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2 |
[최승범 시인의 풍미기행] 김치찌개
관리자(2008-03-26 19:06:26)
김치찌개의 대파 맛
김치찌개백반은 이제 우리의 식당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단의 하나다. 이 식단이 나붙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김치찌개는 밥상이나 술상에 반찬이나 안주의 한 가지로 곁들여 올랐던 것이다. 그러나 ‘김치찌개백반’이 식단으로서 버젓이 한 몫을 다하고 있다.
뿐인가. 그것은 우리의 식성에서 즐겨 찾는 식단일 뿐 아니라, 외국인들도 선호하는 식단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신문기사의 한 토막에서도 이를 볼 수 있었다. ‘프로축구 제주 유나이티드’의 신임감독으로 우리나라에 온 브라질 출신 아뚜 베르나지스는 김치찌개백반을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몇 해 전의 겨울철이었던가, ‘풍미기행’에서 전주시 경원동 「신(新)시골밥상집」의 김치찌개 맛을 말한 바 있다. 다시 김치찌개를 들춘 것은 아뚜 베르나지스 감독의 기사를 읽은 여운도 있으나, 며칠 전에 즐긴 ‘김치찌개백반’(1인분 5,000원)의 맛이 삼삼히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난 1월 중순께였다. 전북도립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백두대간대미 지리산전>(白頭大幹大尾智異山展)을 관람 후, 최효준 관장의 안내로 「등산로집」(완주군 구이면 원기리 948, 전화 063-221-1365)에서 점심시간을 갖게 되었다. 청곡(靑谷) 권병렬 선생, 박남재 화백이 자리를 함께 했다.
식당 주인(이용문)의 이야기인 즉, ‘원은 이 골목 안에서 20년간 영업을 하다가 얼마 전 현 위치로 옮아 왔다’고 했다. 현 위치란 바로 모악산 등산로의 길가인 곳이다. 모악산은 전주·완주·김제에서 우러러 볼 수 있는 명산(793.5m)이 아닌가. 사철을 두고 등산객의 발걸음이 줄을 잇고 있는 속칭 ‘엄뫼’이기도 하다. 그래 이 식당의 상호도 「등산로집」이라 한 게 아닌가 싶다.
최 관장의 배려에 의한 듯, 네 사람이 한 상으로 즐길 수 있는 상차림이었다. 말하자면, 김치찌개백반의 찌개그릇과 밥그릇만이 오르면 상차림은 끝나는 셈이다.
먼저 상위의 반찬들을 본다. 깔끔한 상차림이다. 8품의 음식들이 여덟 개의 중접시에 적당량 씩 놓여 있다. 적당량이란 네 사람을 요량한 것이다. 8품 음식은 무김치 배추김치를 비롯하여 멸치볶음 묵은지볶음 묵무침 시금치무침 고들빼기무침 생미역 등이다.
김치찌개백반이 나오기 전, 8품 중 멸치볶음 묵무침 생미역을 맛보았다. 하나같이 입맛에 안긴다. 멸치볶음도 딱딱하지 않고 바삭거린 느낌이다. 묵무침도 양념 간이 맞다. 생미역을 초간장에 찍어 입안에 넣자 싱그럽다. 이만하면 이 집의 음식솜씨는 믿어서 좋지 않을까.
이윽고 뚝배기에서 보글거리는 김치찌개와 개가 덮인 밥그릇이 몫몫으로 나왔다. 찌개의 맛을 보자 얼큰하면서 맵지도 않고 짜지도 않다. 외려 삼삼하면서도 달보드래한 편이다.
뚝배기 안을 살피자 묵은김치야 물론 두부도 들어 있고, 콩나물도 들어 있고, 파도 들어 있다. 파는 실파나 가랑파가 안니 대파를 자롬자롬 썰어 넣었다. 이 대파의 노그라진 맛이 김치찌개의 맛을 달보드래하게 한 것이 아닌가 싶다.
김치찌개의 맛을 어디에 두어야할 것인가는 ‘입 각각’으로 말할 수 있겠다. 아뚜 베르나지스 감독이 좋아한다는 제주도 김치찌개의 맛은 어떠한 것일까. 오늘날 우리의 음식도 어쩌면 외국손님의 입맛을 챙기고 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