살 수 있다는 것도 보여주고 자연과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도 찾아오도록 만들자고. 윤 : 예. 저는 학교 다니던 88년에 농민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었거든요. 농활하면서 느낀게 아직까지 공동체문화나 인심이 살아 있는 곳이 농촌이라는 사실이었고, 지금도 살아가면서 체득해가고 있어요. 좋은 정책만 있으면 얼마나 더 좋을까 싶어요. (웃음) 내가 좀더 노력하면 사람이 가장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곳이 농촌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송 : 한가지 고민되는 게 일본의 경우를 보니까 우리도 농사지으면서 겸업할 수 있는 기회나 정책적 배려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기더라고. 일본은 국토가 좁으니까 농사 규모가 적기도 하고, 더군다나 기술집약적인 농사를 지으니까 가능했겠지만, 산업화 과정에서 농업과 공업의 연관성이 우리처럼 떨어져 있는 곳이 없거든. 전통식품을 가공해서 만들어 내고, 그것을 부가가치로 연결해 낼 수 있으니까 이 부분도 고민해 봐야 할 문제가 아닐까 싶어. 윤 : 예. 우리사회가 생산에서부터 가공까지 농업이 모든 걸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송 : 위생이나 시설 문제를 보면, 모든걸 농민들에게 요구할 수 없는 문제지. 제도적인 문제가 연관돼 있는 거니까. 윤 : 예. 요즘 또 환경농업이니 하면서 대체농법에 관심이 많은데 이 부분에 대한 선배님 생각은 어떠세요. 송 : 농업 자체가 친환경적인 사업이니까 농사를 짓는 과정에서 일정부분 환경을 저해하는 요소는 최대한 줄여나가야겠지. 장기적으로 농업이 유지되기 위해서도 친환경적으로 갈 수밖에 없는 거라고 생각해. 소비자들이 농촌에 와서 농사 체험도 하고 직접 사가면서 직거래를 활성화하려고 노력하는데 실효성은 아직 크지 않은 것 같아. 환경은 21세기의 화두이기도 하고 삶의 질과 관련해서도 중요한 부분이니까 늘 염두에 두고 지켜갈 부분이라고 생각해. 그렇다고 환경농업이 꼭 부가가치가 높아서 해야되는 건 아니지. 과거에 정부에서 통일벼다 뭐다 강제로 품종개발을 하기도 했지만 문제가 많았잖아. 부가가치만 믿고 쉽게 뛰어들어서는 안된다는 거야. 윤 : 예. 오늘 선배님과 여러 가지 말씀을 나눴는데, 좀 더 준비를 해와서 차근차근 이야기를 연결해 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선배님과 제 고민도 털어놓고 함께 농민운동의 전망을 나눌 수 있어 뜻깊은 자리였어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송 : 나도 좋은 자리였고, 양진이가 든든한 후배로 열심히 활동했으면 하는 바람이야. 자주 보자고. 진행·정리/김회경 기자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