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5 |
[최승범 시인의 풍미기행] 꿩탕의 알싸·얼큰한 맛
관리자(2008-06-09 22:34:14)
춘분(春分)을 며칠 앞둔 일요일이었다. 김봉현 전 교육장, 김대현 변호사와 점심을 함께 나누게 되었다.
‘꿩탕이 어떻겠느냐’
는 김 변호사 제의에 김 교육장의 차편으로 찾아간 곳은 「송전산장」(완주군 소양면 죽절리, 전화 063-243-5148)이었다.
전주시내에서는 약 20분 거리, 종남산 송광사(終南山 松廣寺)의 뒤편 한적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식당이다. 완주군 지정의 ‘모범음식점’이기도 했다. 철 따라 드라이브 코스로도 썩 좋은 길이었다. 종남산의 능선도 더터볼 수 있고, 길가의 들꽃이며 나무들도 스쳐볼 수 있다.
― ‘꿩탕(雉湯)이라니, 얼마만인가.’
어린시절 할머니에게 들었던 <장끼전>이야기며, 입 모아 불렀던 동요가 떠오르기도 한다.
‘꿩꿩 장서방 뭐 먹고 산가 / 아들 낳고 딸 낳고 뭐 먹고 산가 / 아들네 집에서 콩 한 섬 딸네 집에서 팥 한 섬 / 그럭저럭 사네.’
장씨(張氏) 성의 친구를 만나면 이 동요로 놀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장서방’은 수꿩을 말한다. 꿩의 수컷을 ‘장끼’, 암컷을 ‘까투리’라 한데서 연유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어린 시절 듣기로는 ‘꿩고기는 경칩(驚蟄)이 지나선 즐길 것이 아니라’고 했다. 꿩은 잡식성(雜食性)이어서 경칩이 지나면 꿈쩍거리는 벌레들을 먹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젠 꿩도 전업으로 기르는 집이 많기 때문에 따로 절기를 챙길 필요가 있겠는가.
「송전산장」의 식단에는 탕류(湯類)가 많았다. 오리탕·닭도리탕·토끼탕·새우탕·오골계탕 등등. 이 중 꿩탕은 40,000원, 꿩 한 마리 값인 셈이다. 네 사람이 먹어도 족하다는 것이다.
꿩탕이 나오기 전, 몇 가지의 깔끔한 밑반찬의 상차림이다. 밑반찬 뿐 아니라, 번철에서 금방 부쳐낸 솔전과 토란대전도 올랐다. 이윽고 옴박지 질그릇에 끓여낸 꿩탕이 나왔다. 한눈에도 먹음직스럽다. 보글보글 끓고 있는 국물의 빛깔부터가 입안에 침을 돌린다. 한 숟갈 입에 대자 속까지 환히 트이는 알싸·얼큰한 맛이다.
앞접시에 토막진 뼈에 붙은 꿩고기 한 점을 옮겨놓고 살점을 발라 먹는다. ‘꿩 대신 닭’이란 상말이 있거니와 닭고기는 미치지 못할 맛이다. 잇사이에 안기는 맛이 톡톡 튀는 느낌이다. 그만큼 탄력성 있는 고기맛이다.
꿩탕엔 장끼를 써야하고, 그 뼈와 고기를 함께 쪼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장끼의 뼈는 뻐세기 때문에 작은 뼛쪽이 살코기에 섞여도 먹을 수 없다고 한다. 토막낸 뼈여야 살점도 안심하고 발라 먹을 수 있다는 안주인의 이야기다. 바깥주인은 낭궁만기(南宮萬基)씨라고 했다.
나는 꿩탕 맛도 좋았으나, 솔전과 토란대전의 맛도 즐거웠다. 특히 토란대전의 맛은 어린시절의 고향맛을 불러일으키기에 족했다. 토란대를 말려서의 무침도 언제나 먹어서 탄력성 있는 즐거운 맛이었지만 때로는 어머니께서 하여 주신 부침개에 환호성부터 올리곤 하였다. 이 토란대전이 어린시절의 그 부침개 맛이었다.
《규합총서》였던가. 꿩고기는 강원도의 꿩고기가 맛이 더하고, 특히 정선의 꿩고기산적이 유명하다고 했다. 그 꿩고기산적 맛 한번 볼 수 있는 날이 나에게도 언제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