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08.4 |
[독자편지] 동백꽃이 피길 기다리며 이명훈 고창농악보존회 회장
관리자(2008-04-18 15:42:42)
꿈만 같았던 겨울이 다 지나고 봄바람 살랑살랑 불어오는데 옷깃을 열어 한 아름 받아보는 봄기운이 참으로 좋습니다. 바구니 들고 냉이를 캐러 가야 할까 합니다. 입 안 가득 봄내음으로 채우고 싶습니다. 새로운 기운을 받아 새롭게 삶을 시작해야겠습니다. 지난해 저희 고창 동리예술단은 11월 29일부터 12월 16일까지 중앙아메리카에 있는 과테말라와 엘 살바도르에 공연을 다녀왔습니다. 3년 전부터 과테말라에서 9년 동안 사업을 하셨던 선배님이 기획한 공연이었는데 준비과정부터 무척이나 힘들었습니다. 선배님은 현지에서의 체류비와 공연장 대관료 등을 책임지며 준비했고 우리는 여기저기 문을 두드리며 후원작업을 했습니다. 중앙문예진흥기금과 도 지원금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었습니다. 모양성제 기간에 해외공연 기금마련 주점을 열었습니다. 3박4일 동안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한푼한푼 정성스럽게 보태준 성의에 힘입어 겨우 항공료와 준비비를 마련할 수 있었지요. 동리예술단원 16명은 머나먼 이국땅 한국의 교민들과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한국의 전통문화예술을 보여주기 위해 열심히 연습하고 짐을 꾸리고 떠났습니다. 왕복 5일이 걸리는 그곳에서 우리 교민들은 열심히 생활하고 있었으며 우리를 따뜻하게 환영해 주셨습니다. 엘 살바도르와 과테말라 대사님을 비롯한  한인회분들께서 많은 준비를 하고 저희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준비 과정은 힘들었지만 고국을 그리는 마음을 저희들의 공연을 보고 달래는 모습을 보고 눈물을 훔치시는 모습에 저희들이 오히려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17박18일동안 총 7번의 공연을 하였습니다. 2200석의 과테말라 국립극장 공연, 대통령궁 광장 공연, 한국인 수녀님이 운영하시는 2000명 고아학교 공연, 한글학교 공연, 뮬띠플라자 공연, 빼빠데 극장공연, 한인회 밤 공연, 방송국 출연을 하루에 3시간 정도 밖에 못자고 공연을 치렀지만 전혀 힘든 줄을 몰랐습니다. 총기가 허용되는 나라, 치안이 안 좋은 나라로 무서웠지만 그곳에도 분명 가슴 따뜻한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나라였습니다. 우리와 문화적인 차이가 많이 나는 나라, 스페인의 통치를 300년이나 받은 나라, 화산의 나라, 커피의 나라, 마야문명의 나라, 마피아의 나라, 태평양과 대서양을 끼고 있는 나라, 따뜻한 나라… 어느새 정이 들어버렸습니다. 중미 해외공연을 힘들지 않게 다녀올 수 있는 배경에는 공연을 기획한 선배의 9년 동안의 그곳에의 삶이 있었기 때문에 민간차원에서 가능하였습니다. 우리의 문화를 전혀 접할 수 없었던 그곳에 우리의 것을 알리고자 했던 수년간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 선배는 전주가 고향이었습니다. 이번 동리예술단 공연을 마지막으로 과테말라에서의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와 사회봉사활동을 하면서 살고 싶어 했습니다. 마지막 공연을 끝으로 동리예술단을 한국으로 돌려보내고 공연을 위해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자 과테말라에 남았습니다. 2월에 한국으로 돌아오고자 했던 선배는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했습니다. 하늘이 무너진다는 느낌을 처음으로 실감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와 해외공연 잘 다녀왔다고 자랑할 시간도 주지 않고 선배는 저 세상으로 가 버렸습니다. 우리에서 따뜻한 사랑만 남기고……. 돌아와 한국의 눈을 원 없이 보고자 했던 선배는 결국 유해로 돌아왔습니다. 고창을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하고 고창에서 정착해 살고 싶은 꿈은 더 이상 꿈이 되지 않았습니다. 동리예술단원들은 선배만을 위해 공연을 준비했습니다. 과테말라 활화산에서 환한 웃음을 지으며 우리들을 바라봤던 그 푸른 사진만이 우리 앞에 있었습니다. 가슴이 미어지고 또 미어지는 울음을 속으로 삼키고 선배만을 위한 노제를 지냈습니다. 그리고 선배가 그토록 좋아했던 선운산에 보내드렸지요. 일주일 내내 눈이 내렸습니다. 마지막 49제 때는 선운사 도솔암에서 천도제를 올려 편안하게 보내드렸습니다. 천도제날 선운산에는 눈이 그렇게 예쁘게 내렸습니다. 마치 아름다운 모습을 남기고 떠난 선배 모습 그대로였어요. 그리고 같은 날 전수관 한켠에 선배가 좋아했던 동백나무를 심었지요. 항상 나무처럼 살고 싶어 했고 동백나무 꽃처럼 살다간 선배의 그 붉은 마음을 옆에 두고 살고 싶은 동리예술단 모두의 소망이었습니다. 올해는 꽃을 못 피우겠지만 내년에는 그 붉은 한점 한점 툭툭 떨어지겠지요. 선배가 마지막으로 맺어준 좋은 인연들과 함께 정을 그리며 내년에 동백꽃이 피기를 기다리겠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