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2 | [신귀백의 영화엿보기]
불량식품 시식기, <007 어나더데이>
신귀백(2003-04-18 17:20:44)
유년시절, 학교 앞에서 팔던 통통한 노란 비닐 주머니에 들어있던 단물. 엄마가 사먹지 말라던 쥬스는 얼마나 맛이 있던가. 멋진 자동차, 팔등신 수영복 미녀, 회를 거듭할수록 보여주는 신기한 무기들, 무엇보다도 돈 낸 사람에게 친절을 베푸는 20분 단위로 펼쳐지는 안구의 시원함을 제공하던 공들인 화면들로의 전환. 30년 넘게 중독 된 영화 007 시리즈는 노란 봉지 설탕물이요, 끊을 수 없는 담배가 되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 007 스무 편을 다 보았지만 미안하게도 특별하게 생각나는 장면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다. 친구의 공책을 갖다주러 어린아이가 오래도록 뛰어다니던 그 지루한 이란 영화〈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의 장면은 새록새록 생각나는데 말이다. <007 어나더 데이>의 현란한 장면들은 벌써 잊혀져 간다.
감독자신이 팝콘영화라 했듯이 어차피 머리 쓰는 스파이 영화로서의 스릴이나 반전은 애초에 포기한 듯한 눈요기 영화다. 잘생겼으며 힘들 때마다 농담하는 배짱의 본드, 피어스 브로스넌은 스파이로서의 품위와 점잔을 잃고 기관총을 난사하는 전사가 되어 B급 액션 영화의 주인공으로 떨어지고 만다. 두 명의 본드걸 중의 하나인, 육체파 펜싱 교관 미란다 포리스트는 황수정과 심은하를 합한 얼굴로 신선미와 지적미로 가는가 했는데 역시 살인병기였다. 이 악녀와 싸우는 수영복 몸매가 죽이는 NSA의 미국인 첩자 흑인 할리 베이도 본드걸로서의 끈적끈적함(?)이 부족했다. 이 미녀들이 막판에 벌이는 무시무시한 싸움은 애들 컴퓨터로 하는 철권 장면에서 이미지를 차용한 것이리라.
깡패들의 언어는 200단어를 넘지 못한단다. 이라크 침공을 지휘하는 부시의 아이큐도 그가 평소에 쓰는 단어를 평가해 보건데 구십 몇이라나. 어색한 한국어가 삽입되는 메이저 영화 007속에서 사랑이나 우정 아름다움에 관한 모국어는 한 마디도 없었다. 다만 "잡아", "죽여" 등의 살벌한 언어들만 계속되는 화면에 자유롭기는 힘들었다. 또한 잘생긴 데다 눈에 힘도 있는 릭 윤, 그가 영화 초반부 이후에 몬스터가 되었다는 것도 큰 안타까움이었다. 하긴 <레옹>의 장 르노나 <황비홍>의 이연걸도 할리우드에선 한큐에 죽어 가는 악당이 되니 메인스트림으로 끼어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까. 인터넷 토론방 등에서는 북한을 무시했다고 그러던데 솔직히 무시한 것은 오히려 '혈맹 대한민국'일 것이다. 비무장 지대가 쑥밭이 되는데 남한의 역할이 하나도 없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미국의 외교나 국방정책에 있어서 북한은 중요한 나라다. 그렇지만 푹신한 의자에 묻혀 스크린을 응시하는 세계 인민들의 의식에서의 '노스 코리아'는 사실 백지상태일 것이다. 당연히 보통의 시민이 갖는 변방의 작은 나라에 대한 가치판단은 영화나 언론을 통해서 의식이 형성된다. 우리들이 헐리우드 영화 속에서 이슬람에 대한 편견을 길러왔듯이. 과연 한반도 바깥에서 영화를 보는 그들이 사우스와 노스 한국을, 그 분단을, 분단의 원인을 알긴 알까?
영화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고 기획 싸움이다. 그 기획은 적어도 한 삼 년은 걸린다. 〈공 동경비구역 JSA〉는 민중의 가열찬 염원과 김대중과 김정일이라는 지도자의 연출로 빛을 보았다. 제작자의 혜안이 있었고 운도 따랐을 것이다. <007 어나더데이>도 악의 축 발언 이 전에 기획되었다면 자본가들은 오늘날 벌어지는 북핵사태에 대한 예측이 있었을까? 매일 뉴스에 뜨는 북핵 문제는 영화를 즐기는 세계의 시민들에겐 한반도가 긴장감으로서의 백그라운드만큼은 확실히 제공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말이다. 지금부터 이런 영화를 기획하는 것은 어떨까? 미국의 경제적 이익이 한반도를 출발점으로 하는 동북아와 유럽의 경제적 연대를 원하지 않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의 끊임없는 압박과 간섭에도 불구하고 신동엽의 시에서처럼 그 모든 쇠붙이와 껍데기는 사라지고 중립의 초례청에 서는 날. 이때, 부산에서 열차에 올라탄 南男과 평양에서 탄 北女가 파리로 가는 길에 이르는 시베리아 횡단 유라시아 열차에서 사랑을 성공시키는 영화를 기획한다면 한 삼 년 후에 쓸만한 영화가 되지는 않을까.
미국아이들 이제는 인디언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 자기들이 저지른 만행의 죄과를 알기 때문이다. 본토 밖에서의 악행을 깨닫는 날, 미순과 효선도 고이 잠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