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3 |
[최승범 시인의 풍미기행 ] 매움·알싸한 돼지갈비찜
관리자(2008-03-26 19:21:06)
쇠고기를 좋아하나 돼지고기를 좋아하나는 식성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어느 친구는 돼지고기 하면 질색인 친구도 있다. 아마 돼지의 잡식성을 싫어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나는 어린시절 뒷간에서 구정물을 먹고 크는 돼지를 보며 자랐음에도 돼지고기 먹기를 께름칙하거나 싫어하지 않았다.
돼지고기찌개에 밥을 비벼 먹어도 맛이 있었다. 그보다도 내가 좋아한 것은 돼지고기구이였다. 그것도 돼지의 고깃덩이를 푹 삶아 채반에 건져내어 거들거들해진 것을 얄팍얄팍 썰어서 석쇠에 구원 낸 것이었다. 그 구이를 통깨 뿌린 간장에 식초 한 방울 떨어뜨려 찍어 먹자면 언제나 고기맛도 밥맛도 달기만 했다.
술맛을 알게 된 후로는 삼겹살구이에 소줏잔을 기울이는 것을 한 즐거움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최근 갈비찜에 소줏잔을 곁들이는 맛을 새로 알게 되었다. 갈비찜이라면 흔히 소의 갈비를 연상하기 쉬우나 여기서의 갈비찜은 돼지갈비찜이다.
월여 전의 일이다. 때로 모여 문학 이야기를 나누어 오는 소태열?나철호 친구와 더불어 하루는 석양배를 나누기로 하였다. 찾아간 집은 「조선별관」(전주시 덕진구 우아동 2가 858-7, 전화 063-241-5289)이었다. 이름이 별날 뿐 아니라, 내 집에서도 가까운 거리에 있고, 이집의 매운돼지 맛이 좋더라는 말을 전부터 들은 바 있었다.
‘매운돼지’라니, 어떠한 돼지를 이름일까. 궁금하기도 하였다. 돼지라면 그 털빛 따라 흰돼지 흑돼지로 말하기도 하나, 일반적으로는 집단사육의 양돼지 고기를 쓰고 있는 게 오늘의 식당가이기 때문이다. 물론 특별히 ‘흑돼지’를 내세우고 있는 전문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매운돼지’란 처음 들은 말이었다.
막상, 식당을 찾아 간판을 대하니 「매운돼지(辛豚) 조선별관」이라 했다.
‘매운돼지면 매운돼지지, 신돈(辛豚)이란 한자 삽입은 뭔가’
웃음이 일기도 했다. 글자는 다르나 고려말 승려로 영록대부집현전대학사에 올라 많은 일화를 남겼던 ‘신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매운돼지갈비찜을 챙기기로 한다. 갈비찜은 1인분이 8천원이었다. 2인분을 부탁하고 소주를 청하였다. 한 병 소주 값은 3천원, 아예 1인당 한 병으로 세 병을 부탁하였다. 밑반찬도 여러 가지로 내놓는다. 술 한 잔을 따라서 간배(乾杯) 제의를 하기가 바쁘게 큰냄비의 갈비찜이 상의 중간에 놓인 가스버너에 오른다.
‘한 벌 찜을 돌려 나온 것이니, 우선 위에 놓인 미나리나 당면으로부터 맛있게 드시라’는 도우미의 말이었다. 밑반찬의 새우젓, 마늘썰이, 된장 상추 쑥갓 등으로 한 모금 술안주를 삼아도 모두가 개운하고 신선한 맛이다. 초간장에 마니라 맛도 연삽하다.
앞접시에 갈비찜 한 대를 꺼내 놓았다. 갈비의 한쪽을 왼손의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으로 집게 삼아 들고, 오른손 젓가락으로 갈빗대힘살(肋間筋)을 훑어보았다. 잘도 벗겨진다. 흔히 ‘갈비는 뜯는 맛’이라지만 이건 숫제 잇바디에 앙구어 뜯을 필요가 없다. 발겨진 갈빗살을 적당량 입안에 넣어 씹기만 하면 된다. 씹기에 앞서 알싸하고 매움한 맛이 입안을 돈다. ‘매운돼지’의 이름값을 알게 되었다. 갈비찜은 셋이서 2인분이 족했으나, 소주는 각자 1병으로 부족했다. 갈비찜값 보다도 술값을 더 치러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