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3 |
[전라도 푸진사투리]
관리자(2008-03-26 19:27:32)
“슥 달만 살라고 왔는디 큰애기가 늙은이가 되아 버맀어.”
김규남 언어문화연구소장
1995년 겨울, 그 때도 여느 겨울처럼 고부 두승산 자락은 눈이 쌓여 있었다.
“쥐 때미 못 살어. 자고 있으믄 와 있고 발로 기어가고 그런당게.”
“쥐구멍을 막어야지요, 그러먼.”
“쥐구녁 막을라먼 농이고 냉장고고 다 들어내고 막어야 허는디? 그냥 품고 살어.”
“그리도·······.”
“어떤 때는 먹을 것을 웃묵으 내다 놓으먼 아침에는 하나도 없당게.”
“고양이라도 한 마리·······.”
“찐득이 사다 놓고도 불쌍히서 못 놓겄네.”
할머니는 금방이라도 어그러질 것 같은 지붕을 이고 삼십 년을 사셨단다. 언제부터 쥐 생원이 방안을 활보하고 다녔는지 모르지만 할머니는 쥐 잡을 ‘진득이’까지 사다 놓고도 차마 불쌍해서 쥐를 못 잡으셨던 모양이다. 쥐 생원일망정 종종 밤나들이로 다녀가면 좀 덜 적적하셨을까. 그래서 그런지 던지는 말마다 자식들 이야기다.
“우리 사오가 어머이 텔레비 잘 보셔요? 그려, 잘 보기는 멋을 잘 봐. 천둥 오는 날 똑 소리 나드만 꺼져 버 어.
그 더니 그러믄 뗀저 버리쇼 내가 존 놈 사다 드리께, 그려. 우리 사오가.”
“우리 딸 징그랍게 이뻐, 지가 고렇고 이쁜 짓을 헝게 안 이쁠 수가 있가니?”
날이 워낙 추워서 개가 밥도 안 먹고 비실댄다. 개밥 끓일 군불을 때는 동안, 묵은 이야기는 하나둘 세월을 거슬러 온다.
“살었으먼 호강대강 헐 턴디, 명이 잘룬 것을 어쩌겄어.”
“베 짜고 허느라고 공부헐 새도 없었는디, 넘들 허는 운동굿은 잘 보러 가라 어?.”
“우리 시아버니가 슥 달만 살고 갈라고 이리 왔다는디 그때 큰애기가 인자 늙은이가 되아 버 으니…….”
어느 사이 날은 저물어 저녁 새 서둘러 둥지 찾아 날아가고 할머니의 뒷모습엔 쓸쓸한 고요만이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