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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3 |
[이종민의 음악편지] 이병욱의 ‘우리 민요 주제에 의한 환상곡’
관리자(2008-03-26 19:24:09)
간절하게 참 철없이 적막의 포로가 되는 것 궁금한 게 없이 게을러지는 것 아무 이유 없이 걷는 것 햇볕이 슬어놓은 나락 냄새 맡는 것 마른 풀처럼 더 이상 뻗지 않는 것 가끔 소낙비 흠씬 맞는 것 혼자 우는 것 울다가 잠자리처럼 임종하는 것 초록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 안도현 시인의 「가을의 소원」입니다. 실용에 휘둘리지 않고 존재의 근원을 추구하는 진지함. 어설픈 도덕률에 움츠리지 않는 탐미주의. 가을이 아니라도 빠져보고 싶은 경지입니다. ‘초록을 그리워하지 않다니! 삶의 의미를 ◎?는 시인은 점점 깊어만 가는데 현실만 핑계 대는 범부는 하루가 멀다 하고 진부해지는구나!’ 그의 최근 시집 『간절하게 참 철없이』를 읽으며 멍, 이런 탄식만 토해내고 있습니다. 본질을 추구하는 ‘간절한’ 마음이 실용을 앞세우는 사람에게는 ‘참 철없이’ 느껴지겠지요. 유통의 수단인 철길을 ‘멀리 가보고 싶어 자꾸 번지는 울음소리를/ 땅바닥에 오롯이 두 줄기 실자국으로 꿰매놓은 것’이라 일컬으며, 그래서 결국 그것이 기차의 감옥이요 독방에 지나지 않았다고 단언하는 철없음이야말로 그 무엇을 향한 어떤 간절함의 산물 아니고 무엇이겠는지요? ‘바라보는 일이 직업’이라는 구름의 ‘독거(獨居)를 사랑하련다’는 다짐에서도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무엇보다 위로 치솟지 아니하며’) 재물에 휘둘리지 않는(‘통장의 잔고를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구름의 유유자적에 대한 간절한 소망과 철없는 깨달음을 동시에 읽을 수 있을 것이고요. 철없음과 깨달음은 함께 오는 것인가? 눈멀음과 눈뜸이 동시에 오는 것처럼. 사랑에 눈을 뜨면 다른 모든 일에 눈이 멉니다. 빛을 보는 순간 그 어느 것도 볼 수 없게 됩니다. 역으로 어둠에 익숙한 눈은 빛 속에서는 장님이 되고 맙니다. 존재(Being)의 의미를 깨닫게 되면 소유(Having)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에게 철없다 핀잔을 받기 십상입니다. 세속의 입장에서 철이 없어야 본질적 깨달음의 경지를 그나마 엿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부귀영화에 눈뜬 사람도 구름의 독거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참 철없어 보일 것이고요. 그러고 보니 시집의 제목부터가 예사롭지 않게 다가옵니다. 저는 들어본 적도 없는 음식 ‘예천 태평추’에 관한 시의 끝부분에서 따온 것이라지만 현상에 현혹되지 않고 차분하게 그 이면을 들여다보고 있는 묘한 경지를 잘 함축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갓(?) 음식에서 농익은 의미를 우려낼 수 있는. 부러울 따름입니다. 샘이 나기도 하고요. 다행스러운 것은 그처럼 날로 깊어지는 시인이 우리들 곁에 있다는 것. 가끔 막걸리 한잔 하자고 자리를 함께 해주는 것도 고마운 일이고요. 덕분에 나락으로 천박해지는 것만은 면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 철없음 본받겠다고 지난주에 작은 음악회를 하나 마련했습니다. 시인의 그 경지를 훔쳐 조금이나마 공유하고픈 마음에 저지른 철없는 짓이었지요. 그렇지 않아도 바쁜 시인을 그런 자리에 불러들이다니! 허나 준비하는 저로서는 더없이 즐겁고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사실 가깝게 지내다 보면, 고향에서 선지자가 제 대접 못 받는 것처럼,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그 가치를 모르고 지나치기 십상입니다. 가끔 맘먹고 건네주는 시집도 대충 대하기 일쑤이고요. 이번에 ‘안도현 시인과 함께하는 작은음악회’를 준비하면서 시인이 적어도 저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새삼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그에 관련된 동영상 하나 만들어 보겠다고 추억의 사진들과 시 음악을 뒤지다가 그와 함께 한 시간들이 풍성한 마음의 자산으로 쌓여있음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새로운 시들을 다시 읽으며 그가 저 몰래 얼마나 깊어지고 있는가도 시샘 억누르며 깨닫게 되었습니다. 결국 제 철없는 작은음악회는 저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괄목상대, 점점 성숙해가는 시인의 모습을 통해 제 자신을 진지하게 뒤돌아볼 수 있는 귀한 기회가 되었던 것입니다. 주책이라는 말까지 들어가며 철없이 마련한 자리가 자기완성을 향한 간절한 소망, 세속의 습속에 굴하여 내팽개쳐버린 그 당위를 따갑게 되새기는, 이름 하여 대오각성(大悟覺醒), 그 채찍이 된 것입니다. 그 기념으로 ‘참 철없이’ 한국음악 활성화에 열을 올리고 있는 교수 기타리스트의 연주 하나 소개해 올립니다. 어울림이라는 국악실내악단을 이끌고 있는 청주 서원대학교의 이병욱 교수. ‘기타는 작은 오케스트라다!’ 악성 베토벤의 말을 실제 연주를 통해 증명해주고 있는 연주자. 대한민국작곡상, KBS국악대상작곡상, 대한민국관악작곡상 등으로 빛나는 탁월한 작곡가. ‘자연과 인간과 소리와의 어울림으로 우리 모두 하나 되어!’를 내세우며 활발한 연주활동을 하고 있는 실내악단 어울림의 대표이자 해마다 멋진 음악잔치를 벌이고 있는 강원도 마리소리골 촌장. 제가 철없다 이른 것은 교수이자 작곡가이면서도 연주무대를 마다하지 않기 때문. 대부분의 교수들은 어느 정도 경륜이 쌓이면 연주를 기피합니다. 후생가외(後生可畏), 제자나 후배들과 비교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이병욱 교수는 장소 가리지 않고 연주 무대에 열심입니다. 이번 연주만 해도 장구와 해금 연주를 맡은 제자 후배와 함께 꾸민 것입니다. [우리 민요 주제에 의한 환상곡]이란 곡의 말 그대로 환상적인 연주실황입니다. 귀에 익은 민요 가락의 변주를 주고받는 기타와 해금, 가끔 철없이 끼어드는 장구, 이들이 어우러지면서 조성하는 활달한 분위기가 화창한 봄맞이를 향한 우리들 간절한 바람을 잘도 대변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철나자 노망든다! 했던가요? 이를 늦추기 위해서라도 철없이 지내야 하지 않을까? 우리들 본연의 모습을 찾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있으면 이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하며 이 교수의 철없는 연주에 취해보시기 바랍니다. 간절하게 참 철없이! 이종민ㅣ전북대 교수·전주전통문화도시조성위원회 위원장 ※ http://e450.chonbuk.ac.kr/~leecm로 접속하시면, 그동안의 음악편지와 음악을 직접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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