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 |
[문화시평] 조경순의 탱화전
관리자(2008-01-18 22:21:17)
섬세한 필선과 색채의 조화
이창규ㅣ원광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교수
해마다 가을이 되면 전국의 문화가(文化街)등이 분주해 지기 시작한다. 각종 전시와 공연 등이 대표적으로 그러하다. 특히 미술 분야는 수많은 작가들이 각기 다른 개성있는 작품으로 전시회를 열곤 한다. 전북의 미술계도 예외는 아니다.
금년 그 많은 미술작품 전시회에서 유독 시선을 끄는 작가가 조경순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녀는 미술계에서 보기 드물게 현대적 불화(佛畵)만 가지고 4번째 전시회를 열고 있다.(2007년12월10일~20일, 전북예술회관)
한 나라의 문화는 그 국토에 살던 사람들의 지나온 삶의 역사일 뿐만 아니라 현재를 이루는 원동력이며 미래를 위한 준비이기도 하다. 따라서 조상들의 문화유산을 알아보고 그 지혜와 역사를 연구함은 우리의 문화적 전통을 인식함으로써 민족적 긍지를 배양하고 보다 나은 아름답고 멋진 미래문화를 설계하는 힘이기도 하다.
그런 맥락으로 볼 때 우리의 불교미술은 한국미술의 원류로서 불교의 교리와 한국의 환경과 정서를 표현해낸 즉, 종교성과 예술성을 함께 내포하여 단순 미술작품 이상의 가치를 지녔다고 볼 수 있다.
전통문화라는 것은 일순간의 유행과 달리 오랜 세월동안 민족적, 지역적, 사회적 특성들이 응집되고 다듬어져서 이루어지 것이다. 그러한 것들 중에서 불교미술은 세간과 출세간의 삶이 어우러져 이루어낸 불교문화의 정수이다.
이렇듯 불교미술은 불교의 높은 정신세계를 삶에 반영한 미적 형상화인 것이다. 또한 진리의 추구를 위한 구도 정신이 깃들어 있어 감상자로 하여금 신심을 일으키게도 하며 수행정진에 몰두케 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한국의 불교미술은 서기 372년 무렵부터 우리의 환경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한 이후 삼국시대와 통일신라, 고려, 조선을 거치면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걸작품들이 제작됐다. 또한 이것들은 종교적인 열정으로 온갖 정성과 기량을 다하고 국가적 경제 뒷받침으로 조성되었으므로 당 시대마다 최고의 수준을 갖고 있는 명작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미술문화를 1700년 가깝게 불교가 담당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거기엔 추상적인 불교의 진리를 구체적인 조형물로 표현한 것으로 불화, 불조각, 불건축, 불공예 등이 있다. 이런 찬란한 과거 불교미술의 명맥이 오늘날에 와서 위기에 처해 있는 것 같다. 현재 한국의 불교미술계가 전반적으로 과도기 상황에 놓여 있지 않나 싶다. 옛 훌륭한 전통은 점점 끊어져가고, 새로운 불교미술양식이 정착하지 못하고 어정쩡한 불교미술이 속출하고 있다. 이른바 현대사회에 필요한 바람직한 불교미술이란 과연 어떤 것인지 불교계의 당면 과제로 삼고 싶다.
현대 한국의 불교미술을 이끌고 있는 작가군을 크게 셋으로 분류하면 불교신자로서의 불교미술작가군과, 대학에서 불교미술을 전공한 작가군과 전통적으로 불교미술을 제작해오고 있는 장인(匠人)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현재 한국 대부분의 사찰에 봉안되어있는 불교미술의 실질적인 제작자들은 이 장인들일 것이다.
이 장인들은 어릴 때부터 현장에서 도제식 교육을 받아 이 업에 종사하게 된 분들이다. 비록 이론으로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않았고, 불교미술과 현대미술에 대한 소양을 쌓진 않았지만 계속적인 반복 작업으로 기능에서는 뛰어난 기량을 갖고 있을 것이다.
이런 충분한 기량으로 제작하는 수많은 불교작품들이 사찰의 대부분의 수요를 거의 충당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현대 한국불교미술가 집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이 장인들의 공헌은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허나 이 장인들에게는 적지 않은 문제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선 지적할 수 있는 것이 불교미술의 주제를 충분히 파악하고 제작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전통기법의 전승적 반복에 의하여 반복적 답습의 경우가 허다하다고 본다. 또 하나는 대부분의 장인들은 데생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작품 속에서 여러 상(像)의 형태가 부자연스럽게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게 된다. 상업성에 의해 천편일률적으로 반복제작 된 그런 불교작품들은 신도들을 감동시키기엔 미흡한점이 있기도 하다.
두 번 째로 정규 불교미술 교육을 받은 젊은 전문작가군들을 들 수 있는데, 그들이 제작하는 불교미술은 새로운 불교미술을 창작하는 경향이 가장 좋게 나타나고 있다고 본다. 그들은 삼국시대 불교미술과 고려불교미술, 조선불교미술의 특징을 나름대로 소화한 그 바탕 위에 현대적인 미감을 살려 제작하기 때문에 가장 기대되는 불교미술 작가들일 것이다.
세 번 째로 불교신자로서의 불교미술작가군은 취미수준의 불교미술작가도 있지만 전문가 못지않은 작가도 꽤 있다. 그런 대표적 신자불교미술작가가 바로 조경순이다.
그녀는 미술대학에서 정규미술교육을 충분히 받았고, 불심이 또한 깊어 그녀의 불화는 새로운 불화창작의 세계를 열어가기에 충분하다. 조경순은 어릴 적부터 불심 깊은 가정환경에서 성장하며 자연스럽게 불교와 인연을 맺으면서 그녀의 희망도 무형문화재의 탱화장이 되는 것이라고 한다. 현재 그녀는 불화의 기본기법과 불화의 재료를 연구 하면서 전통불화와 현대불화를 두루 거쳐 불화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며 작업하고 있다.
현대에 와서는 예배의 대상으로서만 불화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감상용으로서의 불화도 현대의 젊은 작가들에 의해서 제작되고 있다. 조경순도 그런 감상용 불화들을 주로 제작하고 있다.
최근 그녀는 전통 고려불화와 조선불화의 특징들을 연구하며 새로운 현대적 불화를 창작하는 작업에 몰두 하고 있다. 즉, 밝고 은은하며 명랑한 고려불화의 색채와 또 다양하고 화려한 조선불화의 색채를 조화시키는 방법을 연구하며 표현하고 있다. 거기에 섬세한 필선의 효과를 잘 살려 불교 주제의 정신이 살아 생동하여 불자(佛子)와 감상자들의 마음을 열게 해서 성불의 세계로 이끌고 있다.
작품제작 때 사용하는 재료 역시 그녀의 성격을 닮아 고가의 최고급재료만을 고집하고 있다. 비단천 화폭에 천연염색과 천연물감인 석채와 순금분(純金粉)으로 금니(金泥)작업을 하고 있다. 거기에 그녀가 우리에게 더욱 감동을 주는 대목은 매 작품들이 마무리 될 때는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불심으로 정성껏 기도한 후 화룡점정(畵龍點睛)의 정신으로 작품들을 완성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각고의 노력 끝에 새롭게 시도하고 있는 불화의 전시를 준비하면서 기도의 정성과 불공의 마음은 작업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평안과 행복감으로 충만하다고 마음을 털어 놓고 있다.
조경순을 앞으로 한국불교미술계를 이끌어갈 기둥으로 기대하며 이제 우리불교계가 전통불교미술을 계승하면서 새로운 시대에 알맞는 바람직한 불교미술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연구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불교미술의 수요가 이른바 불교미술을 주문하는 사찰의 주지 등 책임자나 신도들의 불교미술을 보는 안목의 향상도 함께 이루어져야하며, 수준 높은 불교미술에 불교계가 과감하게 투자하여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어야할 필요성이 시급하다고 본다.
이창규/ 원광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교수로 일하면서, 열세 번의 개인전을 갖은 중견작가이기도 하다. 『서양미술의 감상』외 세권의 책을 펴냈으며, 미국 UCLA 미술대학 교환교수, 원광대학교 미술대학 학장 및 미술관장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