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08.3 |
[문화칼럼] 소신공양 燒身供養
관리자(2008-03-26 19:21:40)
이원복ㅣ국립전주박물관장 문화재는 한 민족의 오랜 역사, 얼과 정신이 담긴 결정체結晶體이다. 즉 우리의 정체성正體性이 깃든 민족의 자화상自畵像이다. 창조적 천재성이 이룩한 걸작으로, 탁월하며 보편적인 가치를 지닌, 인류의 긍지를 높인 위대한 문화유산은 민족과 국가, 시대를 초월해 인류 모두가 우러르며 보호한다. 다름 아닌 세계유산世界遺産의 존재가 이를 웅변雄辯한다. 세계유산은 2007년 말 기준 851점으로, 자연유산 166점과 혼합유산 25점을 제외한 660점이 문화유산文化遺産이다. 지난해 12월 10일 ‘익산 역사유적지구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학술심포지엄’이 개최되었다. 이는 그동안 이 지역에 대한 발굴과 학문적 성과에 힙 입은 바 크다. 이미 반세기 전 1957년 황수영 박사는 학회에서 익산천도설益山遷都說을 제시한 바 있다. 1965년 <왕궁리5층석탑> 해체복원 과정에서 국보 제123호로 지정된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다. 그간 연구 성과로 이 사리장엄구의 제작 연대가 백제까지 소급되는 쪽으로 기움이 학계의 대세大勢로 보인다. 1971년 여름 공주 무령왕릉 발굴, 1992년 겨울 부여에서 발굴된 <금동대향로>, 2007년 가을 발굴된 부여 왕흥사지王興寺址출토 사리장엄구 등 백제 문화 역량과 실상은 우리 앞에 가시화된다. 무덤 구조가 신라와 달라 부장품은 적으나 문헌을 통해 경주 황룡사 9층 목탑과 일본 고대건축에 끼친 백제의 영향은 주지된 사실이다. 신라통일 바로 전 7세기 전반前半 백제 문화 수준은 동시대 중국 수隋를 능가하며 동양 최고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문화재 중에는 목제나 섬유, 종이 등 화마에 노출된 것이 한 둘 아니다. 금속이나 석제도 오랜 나이 탓에 현 상태가 양호하지 못함이 문화재 전반의 일반적인 양상이다. 더 나쁜 상태가 되지 않도록 최적의 쾌적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우리는 긴 역사 속에 대규모 외침에 의해 상당량의 문화재를 상실했다. 해서 상대적으로 동양 삼국 중 질質과는 별개이나 수량에서 열세를 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민족의 자존심인 박물관은 고객들의 만남 공간인 전시와 교육 기능이 점차 확장되고 있다. 박물관의 보존실과 창고는 일반인들에겐 가려진 부분일 수 있으나 그렇다고 본연의 업무인 보존을 비롯해 수집, 연구 기능이 감소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보물 제931호인 <태조어진太祖御眞>은 온고을이 지켜왔다. 그래서 이 지역의 자랑이다. 비록 1872년 다시 옮겨 그린 것이나 초기 양식을 따른 것이다. 현존하는 몇 안되는 조선시대 왕의 초상 중 가장 오래되었으며,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보존처리가 1년 여 만에 마무리 작업에 들어갔다고 전해진다. 이 문화재의 보관처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처음부터 경기전 봉안을 위해 제작한 것이니 제 위치인 전주 보관은 재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기념관 건립 후에 늘 상설전시常設展示를 생각한다면 크게 잘못임을 힘주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에서 춘분 무렵 사찰에서 짧은 기간 비불秘佛을 공개하듯, 태조의 탄신일 등 일년에 한두 번 최소한 기간을 제외하곤 빛을 차단한 쾌적한 조건의 유물창고에 보존함이 옳을 것이다. 지방의 한 사찰에서 지정문화재 개금불사改金佛事를 신청했기에 현상변경에 따른 문화재위원회 심의로 해당 불상을 자세히 살필 기회가 주어졌다. 조선 초 14-15세기 금동여래좌상으로 60년 전 개금한 것이라 전한다. 비록 광배光背는 전하지 않지만 작은 입에 위엄을 갖춘 단아한 얼굴, 다소 긴 상체, 안정된 자세 등 고아한 불상이었다. 눈부신 광택을 뿜는 최근 만든 좌우 협시 보살에 비하면 안면과 무릎 등 부분적으로 일부 도금이 벗겨진 자리가 검은 색을 보인다. 박물관에서 늘 접한 금동불상에 비하면 오히려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간섭만 있고 부담만 주는 것이 지정문화재’라 사찰 측 한 분이 애로의 말로 일침一針을 놓는다. 예배의 대상인 불상의 개금은 불자들의 갸륵한 불심에서 나온 바람이나 문제는 개금방법에 제대로 할 수 있는가 여부이다. 현대적 방법으로 오히려 개선改善 아닌 개악改惡의 우愚를 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전통 칠을 사용해 60년을 유지했으나 카슈칠을 하면 원 금속에 끼치는 영향은 차치하더라도 불과 15년 내지 20년 내 다시 해야 한다고 한다. 이에 기술, 비용, 기간 등 모두가 문제가 된다. 아직은 문화재보존과학이란 말이 생경한 시절인 30여 년 전 신안 앞바다 출토 중국 원대 유물 가운데 금속공예품을 모 대학에 보존처리를 의뢰했더니 마치 놋그릇 닦아오듯 신제품처럼 만들어 온 웃지 못 할 전례가 뇌리를 스친다. 국보 제1호인 숭례문崇禮門에 화마火魔를 불러들인 이 시대, 결코 방화자放火者 일개인의 잘못에 그치지 않는다. 이 땅에 숨쉬고 있는 우리 모두는 이를 지키는데 게을렀고 ‘강 건너 불’ 입장에 머물고 만, 말살抹殺을 방관傍觀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단일 왕조로는 인류 역사상 그 유례를 찾기 힘든 518년을 지속한 조선왕조 긴 역사를 대변하듯 600년 넘게 서울 한 복판을 견지해 왔다. 석축石築과 1층 건축부재가 남아있어 전소全燒는 아니나 참사 현장을 접한 우리는 망연자실茫然自失, 말할 수 없는 공허감과 비애를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신문의 칼럼에선 국보 자신의 소신공양燒身供養으로 서술해 그동안 문화와 문화재에 대한 우리의 소홀함과 무관심無關心 등 자괴감自愧感이 배가되어 더욱 가슴이 메어진다. 더 이상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국보이건 지방문화재이건 서두르지 말고 장시간이 걸리더라도 최선의 방법으로 차근차근 제대로 복원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 과정을 태어날 아들을 기다리는 무모의 마음으로, 또는 병중의 노부모 쾌차快差를 비는 자식의 마음으로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지켜봄이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주어진 일일 것이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