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3 |
[허철희의 바다와 사람] 풍어의 꿈 싣고 떠나가는 띠배
관리자(2008-03-26 19:23:52)
황금같은 조기떼 코코마다 걸렸구나
칠산바다로 돈 벌러가세
칠산바다 들어오는 조기
우리 배 마장에 다 떠 실었단다
우리네 사공님 신수 좋아
오만칠천 냥 단물에 벌었네
황금조기떼가 칠산바다를 뒤덮던 시절, 만선의 깃발을 나부끼며 기우뚱거리는 배 갑판위에서 어부들이 신명나게 부르던 “배치기소리”이다.
위도는 변산반도 서쪽 끝에 있는 격포항에서 여객선으로 40여분 거리에 위치하며 일개 면(面)을 이룰 정도로 꽤 큰 섬이다. 섬 모양이 고슴도치를 닮아 고슴도치 위자를 써서 蝟島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허균이 홍길동전을 빌어 그린 이상향 율도국이 바로 이곳 위도로 비정되기도 하고, 심청이 빠져 죽은 ‘인당수’가 위도의 ‘임수도’라는 학설이 제기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위도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이곳에서 발굴되는 고대유물을 통해 고대로부터 사람이 살았음을 추정할 수 있다. 고려 때에는 이규보의 유배지였었다는 것을 문헌을 통해 알 수 있고, 조선시대에는 지금의 위도면 진리에 수군 진(鎭)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런가하면, 위도는 조기로 유명한 칠산어장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위도 앞바다에 조기떼가 몰려들 때면 전국에서 고깃배들이 조기떼를 따라 위도로 몰려들고 위도에는 파시가 들어섰다. 위도의 파시는 흑산도, 연평도와 함께 서해 3대 파시 중의 하나인데 1970년대 중반까지 그 명맥이 이어졌다.
위도가 조기어장으로 성시를 누리던 시절, 정월 초하루부터 보름까지 위도 곳곳에서는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마을 공동제(共同祭)가 성대하게 치러졌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이후로 조기가 칠산바다에서 자취를 감추자, 지금은 예전의 그 화려했던 시절을 뒤로하고 멸치잡이와 김양식 등을 주업으로 하는 한적한 어촌으로 변해 있다. 따라서 성대하게 치러졌던 마을공동제도 그 맥이 끊기거나 간략해졌는데 대리(大里)마을의 ‘띠뱃굿’만은 유일하게 원형을 잘 간직한 채 그 맥을 잇고 있으며, 1985년 ‘위도띠뱃놀이’라는 이름으로 중요무형문화재 제82호로 지정되었다.
대리 마을의 띠뱃굿은 해마다 음력 정월 초사흗날 치러진다. 원당제, 주산돌기, 용왕제와 띠배에 액 띄워 보내기의 순서로 이른 아침부터 해질녘까지 ‘에해용 소리’, ‘가래질 소리’, ‘술배 소리’ 등 어부들의 삶 속에서 녹아 있는 소리와 풍물, 신명난 춤을 추며 시종 축제분위기로 이어진다.
대리 마을은 이 제의를 치르기 위해 섣달 20일경이 되면 동네 어귀에 금줄을 치고 잡인의 출입을 금한다. 출산을 앞둔 임산부는 산막으로 옮겨가도록 하고, 부정이 없는 사람으로 화주(제주), 원화장(제물 준비하는 사람), 부화장(제물 나르는 사람)을 뽑는다. 뽑힌 화주나 화장은 일체의 부정한 것을 멀리 하고, 찬물로 목욕재계 한 후 제물을 정성껏 준비하는데 말을 해서도 안 되고 값을 깎아서도 안 되며 최상품의 제수로 준비한다.
정월 초사흗날, 날이 밝으면 영기를 든 기잡이를 선두로 무당, 화주, 화장, 선주의 뒤를 따라 굿패가 흥겹게 굿을 치며 뒤따르고, 오방기와 뱃기를 든 기수와 마을사람들이 그 뒤를 따라 마을 동쪽 높은 산 정상에 있는 원당에 오른다. 당집 안에는 산신상, 원당마누라상, 본당마누라상, 옥적부인상, 애기씨상, 수문장상, 장군서낭상 등의 마을과 바다를 수호하는 7위의 신상이 모셔져 있다.
원당제는 화장이 지게에 지고 온 제물을 내려 진설을 끝내면 화주의 독축을 시작으로 ‘성주굿’, ‘산신굿’, ‘지신굿’, ‘서낭굿’, ‘손님굿’, ‘깃굿’ 순으로 오전 내내 이어지는데 무당의 사설이 계속되는 동안 마을사람들은 차례로 엎디어 저마다의 소원을 축원하고, 굿 한 판이 끝날 때마다는 풍물을 치며 신명나게 춤을 춘다. 당굿이 끝나면 제물을 당 앞으로 내다놓고 음복하는데 이 때 무당은 선주들에게 산(算)쌀을 집어주어 짝수가 되면 그해 무사안녕하고 고기를 많이 잡는다는 '산점'을 친다.
원당굿이 끝나면 그 해에 배에 모실 신을 지정하는 깃굿을 하고 풍물을 치며 원당에서 내려온다. 오는 도중에 바다로 돌출한 용바위에 올라 제수로 쓴 음식을 바다에 던져 바다에서 죽은 무주고혼들에게 풀어먹인다. 이어서 마을 앞 당산나무 아래에 모여 주산돌기를 시작한다. 이는 육지의 당산제 성격인데 마을사람들이 용줄을 어깨에 메고 풍물에 맞추어 에해용 소리를 부르며 마을을 돈다. 그러나 요즘은 마을 사람들 수가 적어 용줄은 생략하고, 영기와 오방기를 앞세우고 마을을 돈다.
주산돌기가 끝날 즈음 바닷가 선창에는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만든 폭 2미터, 길이 3미터 정도의 띠배가 먼 바다로 떠나갈 채비를 하고 있다. 배에는 백지 위에 오방신장에 맞춰 쓴 액을 쫓는 깃대를 세우고, 동네의 터가 센 곳에 액을 몰아가라고 세워 두었던 짚으로 만든 허수아비를 거두어 싣는다. 허수아비의 남근을 과장되게 크게 표현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데 이는 풍요, 다산의 성신앙을 담은 것이다.
황금같은 조기떼 코코마다 걸렸구나
어기여루 술배로다
술배솔로 날을 새고 술배솔로 해를 지니
어찌 아니 좋을 쏘냐 이물가득 삼가득
명지가득 까득까득 실었으니
고물안에 하장아가
어서 바삐 일어나서 이물에다 호기해라네
<위도띠뱃굿-용왕굿 중에서>
주산돌기에 이어 오후 2시쯤 만조가 되면 마을 앞 공터에서 용왕제를 지낸다. 용왕제는 무당이 “바다를 향해 제배” 하면 마을 사람들이 일제히 바다를 향해 절을 하면서 시작된다. 이어 무당의 춤과 사설이 계속되며 여인들은 용왕님에게 먹일 회식밥을 내온다. 회식밥은 제수로 쓰인 음식들을 거두어 모아 물을 부어 만든 물밥이다. 마을 사람들은 풍물에 맞추어 춤을 추면서 띠배를 돌며 가래로 회식밥을 퍼서 띠배에 담는다.
용왕제를 지낸 후에는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띠배 띄워 보내기’를 한다. 농악과 선주기가 모선에 오르면 배치기소리를 더욱 우렁차게 부르면서 용왕님이 먹을 회식밥과 묵은 해의 재액인 허수아비를 가득 실은 띠배는 모선에 이끌려 바다 한 가운데로 나아간다. 풍물소리도 점점 멀어진다. 재액에게 다시는 오지 말라고 전송하는 마을사람들의 환호성도 점점 잦아든다.
허철희ㅣ부안생태문화활력소 대표 (www.buan21.com)
허철희/ 1951년 전북 부안 변산에서 출생했으며, 서울 충무로에서 '밝' 광고기획사를 운영하며 변산반도와 일대 새만금갯벌 사진을 찍어왔다. 새만금간척사업이 시작되면서 자연과 생태계에 기반을 둔 그의 시선은 죽어가는 새만금갯벌의 생명들과 갯벌에 기대어 사는 주민들의 삶으로 옮겨져 2000년 1월 새만금해향제 기획을 시작으로 새만금간척사업 반대운동에 뛰어들었다. 2003년에는 부안의 자연과 문화,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룻 『새만금 갯벌에 기댄 삶』을 펴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