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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 |
[문화시평] 여섯줄의 대화
관리자(2008-01-18 22:20:52)
21세기의 옥보고를 기대하며 서경숙ㅣ전북도립국악원 학예연구사 간혹 전통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우리는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를 볼 것인지 아니면 현재의 시점에서 미래를 놓고 보아야 할지 논란이 되곤 한다. 민족음악학자 앤드류 킬릭은 전통은 과거를 기점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순간을 기점으로 앞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음악활동은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되는 부분이다. 2007년 12월 18일(화) 옷깃을 여미며 발길을 재촉하게 한 저녁 7시 30분. 소리문화전당 명인홀에서 열린 ‘여섯줄의 대화’도 이러한 한국전통음악사의 새로운 전통을 수립하려는 현장이었다. 우리지역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전통음악분야 작곡가 모임 <전북창작악회>가 그 세 번째 작품발표회를 가졌다. 우석대학교 백성기교수를 중심으로 결성된 이들의 작품은 지난해 아쟁에 이어 금년에는 거문고를 주제로 창작품을 선보였다. 하나의 악기를 주제로 곡을 쓰게 되었으니 작곡가들 간의 공감대 형성은 물론이요, 다양하고 풍부한 작곡의 내용에서도 할 말들이 많았으리라 생각된다. 거문고라. 예로부터 거문고는 백악지장(百樂之丈: 모든악기 중 으뜸)으로 여겨 왔다.   ‘금자금야 금지어사이정인심야(琴者禁也 禁止於邪以正人心也)’,  이 구절은 양금신보(양덕수, 1610)를 비롯한 많은 고악보에 나오는 글귀이다. 거문고는 사특한 마음을 금하고 사람의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아마도 禮와 樂을 통해서 사특한 마음을 몰아내는데 총력을 기울인 것이 동양의 교육이었는지도 모른다. 특히 거문고는 선비들이 하는 악기이고 양성정(養性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악기이다. 이러한 거문고가 이제 영산회상이 아닌 창작곡의 주인공이 되어 새로운 한국음악을 연주한다니  그 기대가 사뭇 남달랐다. 먼저 백성기의 雲林(운림)은 거문고를 개방된 상태에서 스틱요법을 사용하여 거문고 특유의 남성적인 둔탁함과 깊은 소리가 타악과 적절하게 어우러져 운림산방의 풍치를 표현한 곡이었다. 특히 김수현의 ‘파랑새, 날아가다’는 두 대의 거문고를 이용한 곡으로, 술대의 타현음과 거문고의 중후한 음색을 통해 힘차고 박진감 있게 연주한 점이 두드러져 보였다.   25현의 화려한 음색을 실어 연주한 김현민의 ‘내려놓음’은 전통적인 선율이나 장단의 구조를 넘어 부담 없이 편한하게 들을 수 있는 곡이었다. 단지 25현과 함께 연주되어서인지 한국적인 색채를 다소 벗어난 서양의 클래식기타의 느낌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거문고 특유의 술대사용법이랄지 차출, 전성의 변화 없이 연주되었던 이 날 대부분의 곡들은 지나치게 단순한 선율과 반복된 구조로 연주된 듯한 느낌을 주었다.   이쯤에서 바램하나를 더하자면 진정한 작곡가라면 곡을 쓰기 이전에 거문고란 악기에 대해 사전지식을 충분히 익힌 후 작업에 임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적어도 탄법과 음역의 사용, 그리고 악기가 갖는 특징정도는 어느 정도 활용가능 했더라면 보다 더 나은 곡이 나왔으리라 여겨진다. 대중적인 공감을 의식한 듯한 평이함과 동일한 선율은 편안함을 넘어서 식상함마저 느끼게 하곤 했다. 작곡자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거문고라는 악기의 역할에 의해 일관성 있게 표현하였는가의 물음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을 남긴다. 이것은 분명 작곡자의 의도를 간파하지 못한 필자의 아둔함 또한 탓하지 않으랴. 세기 중 2007년 12월, 여기 한국전통음악 작곡가들이 모여 또 다른 그들만의 음악을 선사하였다. 시대가 변하면서 사람들의 문화적인 기호 또한 변하기 마련이다. 옛 조상들이 거문고를 가까이 하고 거문고가 주는 절제의 미덕을 높이 평가하였다면 21세기 오늘 우리가 갖는 거문고의 매력은 무엇일까. 거문고만의 거문고다운 거문고의 고유한 색채를 찾아 나선, 21세기의 옥보고를 기대하였던 나의 욕심은 과연 과욕에 불과했을까. 어쨌든 시류에 밀려 서양음악적인 편성에 의해 거문고의 자리가 점점 좁아져 가는 요즘, 거문고를 주제한 창작곡 발표회는 지금까지 전공자와 특정인에게만 국한 되었던 거문고를 한 발 더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그 무엇보다도 의의가 크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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