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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4 |
[신귀백 영화엿보기] 피요르드행 배낭을 꾸리게 하는 <카모메 식당 2006>
관리자(2008-04-18 15:32:49)
핀란드 붐을 만든 영화 유럽 사람들이 동쪽 끝 먼 나라를 그리워한다면 일본사람들은 북구의 끝을 동경하는 것일까? 자리에 들기 전 검을 씹고 자라(그런 정신 나간 엄마들이 있겠는가)는 자일리톨의 나라, 시벨리우스의 나라 핀란드 헬싱키에 한 일본 여자가 식당을 연다. 이름하여 카모메(갈매기)식당. 중년 여성 사치에(고바야시 사토미)가 경영하는 이 식당은 일본 고유의 주먹밥이 대표 메뉴. 식당에서 먹을 수 없는 ‘집밥’을 파는 것은 좋은 아이디어지만 깨끗한 홀엔 투명한 햇빛만 쏟아진다. 통유리로 안팎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식당 앞으로 의심 많은 서양 할메들이 잠깐잠깐 스쳐지나가며 고개를 갸웃할 뿐.   이 영화, 백사장에서 길손의 새우깡이나 얻어먹는 갈매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날다 지친 갈매기처럼 쉬어가는 세 여성의 이야기. 눈이 휘둥그레지는 음식 이야기라기보다는 조용하게 날개를 부딪지 않고(서로의 죽지에 얼굴을 파묻는 표현은 좀 진부하지 않은가?) 날아가는 먼나라 이웃나라의 이야기다. 서로 다른 이유로 핀란드에 모인 세 명의 이 일본여자들은 한 사람 한 사람 시차를 두고 선을 보이는데, 한꺼번에 한 상 차려내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뜸을 들인 후 등장하는 것이 뷔페 아닌 코스요리 같다. 여자 셋이 빚는 소울 푸드 연어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핀란드에서 식당을 하고 있는 젊은날 원미경 닮은 사치에가 인사하는 모습은 사월 햇볕이다. 여기 일본 만화 오타쿠인 핀란드 청년 토미가 첫 손님으로 찾아와 대뜸 만화영화 <독수리 5형제>의 주제가를 묻는다. 주제가를 해결하는 사람은 꺽다리 노처녀 미도리(가타기리 하이리)인데, 그녀는 눈을 감고 지구본을 돌려 손가락 가리킨 곳이 핀란드라 일본을 떠나온 갈매기인데 카모메 식당의 일종의 인턴사원이 된다. 만화영화 주제가를 좋아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이 없다는, 그녀 나름의 철학은 일리가 있다. 아니 동의한다. 여행객치고는 정장차림의 마사코, 휴대폰 멀리 던지기 대회가 있는 나라여서 핀란드를 여행지로 선택한 이 여사님은 도착해야 할 짐을 잃어버려 함께 생활하게 된다. 일종의 단기스텝인 셈. 별 것 아닌 이유로 모여들었다는 설정 자체가 흥미롭지 않은가.     항구의 밥집 아가씨 사치에의 맛깔스런 음식과 함께 식당을 둘러싼 이 일본 여인들 그리고 몇 명의 핀란드 사람의 사연이 이야기를 만드는데……. 여기 세 명의 여자 주인공들 모두 적당한 나이를 먹었지만 그만한 나이에 있기 마련인 쓰러진 연애나 갱년의 불안을 말하지 않는다. 여기까지 날아오느라 깃털이 얼마나 해어졌을 텐데 말이다. 그러나 누구도 서로의 사연에 안달하지 않는다. 남편의 부재로 인한 슬픔에 빠진 핀란드 중년 부인이 나타나 작은 파문이 생기고, 주먹밥의 첫 번째 ‘고객님’은 당연히 마사코의 위로를 받은 이 술에 쩐 핀란드 아줌마다. 이들의 마케팅 전략은 예의바르고 친절한 서빙과 조리로 착한 음식을 만들어 내는 것.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주먹밥을 팔 줄 아는 그녀는 자신의 고향만을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고 이역만리 어느 곳도 고향이라 생각하는 일찍이 볼 수 없던 배짱 좋은 여성. 경영합리화 그런 것 없는 그녀의 연장은 칼과 도마만이 아니라 엄마의 마음과 자신 있는 미소. 아, 하나 더 있다. 박물관의 빗살무늬 토기만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이 영화 속 스테인레스 그릇도 충분히 아름답다. 거울같이 빛을 내는 예쁜 주전자라니(여성독자들 꼭 이 영화 보시라)! 저런 동네에서 저런 식기류를 데리고 도마질을 한다면 식당도 못할 것이 없다는 생각. 비행기를 갈아타다 가방을 잃어버렸다는 장년 여인 마사코(한국 노배우 김지영 닮은)는 자신이 애타게 찾던 그 가방 안에는 여벌의 옷과 짐 대신 그녀가 핀란드 숲에서 캤던 버섯이 가득 들어 있게 된다. 이것은 그녀가 잃어버린 것은 가방이었지만 찾은 것은 사람과의 따뜻함이란 말일 것. 핀란드 사람들이 평온해 보이는 것은 숲 때문이라는, 눈치 없이 맨날 공짜 커피를 마시는 토미의 말이 그 힌트 아니겠는가. 먼 길에 필요한 것은 무거운 짐이 아니라 온유라는 것을 깨달은 그녀에게 어느 낯선 노인이 다가와 고양이를 건네준다. 한국영화에 없는 것들 사람을 먹이는 것은 복 짓는 일, 그래서 동막골 촌장님께서는 ‘멀 마이 믹여야 영도력이 생긴다’ 고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차와 밥 그리고 때로는 술로 상처받은 사람들이 위로를 받고 나가는 복된 식당. 이들은 갓 구운 계피빵, 맛있는 케이크와 커피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한다. 서로에게 상처주지 않는 사람들. 쉽다. 마지막 수영장 장면은 화하니, 따뜻하다.   여자 혼자 산다고 놈팽이가 찝쩍대지 않는다. 지지리 궁상, 없다. 어른들의 이기심을 드러낸 순진한 소도구로서 애들이 등장하지도 않고 매혹적 악당 그런 것도 없다. 카모메 식당이 들어선 그 자리에 과거 카페를 운영했던 남자가 잠시 식당을 소란스럽게 하지만 이내 곧 평정을 되찾는다. 이 동네 식당 손님들 역시 와우 하면서 음식에 대해 감탄하지 않는다. 다만 고개를 주억거릴 뿐. 고귀함을 잃지 않고 자아를 지키는 주인공들, 여성의 연대를 말하지도 않고 나쁜 남자가 하나도 없다. 그런 점에서 김기덕의 <섬>에서 그 바늘이라니…….   <원스>같이 굴욕이나 연민이 없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옛날에는 참 철없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에서 요즘은 부럽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뭔가 안 되도 조금은 힘들어도 고성과 낄낄거림을 드러내지 않는 영화를 만드는 그들이 부럽다. 미도리와 마사코는 겉모습이 그리 매력 있게 생긴 배우들이 아니다. 김수미나 유해진처럼 망가지는 것이 조연이라고 생각하는 한국 영화들을 보노라면 화학조미료 듬뿍 넣은 역 앞 식당에서 덤탱이 쓴 기분이 든다. 이 영화 헬싱키라는 도시적 아름다움에 대한 강박관념 그런 것 없다. 영화 속 이 도시는 단조롭고 무심할 뿐. 헬싱키라는 도시의 역사적 용모나 퍼스날리티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으니 핀란드 사람들 조금은 섭섭할 성싶다. 그래도 동양사람 마음에는 피요르드 해안을 스쳐온 햇빛에 대한 노르웨의의 숲(비틀즈의 노래는 사실 가구라지만)과 가까운 헬싱키라는 도시적 품격을 한번쯤은 확인하고 싶지 않을까.   깨끗한 식당, 품위 있는 주인, 아름다운 그릇들.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를 깨는 것이 아니라 깨끗한 접시에 소울 푸드를 빚어낸다. 이런 산뜻함 말고도 이 영화에는 주먹밥과 합기도 등 일본적인 것에 대한 자신감이 넘쳐나는 부분은 사실 얄밉기조차 하다. <킬빌2>에서 히토리 한조 검을 만드는 머리에 수건 쓴 스시 요리사를 붙든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향도 자신감을 불어 넣었을 터. 여기서 허영만의 만화를 필름에 옮긴 <식객>을 생각해 본다. 우리 것이 최고라는 압박감 그리고 음식의 모든 맛과 향을 먹는 이의 과장된 표정들은 영화관을 나오면서 휘발하지 않던가. 선악 구도를 축으로 하여 인간을 믿지 않는 스토리는 이제 졸업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바그다드 카페>나 <바베트의 만찬>같은 음식 영화가 나오려면 얼마를 더 기다려야 할 지? 가보고 싶은 영화 속 동네 핀란드는 겨울이 힘든 나라. 좋지 않은 환경이 정확한 사람을 만들고 노키아 휴대폰이 그래서 유명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영화 때문에 일본사람들이 이 추운 나라 비행기에 줄을 이었고 헬싱키가 한국의 젊은이들도 꼭 들르는 영화 속 명소가 되었다 한다. 휴대폰 멀리 던지기 시합에 참가한 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맑은 햇빛 아래 그냥 앉아 있는 날들이 올까. 영화 한 편으로 노키아와 숲의 나라가 말을 걸어주는 동네 놀아주는 동네가 된다는 것, 신기한 일 아닌가. 혹시 일본어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 쉬운 일본어이기 때문에 그냥 일본어 버전으로 들어도 좋을 것.   가이드 뒤를 졸졸 따라 간 <냉정과 열정 사이>의 피렌체 두오모는 공사 중이었고 사랑을 봉인하던 <화양연화>의 앙코르와트 성벽은 사람이 너무 많았었다.  <비정성시>의 바다가 내려 보이는 대만의 지우펀(九扮) 언덕을 벙어리처럼 바라보고 싶다. <아비정전>의 야자나무 숲을 기차로 달리는 꿈, 또 가슴 저리게 하던 다큐 <우리 학교>가 자리하는 홋카이도는 겨울에 가 봐야 제 맛일 터. 하나 더, 야크 젖에 만두 모모를 먹을 수 있는 라싸를 못 가본 것이 요즘 마음에 걸린다. 많이. butgoo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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