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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4 |
[이흥재의 마을 이야기] 완주군 소양면 신원리 대승마을
관리자(2008-04-18 15:34:02)
전주한지’ 브랜드의 본고장 우리 민족은 종이 위에서 태어나 평생을 그 속에서 살다가, 결국 종이에 싸여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종이위에서 태어난다는 것은 한지로 만든 장판지 위에서 태어남을 말하는 것이고, 그 속에서 산다는 것은 한지로 만든 벽지와 창호지에 싸여 생활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종이에 싸여 간다는 것은 죽음을 맞이하여 염습(殮襲)할 때 한지에 싸여 땅에 들어간다는 말이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종이 생산지는 전주였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따르면 전라도의 전주와 남원에서 나온 종이가 가장 뛰어나 조공지를 부과할 때 제 1 대상지 였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전주한지’라 부르는 최고급 한지를 생산한 곳은, 실제로는 완주군 소양면 신원리 대승마을 주변으로, “전주한지”는 대승마을에서 만든 한지의 브랜드인 것이다. 올해 62세의 김한섭 이장의 말에 의하면, 완주군 일대는 한지의 원료인 닥나무 주산지로, 400여 년 전 벽암대사가 완주 송광사를 창건한 이후, 이 마을에서 한지를 만들기 시작했고, 조선시대 이곳 대승마을에서 생산된 한지는 궁중진상품이자, 중국으로 보내는 조공품에 속할 정도로 우수성을 인정받았다고 한다. 원래 11군데 한지 공장이 있는 부자마을 이었으나 1990년대 말부터 한지공장에서 나오는 폐수로 인한 환경오염 때문에 한지 생산이 중단이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오·폐수시설을 갖추기 보다는 한지공장 문을 닫았으나, 10여년이 지나면서 주민들의 소득이 감소하고 이주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런 상황을 안타깝게 생각하던 주민들은 최근 작목반을 구성하여 17만주의 닥나무를 심었다. 올해 말까지 20만주까지 늘릴 계획이며, 이 정도는 전지 크기 한지 5000만장을 만들 수 있는 규모라고 한다. “도침방아”는 대승마을 대표자산이다. 3대째 한지를 만들어 온 홍순필(77)씨는 “전주한지가 명성을 쌓은 비결은 바로 도침방아”라면서 “수작업이 필요한 도침방아는 종이를 얇으면서도 질기고 광택이 나도록 하며, 우리나라에서도 대승마을에만 남았다.”고 설명했다. 15세 때부터 서당에서 붓글씨를 써왔고, 50여 년간 종이를 만들어 온 홍순필씨는 서화에 필요한 종이를 만들기 위해, 자기가 만든 종이에 직접 글씨를 쓰며, 종이에 글씨가 받는 정도를 가늠하며 서화지를 만들었다고 한다. 홍씨와 이장 등 한지 만드는 장인 10여명은 “비단은 500년 한지는 1000년 간다.”는 명성을 살리려고 전통적인 수제방식으로 종이를 만들어, 앞으로 이 마을을 “천년 한지 전원 박물관”으로 만들어 특화해나갈 계획이다. 닥나무는 매년 한번씩 대게 10월 말부터 한겨울에 벤다. 베어낸 닥나무를 가마에 삶아 껍질을 벗겨 종이를 만든다. 보통 오전 9시부터 5~6시간 정도 불을 때어야 닥나무가 푹 삶아지고, 그래야 닥나무 껍질이 잘 벗겨진다. 지금은 쇠로된 가마솥을 사용하지만, 내가 어렸을 때 외갓집에 가면, 구덩이를 파고 나무를 채운다음 지붕 위를 흙으로 발라서 가마를 만들어 불을 때었다. 껍질을 벗기고 난 닥나무 채는 흙으로 벽을 쌓을 때나 한옥에 지붕을 이을때 횃대로 썼으나 요새는 대개 땔나무로 쓴다. 이 마을에는 83호 주민들이 살고 있는데 전답이 80여ha다. 그러므로 가구당 평균 3000평정도의 농경지를 소유하고 있는 부자마을로, 입구는 좁으나 안은 넓은 항아리 모양으로 노승출동형 지형이란다. 노승이 탁발을 하러 막 나서는 형국이라는 뜻이다. 마을 앞산은 승래봉(일명 문필봉)이고 마을 뒷산은 두리봉으로 전체가 안정된 형태이고 수려한 산수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마을이다. 화심에서 동상면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이 나기 전에는 아주 오지였을 이곳에, 전주최씨 전주이씨 남양홍씨 남원양씨 전주류씨 재각이 5곳이나 된다. 그리고 화곡 홍남립의 위패를 모신 대승서원과 대승사가 있고, 고려 말 두문동 72현 중의 하나인 만육 최양선생의 묘가 마을 입구에 있다. 전동 성당을 건립한 프랑스인 보두네 신부가 성당 건립을 하면서 살던 집터가 있는 조그만 산골 마을에 이런 유적이 있다는 것은, 이 마을의 문화적 배경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대승서원 앞에 도깨비 방죽이 있다. 도깨비 방죽에는 동네어른들이 어렸을때만 해도 비오는 날이면 도깨비불이 번쩍번쩍하면서 흩어졌다 모아졌다 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어떤 할아버지는 갑자기 나타난 도깨비를 몽둥이로 때려잡아도 자꾸 나타나고 덤벼들기에 밧줄로 꽁꽁 묶어 놨는데, 다음날 아침 정신을 차려보니 빗자루가 밧줄에 꽁꽁 묶여 있었다고 얘기를 하면서, 근래에는 비가 와도 도깨비불도 없고, 도깨비에 홀린 사람도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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