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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3 |
[문화시평] 갤러리 봄 기획전 ‘일상’
관리자(2008-03-26 19:28:06)
‘세상의 일상’에 카메라를 들이대다 사진, 그러니까 사진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이제, 세상을 ‘보려/이해하려’거든 사진 혹은 사진을 바탕으로 하는 이미지를 통해야만 비로소 가능할 터이다. 사진술이 만들어낸 ‘정착된 이미지’는 가상의 어떤 것이 아니라 진짜보다 더 진짜에 가까운 모습으로 우리를 에워싸고 있다. 과거, 신문에 난 혹은 T.V에 등장한 이야기가 ‘현실/진실’보다 더 큰 신뢰성을 가졌던 것처럼, 지금의 사진이미지는 ‘사실을 담보하여 더 사실적인 가상을 재현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지 ‘알고-믿는’ 수준을 넘어선다. 오히려 그 이미지가 지시하는 삶에 현실이 재-구동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진은, 여타의 다른 표현 매체와는 사뭇 다르다. 그러니까 비슷하다는 회화와도 다르다. 회화는 그릴 때, 표현하려는 대상을 보거나 혹은 상상하며 ‘화폭’을 ‘마주해’야 가능하지만, 사진은 ‘매체/카메라 렌즈’를 통과해서 직접 ‘바라보며 섞인’다. 화폭을 마주해서 그려내는 것과, 세상을 바라보며 부분을 떼어내는 일 사이에는 매우 커다란 차이가 있다. 사진은 그래서 그 안으로의 돌진이다. ‘시선/욕망’과의 몸을 섞는 일이며, 동시에 ‘부정/비판’하는 일이기도 하다. 있는 부분을 그대로 떼어내어 다시 제시하는 일. 이미 있음에도 ‘또-다시’ 보여주는 행위를 통해 합일(合一)과 비판(批判)이 동시에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사진을 한다는 것, 혹은 만든다는 것은 단지 대상의 표피에 대한 어떤 행위가 아니라, 더불어 둘러싼 환경에의 또 다른 해석일 수밖에 없다. 지금 갤러리 봄에서 ‘일상’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전시가 열리고 있다. 스물세 사람이 뭉쳐서 나름의 일상을 나름의 시각으로 보여준다. 왜 지금 이곳 전주에서 일상을 다시금 주목하고 있을까? 궁금하다. 사실, ‘예술의 흐름’이라는 처지에서 볼 때, 이 일상에 대한 주목은 다소 오래된 것이다. 이미 1990년대에, 그러니까 소위 포스트모더니즘이 이 땅을 강타해서 많은 예술가가 그 이론에 휘둘리던 그때, 너 나 없이 일상에 대한 해석 혹은 재해석을 가하며 작업으로 남겼다. 사진도 예외가 아니어서 일상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전시가 내가 스치듯 본 것만도 수십 개는 될 것이다. 당시, 일상에 새로운 관심을 보이면서 깨달았던 것은 ‘억압되었던 주제’ 혹은 ‘소재’에 대한 전치(轉置)다. 과거에는 전혀 관심 두지 않았던 것들에 새로운 시선을 연결하면서 의미의 부활을 시도하였고 또 일정한 만큼의 성과도 있었다. 이제 십수 년이 지난 지금 새롭게 일상에 대한 표현시도를 보면서 감회가 새롭기도 하고, 뜻밖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금 이곳 전주에서 말이다. 다시 한 번, 이번 전시는 스물세 명의 사진가가 ‘세상의 일상’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는 ‘대담함’의 결실이다. 대부분 보편적인 사람들은 따분한 일상을 넘어 뭔가 특별한 어떤 것을 희구하고 욕망한다. 여기의 사진가들 역시도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때문에 비 일상의 어떤 것을 찾거나, 특별한 무엇을 만들려 카메라를 들었을 것이며, 나아가 그 힘으로 지금 일상을 과녁하고 있을 터이다. 이들의 일상에는 정말로 일상이 들어 있다. 사진이 대상을 허구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임에도, 디지털로 무장한 이들의 카메라는 진심으로 우리의 ‘일반적인 일상’을 향하고 있다. 재미있게도 몇 명의 예외는 있다. 카메라의 느린 셔터를 이용해서 사물의 외형을 흐트러뜨리며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지게 하는 작업도 있으며(석상문, 전영선), 혹은 일상이 늘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에 주목하여 그 행위만 클로즈업하여 보여주기도 한다(임재규, 오영숙). 이들 역시도 주목하는 것은 일상이나, 표현하려는 것은 그 일상을 넘어 다른 어떤 것이며, 그를 통해 우리의 시선을 유도한다. 찬찬히 뜯어보면 사실은 모두가 이러한 욕구를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일상이 허락하는 가시광역을 넘어 더 안쪽에 있을지 모르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려는 생각 말이다. 그래서인지 이들의 사진 전부를 한눈에 바라보다 보면 문득 일상이 도치되어 작가의 의식이 보이기도 한다. 예컨대 신현기의 사진은 어떤가? 아마도 누군가의 어머니인 듯한, 여인의 절단된 단면들을 자신의 선입관으로 결정하여 몇 장으로 나열한 이 사진에서는 살포시 ‘판단의 폭력’이 느껴지기도 한다. 한 여인의 삶의 편린들을 자신이 재구성하면서 스스로의 선입관에 가두어 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그녀의 일상이 정말로 이처럼 단순한 것일까? 그저 T.V를 보거나, 요리나 청소하는 일로 규정하는 것이 참으로 일상일까? 이는 평범한 일상이 아니라 평범한 자신의 사고가 아닐까? 그런 것이 바로 일상이라고 생각하는 사고 말이다. 물론 이런 깊은 생각은 모두에게 다 적용될 수 있기도 하겠지만 크게 눈에 띄는 것이 이 사진이다. 아무튼, 이들의 일상에 묻어 있는 비 일상성은 그래서 뜯어보는 재미를 우리에게 선사한다. 어찌 되었던, 이들이 주목한 일상이 나로 하여금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하여 나 역시도 다시 사진을 통해 세상 안으로 사유해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다 아는 사실이지만, 이곳 전주는 사진문화가 매우 척박한 곳이다. 워낙 전통문화의 기개가 드높고, 또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공간들이 풍성한 터이라, 서양의 모습을 띤 사진문화가 넓고 깊게 발붙이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런 전주에서 사진 전문 갤러리를 표방하며 전시 유치를 애쓰는 사람이 있고, 또 그러한 공간이 있음은 이곳 전주의 지점에서 바라볼 때 너무도 비일상적이다. 비현실적이기도 하고. 헌데, 이 모순(?) 을 일상으로 변환시킬 수 없을까? 지금이라는 시점에서 말이다. 정주하/ 사진가. 독일 쾰른대학교 자유예술대학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쾰른 시립개방대학에서 koeln volkshochschule 사진과 강사를 역임하고 한국에 돌아와 10회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을 치렀으며 현재 백제예술대학 사진학과 교수로 재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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