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3 |
[문화와사람] 문화의 향기, 사랑의 향기
관리자(2008-03-26 19:22:46)
‘문화저널’이 ‘문화와 사람’ 연재를 다시 시작합니다.
삶의 현장 한가운데서 묵묵히 문화의 향기를 퍼트리고 있는 사람과 단체를 찾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다시 시작하는 ‘문화와 사람’이 처음 찾아간 곳은 ‘여성다시읽기’입니다. 1991년 호남사회연구회의 문학분과로 시작한 ‘여성다시읽기’는 우리지역 유일의 페미니즘 학술단체로 지금까지 활발하게 활동해오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최명희문학관과 공동주관하여 월례문학세미나를 펼치는 등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한 대외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여성다시읽기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이다
“비루한 여성노인 ‘봉사할멈’이 담 밖 길가에서 살아가는 존재라면, 맹오리 영감은 권위있는 공간, 경기전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다. ‘헌 옷차림, 흰 수건, 죽은 살색의 늙은 얼굴’의 봉사할멈의 부정적 외관과 달리, 맹오리 영감은 ‘늘 흰 옷’을 입고 ‘경기전이 울리게 호통을 치는’ 긍정적 모습으로 묘사된다. 사회적으로 봉사할멈이 그녀의 죄의식을 전염시키는 부정적인 역할을 한다면, 맹오리영감은 오랜 전통과 역사를 지닌 경기전을 지키는 수호자로서 공공의 이익을 보호하는 긍정적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건 단순히 성적 차별이라고 생각하기에는 그 경계가 모호하다. 오히려 계급의 차이에 따른 구분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지난 2월 22일 오후 7시 최명희문학관. 이십여 명의 사람들이 치열한 논쟁을 벌인다. 논쟁의 주제는 ‘노년문학의 관점에서 최명의 소설읽기’, 최명희의 단편소설 「만종」 속에 드러난 ‘맹오리영감’과 ‘봉사할멈’을 바라보는 참여자들의 시선이 첨예하게 엇갈린다.
‘여성다시읽기’(대표 이영진)가 바깥나들이에 나섰다. 최명희문학관(관장 장성수)과 공동주관해 매달 열고 있는 월례문학세미나를 통해서다. 지난 1월 장미영 전주대 교수의 ‘최명희 소설의 가족담론’을 시작으로 4월까지 매달 한번씩 진행되는 이번 행사는, ‘여성다시읽기’회원들이 발제와 토론자로 참여해 세미나를 이어가게 된다.
바깥나들이는 오랜만이지만, 그동안 활동을 게을리 했던 것은 아니다. 매달 두 번씩 정기적으로 만나, 공부하고 비평하는 일은 한번도 쉬지 않았다. 이런 활동을 바탕으로 일년에 네 번씩 펴내는 소식지도 결호 없이 펴내고 있다.
“우리 지역에 여성을 위한 운동단체나 활동이 결코 적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이론적인 작업은 거의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페미니즘 이론의 정리나 우리 현실에 맞는 이론 정립이 필요하다고 느낀거죠.” 이영진 대표의 설명이다.
‘여성다시읽기’의 시작은 1991년으로 호남사회연구회 문학분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문과와 불문과 중심의,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던 회원들이 여성문학 중심의 비평을 시작했고, 1993년에는 ‘여성문학연구모임’으로 이름을 바꿨다. 1999년에는 다시 ‘여성다시읽기’라는 이름으로 개정하면서 본격적인 학술모임으로서의 면모를 갖춘다. 지난 2004년 발간한 『색깔있는 문화』는 영화와 만화, 애니메이션, 드라마 등을 여성의 눈으로 바라보고 분석한 비평집. 그간 회원들끼리 공부했던 성과들을 정리해 낸 것이었다.
2000년부터 일년에 네 번 꾸준히 펴내고 있는 소식지는 처음 4페이지 분량이었던 것이 지금은 12페이지에 이를 만큼 내용이 다채로워졌다.
“조금 더 많이 공부하고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 보자는 의미에서 소식지를 꾸준히 펴내는거에요. 소식지를 통해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여성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 있길 바라는거죠. 공부해오던 것을 정리해서 만든 것인 만큼, 처음에는 페미니즘영화와 소설, 드라마, 이슈 등을 매체비평을 주로 썼죠. 조금 지난해부터는 페미니즘 이론이나, 사상가 등 학술쪽에 집중하면서 소식지도 조금 더 무거워졌어요.”
‘여성다시읽기’ 통해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면서 세상과 부닥칠 일이 있을 수밖에 없을 터. 이들은 힘들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나와 상대를 조금씩 변화시킨다면 그것이 세상을 더 좋은 방향으로 한발 짝 더 나아가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개인적인 성과는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다시 보게 됐다는 것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매체를 통해 남성의 시각으로 우리 자신을 바라봐왔잖아요. 그런데 공부를 하고 여성의 눈으로 나를, 그리고 세상을 다시 보니까 그 전에 보던 세상과는 아주 많이 달랐어요.”
한 때, 활발하게 논의되던 페미니즘에 관한 논쟁이 이제는 조금 시들해지고, 관심도 예전 같지 않는 게 사실이다. 호주제도 통과되고 여성들의 국회의원 숫자도 몇 해 사이 크게 늘었다.
“하지만, 아직도 여성들은 여전히 약자고 많이 달라진 것도 아니에요. 이런 식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그냥 묻혀버려서는 정말 안됩니다. 한국사회에서 가부장제가 사라진 것도 아니고, 매 맞는 여성들도 많죠. 얼마 전에는 여성가족부를 없앤다는 얘기도 나왔고, 군가산점 문제는 또 다시 우리 사회를 양분하고 있어요. 호주제와 여성할당제에 대해 악감정을 가진 사람들도 많죠. 하지만, 페미니즘은 여성들만 잘 살자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 모두 잘 살자는 겁니다.”
이들이 가장 안타까워하고 있는 것은 페미니즘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그리고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으면서 비난만 하려는 편견어린 시선들이다. 그래서 이들은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었다고 말한다.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여성들의 평등뿐만이 아니라, 우리사회 전반에 걸쳐 만연해 있는 이런 잘못된 인식이 사라질 때까지 우리 활동은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여성다시읽기’는 올해 최명희문학관에서 펼치는 월례문학세미나 이외에도 ‘평화와 인권연대’, ‘전북여성운동연합’,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 ‘전주노동자회’ 등의 단체와 함께 ‘여성인권포럼’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전북여성인권운동의 실태나 청소년 문제, 여성주의적 연대 등 매달 주제를 정해 놓고 토론하는 자리다. 3월에는 ‘마초문화’에 대해 얘기할 예정이다. 알게 모르게 우리 의식 전반을 통제하고 있는, 잘못된 인식과 편견을 없애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