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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2 |
[서평] 이분법을 넘어서
관리자(2008-03-26 19:16:34)
물리학자와 철학자가 말하는 세계와 인간 박병섭ㅣ전북대 강사 우리 시대만큼 소통하기 위한 첨단 장비들이 발달한 시대도 없지만 역설적으로 우리 시대만큼 소통하기 힘든 시대도 없다. 개인과 개인이 그렇고, 개인과 시대가 그렇다. 소통이 어려우면 풍자다. 그런데, 풍자조차 통하지 않을 때도 있다. 물리학자 장회익과 철학자 최종덕은 사회의 일반적 기준으로 보면 세상과 소통할 기회가 많지만 또 한편에서 세상과 고립되어 있어서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서 이 책을 쓴 것 같다. 이 책은 전문가들의 이야기이지만 전문가들 속에서 종종 ‘무시’당하는 전문가들의 전문적인 이야기이다. 이 책은 어쩌면 세계 최고의 지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에 맞는 대우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보내는 고통스런 메시지일지 모른다. 이 책에는 풍자 같은 요소가 없지만 이야기 자체가 학계의 세태에 대한 담담한 풍자 같다. 이 책을 읽고 세 가지를 감탄하였다. 하나는 물리학자 장회익과 철학자 최종덕의 역량에 감탄했고, 이런 기획을 한 출판사 한길사에 감탄했고, 마지막으로 이런 책의 서평을 맡긴 문화저널에 감탄했다. 물리학자 장회익에 대해서는 녹색대학의 설립에 관계했다는 것이 아는 것의 전부여서 대학교수출신의 환경운동가라고 생각했고, 철학자 최종덕은 아마 활동분과가 달라서 개인적 친분을 가질 기회가 없었거나 만났다 해도 강한 기억을 가질 기회가 없었던 것 같다. 책은 ‘1부 과학과 철학의 만남’에서 두 분이 공부한 과정에 대해서는 좀 지루한 느낌을 받은 것 같다. 사실 서평을 쓰면서 생각해 보니 만일 내가 이 분들에 대한 사전관심이 있었다면 아마 매우 흥미진지하게 읽을 부분이었다. 1부 끝에서 2부를 넘자 속도가 붙어서 2-5부까지를 하루 만에 거의 읽고 다음날 아침에 6부까지 읽었다. 이 책은 정말 재미있는 책이다. 물리학자 장회익 이야기에서 나를 감탄시킨 것은 상대성 이론을 설명하는 솜씨다. 내가 이해하기로, 상대성 이론은 두 가지로 설명된다. 하나는 고등 수학의 정식으로 설명되고 다른 하나는 ‘4차원 이론’으로 설명된다. 그는 후자가 진짜이고 전자는 부차적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에 따르면 전자의 설명은 아인슈타인의 설명이고 후자의 설명은 그의 스승이었던 수학자 ‘민코프스키’의 설명이다. 이론의 최초 창안자가 가장 잘 안다는 것은 신화이고 아인슈타인도 자신의 상대성이론의 성격을 끝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이론의 창안자보다 후대의 학자가 더 잘 안다는 사고방식을 과학철학 시간에 처음 배웠으며, 알튀세르가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를 거론하면서 마르크스 이론의 미흡한 지점을 비판할 때에 두 번째로 인상 깊게 배웠다. 이처럼 후대의 학자가 더 잘 알 수 있다는 생각은 일반적으로 상당히 설득력 있다. 그러나 매 경우마다 상황은 달라질 수 있어서 이번 경우에도 옳을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내가 아인슈타인의 권위에 살짝 눌려 있는 모양이다. 나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이번까지 총 4번에 걸쳐서 공부했다. 첫 번째는 학부 때에 분석철학의 과학철학을 공부할 때에 입증과정에서의 천체검증 관측의 중요성을 배웠다. 두 번째는 고대 그리스 천문학을 공부하면서 그것과 대비하느라 고대 중국 천문학, 고조선 천문학(?), 현대천문학을 약간 공부했다. 세 번째는 경제학과출신의 선생님의 발제로 슈뢰딩거 방정식 등까지 배웠다. 선생님은 문과 수학 수준의 미적분만 제대로 알면 누구나 알 수 있다고 하면서 아인슈타인의 수학식을 알아야 그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감탄스런 수학실력으로 설명해주셨다. 설명의 요점은 상대성 이론은 시공간의 상대성 이론이 아니라 광속의 절대성에 기초한 수학적 정식의 이론이라는 것이다. 물리학자 장회익의 이야기에서 물리학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는 선생님의 설명과 유사했지만 그 해석에서 광속의 절대성에 대한 이론인지 4차원 시공간에 관한 이론인지에서 충돌하는 것 같았다. 물리학자 장회익을 통해서 내 능력이 부족해서 구입하지 못했던 아름다운 보석 ‘상대성 이론’을 구입할 수 있었다. 구입한 보석이 진짜보석인지 정교한 모조보석인지는 잘 몰라도 이번에 또 다른 종류의 ‘상대성 이론’ 이라는 보석을 얻었다. 물리학자 장회익에 따르면, 17세기 장현광의 『우주설』에서 당시 대지(大地)가 허공에 떠 있다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는데, ‘왜 무거운 대지가 떨어지지 않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고대 그리스 천문학과 중국 천문학 사이의 비교를 쟁점으로 논문을 쓴 적이 있어 익숙한 주제다. 장회익은 말한다. “대전제가 뭡니까? 아랫방향은 다른 두 방향인 수평방향에 비해 특별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 아닙니까? 즉 공간은 3차원이 아니라 2차원 더하기 1차원이라는 거죠, 아래 방향이 ‘물건을 떨어뜨리는’ 특별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면, 옆으로 두 방향은 그렇지 않다는, 즉 대등하지 않다는 거죠. 대등하지 않다면 3차원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공간을 3차원이 아닌, 2차원 더하기 1차원으로 보고, 수직 방향은 수평방향과 다른 독립된 특별한 방향으로 봤다는 겁니다.” 데카르트의 X Y Z 3차원 좌표평면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 보니 X축 Z축의 2개 수평축에 비해서 Y축이라는 1개 수직축에 특별한 위치를 부여한 2차원 더하기 1차원 공간이었다. “진정한 3차원의 관점에서 보면, 한 방향으로 떨어진다는 것은 공간 자체의 성격에 의해서가 아니라 공간 외적인 이유가 있다. 그 방향으로 떨어지는 이유를 찾을 것이 아니라 그 방향으로 떨어지지 않는 이유를 찾아야 한다.” 뉴턴의 이론은 3차원 공간 더하기 1차원 시간 이론이다. 이제야 처음으로 뉴턴의 공간과 시간 이론의 함의를 제대로 이해한 것 같다. 이처럼 쉽게 물리학에 대해 이해시켜주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 아인슈타인 상대성 이론은 4차원 시공간 이론이다. 이 부분에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대한 두 가지 다른 설명방식의 차이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 하나는 광속의 기준에 기초한 수학적 정식의 이론이고 다른 하나는 4차원 시공간 이론이다. 이 이외에 물리학자 장회익을 통해서 고전역학과 양자역학이 모두 존재가 아니라 상태를 서술대상으로 삼는다는 점도 배웠다. 감격스럽게 책을 읽었지만 슬프게도 아직 일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다. 슈뢰딩거 방정식을 공부하면서 내가 수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물리학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시 수학공부를 해야 한다. 이 대목에서 우리나라의 서열화된 경쟁의 입시제도가 인간을 쓸데없이 학대하고 실제로 공부는 제대로 가르치지도 못하는 교육제도라는 느낌이 들었다. 만일 핀란드 같이 서열이 없는 교육제도에서 수학공부를 했다면 수학의 기본개념을 제대로 익혔을 것이고 그렇다면 이렇게 수학을 절실하게 사랑하게 된 지금은 아마 물리학의 방정식들을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리학자 장회익도 우리나라의 교육제도에 대해서는 불만이 많다. 특히 학제간의 영역이 지나치게 엄격하게 구획되어 학제간의 영역을 넘나드는 학문들이 생존하기 곤란한 시스템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그는 소위 일류 대학의 경쟁체제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불만이 없었는데 아마 서울대 출신이라 별로 구박을 받지 못해서 일 것이다. 내 생각에 일류 대학 체제는 대학 이후 사회생활을 경쟁 없는 무풍지대로 만든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예컨대, 한 지방대출신이 설령 2억 들여서 한 2조~2경 이상을 벌어들일 아이디어를 가졌다 해도 그의 생각은 기존의 사회시스템 내에서 아인슈타인이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었던 그런 정도의 좋은 여건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물리학자 장회익은 아인슈타인 이론이 성공하게 된 우연한 계기를 설명하면서 수학자 ‘민코프스키’의 결정적인 역할을 거론한다. 사실 진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진리인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성공의 계기가 있어야 한다. 물리학자 장회익은 녹색대학 활동을 그만 둔 것도 자신의 ‘온생명’ 이론을 세상이 주목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달관한 듯 보인다. 장회익에게도 ‘민코프스키’같은 이가 나타나는 행운이 있기를 빌어본다. 아인슈타인의 성공이 단순히 진리를 발견했기 때문이 아니라 기존 학계를 설득할 수 있는 그의 능력뿐만 아니라 운도 따라 주어야 한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뉴턴 물리학의 성공도 단순히 진리였던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당시에 새로운 천체들을 수학적 예측을 통해서 발견하게 되는 ‘위풍당당한 성공들’을 보고 널리 전파되었다는 것을 들었다. 다시 한 번 아인슈타인에서도 반복되는 과정을 보았다. 물리학자 장회익은 자신이 발견한 진리를 전파하기 위해서 필요한 설득과정으로 이 책을 쓴 것 같다. 불행하게도 전문가 집단이 학적 영역 분리에 너무 완고하게 사로잡혀 있어서 일반 교양독자를 향해서 자신의 견해를 전개하고 있는 것 같다. 물리학자 장회익은 이런 설명을 통해서 물리학 이론뿐만 아니라 “자연과학에서 수학의 역할은 어느 정도인가?, 과학이란 무엇인가?”라는 과학철학도 전개했다. 이중에 어느 한 가지에라도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은 본전은 충분히 찾고도 남겠다. 뿐만 아니라  물리학, 생물학 자연과학, 과학 그리고 기술과 환경에 대한 체계적인 다른 사고방식도 제시하고 있다. 매우 흥미 있게 읽은 대목 중에는 뇌과학과 자유의지론의 설명이 한 가지 측면에 대한 두 가지 차원의 설명이라는 부분이다. 장회익이 크락을 인용한 부분에서 뇌과학으로 보면 모든 것이 뇌 메커니즘인데, 사람들(일부 철학자들)은 뇌 메커니즘의 구체적 과정을 망각하기 때문에 그것을 자유의지론으로 인지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철학자 최종덕은 인간 진화에서 두 개의 정체성을 정체성 혼란으로 이해하지 않았다. 이런 사고방식은 라깡파의 일부에서 정신병원 환자들의 다중정체성이 혁명의 싹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최종덕은 바로 자신이 생물학-물리학 정체성과 인문학 정체성이 분리되어 있는 것 같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말할 때 보통 사람들은 직장에서는 집안에서의 일은 까마득하게 잊어먹고 집안에 와서는 직장에서의 일을 까마득하게 잊어먹는 스타일의 사람이 있다. 나도 그런 성향이 있으니 그런 것은 금방 이해가 간다. 그러나 철학자 최종덕처럼 정체성이 분리된다고 까지 거론하는 사람은 처음 접해본다. 다중인격장애라고 불리는 복합 정체성 소유자의 행동과 뇌 구조 사이의 상관성에 대한 연구가 진행 중이라고 들었다. 이 모든 것이 매우 흥미롭다. 최종덕은 이 정체성 분리의 체험에 근거해서 목적 없는 진화론을 전개했다. 진화는 그냥 말 그대로 아무 까닭 없이 일어나는 것이고 적자생존 등은 진화 이후에 현상에 대한 하나의 해석이다. 현재 생존하는 것들은 적자 생존한 것이 아니라 그냥 생존하는 것이다. 생존하는 생물들을 적자 생존한 것이라 설명한 것은 공허한 동어반복일지도 모른다. 물리학자 장회익과 철학자 최종덕의 대담집은 여러 영역을 뛰어넘는 종합적 사고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소개를 듣고 이 책에서 모든 것을 다 기대하다가 실망할 사람들을 위해서 약간의 변명을 해주고 싶다. 이 책의 주제는 물리학과 생물학 사이의 만남. 자연과학과 인문학 사이의 만남이 주제이다. 이 책에는 자본주의, 다문화주의, 페미니즘 등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다. 물리학과 생물학, 환경 그리고 인문학 사이의 만남에 대해 이렇게 깊이 있게 사고한 분들이 다른 분야에는 왜 그렇게 무관심한지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로 아예 말이 없다. 이런 것이 전문가들의 약점이자 매력인 것 같다. 아는 것은 잘 알고 모르는 것은 아예 거론도 하지 않는다. 이 책은 물리학자와 철학자 사이의 대화로 보아서 출판사가 기획하고 출판사의 기획에 찬성한 두 대담자가 대화한 내용을 편집해서 책을 만든 것 같다. 출판사의 기획 능력에 감탄하게 된다. 이제 독자가 책만 사서 읽어주기만 모든 것이 완벽하게 될 것 같다. 박병섭/ 한신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를 전공하고, 전북대 대학원에서 동양철학 석사와 서양철학 박사과정을 정공했다. 현재 마중물 다문화 다중언어 연구소 소장과 전북대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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