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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2 | [정철성의 책꽂이]
매천의 시를 다시 읽으며
정철성(2003-04-18 17:17:46)
지난 해 선거를 치르면서 우리는 눈앞의 이익을 좇아 말을 바꾸고 낯빛을 고친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이제 그들이 자랑스럽게 꺼내드는 금박의 명함에는 조직의 명칭만 바뀌었을 뿐이다. 그런데 누가 지난 행적을 기록하여 밝히는 것이 그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라 하여 처벌한다면 대표자를 선택할 기본적인 권리를 침해하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짓거리를 벌이는 것이다. 자신의 신념에 투철하다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일까를 다시 생각하기 위하여 나는 매천의 시집을 펼쳐 보았다. 매천 황현의 초상을 생각하면 정자관과 안경과 눈빛이 떠오른다. 얼굴을 약간 틀어 한 쪽 귀가 보이는데 눈동자는 쏘아보듯 정면을 향하고 있었다. '절명시' 네 편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그의 이력 때문인지 나는 그 눈빛을 감히 마주볼 수가 없었다. 매천은 1855년에 태어나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더덕술에 아편을 넣어 마시고 자결하였다. 매천의 삶은 글 아는 사람, 즉 식자인(識字人)이라는 세 글자에 녹아 있다. 요즘 말로 하자면 그는 지식인의 사회적 역할을 의식하고 실천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절명시에서도 "인간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 어렵기만 하구나"라는 구절이 유명하지만, 손자를 품에 안고 어르는 시에도 "대대로 글자 아는 사람이라 불리워지거라"라고 축원하는 글귀가 있다. 물론 매천의 역사의식에는 봉건적인 요소가 없지 않음이 이미 지적되었다. 예컨대 그는 동학을 난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고, 도학을 바탕으로 한 유교적 경세치용의 경계를 넘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1899년의 서울 풍경을 그린 시 「서울에 들어서니」에 이런 구절이 있다. "길 따라 유리창에선 서양 촛불이 번쩍이고/ 하늘에 뻗은 철사줄 따라 전차는 울며 가네." 개화기의 분위기가 잘 살아있다. 그런데 서양의 여러 나라와 외교를 수립하고 대한제국이 성립하여 황제의 칭호를 가지게 되었다는 내용에 이어 갑자기 기 나라의 어떤 사람이 하늘이 무너질까 염려했다는 기우(杞憂)의 고사가 등장한다. 매천은 판단의 기준을 중국의 고사나 전례에 두는 조선식 글쓰기의 예를 충실히 따르고 있었다. 이에 비하여 「밤에 앉아서」의 그림이 한결 정겨운 것은 실제의 삶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한문을 알지 못한다. 글자를 맞추어 뜻을 짐작하기는 하지만 평측은 전혀 느낌을 모른다. 여기 인용하는 시들은 모두 허경진 씨의 번역을 그대로 베껴 놓은 것이다.) 장마철이라 날씨가 고르지 못해 달이 다시 나타나 두루 비추네. 층계가 습해서 벌레가 모두 기어 나오고 외양간이 찌는 듯해 소도 자다가 깨어나네. 농촌 풍경을 그린 시들이 매천의 시집에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매천이 시골에 살아 그들의 이웃이었던 까닭에 현장 체험이 시심을 자극했을 것이다. 매천의 인간적인 면이 엿보이는 시구도 있다. 「기이한 돌」은 그가 수석에 탐닉하였음을 보여준다. 다음 구절은 이 도학자의 얼굴에 웃음이 도는 진귀한 순간을 보여준다. "힘이 없어 배를 세낼 만큼 싣지는 못하고/ 작은 것만 가려서 자루에 채워 왔네." 그러나 관념적 산수와 다소나마 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유형원과 정약용의 선구적 업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매천은 "반계도 안계시고 다산도 돌아가셔/ 손때 묻은 책 다시 들여다보니/ 수염만 희어진다오"라고 노래하며 그 빚을 잊지 않고 있었다. 지식인의 사회적 역할은 자기부정을 통하여 체제의 유지, 개선과 교체의 가능성을 두루 점검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데 있다. 시대의 변화를 개인의 힘이 감당하지 못할 경우도 있을 것이다. 매천의 시대가 그런 예일 수 있다. 그러나 "매천의 붓끝 아래 완전한 사람이 없다"는 평가가 보여주듯이 매천은 자신의 신념에 투철한 인물이었다. 보수는 이렇게 온축(蘊蓄)의 의미를 제대로 실천하는 인물에게 합당한 수식어이다. 절명시를 읽기로 하자. 마지막 대구에 나오는 윤각과 진동은 송나라 때 충절을 지킨 사람들의 이름이라 한다. 이런 시에는 기교가 어울리지 않는 법이다. 그러나 "구슬같은 눈물이 종이 위에 떨어져 천 갈래 실처럼 흘러내린다"는 비유의 과장과 비장미가 없었다면 이 시는 지나치게 삭막하였을 것이다. 목숨을 끊으며 어지러운 세상 부대끼면서 흰 머리가 되기까지, 몇 번이나 목숨을 버리려 했지만 여지껏 그러지를 못 했어라. 오늘은 참으로 어찌할 수 없게 되어 가물거리는 촛불만 푸른 하늘을 비추네. 요사스런 기운에 가리어 임금별 자리를 옮기니 구중궁궐은 침침해져 햇살도 더디 드네. 조칙도 이제는 다시 있을 수 없어 구슬같은 눈물이 종이 가닥을 모두 적시네. 새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네. 무궁화 이 나라가 이젠 망해버렸어라. 가을 등불 아래서 책 덮고 지난 역사 생각해보니, 인간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 어렵기만 하구나. 내 일찍이 나라를 버티는 일에 서까래 하나 놓은 공도 없었으니, 겨우 인(仁)을 이루었을 뿐 충을 이루진 못했어라. 겨우 윤각을 따른 데서 그칠 뿐 진동을 못 넘어선 게 부끄럽기만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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