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 |
전라도 푸진사투리
관리자(2008-01-18 22:20:10)
“썩을 놈으 깻대만 아니었으먼…….”
김규남 언어문화연구소장
“첫날 저녁으 이렇게 앉어갖고 말을 붙임서 ‘댁에는 안행이 멧이나 돼요?’ 헌게, 안행이 멧 명이라는 것은 집안에 으른이 멧이냐는 뜻인디, ‘깨진 항아리, 성헌 항아리까지 멧 개라우’ 그러고 있다우, 미런헌 것들은…….”
1996년 겨울, 지금부터 10여 년 전, 나는 박사학위논문을 준비하기 위해 정읍시 과교동 정해마을에서 겨울을 났다. 정해마을은 시암바대라고 불리는데 이 말은 한자어 정해(井海)의 우리말 식 이름이다. 이 마을은 탐진 안 씨가 약 400년 동안 터를 다진 집성촌이며, 마을 분들은 이 마을이 정읍(井邑)의 시원이 되는 마을이라는 데 자부심을 가지고 계셨고 백제 정읍사 역시 이 마을에서 나왔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었다.
내가 그 마을에서 산 지 한 두어 달 후부터 나는 그 마을의 구성원 모두와 허물없이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그 날은 ‘삼진외’ 할머니 댁으로 ‘마실’을 갔다. 삼진외 할머니는 당시 여든세 살이셨고 나이가 같은 삼진외 할아버지와 참 다정하게 사셨다. 그날은 거멍바우댁, 피늘댁, 대나실댁, 삼진외 할머니 그리고 내가 이야기꽃을 피웠다.
옛날에 사시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주문을 하자 ‘행정 양반 보릿대 타작허다가’ 동네 불이 난 이야기에서부터 큰 사우 귀가 찢어졌다는 삼진외 할머니의 ‘동상례’ 이야기까지, 처음엔 줄곧 ‘정신 좋은게 자네가 좀 히 보소’하시던 거멍바우 할머니까지 맞장구를 쳐가며 이야기를 꺼내시는 바람에, 이야기는 폭죽 터지듯 졸가리 타기 어려운 그러나 아무튼 흥미진진한 물길이 되어 시간을 잊게 했다.
“썩을 놈으 깻대만 아니었으먼”
행정 아저씨 보릿대 타작하다 불 난 다음날 삼진외 할머니 댁에서도 불이 났던 모양이다. 행정 댁에 불이 난 그날 저녁 삼진외 할머니 댁에서는 송아지를 낳았다고 한다. 그래서 소죽을 끓이려고 불을 때는데 ‘깻대’ 더미에서 ‘깻대’를 아래서부터 빼다가 더미가 허물어지는 바람에 불이 붙었던 모양이다. 지서에서 순경이 오고 소방서에서 물을 한 차 싣고 와서 불이 진압될 지경이었으니 엎친 데 덮친 불난리로 마을이 온전했을까.
“그전에는 땅 뺏어 먹기, 땅으다가 금 긋어갖고 땅 뺏어 먹기 무던히 있거든.”
“이렇게 똥그람허니 기리갖고 팅기갖고 둘오머는 그 사람 땅 뺏어먹어.”
“그런게 일본놈들이 땅 뺏어 먹을라고 헌게 우리도 던 개벼.”
“아그들 논 대로 시국이 되아간대야.”
땅 뺏기 놀이가 일본 제국주의의 야심과 맞물려 해석이 되는 것은 시암바대 할머니들 아니면 안 될 관점이리라.
“강 뛰기 허고 이렇게 칸칸이 기리놓아 그리서 여그서 여리 차고 여그서 여리 차고 그리갖고 여그까지 와 그리야 따 먹어”
“사내끼 뛰기도 어. 이렇게 여그 잡고 여그 잡고 히 갖고 가운데서 두서넛이 뛰고”
“우리 에리서는 지아 도 네잉.”
“동고롬허니 엎져 그리갖고 양쪽으 손 잡고 지아 자 지아 자 그럼서”
“담 넴기는, 둘이 시아놓고 오동통통 담이나 넘세 오동통통 담이나 넘세 그럼서 막 뛰여 넘어가. 사람들 이렇게 손 잽혀 놓고 서서 막 뛰여.”
“아그들이 놀라먼 그짓거리를 히야 놀아.”
땅 뺏기 놀이에서부터 담 넘기 놀이까지 숨도 돌릴 틈이 없이 어려서 놀던 이야기들이 봇물 터지듯 한다. 그러다가 ‘살가지(살쾡이)’ 놀이로 물코가 터지면 또 동시다발이다. 누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한꺼번에 말들이 꽃을 피운다.
“하나가 앞으가 대장이 있어갖고 새끼들 잡어 먹을라고 허먼 새끼들 못 잡어 먹게 헐라고
뒤여가 다 붙어갖고“
“우리 새끼 잡어먹을라고 허먼 막 못 잡어 먹게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저 끄터리보톰 연히 잡어 가”
“안 잽힐라고 막”
“징그랍게 재밌어 근디 시방은 그렇게 노는 사람도 없어잉.”
그러다가 근자에 들어와 회관 앞에서 놀았다는 “댕깡살이”는 알고 보니 애들 놀이만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남자 여자 펜갈러 갖고 그렇게 당게”
“ 년 되아. 여그 와서도 어. 나 시집 와 갖고도 당게.”
“갑주성이 여자덜이 회관 앞으서 대깡살이 헌다고 머라고 어. 여자덜이 대깡살이 헌다고”
“재작년에도 대깡살이 어.”
“그럼, 재작년까장도 당게.”
“옛날 것 아녀. 근년에 둘와서 지.”
“그전에도 어라우. 우리 큰애기 때도.”
“옛날에도 허기는 는디, 옛날 것은 아녀.”
“지금도 헐라먼 허는디 심이 없어서 못 혀.”
“그 전에 걍 점방 태원이허고 하나나 잽히머는 등짝 떠널러가게 때리버러 아조.”
“여자덜이 이기 먹을 것여, 남자덜?”
“남자덜허고 여자덜허고 펜갈러 갖고 히야 재밌제. 여자덜찌리 허먼 재미없어.”
시암바대의 큰 시암 옆에 선 연리수 덕에 금슬이 좋은 까닭이었을까. 시집 온 ‘새각시’가 시숙, 시아재 혹은 당숙, 당질 벌 되는 이들과 어울려 회관 앞 공터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터뜨렸을 명랑한 웃음소리가 햇살 가득한 회관 앞 공터에 새소리처럼 쏟아졌으리라.
시암바대의 정월은 그렇게 끼리끼리 이야기꽃을 틔우며 하루가 열리고 또 하루가 저문다. 내 머물던 옥산 아주머니 댁 내외분은 건강하신지, 지금은 고인이 되신 삼진외 할머니의 정갈한 모습이 유난히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