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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3 |
[제 113회 백제기행] 생명의 땅 나주
관리자(2008-03-26 19:29:54)
유장한 영산강물 위로 역사는 흐르고 마당에서 기획한 백제기행 1박 2일에 따라나섰다. 2월 23일 아침 8:30 일찍 일어나 대강 짐을 꾸려 태인 나들목으로 갔다. 전주에서 출발하는데 발품을 줄여 중간에 동승했다. 아침 TV 기상예보를 보니 강풍이 불고 기온이 어제보다 뚝 떨어져 체감온도는 더욱 춥다는데 동장군의 위력은 연식이 오래됐는데도 시들지 않고 꽃샘추위를 꼭 챙겨 보낸다. 일행 중에 어린이가 많이 있어 감기에 유의해야 될 것 같았다. 나주 본을 가진 성은 98성이나 된다니, 안동, 전주에 버금가는 옛 반향인 듯 하다. 11:00 나주 시가지에 진입하는데 보니 ‘나주곰탕’과 ‘홍어’를 주제로 따로 거리를 구분해서 원조경쟁을 하고 있다. 요즘은 어디를 가든 그곳의 향토 대표음식 선전이 즐비하다. 우리 고장만 하더라도 전주 콩나물국밥, 비빔밥, 남원 추어탕은 전국 어디를 가도 간판이 있다. 전라도는 전주와 나주의 첫 글자를 따왔다는데, 나주는 스쳐지나만 갔지 60년대 나주비료공장 견학 후 처음 구경다운 구경을 하게 되어 감회가 새롭다. 도착하자 바로 동문(동점문)터에 오니 최근 복원했다는 것을 알리듯이 단청이 곱다. 2층 난간에서 모자가 날아간다. 문화원에서 마중 나온 해설자께서 우리 보고 전주에서 바람을 몰고 왔다고 한다. 몸을 움추린 채 한참을 설명을 들어야 했다. 다음부터는 버스 안에서 자세한 설명을 한 후 현장은 보는 것으로 한다기에 다행스럽다. 12:00 객사 정문 광화루 앞 ‘탯자리 나주곰탕’에서 점심을 먹었다. 맑은 장국인 특징을 빼고는 특별한 맛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대 앞에 앉은 주인 할머니와 뒤에 걸려있는 가마솥을 배경으로 카메라에 담아 봤다. 나주 장꾼들의 허기를 달래주던 할머니의 손맛은 50년 세월 속에 관광 상품의 반열에 올라 전국의 미식가들의 입맛을 당긴다. 전시관에서 나주 관내의 문화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은 후 목사내아, 객사, 향교를 둘러보았다. 목사내아는 보수한지 얼마 되지 않은 듯 기둥 등 목재들이 때가 덜 묻었는데 부실한 공사를 증명이라도 하듯 추녀 끝 기와 겉이 떨어지고 지붕 오른쪽에는 천막으로 덮어놔 보기가 민망하다. 요즘 문화재 인식이 달라지면서 지자체에서 관광소득으로 연결시키다 보니 전국각지의 옛 문화재 복원이 너무 서툴러지고 있는 듯하다. 어느 고을이라고 옛날이 없었겠는가. 문화재의 중요성에 따라 고증에 충실했으면 한데, 삼국시대 이전과 이후 조선 근세까지 관아, 객사, 성곽, 향교, 서원, 정자, 비석, 탑 등 있을 것은 다 있었을텐데 너도 나도 복원하는 것도 문제지만 너무 과장하거나 규모만 키우고 서두르다보니 부실과 더불어 전시행정이라는 비난을 불러온다. 사후에 관리 유지는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 국민들은 한 두 번 보면 더 보러가지 않을 것이다. 고교시절 무전여행에 나서 유명사찰을 둘러보는데 일행 중 한명이 왜 똑같은 절만 가냐고 불평하던 생각이 떠오른다. 향교에 가니 대성전을 비롯해서 보수 공사가 한창이었는데 다른 곳에서 본 향교보다 어찌나 큰지 여기서도 느낌이 너무한다는 생각은 무지의 소치일까. 문화재도 중요하지만 화려하게 꾸미지 말고 재원을 아껴 차라리 생산적인 공장을 만들어 실업자를 줄이고 경제로 살려야 실속 있는 행정이 아닐까. 속빈 강정이듯 너무 외면에만 치중하여 아르헨티나나 필리핀처럼 무너질까 걱정이다. 차라리 백화점이나 할인마트 차리듯이 똑같은 문화재 종류를 복원하지 말고 전국을 정리하여 그 지방의 특성을 잘 살린 문화재를 중점으로 한다면 어떨까. 각 지역의 문화재가 대소차이 등 약간의 차이만 날뿐 마치 복제하듯 한다고 하면 또 다시 무식하다고 할까? 사극을 봐도 마찬가지로 웅장하고 호화로운 건축물에 시대에 맞지 않은 호화로운 의상이 아무리 재미로 한다지만 너무 한다. 시내를 빠져나와 고려왕건의 사랑 이야기가 깃든 완사천(泉)에 도착하여 내려가 보니 푹 꺼지게 조성한 샘터는 샘물이 솟아 고인게 아니고 비가 와서 주변의 빗물이 고일 것 같은 웅덩이 형태라는 것이 맘에 걸린다. 완사천을 뒤로 하고 일제강점기 학생운동의 발상지인 나주 역사를 지나(그곳도 공사중이였다) 영산교를 건너 영산포구로 향했다. 신사 자리를 거쳐 동양 척식 회사 출장소, 대지주 일인 저택, 슬픈 역사의 거리(서정, 원정)를 거닐었다. 그 근방은 온통 홍어집들이다. 영산교 아래에는 유일한 강변 등대가 있다. 강안은 넓었으나 제방 안쪽에 퇴적층이 쌓여 흐르는 강물양쪽으로 비옥한 농토를 형성하고 있으며 강태공들은 낚시를 드리우며 서정적인 모습의 전원풍경을 운치 있게 연출하고 있다. 오리 등 철새는 북쪽으로 날아갔는지 드문드문 보일 뿐이다. 구도심은 수로 등 운송수단의 중심으로 자리할 때의 번성은 육로, 철로, 항공등과 하구언 축조 등으로 인하여 쇠락하고 있다. 2월 24일 아침 식사를 한 후 천연염색체험관을 본 후 평야지대에 자리한 복암리 고분군에 도착하였다. 다른 지역과 달리 비닐하우스가 없고 널따란 들판엔 보리가 주 작물로 부지런한 농부들은 보리밭에 비료를 뿌리고 있다. 마치 어서 먹고 자라라 하는 듯 말이다. 우리 지역에 흔히 볼 수 있는 볏짚 사료 덩이도 없다 축사에 다 가져다 놨을까? 요즈음의 문화재를 보면 옛것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다. 너무 과장되고 호화롭다. 옛날에 건축의 단청이 그렇게 호화롭고 의상은 호화찬란했을까, 그 시점에 가능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전통 복원은 신중하게 서두르지 않고 철저한 고증을 거쳐 천천히 경중에 따라 복원하면 좋을 것 같다. 요즘 전국적으로 축제만 봐도 그렇다. 1,000여개가 넘는다는 축제 중에 특색 있는 축제가 과연 몇이나 될까, 미인대회, 노래자랑, 음식축제, 마라톤 등 똑같은 주제다. 정부에서도 규제에 나설 모양이어서 다행이다. 우리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 실속 좀 차리자. 이러한 소비성 지출을 줄여 생산기반에 투자하여 나라와 국민이 부채를 줄이고 여유 있을 때 차근차근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하다. 돈을 빌려서라도 낮만 내서 뭘 하겠다는 건지 속상하다. 고분군을 둘러보고 이동하면서 길가에 자리한 시골 보리밥집에 들러 삼겹살 구워 이른 점심을 먹었다. 갑자기 예약 없이 찾아든 손님에 당황한 주인아주머니를 도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고기도 굽고 상추도 씻고 보리밥도 퍼 나른다. 앉은 사람, 서서 먹는 사람, 권하는 소주잔에 정겨움이 넘쳐난다. 다시 어제 들른 박경중 전통 가옥으로 향했다. 오늘 그 집의 장손 결혼식을 전통혼례로 집에서 치른단다. 광주 TV 등 언론기자, 관중이 한마당에 넘쳐흐른다. 오랜만에 보는 옛 풍습을 현대에 어디까지 끌어와야 우리 곁에 가까이 할까? 38년 전 전통 혼례를 치렀던 나를 추억으로 떠올리며 떠나온 전주를 향했다. 소위음주향락관광에서 문화기행으로 변화하는데 113회 기행을 마친 (사)마당부터 일조를 하지 않았나 생각하며 이제부터는 보는 기행, 먹는 기행도 중요하지만 앞으로는 좀 더 체계적으로 엮는 문화기행이 기대된다. 조택수/ 전북대학교 농과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주식회사 전농 대표이사로, 한국농약과학회 회원, 사단법인 전국농업기술자 회원, 전북 농정심의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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