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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3 |
[명인명장] 내가 살아온 세상
관리자(2008-03-26 19:22:04)
안동 권 씨 종갓집 종부. 전라도 반갓집 상차림과 전통을 이어가며, 손가락 마디마디 옹이를 맺혀가며 살아온 인생입니다. 검붉게 익어가는 고추장 항아리에 한숨과 눈물을 삭히고, 어쩌면 당신은 고추장이 아니라 기구한 인생을 절절이 담아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서럽고 애닯던 시집살이의 기억도, 마흔아홉에 떠나보낸 그리운 임의 얼굴도, 속절없는 세월 속에 묻어버렸습니다. 고추장 명인, 아니 전통음식의 명인 이기남할머니의 소박한 웃음은 처마 끝에 매달아 논 메주의 주름만큼이나 깊은 애잔함이 흐릅니다. 고추장 담아온 이기남 할머니 지나온 질이 천리나 같은 디 또 살 것어 이기남 연보 1922년 : 전라남도 곡성 태생. 아버지 이성수, 어머니 김덕효 사이 남매 중 둘째 1941년 : 남편 권홍길과 결혼 1968년 : 남편 권홍길 사별 1988년 : 고추장 판매 시작 1993년 : 한국일보 소개 1995년 : 행복이 가득한 집 소개 2001년 : 관광명물 집 선정/트로피 수상 ?순창전통고추장 보존협의회 회장역임 ?순창전통고추장제조기능인 지정 ?전라북도 최고명품 선정 ?품질경영 시스템 ISO 9001인증 소두방 운전수 허느라고 싹 까먹어 버렸어. 내가 올해로 여든 일곱 되았소. 임술생. 고향이 전라남도 곡성군 오산면. 거그서 이리 시집왔소. 우리집안은 학자시지라. 아버지는 세 살의 돌아가셨어. 뵙도 못허고 어렴풋이 기억만 나. 그때 병환중이 셨는가 본디 세 살 때 어렴풋이 배 위에 놓고 얼르던 그런 기억만 나. 세 살 땐가 그런디 뭣을 알것어. 아버지가 이성수. 어머니는 김덕효. 나는 남매 밖에 없어. 오빠하나 계셔. 둘이 밖에 없어. 아버님 돌아가시고 조부님 댁에 살았어. 옥과국민학교 다니고. 부잣집 손녀딸로 잘 살었지. 삼백 석을 혔어. 나가 보기에 어려서 쌀을 이 아래채 만 헌디다 세 개를 쌓아. 한 나씩 떠붓어 놓습디다. 소작들이. 국민학교 당기다가 서당 선생 대려다 놓고 한문공부 배웠고. 이 권 씨 집안의 시집와서 소두방 운전수 허느라고 싹 까먹어 버렸어. 서당에서 한 4년 배웠어. 그런 게 소학 대학을 다 배운 사람이 여그 와서 다 까먹어 버렸어. 한문도 많이 배웠는디 다 까먹으 불고 쉬운 자 만 알어요. 옛날 으는 하도 시집살이도 많이 허고 긍게로 내가 글을 조까 쓸 것인디. 못 혔어. 인자는 다 까먹어 버렸지. 부잣집으로 부잣집 손녀딸로 커서 한문이나 배우고, 일도 안 히봤어. 그러다가 참 광주일고 저 학생을 만났어. 대주되는 사람을. 그러고 그 대주는 일본중앙대학나오고. 또 그때 대동아전쟁 나서 다 못 마치고 서울대학 가서 학업을 다 마치고. 서울대학 1회생이여. 부군 되는 사람은 잘 배웠어. 나는 조부님이 기생 갈 라냐고 그만 학교 댕기라고 혀서 초등학교만 나왔어. 기생 될라간디 공부 허냐고. 그리서 못 배웠어. 오빠하고 세 살 차여. 인자 구십 되았것소. 살아 계셔. 병환 중여. 어머니는 나가 칠십 때나 가셨는가, 어머니 90살 때. 어머니는 전라북도 쌍치 둔전리라고 거그서 살으셨어. 쌍치서 시집오셨어. 다 까먹어 버렸어. 인생살이 인제 다 잊어버렸어. 이 사업 험서 다 까먹어 버렸어. 스물 살 때 시집왔소. 옛날로 치먼 늦었지. 옛날 노처녀. 중매결혼 했지라. 시 당숙모가 중매를 했어. 신랑은 일고 학생이라, 장가 안 간다고 헌 놈을 막 할아버지들이 그리서 했어. 나보다 한 살 어려. 남편이. 일고 학생을 갔다 막 중매를 혀가꼬, 남자가 안 헐라고 헌 놈을 억지로 보내야. 선은 학생시절이라, 가방매고 왔다갔다 허는 것만 봤지 선은 봤간디. 저 뉘 집 아들이다 허면 사돈끼리 다 알어서 혀. 곡성에 살다가 우리도 광주로 이사 혀서 살었어. 열 여덟이나 열아홉이나 나왔는가. 오빠 허고 어머니 허고 할머니 허고.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고. 광주서는 친정 으서 농사지어서 가져오고, 우리는 집안 일 그런 것만 배우고 그랬어요. 수나 놓고. 편히 살었어요. 시 당숙모가 중매를 넣어. 얼굴도 못보고 그랬어. 저기 지내간 것만 봤지. 그러고 다 결혼을 허지 옛날 사람들은. 사둔 끼리 맺어. 그런 게 허지. 결혼식은 광주서 허는 디. 옛날 결혼식도 허고. 일고 댕기는 사람이라 면사포 쓰고, 신식결혼식도 허고.   결혼 허고 일본으로 가서 일 년인가 있다 옵디다. 대동아전쟁 나서. 그리서 서울대학 또 가고. 지금 세상은 따라가기도 헌디. 옛날 부잣집 시아바님이라 따라가도 못 허게 혔어. 결혼히서 여그서 살었지. 저 짝 방으서 살고. 시아버지 집안은 학자지라. 진사벼슬도 허고. 올해 이집이 백년이 가까워요. 시아버지는 권 병자 초자. 남편은 권홍길. 결혼 허고 한 달이나 살다 갔는가 일본으로. 학교댕기고 어쩌고 헌 게 같이 살도 못했어. 일본가기 전에 큰딸하나 생기고. 나논게 왔습디다. 느그 친정에 가서 다시 배워가지고 오라고 그렸어. 시집살이 말없이 했지. 반찬도 당신 입에 맞어야 잡숫지. 육회 같은 것도 만들라고 허는디. 잘못 허먼 느그 친정에 가서 다시 배워가지고 오라고 그렸어. 생선, 민어포 같은 거 그런 것 만 잡숴요. 시어머니한티 배웠어. 양반가라 그런 것만 잡숴요. 술 허고. 술도 찹쌀 술 만 혀. 반찬도 그냥 잘못 허먼. 꼬막 같은 것도 보통사람은 빡빡 허니 굽지라. 그 양반은 짐이 포로로 허니 꼬막위에서 짐만 나오면 잡숴. 살짝. 미식가 였지라. 까다로워. 지금사람 같으면 도망 가버리지. 안살아. 그 시집살이를 다 누가 헐 것이여. 반찬 까다롭지. 입은 옷도, 지금 사람은 알도 못혀. 요새 나이롱같이, 삼팔 오방 이런 것을 사흘간 뚜드려. 방맹이로. 상상도 못혀 요새사람들은. 홍두께로 베를 둘러. 그래가꼬 두드리면 나이롱 같이 되아 버려. 열손가락이 다 매디가 박혔어. 인자는 사라졌소. 논게로. 시집살이 말도 못혀 아주. 미식가인 시아버지에다가. 달달이 술혀야지. 맑간허니 정종같이 나오는 술을 혀요. 보통으로 허는 술이 아니고. 지금도 히요. 시어머니는 시집살이를 안 시켰지라. 시아버지헌티 그랬지. 당신 성품에 안 맞으면 날마다 꾸중 허고. 긍게 울기도 많이 허고. 이를 깍 앙당 물고 삼년을 친정을 안 갔어. 삼년을. 그렇게 후딱 못 가게 허지. 우리 어머니헌티 욕 안 가게 헐라고. 쫓겨 왔다네 그 소리 안 듣게 헐라고 이를 앙당 물고 살었어. 시어머니는 해남 민 씨요. 잘 갈쳐주고 그러셨지. 그렁게 버텼지라. 요새사람들은 안 살어. 쪼께 큰말만 허먼 안 살어. 요새사람들은 못써. 따로 사는 것이 서로가 편혀 마음이 암만 히도 부딪히먼 아무래도 서로 말이 이것이 옳다 나는 그런디, 저는 아니라고 그러고. 남편 형제는 사남매. 위로 누님한분계시고, 큰아들. 종갓집이여. 안동 권 씨 종갓집. 공부 마치고는 저 광주일고 선생 혔어. 법과를 나왔는디. 당신 동창생들이 어찌 들오라고 했싸니까. 발을 잘못 들였어. 성질이 법관이나 혀야 맞을턴디 그냥 선생 혔어요. 오라고 싼게 그냥 끌려서 가버렸어. 자녀가 여럿이요 칠남매. 현재는 인자본게 육남매만 남었어. 자석 하나가 갔어. 넷째. 어디 가서 짐을 몽땅 지고 힘이 없어서 골골골허다가 갔어요. 시어머니 헌티 뭐냐 다 배웠지라. 육회 같은 거. 생선회 같은 거. 그러고 다 배워서. 군수님 상채리라먼 채리고. 혔지. 신선로도 허고. 갈비찜도 허고. 조구 찜도 허고. 할아버지는 광주일고 선생 험서 광주서 살고. 시아버지가 못 따라가게 혔어. 나는 여그서 살고. 다른디 가먼 이런 맛이 안 나와. 고추장은 시어머니가 고추장을 잘 허시오. 그리서 장사도 안 헌사람인디. 88고속도로 남서 장사 혔지. 고추창 맛있게 담어서 군수님, 서장님, 군 으서 손님만 오먼 상 채렸지. 손님이 그럽디다. 서울서 온 손님이. 장사 안 헌 사람이라고. 장사를 히봤어야지. 인제까 양반가에서 술상이나 차리고 손님이나 접대혔지. 뭔 장사 히봤것어. 고추장이나 맛있게 담어 가지고. 우리가 고추장을 담은 놈으로 육회도 혀야 맛있지. 지금 기계화 헌 놈으로 허먼 맛이 없어요. 윤이 없어 맛도 없고. 언제 아들이 광주를 댈고가. 우리 고추장 가지고 가서 육회를 헌 게로 맛있는디 지그 고추장으로 헌게 맛이 없어. 못 먹것어. 고추장은 재료도 좋아야혀. 양근. 태양빛 쐰 것. 양근으로 허고. 고추가 일등이라야 혀. 기후도 좋고. 여그는 읍내 허고 또 틀려. 기후가 좋은 게. 그런 게 다른디 가먼 이런 맛이 안 나와. 기후관계. 물. 물도 좋아야 허고. 지하수가 나오는디. 지하수로 인제까 혔지. 지하수가 저그 어디서 어찌케 집히 파부리서 물이 안 와버려. 인자.   금슬이 좋았는가 어쩠는가 모르것소. 남편이랑은 같이 살아 본적이 거의 없어. 일본으로 서울로 그러고 인자 광주 일고 선생을 헌게 여그를 별로 오들 않지. 할아버지가 보통분이 아녀. 무서운 분여. 정이 많은가도 모르것어. 그냥 살었어. 옛날 사람이라. 살으란 게 살었지 뭐. 그 사람도 바쁜 게 잠깐 왔다 갔지 뭐. 그리도 자석을 일곱을 뒀어. 학교 갔다 오먼 금요일 날이나 토요일 날 왔다 가요. 평생 교직 하다 갔지. 퇴직도 못혔어. 마흔 여덟에 갔어. 일찍 갔어. 벨라 안존지도 모른디. 그렇게 일찍 가버립디다. 위가 안 좋았어. 지금 같으먼 뭐라도 헐 것인디. 그러도 못혔어. 옛날 시절이라. 시어버지 먼저 가시고, 그다음에 갔지. 금슬이 좋았는가 어쩠는가 모르것소. 암튼 칠남매를 뒀어요. 자석들은 다 잘되었어. 손자도 잘되고. 의사도 허고. 뭐이냐 공군 연수받으러 미국가고. 정부에서 보내준 게. 내외가 다 갔어. 친정은 삼년을 못가고, 첫애 나놓고 갔는가. 친정엄니는 잘 사시다 가셨어. 부잣집인 게. 친정 시댁 다 잘 살었어. 여그가 가남리. 가잠리라고 혀요 마을 사람들은. 광주서 좀 살다 왔어요. 교직에 있응 게 광주서 몇 년 살었어. 많이 따라 댕겼소. 여수서도 살고, 함평서도 살고. 광주서 많이 살었고. 여그는 육이오 후에 다시 왔는 개비요. 육이오 때 여그로 피난 왔지요. 순창농고에 교직으로 있고. 그때 육이오 때. 피해는 안 봤어요. 문안 허니 지냈어요. 별로 뭐 피해는 없었어요. 인공 때 저 앞으 갖다 놓고 동네사람 다 대려다 놓고 총 쏠라고 막 그러다가 뭐 시기가 있응 게 말아 불대요. 총이랑 꼬누고 있다가. 아는 사람이 있응 게. 고추가 양근으로 빨간 히야 맛있어. 우리는 옛날식 그대로 혀요. 고추장을 밥을 쪄가지고 찹쌀만. 엿 지름 넣고 삭혀. 방으다. 도가지에다 담어서 딱 덥어 놨다. 오늘 네 시에 앉히면 내일 여덟시에 짜요. 찌개미는 사료로 주고. 돼지 사료. 닭 사료. 음력 시월에 담아요. 그런 게 우리 고추장은 특이허지라. 그런 게로 전국에서 다 가져가요. 찹쌀 담궈서 오늘 담구먼 내일 쪄요. 엿 지름 넣고 소금 넣고 딱 삭혀. 식혜국물이 나오먼 꽉 짜서 국물만 데려. 고춧가루 넣고. 메주가루 넣고, 소금 넣고 간을 잘 맞춰서 독아지다 넣어요. 그러고 육 개월 지나먼 먹어요. 고추는 농사를 짓다 인자는 못 혀요. 순창 고추는 근방 으서 사요. 동네서. 많이 가져와. 양근으로. 엿 지름 삭화서 짜서 데리가꼬. 끓이서 메주가루, 간장 넣고, 소금도 좀 넣고. 메주가루를 알맞게 넣야지. 조선장 넣고. 육 개월 숙성시켜요. 양근으로 담어야 혀. 고추가 맛있어야 고추장이 맛있어요. 고추가 양근으로 빨간 히야 맛있어. 굴비장아찌도 허고. 각색 뭐이냐 무. 오이, 고들빼기, 더덕, 내 머리로도 허고. 옛날식으로도 허고. 광목 한자 주고 논 한마지기씩 가져가 부러. 살기가 어려웠죠. 어찌케 먹고 살었는가 몰라. 농사짓고. 일꾼들이서. 사람들 써가꼬. 논밭은 있응 게. 그렇게 힘들게는 안 살었지만. 밭도 매고, 나락도 비여 보고, 보리도 그렇고. 나락을 열 다발씩 묶어가꼬. 나락 가리를 만들어. 그게 나락 가리여. 인자 날이 좋으먼 가져다가 훑어. 지금은 경운기가 훌트지만. 옛날 으는 홀태질을 혔지. 시어머니는 홀트고 나는 띠어드리고. 다 소작으로 내놔 불고, 열 마지기나 지었어. 여그온게 땅은 많습디다. 저 앞으 뜰이 다 우리 논인디 이승만 정권 때 토지개혁히브러. 소작진 사람들이 다 논을 가져가부러. 돈은 얼마 안주고. 광목 한자 주고 논 한마지기씩 가져가 부러. 소작이. 정부에서 고놈 줘 불고. 논을 다 소작한티 줘버려. 다 뺏겼지라. 여남은 마지기 가지고 살어. 이집이 천석, 만석 짓던 집이여. 인자 다 뺏겨 버렸어. 팔팔고속도록 험서 고추장을 시작혔어. 여그 시아저씨가 허라고 헙디다. 그려서 혔어요. 팔아보라고. 긍게 첨에 막 시작헌게 사람 많이 옵디다. 마루로 한나, 방으로 한나, 작은방으로 한나, 마당으로 한나. 고추장 사로 많이 옵디다. 그때 맛있는가 어쩐가 그렇게 오십디다. 고추장 장사를 안히 봤어요. 그때부터서 장사를 혔지. 그전에는 맛있다고 군수님 서장님 유지급들 다 오셔서 집으서 먹고 그렸지. 음석을. 무 허지만은 무가 더 어려워요. 열마지기 농사질 땐 밤 열두시까지 그릇을 치워. 소작들 밥히주고 난 그릇. 지금은 기계화로 헌게 안 그런디. 한 칠십 명이 밥 먹어요. 그 밥을 다 히내야. 지금은 참 편헌 세월이여. 고추장, 된장, 굴비장아찌, 오이, 무도. 넘은 무 그렇지만 삼년을 걸쳐야 혀. 첨에 무수를 가을에 끓어서 소금에다 저려노먼. 봄이면 그걸 간장 으다 한 달 넣요. 또 고추장에 한 육 개월 초벌 넣고. 그 놈 버리고. 또 버무리서 또 허고. 다섯 번을 히야 무가 빨간 허니 그래요. 삼년이 걸친 샘이요. 무 허지만은 무가 더 어려워요. 더덕은 일 년만 걸치 먼 허고. 굴장아찌는 봄으, 정 이월에 말려가꼬. 다 비늘 베끼고 짚으로 역어서 매달아. 그리서 인자. 말려서 뚜드려서 막 묻혀. 방맹이로 뚜드려서. 말리먼 어찌케 깡깡해지는지. 다듬독이 다 부서져. 저 다듬독 한번 귀경혀봐. 다듬독이 다 부서져. 까시 다 속아내고. 살만 찢어. 살만 묻혀. 고추장 들어가고 마늘 허고 생각만 들어가요. 지름은 안 넣어. 지름느먼 냄새나서 못 먹어. 그 과정도 어려워요. 굴비장아찌가. 먼저는 초창기에는 왠 마리로 가져갔어. 선물도 허고. 그러더니 마디야. 손질 헐 줄을 몰라. 히묵을 줄을 알어야지. 선물 받어 봐야 히묵을 줄을 몰릉 게. 도로가꼬와. 도로 가져와서 다시 해줬어. 뭐이냐 술상을 챙기먼 잘 허지요. 술은 찹쌀 한말 허먼 술이 얼마 안 나와. 밑을 끓여. 죽을 쒀요. 그리가꼬 누룩을 서되 썩 너요. 그리가꼬 사흘 만에 그 밑을 걸러가꼬. 꼭 짜 불고 그 물로만 찰밥을 쪄 가꼬 다시 이어. 그런 게 이렇게 맑은 술이 되야. 다른 집은 소주넌디. 우리 집은 요새 복분자를 타. 그런 게 취허도 안허고 맛있고 그려. 찹쌀술을 혀 가지고. 멥쌀 한 되도 안 들어가고 찹쌀로만. 약주라고 그렸어. 이름은 따로 없고. 옛날 으는 복분자는 안 넣었고. 복분자는 요 근자에 넣어요. 한 사오년 되아요. 그전에는 약주를 잡쉈지. 지금도 약주 나와. 맑간 술. 약과도 허고. 궁중음식이요. 이조시대에 궁녀들이 만들던. 약과. 모과는 내가 개발 혔지. 모과편강. 생강편강. 깨 박산. 육포. 유자편강. 동하정과. 다식. 이건 것들 만들어요. 육포는 고기를 얇게 떠가지고 참지름 묻히고 마늘생강 넣 가지고 묻히가꼬 널지. 인자. 시어머니랑 같이 혔지. 등심으로 혀요. 잘헌 것이 뭐 있다요. 뭐이냐 술상을 챙기먼 잘 허지요. 그때는 옛날식으로 다과상도 채리고. 그렇지 뭐. 갈비찜도 허고, 육회도 허고. 생선회도 허고. 신선로도 허고. 그러지 뭐. 자석들이 이어 받어가꼬 사업들 혀. 술은 못 먹어요. 원래. 아픈디는 없는디. 관절이 다 되았어. 그런디. 요새 일꾼들이 여덟 명이나 되는디. 아프다고 헌사람, 또 영감님이 아프다고 못 오고, 애들 본다고 못 오고, 그리서 내가 헐 수밖에 없어. 네 명이나 빠져분 게. 헐 수 없이 내가 가서 도와줘야지. 첫째가 딸이고 그다음이 아들 서이. 그러고 딸이 밑으로 둘. 지금은 여섯. 넷째가 죽었어. 나 혼자 살다가 지금은 자석들이 이어 받어가꼬 사업들 혀. 백화점을 여덟 간딘가 혀. 그런 게 서울도 가고. 큰딸은 그냥 가정주부여. 전주서 살어. 둘째 딸 허고 막내 허고 같이 혀. 막내는 회사에 댕겼는디, 내가 대려왔어. 시집 갔는디 애기가 군인 갔어. 백화점 물건 쌓니라고 밑에 있어. 가게는 몇 년 되았는디. 여그로 다 와요. 남편 허고 살었을 때가 젤 좋았제. 하이고 후회되는 일이 그렇지. 이렇게 사는 것이 뭐 좋을랍디여. 시집살이도 다 잊어버렸지라. 삼십년 저 짝에 다 돌아가셨는디 뭐 기억 허것어. 책이라도 한권 맺으먼 좋았을 텐디. 소설 맹키로. 글 잘쓰먼. 애닯소. 나락도 비여 보고, 보리도 비여 보고, 뭐 안 헌것이 없어라. 부군 가버리고는 힘들었지라. 혼자 애들 갈칠라. 먹고 살라. 시어머니 거천 헐라. 열 식구를 여자혼자 운영 헌 게 얼매나 힘들것어. 남자들도 힘들것지라. 갖은 일 다 히봤지요. 그때가 힘들었어요. 납부금이 많이 안 들었것소. 이것 갈칠라. 저것 갈칠라. 다 공부는 벨라 못 갈쳤제 부군 가버린 게. 대주가 가버린 게 어떻게 갈치것소. 우리는 서방님 보고 대주라고 혀요. 그러니 나 혼자 어떻게 먼 재주로 칠남매를 다 건사허것소. 긍게 힘 들었제. 돈벌이도 없고. 쌀도 싸고. 뭐 그리서. 대갓집이라 비용도 많이 들고. 이런저런. 남편 허고 살었을 때가 젤 좋았제. 결혼히가지고 암 것도 모릉 게 속없이 좋았지. 일본 가기 전에. 잠깐 살았지. 가벌고 나서는 시집살이만 혔지. 지금여자들 같으먼 안 살어요. 양반집이라 어디 나가도 못허 게 혔지. 그때 장사 혔으먼 큰 장사도 혔을 것인디. 그런 것도 못허게 혔어. 시아버지가 반찬 잘못 혔다고 느그집 가서 배워가꼬 오라고 그렸어. 이를 앙당물고 참었지. 지내놓고 나슨 게. 그리도 내가 제일로 다과상이라고 채리 놀 줄 아니까. 인자 회계를 혀야 지라. 갈친 것이다 그러고. 인자는 안 미워. 이 음석을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갈치셨어. 별사람이 다 와서 먹어도 내 음식이 좋다고 혀. 다과상을 다 이렇게 대접을 혀요. 손님와도 그러고. 고추장 사러 와도 그러고. 한명이 와도 그러고. 다 대접을 혀요. 내가 준비를 해논 게. 지내온 역사를 허먼은 소설책 한권도 쓸 것인디. 다 잊어버렸어. 젊어서 못쓴 것이 애닳습디다. 시집살이 헌것을 쓰먼 소설책 한권을 쓸 것인디. 시어머니는 공부를 많이 혔어. 책 많이 보고. 학자여. 공부밖에 모르셔. 인자 힘들어서 이것도 못 허것어. 계절 따라서 허지라. 봄에는 굴비장아찌 허고. 여름에는 쉬어서 잘 안 허고. 가을에는 고추장 담고, 장아찌 허고. 겨울에는 메주 쑤고 고추장 담고. 그것이 일이지라. 양이 고추장은 이 독아지로 한나씩 담는디, 한 백 개 담는가. 작은 것도 있고, 큰 것도 있고. 동네에서도 도와준 사람이 많아요. 스무 살 때 시집와서. 스물 한나에 큰놈 낳고. 그다음이 세 살 터울이여. 막둥이는 마흔셋에 낳어. 막둥이는 대주가 막 띠라고 그렸는디. 띠든 못허 것고. 그런 게 낳았지. 지금은 다 같이 허는디. 막내가 솜씨가 있어. 다 과가 달라. 둘째는 전화 받고 손님 다 이끌고. 하나는 솜씨가 있어서 그렇고. 큰딸은 인자 육십이 넘었응 게 그렇고. 막둥이가 잘 혀. 상도 받었지. 새마을 회장 혀 가지고 상도 많이 받었는디. 다 어디 가버렸어. 애들 키울라는 욕심 밖에 없었고. 다 어디로 가버렸어. 새마을 회장 헐 때. 여그 막 들어 오신디 마을입구 거그도 흙발로 댕기는 딘디. 근디 내가 머리로 이어가꼬. 독자갈 이로가자 그리가꼬 인자 세멘 발랐어요. 각 집서 하나씩 다 나와서 혔어요. 다들 잘 따라서 혀. 하나도 안 빠지고 다 나와서 혀. 지금은 그리서 질이 좋아졌어. 회장헐 때 그리서 상도 많이 받었어. 뭐냐 아카시아도 따서 말려서 팔고. 산으 가서 따서. 뭐 사료 헌 갑디다. 그려서 돈을 만들어서 쓰고 그렸어요. 우리 시어머니는 해남 민씬디. 시집올 때 몸종을 하나 대리고 왔대요. 나는 여그가 부잣집이라 그냥 왔어요. 동네에서도 도와준 사람이 많아요. 우리 집 일이라먼 손발 걷어붙이고 도와주고. 우리 야는 오히려 대충먹지요. 정신 조금만 잘못 허먼 맛이 없어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혀. 여그서 일본가고 중국가고 다 그럽디다. 미국도 가고. 정성을 들이서 헌게. 놀러도 못 댕기요. 요새는 몸이 말을 안 들어준 게 그렇고. 그리서 커피를 배웠어. 커피를 마시먼 잠이 안 옵디다. 낮이먼 잠이 실실 오고 그런 디. 일은 혀야 허고. 그리서 커피를 배웠어요. 잠온 놈도 참어야지. 허기 싫은 일도 많이 혀야 지라. 인자 허기 싫어. 그러고 맛있게 정성을 다 히야 손님도 드리고 우리도 먹고. 똑같이 먹어. 뭐 우리 먹는 거 따로 그런 것이 없어. 저 정성을 들이야, 맛있게 혀야 잡숫지라. 우리 야는 오히려 대충먹지요. 민속마을에서는 고추장 조금 나오는데 왜 이렇게 허냐고 뭐라고 혀요. 수입이 별로 없어요. 그리도 손님들이 우리 고추장을 좋아 허니까 옛날식으로 혀요. 손님들 대접 헐라 먼 우리고추장을 가져가요. 아쉬움이라먼 대주랑 오래 못 산거지. 어렸을 때 친정어머니가 음식을 잘 허셨는디. 집장을 못 배웠어. 그걸 배웠으먼 좋았을턴디. 저 풀 더미 속으다 넣지라. 그럼 짐이 막 나. 독아지 여기다 넣고 꽉 봉히가꼬 일주일을 띠운 게 좋은디. 집장은 못 배웠어. 시어머니도 잘 허셨고. 그리서 다 배웠어요. 순창인근에서 그렇게 잘 허신 분도 없어요. 아쉬움이라먼 대주랑 오래 못 산거지. 지금은 보고 싶지도 안 혀요. 나 혼자 땡겨 놓고 가버렸는디. 맨 일만 부려먹고 가버렸는디. 힘들 때는 매똥을 파버린다고 그렸는디 부야나먼. 시아버지가 엄허신 게. 시아저씨 헌티 물대접도 같이 받지 마라 그려. 여그 놓아라. 그렇게 엄혔어. 식사 허시먼 애들이 공수 허고 다 드실 때 까지 서 있었어. 농사 짐서 저 분홍저고리 색옷을 입고가먼. 거 못쓴다 다른 놈 입어라. 그렸어. 색깔 있는 거 입지 마라고. 하얀 옷 입으라고. 그러셨어요. 다른 것 있간디요. 뭐이냐 같이 살어야 헌것이여. 오래 오래 마나님 허고. 글고 건강헌것이지. 사업이 잘되어서 돈도 좀 벌고. 자석들 잘되고. 텔레비전 보먼 어떤 사람이 저런 아들을 낳아놨냐. 그래요. 어떤 사람은 뭘 먹었길래 저렇게 훌륭헌 사람을 낳았냐 그려요. 반 뭣이냐 반기문 같은 아들을 어떻게 허먼, 뭘 먹으먼 저런 아들을 낳으까 그려요. 자석들이 잘 돼야지. 돈 주머니 찬 놈들. 멍청헌 놈이라고 그려. 장사만 헐라고 허자먼 안 돼요. 돈을 떠나서 많이 줘. 돈만 많이 있으면 뭣혀요. 장관들 뭐 돈 주머니 찬 놈들. 멍청헌 놈이라고 그려. 좀 가난헌 사람 헌티 도와주고 그래야지. 저만 갖고 있으먼 뭣혀. 저만 갖고 있으 먼 도둑놈 밖에 안 되아. 옛날에 농사질 때도 놉을 쓰먼. 한 열 명 쓰먼 식구들이 다 따라와서 먹고 그려. 그런 게 밤 열두시까지 치우고 그렸지. 옛날 으다 대먼 지금은 편허지 인자. 늙응게 맛난 것도 없습디다. 먹고 잡은 생각도 없고. 장은 음력 1월에 담고, 메주는 시월에 쑤고. 장은 말 날 담아요. 옛날 부텀 그렸어. 맛있다고. 말 날 담어야 맛있다고. 민속마을은 으리야리 헌 게 좋은디. 여기는 촌 할머니 집이지. 그랴도 맛있다고 다 다시 와요. 맛있게 맹글어 줄라고 정성을 다헌게. 전통으로 만드니까 지금까지 이어 오지라. 욕심은 안 많은디 헐 수 없응 게 도와주지라. 별 수 없어서 허지. 참 부군이 살았을 때는 많이 놀았지. 주일마다 머리 식훈 다고 나가고. 그럴 때 호강 혔지. 지금은 뭐 잠 와도 허야 허고, 허기 싫어도 허야 허고. 안도와 주먼 어떻게 혀. 정주영이가 시작헐 때 이북 가서 처음으로 놀았지. 고추장 협회에서 한 열 댓명 일본도 갔다 왔어요. 팔팔 고속도로 막 뚫렸을 때 협회를 만들었지. 협회 회장도 허고. 돌아감서. 그때는 돈들 많이 벌었지. 읍내 고추장은 그냥 막 만들어서 막 팔았어. 숙성도 안 시키고. 편허게 만들먼 맛이 없어. 불 때가지고 가마솥에다 그렇게 만들어야 맛이 있지. 전통으로 만드니까 지금까지 이어 오지라. 정성을 다히서 히야여. 우리가 먹는 것하고 똑같이. 내 마음에 안 들어 민속마을은 그렇게 담아야. 음식을 먹케고롬해서 줘야지. 내 돈만 알먼 못써요. 정성껏 혀서 손님도 먹고 우리도 먹고 그래야지. 돈만 알먼 못써. 그래야 그것이 행복이제. 뭔 놈의 돈만 알어가꼬. 그러먼 못써. 가난헌 사람도 돕고 그래야지. 건강 혀요. 병원 안다니고. 허리만 좀 아파. 전통음식을 얼마나 알아줘야지. 그래도 많이 나아졌어요. 방부제 안 넣은 음식을 먹응 게 좋아. 우리 집에 오먼. 자연식품만 먹어야혀. 지금 까지 지나온 질이 천리나 같은 디 또 살 것어. 천리나 같여. 오래 살으라 소리도 안 좋아요. 너무 오래 살으먼 사람이 원숭이 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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