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 |
[서평] 공선옥 소설집 「명랑한 밤길」
관리자(2008-01-18 22:21:48)
모래알 같은 가족 이야기
김저운ㅣ소설가
작가 공선옥을 직접 만난 것은 2년 전 초여름이었을 게다. 그 즈음 나는 전북민예총 편집주간을 맡고 있었는데, 그가 전주로 이사 왔단 말을 듣고 회지에 그와 인터뷰를 해서 싣기로 했었다.
전북대학교에서 철학을 강의하는 양승호 선생이 인터뷰를 담당했던 터라 둘이서 그가 사는 아파트를 찾아갔다. 그날, 여자 셋이서 ‘정이가네’로, ‘새벽강’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밥을 먹고 술을 마셨다.
그가 전주에 사는 동안 우리는 몇 번 만났다. 작가회의 모임에서, 소설 쓰는 후배, 그리고 정양 선생님 최종수 신부님과도 함께. 그가 사는 집이 나 살던 집과 같은 방향이어서, 귀가길에 그를 데려다주고 오기도 했다.
사람들과 금방 친해지지 못하는 나와는 달리 그는 화통했다. 거침없는 남도 사투리를 섞어가며 큰 목소리로 화제를 주도하였다. 입담 좋고 푸진 넉살에 사람들은 손사래를 치거나 허리를 잡고 웃기 일쑤였다.
그는, 술을 잘 마셨는데, 막걸리와 소주를 좋아한다고 했다. 술을 마시면서 글을 쓸 때도 더러 있다고 했다. 호기심 많고 부지런한 그가 나보고 전주며 이 고장 여러 곳에 두루 가 보자고 했는데, 고개만 끄덕거리곤 내 쪽에서 나서지 못한 채 시간이 갔던 것 같다. 그러다 만나기로 해 놓고선 또 금세 엉뚱한 곳에 가 있어 약속이 깨진 적도 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평범하고 수다스런 아줌마 같으면서도 철없는 말괄량이 소녀 같은 그였다.
그런데, 그가 훌쩍 이사를 가 버렸다고 했다. 내가 기억하기론 전주에서 산 것이 채 일 년도 안 되는 것 같다. 무심한 나만 모르고 있었나. 했는데, 지인들도 그 소식을 듣고 의아해했다. 전남 곡성에서 광주로, 또 서울에서 살다가 다시 곡성으로, 그리고 여수-춘천-전주…. 그렇게 옮겨 다니며 살았던 그가 금세 또 강원도 어디로 떠났다는 것이다. 역마살, 혹은 인연 따라 자유롭게 떠도는 게 예술가의 생리려니 해도, 한 마디 말없이 가 버렸다니 아쉬웠다. 그러다가 ‘아, 그게 그의 삶의 방식인가 보다.’ 하며 잊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 그의 소설집 『명랑한 밤길』(창비)을 만났다. 그를 다시 보는 듯 반가웠다.
내가 그의 글을 처음 읽은 건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 살』이었다. 그리고 그를 만났던 무렵 『유랑가족』을 읽었다. 『유랑가족』을 읽고서, 이전의 인터뷰에서 말했듯이 이 작가는 문학을, 든든한 ‘빽’이라고 자처할 만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른바 세태소설이랄 수 있는 그의 『유랑가족』은,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 살』같은 초기 작품의 주관적 시선을 훌쩍 벗어나 있었다. 이전의 글들이 안마당에서 등에 아이를 업고 콩대 두드리며 읊는 넋두리라 치면, 이제는 대문 밖으로 골목으로 그리고 왁자한 저자거리로 나간 발걸음이라고나 할까.
이번에 새로 나온 『명랑한 밤길』은, 몇 년 전부터 문예지에 발표했던 글을 모아 엮은 소설집이다. 여기엔 모두 열두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대부분의 글들이 유랑가족에서 그러했듯 ‘가족’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이 가족은 우리가 ‘가정’하면 떠올리는 포근하고 아늑한 그런 가정에 존재하지 않는다. 혹은, 왕자 공주로 자란 선남선녀들이 청춘남녀가 되어 만나 아옹다옹하다가 사랑하면서 양쪽 가족들이 얼마간 갈등을 일으키다 드디어 결혼에 골인하고 끝나는 일일연속극의 가정과는 사뭇 다르다.
이미 한쪽이 깨지거나 부서진 상처를 가지고서 새 가정을 꾸렸거나 꾸리려 애쓴다. 하지만, 바닷물이 스미지 않은 바닷가 모래알갱이처럼 각자 버석거릴 뿐이다.
<꽃 진 자리>에서 ‘나’는 이제 ‘왜 남편과 헤어졌는가 가물가물해’진 이혼녀로, ‘돈 벌어다 주는 것으로 내 의무는 다한 거’라고 스스로를 두둔하며 산다. ‘앙심을 품은 사람들이 사는 집’의 어머니는 늘 욕을 입에 달고 살며, 아버지는 시장통 모과집 여자한테 빠져 있다. 게다가 엉덩이에 딱 달라붙게 개조한 교복치마를 입고 ‘엄마 돈 줘’라는 말만 하는 딸…. 그야말로 소설 속 화자의 말대로 ‘집구석이 개판’이다.
<비 오는 달밤>도 마찬가지이다. 추석을 맞아 온 가족이 한 집에 모인다. 이혼 후 재혼한 시동생과 큰동서와의 불화, 시동생이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와 시동생과 재혼한 여자가 데리고 온 아이와의 기 싸움, 완강하게 중립을 지키지만 실은 방관자적 입장인 남편, 남동생의 아들을 혼자 키우며 명절을 맞는 ‘나’의 홀아버지….
그 외의 작품에도 <지독한 우정>을 제외하곤 가족 구성원의 모습이 거의 이러하다. 거기에 가정(家庭)은 없다. 가족(家族)이 있을 뿐. 그래서 본능적인 구속과 요구로 얽혀 있을 뿐.
가정(家庭)은 부재하면서, 가족(家族)은 폭력을 낳는다. 특히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은 ‘모성’이라는 사명을 빌미삼아 도처에 널려 있다.
<79년의 아이>에서 ‘나’는 철없는 소녀였을 때 아이를 낳아 입양시킨 적이 있다. 미혼모였다는 이유로 첫 남편과 헤어지고, 거기에서 난 딸을 데리고 재혼했다. 그러면서도 ‘결혼은 그래서 좋은 것이다. 여차하여 남자와 여자가 헤어지더라도 애는 챙길 수 있으니. 결혼하지 않은 여자가 애를 키우는 것은 죄악이지만 이혼녀가 애를 키우는 것은 미덕이므로. 결혼하지 않은 남자가 애를 키우는 건 희귀한 예라 훌륭한 일이 되지만 결혼하지 않은 여자가 애를 키우는 건 왜 죄악이 되는가.’ 하는 회의와 함께 79년에 버린 아이에 대한 죄책감을 버리지 못한다.
전처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둔 남편은 번번이 ‘너희들 먹여 살리려고’ 자신이 무던히 애쓰며 사는 것을 강조한다. 게다가, 애 딸린 남자에게 처녀로 시집 온 앞집 여자 고혜선은 ‘애 딸린 남자보다 애 딸린 여자가 훨씬 불리하’다며 ‘나’의 가슴에 못을 박는다. 그래서 ‘나’는 몰래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운다. 그리고 딸아이가 공부를 마치고 귀가하는 밤이면 ‘99년의 아이를 재워두고 89년의 아이를 맞으러 나가서 79년의 아이를 만나기 위하여’ 찬 바람 속으로 나가는 것이다.
한 남자인간이 한 여자인간에게 가하는 고문은 <별이 총총한 언덕>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아이엠에프로 실직하고 고시공부한답시고 일 년여의 시간을 보낸 남편 상배와 떨어져 살았던 ‘나’를 시댁식구들은 가족이 모여 살아야 한다면서 이제 들어오라고 채근한다. 그러나 무능력과 ‘무책임에 수반되는 인간성의 마모’에 회의를 느낀 ‘나’는, 그들이 생활에 불편을 느껴서 자신을 필요로 하는 거라며 외면한다. 남편과 달리 진실하다고 믿었던 책방남자가 있다. 그러나 ‘아이는 아빠한테 보내고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라’는 그의 말에서 또한 남자의 이기심을 깨닫고 그마저 버리기로 한다.
그렇다면, 이렇듯 가정이 파괴되고 그래서 질긴 모성에게 육체적 심리적 고통이 쏠릴 수밖에 없는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작가는 그것의 주범이 경제, 즉 ‘돈’ 때문임을 소설의 곳곳에서 말하고 있다.
<비 오는 달밤>에서 말썽을 일으키는 시동생은 ‘삼백만에서 사백만 사이를 오르내리는 신용불량자 중의 한 명’이다. 그래서 ‘말 그대로 돈이 지배하는 시대에는 그 인간의 인간성이 어떠하든 간에 돈 없으면 불량한 인간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살고 있는 것이다. <명랑한 밤길>의 방글라데시나 네팔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돈을 못 받은 채 한국에서 떠나야 한다.
반면에 <아무도 모르는 가을>에서, 산사태로 사람이 죽고 주인이 떠난 횟집을 거저나 다름없이 사들인 사내는 ‘주체할 수 없는 기쁨’으로 오줌을 갈기며 욕을 씨부렁댄다. 어린 간호조무원이 적금을 털어 사 준 노트북에 빙의되어, 정성껏 기른 무공해 채소를 가져다주는 여자를 팽개쳐버리는 <명랑한 밤길>의 사이비 예술가 남자는 또 어떠한가. 부자가 되는 게 최대 목표인 이 나라에서 이제 경제만 좋아지면 이런 갈등은 죄다 해결될 수 있을 것인가….
이렇듯, 불도저로 쓰레기더미를 헤집듯이 공선옥이 파헤쳐놓은 우리네 집구석들은 알고 보면 난지도처럼 어지럽고 구질구질하다. 특히 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이기적이고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그래도, 그가 그려내는 여성들은 강하고 너그럽다. 요구르트 배달을 하며 욕구불만으로 ‘늘 화나는 병’에 걸린 아이를 혼자 키우고 살면서도 전 남편과 재혼한 필리핀 여자가 남편의 죽음으로 좌절하는 모습을 보며 연민하는 <도넛과 토마토>, 장애인 어머니와 딸의 지독하게 슬픈 사랑을 그린 <지독한 우정>, 치매 걸린 엄마를 혼자 두고서도 ‘뭔가 낯설고 달착지근한 공기’를 가진 남자에게서 버림을 받지만 흥얼대며 돌아오는 <명랑한 밤길>….
이 세상에 남자와 여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 안에 인간이, 밀도 있는 삶이, 가득 찼으면 좋겠다. 헌데, 이 시대는 왜 이리 삭막한가. 황량한 모래밭에서 작가들은 무엇을 두리번거리며 찾고 있는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삶을 여실히 보여주는 게 문학일진대, 그걸 옮겨 담는 작가들은 또 얼마나 고통스러울 것인가. 문득 공선옥이 그립다.
김저운/ 부안 출생. 전주에 살면서 소설과 수필을 쓰고 있으며 전북작가회의 회원. 산문집으로 『그대에게 가는 길엔 언제나 바람이 불고』가 있고, 현재 김제여고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