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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3 |
[독자편지] 봄을 부르는 자는 누구인가
관리자(2008-03-26 19:29:36)
문학의 중심은 언제나 인간이었습니다. 인간성이 사라지고 남는 건 관계의 삭막함입니다. 각료의 자리에 문학인을 넣어달라는 것은 아닙니다. (현실과 이상은 다르니까요.) 다만 그 똑똑한 경제전문가들이 인문학 정신을 배웠으면 합니다. ‘돈 잘 버는 법’같은 실용서 말고 시 한편 낭송하는 정신을 가졌으면 합니다. 봄을 불러오는 바람과 대지의 속삭임을, 햇살과 뿌리의 교감을 이해한다면 만물의 생성과 같이 정치도 자연스럽게 흘러가겠지요. 인간이 괴로운 이유는 돼지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한 것이 누구였을까요? 알듯 모를 듯한 퀴즈를 좋아하는 건 ‘불확실성의 시대’ 탓인가요? 그 때 저는 ‘우리말 나들이’라는 방송을 시청하고 있었습니다. 무한경쟁은 방송프로그램의 대세인가 봅니다. 경쟁자들이 하나둘씩 떨어지는 걸 지켜보는 승자승 게임은 스릴만점입니다. (물론, 당사자가 아니라서 더 느긋하겠지요.) 마침 최종 결승자가 ‘달인’에 도전하는 긴장되는 순간이었는데요. 갑자기 뉴스 속보가 시작되었습니다. 속보는 경험상 유쾌하지 않은 일이 많더군요. 새 대통령당선자가 출연해서 내각 후보자를 발표하는 자리였습니다. 알듯 모를 듯 한 것이 정치판이죠. 국회협상 중에 일어난 대통령 당선자의 돌연한 하이킥의 파급력이 어디까지인지? 연단에 올라간 예비각료들의 지역과 대학의 배분은 또 어떤지? 보다 ‘달인’의 도전이 더 궁금했지만…… 속보는 정말 예고 없는 폭력입니다. 별수 없이 시청하면서 세어 본 국무위원 수가 참으로 많더이다. 국가를 이끌어가려니 각 분야별 수장이 필요하겠지요. 사극에서도 삼정승, 육판서, 도승지, 삼사……그리고 내시부, 요즘 주목받는 직종이죠! 그 수가 많기도 하더이다. 수많은 관료들이 일제히 고개 숙이며 ‘통촉하여 주시옵소서’를 복창하는 걸 굽어보는 임금의 마음은 얼마나 뿌듯하겠습니까? 그런데 단상 위로 오르는 높은 분들의 주특기가 경제학 일색(여섯 명)이라는 점에 아연하고 말았습니다. 즐겨보는 사극의 한 장면이 재현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모여서 하는 일이라곤 세손을 제거하려 하는데 열심인 이들의 손발이 그토록 잘 맞는 것은 한통속이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온 국민 부자 만들기 대작전에 앞서 본인들이 우선 수신제가(修身齊家) 했으니 자격 충분타 하실지 몰라도 경제 살리는 데만 골몰하시다가 다른 일은 소홀할까 걱정됩니다. 정치에서 경제는 일부분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정치는 게임이 아닙니다. 스릴은 안방에서 즐기기에 족한 게임입니다. 후진국일수록 정치게임이 스릴있다고 했나요? 봄이 되었는데도 살얼음판처럼 아슬아슬한 생활을 계속해야 한다면 끔찍한 일이죠. 인기리에 방영되는 그 사극의 일당들의 근황을 덧붙이자면 유배당해서 사약을 마시고 그러더군요. 속보가 끝나고 다시 계속된 우리말 달인의 도전, 녹화방송의 긴장감이 들통 난 탓일까요? 돌아온 도전자는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달인’은 역시 어려운 가 봅니다. 곧 이 프로그램의 ‘포멧’도 ‘잉글뤼쉬 마스터 컨테스트’(발음에 주의해주세요!)로 바뀔지 모를 일입니다. 맞춤법에 서툰 윗분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면 안 되니까요. 정치의 달인은 서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노파심이겠지만 그날 단상에 오르신 분들이나 결국 내려오고 만 분들 모두에게 시집을 한 권씩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국민들이 도덕적 흠결을 덮어주고 뽑아준 것은 경제를 살리겠다는 말, 보다 인간답게 살려는 소망, 그것 때문입니다. 대선에 이어 총선까지도 경제를 들먹이며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정치인들이 늘어가니 심히 걱정스럽습니다. 문화까지도 경제논리로 해석할 것 같아서입니다. 이미 눈치 챘다면 당신은 전,문,가! 문학의 중심은 언제나 인간이었습니다. 인간성이 사라지고 남는 건 관계의 삭막함입니다. 각료의 자리에 문학인을 넣어달라는 것은 아닙니다. (현실과 이상은 다르니까요.) 다만 그 똑똑한 경제전문가들이 인문학 정신을 배웠으면 합니다. ‘돈 잘 버는 법’같은 실용서 말고 시 한편 낭송하는 정신을 가졌으면 합니다. 봄을 불러오는 바람과 대지의 속삭임을, 햇살과 뿌리의 교감을 이해한다면 만물의 생성과 같이 정치도 자연스럽게 흘러가겠지요. “인간이 괴로운 것은 돼지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말은 식민지시대의 고독한 시인 이상의 비탄입니다. 이걸 옮겨 적은 이는 우리 지역의 시인 신석정이고요. 그의 일기를 읽는 봄밤에 저도 그 대목에 밑줄을 칩니다. 신석정 시인은 서울 문단이 싫어서 고향에 내려와 자택에 온갖 나무와 화초를 키우며 꼼짝 안했다고 합니다. 가난해도 인간답게 살고 싶어서였습니다. 계절마다 온갖 화초가 번갈아 피는 그의 마당에는 자연스레 나비와 새들이 날아와 놀았겠구요. 그렇습니다. 자연스러운 것. 봄을 부르는 사람은 물길을 거슬리지 않으며 생명의 소리에 귀 기울리는 사람일 것입니다. 좀처럼 잠이 오질 않는 이 밤, 정치인에게 봄을 불러 달라는 것은 광활한 만경들에서 대리기사를 부르는 심정 같은 것일까요? 신석정 전집이 출간된다는 3월. 바람이라도 꽃샘바람이라면 견딜 만하겠지요. 그럼, 예고 없는 뉴스속보가 끝날 때 까지 모두들 안녕. 박태건/ 시인. 전북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산문집 『나그네는 바람의 마을로』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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