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2 | [시]
길
박영근(2003-04-18 17:24:24)
장지문 앞 댓돌 위에서 먹고무신 한 켤레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동지도 지났는데 시커먼 그을음뿐
흙부뚜막엔 불 땐 흔적 한점 없고
이제 가마솥에서는 물이 끊지 않는다
뒷산을 지키던 누렁개도 나뭇짐을 타고 피어나던 나팔꽃도 없다
산그림자는 자꾸만 내려와 어두운 곳으로 잔설을 치우고
나는 장지문을 열기가 두렵다
거기 먼저와
나를 보고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저 눈 벌판도 덮지 못한
내가 끌고 온 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