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4 |
[문화와사람] 서해자·ㆍ우현 부부
관리자(2008-04-18 15:28:38)
인형극 하는 어느 부부의 봄
‘산골 오지 마을에 인형극을 하는 부부가 산다.’ ‘산골마을’과 ‘인형극’을 하는 부부라는 좀처럼 연결되어지지 않은 말을 따라 장수군 계북면으로 향했다. 매주 수요일 오후 2시 30분부터 계북면 주민자치센터에서 계북초등학교 아이들에게 인형극을 가르친다고 했다.
시간이 되자, 서해자 씨와 함께 뒤이어 열명의 아이들이 하나둘 주민자치센터로 모여들었다. 계북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 전부이다. 봄만큼이나 통통 튀는 열명의 아이들을 통제하기란 쉽지 않아보였지만, 그 흔한 윽박 한번 지르지 않고 서해자 씨는 거짓말만큼이나 빠르게 분위기를 만들어갔다. 6학년이 되고서 이제 막 인형극을 시작하는 아이들의 얼굴에도 서해자 씨의 얼굴에도 설레임과 즐거움이 가득하다.
아이들과 함께 즉석에서 고안한 시계 놀이가 끝난 후, 어항 안에 금붕어 형태로 가족들을 그린다. 아이들의 그림을 보는 서해자 씨는 연신 웃음을 멈추지 못한다.
“놀이이기도 하면서, 아이들에 대해 좀더 알 수 있는 시간이에요. 단순한 그림처럼 보이지만, 이 안에는 아이들의 가족에 관한 많은 내용들이 들어있거든요. 아이들에 대해 알아야 좀더 친하게 지낼 수 있으니까요. 요즘 애들은 애들답지 않잖아요. 그런데 시골아이들이라 그런지 순수하고 정말 아이들 같아요.”
그림을 다 그린 아이들은 그림 속에 나타난 가족에 대해, 그리고 앞으로 인형극 연습을 계속 할 것인지에 대해 서해자 씨와 일대일 면담을 마친 후에야 하나 둘씩 집으로 돌아갔다. 이 아이들이 제4기 고사리 인형극단의 단원들이 될 학생들이다.
아이들을 모두 집으로 돌려보내고 나서 부부가 함께 작업하는 곳을 볼 수 있었다. 버려진 집을 개조해 인형도 만들고, 극도 쓰는 곳이다. 벽마다 부부와 학생들이 직접 만든 작은 인형들이 걸려져 있다.
“도시 생활 하다가 이곳에 오니까 정말 좋죠. 도시 생활할 때 제 사진 보면 깜짝 놀라실겁니다.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그때는 고혈압도 약간 있었는데, 지금은 의사가 놀랄 정도로 좋아졌구요. 농사를 업으로 하진 않지만, 몇 평 텃밭에다가 그래도 우리 두 사람 먹을 푸성귀 심어서 먹고, 또 철마다 지천에 널린 것들이 좋은 먹거리들인데 좋아질 수밖에 없죠.”
청주에서 살던 이들이 장수군 계북면 어전마을에 정착한 것은 지난 2004년 2월. 당시 우현 씨는 청주KBS라디오 음악방송 DJ와 음향기사로 활동하고 있었고, 서해자 씨는 인형극단 누렁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실력을 인정받던 직장을 내던지고 시골로 내려오게 된 것은 뜻 맞는 사람들과의 한적한 시골 공동체 생활을 꿈꿨기 때문이다.
“처음 왔을 때부터 이곳이 전혀 낯설지 않았어요. 그만큼 푸근한 동네였죠. 그런데 만나는 동네 어르신들마다 인형극이 뭐냐고 물으시는거에요. 처음엔 일일이 설명을 해주다가, 안되겠구나 싶어서 떡도 준비하고 직접 인형극을 준비해서 올렸어요. 그제서야 ‘아~ 이런거’하시더라구요.”
인형극이 끝나고 나서, 이들 부부는 ‘이방인’이 아닌 ‘동네 주민’이 되었다. 어진마을 주민들도 덕분에 ‘인형극’이라는 것을 직접 볼 수 있었고, 계북초등학교에는 ‘고사리 인형극단’이 생기게 되었다.
서해자 씨가 매주 한번 씩 아이들과 만나 연습하는 ‘고사리 인형극단’은 이제 계북면 뿐만 아니라 장수군의 명물이 되었다. 6학년들과 일년 동안 연습한 작품들은 ‘찾아가는 문화프로그램’을 통해 장수군뿐만 아니라 진안과 무주, 임실의 학교들까지 찾아가 공연된다.
“연습할 때는 혼도 많이 나는데 그래도 아이들 모두 끝까지 버텨요. 다들 재밌어 하구요. 6학년이 되어서 처음 만나는 아이들과 인형극을 무대에 올린 뒤, 변화된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저도 즐겁구요. 결국은 아이들 스스로 놀고 그 과정에서 뭔가를 이뤄내면서 변화하는건데, 우리는 그걸 이끌어주는 역할을 하는거죠.”
부부는 올해 고사리 인형극단과 함께 10여 년간 활동해 오고 있는 ‘인형극단 누렁소’의 활동도 더욱 넓힐 생각이다.
“조금 더 넓은데 가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지금까지는 ‘숙성’의 기간이었다면 앞으로는 보여주는 단계로 나아가는 거죠. 그래서 전국 공연을 준비하고 있어요.”
향긋한 봄내음이 작업장 안에 가득했다. 부부가 올 봄 부지런을 떨어 만든 쑥차다. 봄에는 쑥차를 만들고 가을에는 구절초를 만들어 시간 날 때마다 계절의 향기를 즐기는 일을 부부는 시골생활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작은 사치’라고 말했다.
최정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