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2 |
[저널초점] 대보름의 세시풍속
관리자(2008-03-26 19:07:03)
벽사진경, 잡귀를 물리치고 경사스러운 일을 맞이하다
정월달의 첫 머리는 설날이다. 설날을 새해를 맞이해서 근신하고 자중해서 신년을 정중하게 맞이하는 날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설빔으로 갈아입고 세찬과 세주를 진설하고 떡국으로 차례를 지낸다. 차례를 마치고 음복한 뒤에는 집안 어른들에게, 또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세배를 올린다. 설날 이른 아침 또는 섣달 그믐날 자정이 지나면 복조리를 벽에 걸어두는데, 이는 그 해의 행운을 조리에 끌어들여 취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설날에서부터 열 이튿날까지 12일 동안에는 일진에 따른 갖가지 세시풍속을 지켰다. 첫 쥐날인 상자일에는 일을 하면 쥐가 곡식을 축낸다고 해서 모든 일을 금했고, 또 농부들은 쥐를 없애기 위해 들에 나가 논과 밭의 두렁을 태웠다. 이것이, 바로 쥐불놀이다.
첫 소날인 상축일에는 소에게 좋지 않다고 하여 도마질을 하지 않았다. 쇠고기 요리를 할 때 으레 도마질을 해야 하는데, 소의 명절인 상축일에는 이것을 삼가는 것이었다. 이날 연장을 다루면 쟁기의 보습이 부러진다고 생각하여 쇠붙이 연장도 다루지 않았다. 첫 호랑이 날인 상일인에는 일을 하면 호랑이가 나타난다고 해서 놀았다. 짐승에 대해 나쁜말도 하지 않았으며, 외출도 삼갔다. 첫 토끼날에는 반드시 남자가 일찍 일어나 대문을 열고, 여자가 남의 집에 일찍 출입을 하지 않았고, 첫 용날 새벽에는 여자들이 우물에 가서 물을 길어 왔는데 이를 ‘용알 뜨기’라고 했다.
십이간지에 맞추어 12일 동안 한 해의 무운을 비는 금기와 주술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대보름이다. 설날이 근신하고 자중하는 하루라면 대보름은 축원하고 놀이하는 하루다. 초하루에서 시작한 정월의 세시풍속이 절정을 이루는 때이기도 하다.
정월대보름날 가정에서는 오복이 담긴 음식이라는 오곡밥과 묵은 나물을 먹는다. 종기나 부스럼을 방지하기 위해 부럼을 깨먹고, 귀밝이술로 좋은 소식만 듣기를 기원하고,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기 위해 ‘내 더위 니 더위’를 외치며 이른 새벽부터 더위를 팔고 다니기도 한다.
마을 단위에서는 경건한 당산제를 지냈다. 당산제는 마을의 조상신과 수호신에게 마을사람들의 연중무병과 평온무사를 비는 제사로, 마을 사람들은 마을 입구에 있는 제단이나 별도로 마련되어 있는 사당에 가서 경건하게 제사를 지냈다.
제사가 끝나면 일종의 오락행사인 굿을 하며 제사 음식과 술을 나누어 먹는데, 당산제는 제사와 굿의 이중성격을 띠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남녀노소가 마을 사람들이 모두 참여하여 겨루는 줄다리기는 정월대보름 놀이의 꽃이었다. 저녁이 되면 언덕이나 마을 가운데에 볏집, 생솔가지, 화목, 대나무 등을 쌓아올려 달집을 만든 후 보름달이 떠오르면 제액초복과 우순풍조를 기원하며 일제히 ‘망월이야!’를 외쳤다.
정월대보름 놀이
설날의 가족중심의 명절인데 반해, 대보름은 마을굿 중심의 명절이라고 할 수 있다. 설과 달리 정월대보름에 많은 의례와 놀이가 있는 까닭이다. 마을굿은 마을단위에서 이뤄지는 자생적 축제. 대보름에 벌어지는 마을굿은 엄숙한 당산제와 신명날 놀이로 구분된다. 정월대보름에 벌어지는 놀이로는 대표적으로 지신밟기와 줄다리기를 들 수 있다. 지신밟기는 정초부터 보름날까지 이어지는 풍물굿 중심의 대장정인데, 마을과 집의 터를 골고루 밟아 땅에 침범하는 잡귀신을 쫓아낸다는 지신밟이에서 부터 의식을 시작한다.
지신밟기는 마을의 가가호호를 찾아다니며 정초부터 대보름까지 계속하는데, 찾아간 대문 앞에서 풍물패 일행이 ‘쥔 쥔 문 여소 문 안 열면 갈라네’를 외치며 풍물을 치면 주인이 나와 대문을 열고 일행을 맞이한다. 일행은 ‘좋고 좋은 지신아, 잡귀잡신은 물 아래로, 만복은 이 댁으로’를 합창하며 그 집 마당에서 마당굿을 한바탕 치고 난 뒤에, 대청마루의 성주굿, 부엌의 조왕굿, 우물의 샘굿, 장독대의 천륭굿 등을 친다.
또 하나의 정월대보름 놀이로 줄다리기를 빼놓을 수 없다. 줄다리기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마을 사람 모두가 참여해 벌이는 대보름의 대표적인 대동놀이다. 줄다리기 줄에는 외줄과 쌍줄로 구분되며, 쌍줄에는 암줄과 숫줄이 있다. 줄당기기는 대부분 남녀로 나뉘어 겨루기를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며, 이기고 지는 것에 연연하기 보다는 줄다리기 전후에 배치된 앞놀이와 뒷놀이를 즐기는데 더 큰 의미를 둔다. 앞놀이는 완성된 줄을 어깨에 메고 마을을 돌면서 펼쳐지는 놀이로, 분장한 신랑과 신부를 태운 숫줄과 암줄의 혼례식이 압권인 전북 부안군 보안면 원우동 마을의 앞놀이가 유명하다. 전북 정읍시 산외면 정량리는 줄다리기가 끝나면 100여 미터 쯤 되는 긴 줄을 둘러메고 논으로 들어가서 각종 진풀이를 하며 풍물패와 함께 술래잡기 놀이를 펼치는 뒷놀이가 볼만하다.
정월대보름의 음식
정월대보름의 가지가지 절기 음식은 가짓수만큼이나 많은 속설들이 따른다. 대보름 음식의 첫 번째는 오곡밥이다. 쌀, 조, 수수, 밭, 콩 등을 섞어 지은 오곡밥은 풍농을 기원하는 뜻이 담겨져 있어 농사밥이라고도 하며, 대보름에 먹는다하여 보름밥이라고도 한다. 또 대보름의 절식으로 복쌈이 있는데, 이는 밥을 김이나 취나물, 배추잎 등에 싸서 먹는 풍속을 말한다.
대보름날에는 다른 성씨를 가진 세 집 이상의 밥을 먹어야 그 해의 운이 좋다고 하는데 이를 ‘세성받이밥’이라고 한다. 대보름에는 나무 아홉 짐하고 찰밥 아홉 번을 먹어야 한 해 동안 기운을 내서 건강하고 부지런하게 살 수 있다고 전해진다.
또 대보름에는 묵은 나물을 먹어야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를 진채(陣菜)라고 한다. 묵은 나물은 대개 호박고지, 가지, 버섯, 고사리, 시래기, 토란대, 아주까리잎 등을 먹었다. 아침에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귀밝이술을 마셨는데, 귀밝이술을 마실 때 어른들은 ‘귀 밝아져라, 눈 밝아져라’하고 덕담을 한다.
부럼깨기는 한 해 동안 각종 부스럼을 예방하고 이를 튼튼하게 하려는 뜻으로 주로 생밤이나 호두, 은행, 잣, 땅콩 등 견과류를 대보름 아침에 어금니로 깨어 먹는 풍속이다. 부럼을 깨뜨릴 때 나는 ‘파삭’ 소리에 잡귀가 도망간다는 속설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