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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2 |
[오래된 가게] 전주시 남부시장의 상관 방앗간
관리자(2008-03-26 19:15:24)
“참기름이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여” 최정학 기자 설과 대보름이라는 커다란 대목을 앞둔 남부시장. 아직 사람들이 많진 않지만, 대목을 앞둔 전주 최대의 재래시장은 묘한 설레임으로 가득하다. 어느 가게에서 쉴새없이 피워내는 고소한 연기는 대목 분위기를 한껏 부풀린다. 전주천변 바로 옆, 남부시장 입구에 위치한 ‘상관 방앗간’에서 참기름 짜기가 한창이다. “그냥 볶아서 짜기만 한다고 참기름이 되는 것이 아니여. 일단 깨를 씻어야지, 씻고 나면 물기를 빼서 볶아야지, 또 이놈을 짜서 기름을 빼면 다시 끓여야지, 그러고 나서도 채로 걸러줘야 우리가 먹는 참기름이 되는 거여.” 가게 안을 들어서자 홍철순(67) 씨가 한창 기계에서 참기름을 짜고 있다. 고소한 냄새가 방앗간 전체에 진동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봐왔던 것과 조금 다르다. 색깔이 훨씬 검다. 이것을 한번 끓이고, 고운 채로 찌꺼기를 걸러줘야 비로소 우리가 먹는 참기름이 된다고 한다. 참기름 만드는 것이 생각보다 복잡했다. 깨 한말이 참기름이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도 한 시간 남짓이나 걸린다고 한다. 당연히 같은 재료로 기름을 만들어도 그 맛은 천차만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거의 단골이지. 우리집서 만든 기름 먹어본 사람들은 다들 맛있다고 그려. 그러니까 한번 왔던 사람들이 계속오지.” 가게 한쪽 귀퉁이에는 동그랗게 압축된 시커먼 깻목 덩어리들이 쌓여 있다. 깨 한말을 가져와서 기름을 짜고 나면, 저렇게 조그만 깻목 덩어리 하나 밖에 남지 않는다고 한다. 아니, 그것마저 가축사료나 거름으로 쓰인다고 하니 남는 게 하나도 없는 셈이다.   “여기서 방앗간 시작한지 20년 됐네. 그 전에는 옷 만드는 공장을 하다가, 인건비 안 나가고 우리 부부가 둘이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보니까 딱 방앗간이 떠오르더라고. 처음 시작할 때는 완전 초보잖어 그래서 무조건 다른 방앗간에서 하는대로 따라하기 바빴지. 그런데 한 10년 정도 되니까 노하우가 생기더라고. 기계 쓰면서 불편한 점도 보이고. 그래서 지금은 내가 직접 기구들도 발명해서 사용해.” 깨를 씻는 기구와 고추방아기계의 롤러는 홍철순 씨가 직접 만든 것들이다. 10년 넘게 기계를 쓰면서 불편한 점을 보완한 것들이니만큼, 이 도구들 덕분에 일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방앗간 일도 계절에 따라 들어오는 일감이 변한다. 여름에는 콩국수용 콩가루나 미숫가루 만드는 일을 많이 하고, 김장철이면 세 대의 고추방아기계가 쉴 사이 없이 고추를 빻아댄다. “그래도 가을에 참깨 나오는 때부터 설하고 대보름 있는 늦겨울까지가 제일 바쁘지. 가을에 추수할 때쯤이면, 참깨며 들깨, 고추까지 들고 시골서 많이들 와.” 요즘은 대목에 쓸 떡가루와 기름을 미리 준비하려는 손님들이 한번 씩 온다. 설과 대보름이 닥치면 지금은 쉬고 있는 방아기계들도 정신없이 뿌연 김을 내뿜으며 떡가루며 기름을 짜낼 것이다. 참기름은 이미 모든 과정을 마치고, 한 홉들이 유리병 몇 개에 가득 담겨졌다. 구이에서 이곳까지 일부러 기름을 짜기 위해 찾은 할머니 한 분이 바쁘게 가방을 챙겨 가게를 나섰다. 설날이면 손자 먹을 밥상에 함께 올려줄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할머니 뒤를 함께 따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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