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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2 |
[허철희의 바다와 사람] 계화도조개
관리자(2008-03-26 19:13:32)
새만금갯벌 백합의 운명 ‘땔나무와 조개 따위는 돈을 주고 사지 않아도 된다’ “노령산맥의 한 줄기가 북쪽으로 부안에 이르러, 서해 가운데로 쑥 들어간다. 서쪽과 남쪽, 북쪽은 모두 큰 바다다. 산 안에는 많은 봉우리와 깎아지른 듯한 산마루, 평평한 땅이나 비스듬한 벼랑을 막론하고 모두 큰 소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나서 햇빛을 가리고 있다. 골짜기 바깥은 모두 소금 굽고 고기 잡는 사람의 집들이지만, 산중에는 좋고 기름진 밭들이 많다. 주민들이 산에 올라 나무를 하고, 산에서 내려오면 고기잡이와 소금 굽는 것을 업으로 하여, 땔나무와 조개 따위는 돈을 주고 사지 않아도 된다.…” 위의 글은 이중환의 「택리지」에 나오는 대목이다. 내가 태어나서 자란 곳은 이중환이 얘기했듯이 ‘땔나무와 조개 따위는 돈을 주고 사지 않아도 된다’는 부안의 변산 바닷가 마을이다. 지금도 부안의 바닷가 사람들은 웬만한 갯것 정도는 돈 주고 사먹지 않고 갯벌에서 나는 이것저것들로 식탁을 꾸린다. 보릿고개를 넘던 시절 얘기다. 워낙 궁색한 살림이라 외지에서 손님이라도 오시면 어린마음에도 걱정이 된다. 이럴 때면 할머니는 호미와 대바구니를 챙겨 들고 갯가로 나가신다. 그런 할머니는 빈바구니로 돌아오시는 적이 없다. 조개, 굴, 고둥 등 이것저것 바구니는 가득 채워져 있다. 손님들은 바구니 속의 이것저것들을 살펴보며 신기해 하신다. 그리고 변산에만 오면 밥맛이 좋다며 만족해 하신다. 조미료가 없던 시절에 갖가지 어패류를 넣고 요리를 하니 맛이 날 수 밖에… 이렇게 갯살림이 넉넉한 부안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반도를 이루고 있다. 남쪽의 줄포에서 북쪽의 동진면까지 해안선 길이가 무려 99km나 된다. 이 해안선을 따라 곳곳에 갯벌이 잘 발달되어 있는데 줄포, 모항, 두포, 마포, 대항리, 해창, 장신포, 돈지, 계화도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렇게 드넓은 갯벌을 가지고 있는 부안사람들은 정말 축복받은 사람들이다. 갯벌 생물들은 누가 씨 뿌리고 가꾸지 않아도 스스로 조화를 이루고 살아가면서 인간을 포함한 뭇생명을 부양한다. 무학이신 내 어머니의 산술로도 밭농사 열 배의 수확을 거두는 생명창고와도 같은 검은 땅이다. 우리의 먼 조상들은 천혜의 땅 부안에 정착한 이래 이러한 갯벌을 터전삼아 살아왔다. 그들은 하루에 두 차례씩 어김없이 바닷물이 들고나는 갯가에 나가 조개를 줍고, 대나무로 살을 엮어 밀려드는 고기떼를 포획하였으며, 질펀한 갯땅 한 자락에서는 소금을 구웠다. “백합은    고 댕기면서 먹는 것이여...” 이런 갯땅의 산물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이 있다. 바로 백합이다. 부안사람들은 조개류 중에서는 단연 백합을 꼽는다. 일테면 조개의 귀족, 조개 중의 조개인 셈이다. 조선시대에는 왕실에 진상되기도 했다고 한다. 백합은 우리나라 서해와 중국에서 나는데, 그 중에서도 부안의 계화도나 김제의 심포, 거전에서 나는 백합이 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뿐만아니라 생산량도 우리나라 전체 양의 약 80%를 차지한다고 한다. 백합은 육상기원 퇴적물이 유입되는 하구갯벌이 발달된 고운 모래펄에서 잘 자라는데, 이 지역은 동진강과 만경강이 유입되고 있고, 조수간만의 차가 커서 갯벌이 햇볕을 많이 받기 때문에 건강한 하구갯벌이 잘 발달되어 있기 때문이다. 계화도는 원래 섬이었으나 1960년대에 경제개발 정책의 하나로 간척사업을 벌여 지금은 육지와 연결되어 있다. 옛날에 계화도 사람들은 한 물 때에는 갯벌에 나가 백합을 잡고, 다음 물때에는 이것을 이고 지고 부안읍내까지 걸어 나와서 보리쌀 됫박과 바꿔가지고 돌아갔다고 한다. 백합 한 짐15kg 정도를 겨우 쌀보리 두어 됫박과 바꾸기 위해 하루 온종일을 노동한 셈이다. 지금의 시세로 환산하면 백합 1kg이 8,000원에서 12,000원 정도 하니까 백합 15kg정도면 쌀 한 가마 정도의 가치이다. 짠하고 안타깝기 그지없는 옛날이야기이다. 그 시절을 계화도 양지마을에 사시는 이복순 할머니(83)는 이렇게 기억 하신다. “그때는 여그가 섬이라 장사가 안들어 와. 갯일 해갔고 얼른 집에 와서 아뜰 밥 챙겨주고는 그길로 부안으로 나가. 십 리나 되는 갯벌을 지나 대벌리로 가지. 곧 물 들어온 게 빨리 갔다 와야 혀. 갯바닥이 미끄러운게 발에다 이렇게 새내끼로 감고, 고개껏 이고 부안에 가면 쌀보리 한 되나 받어가꼬 저녁 늦게나 집에 와. 그러고들 살았어...” 그래도 계화도나 계화도 인근 돈지사람들은 검은 땅 갯벌을 터전삼아 백합 잡고, 꼬막 잡아 자식들 공부시키고, 혼사도 시키며 질척이는 삶을 이어왔다. 백합 한 짐을 쌀보리 두어 됫박과 바꿔 먹는 사람들이 그러한 사정을 알겠는가마는 “백합은    댕기면서 먹는 것이여…”라는 부안사람들 말이 있다. 백합은 입을 꽉 다문 채 겨울철 같은 경우 한 달이 지나도 죽지 않고 오래 산다. 이렇게 오래 산다고 해서 ‘생합’이라고도 부른다. 백합이 입을 벌리고 있다면 그것은 죽은 것이다. 그래서 냉장고가 없던 시절 이 부안사람들은 백합이 입을 벌리지 못하게 문지방에 놔두고 들며나며 밟아서 백합에게 자극을 줬던 것이다. 자극을 줄 때마다 더욱 움츠리기 때문에 백합의 수명은 길어진다. 백합은 어른 주먹만하게 크게 자라지만 아이들 주먹만한 중간 크기가 먹기에는 좋다. 탕으로 죽으로 구이로 횟감으로 찜으로 요리해 먹는데 맛과 향이 아주 뛰어나다. 또한 백합에는 철분, 칼슘, 핵산, 타우린 등 40여 가지의 필수 아미노산이 들어 있어 영양 면에서도 으뜸이다. 예부터 간질환, 특히 황달에 좋다고 전해지고 있다. 새만금갯벌 백합의 시한부 생명 그러나 이렇게 우리네 삶을 지탱해주고, 미각을 사로잡고 있는 백합도 머지않아 이 지역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출 운명에 놓여 있다. 개발이라는 미명아래 이산저산 깎아다가 갯벌을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 바 새만금사업이다. 2006년 4월21일 새만금 끝막이를 마무리하자 물길은 더 이상 해안선까지 차오르지를 못했다. 물길이 닿지 않는 지대는 급속하게 소금사막으로 변해갔고, 갯벌에 깃든 생명들은 요동치며 죽어갔다. 물길이 닿는 지대 어디쯤에 아직은 모진생명 붙들고 있는 백합들도 언제 멸문지화의 변을 당할지…. 시한부 생명을 붙들고 있고, 갯벌에 기대어 살아 온 어민들은 아무런 대책도 없이 내몰려질 운명에 놓여 있다. 허철희ㅣ부안생태문화활력소 대표 (www.buan21.com) 허철희/ 1951년 전북 부안 변산에서 출생했으며, 서울 충무로에서 '밝' 광고기획사를 운영하며 변산반도와 일대 새만금갯벌 사진을 찍어왔다. 새만금간척사업이 시작되면서 자연과 생태계에 기반을 둔 그의 시선은 죽어가는 새만금갯벌의 생명들과 갯벌에 기대어 사는 주민들의 삶으로 옮겨져 2000년 1월 새만금해향제 기획을 시작으로 새만금간척사업 반대운동에 뛰어들었다. 2003년에는 부안의 자연과 문화,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룻 『새만금 갯벌에 기댄 삶』을 펴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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