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 |
[이흥재의 마을 이야기 ] 장수군 계남면 음신마을
관리자(2008-01-18 22:19:47)
교회종소리 울리면 일하다 기도하는 예수마을
백두대간 장안산 자락 장수 음신 마을에는 작년에 100년사를 발간한 신전교회가 있다. 음신마을에 사는 주민은 두세 집만 빼고 모두 교회를 다니고 있으며, 주일날 교회에 나오지 않는 분들도 옛날에는 교회에 다니던 신자였거나, 크리스마스나 부활절에는 항상 헌금이라도 보내는 예수마을이다. 이 마을에서는 정오 12시에 교회 종소리가 들리면 사과밭이나 논에서 일하던 농부들이 일손을 멈추고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 장면은 유명한 밀레의 그림 ‘만종’을 연상케 한다.
최근 전국에서 기독교 신자들이 성지 순례코스로 다녀가기도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생활은 모두 교회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 마을은 유명한 장수사과와 한우 100여 마리를 집단적으로 사육하고 있어 비교적 부유한 마을이다. 이 마을 사람들은 맛있는 사과나, 송아지가 잘 되는게 신앙의 덕분이라 생각한다. 소를 키우는 집에서 송아지를 낳으면 목사님에게 연락해서 기도를 해달라고 한다. 38세의 박영섭씨는 20대 후반에 이 마을에 와서 소를 키우기 시작한 후 10년이 되었다. 송아지가 날 때 마다 목사님이 기도를 해주면, 송아지가 아무탈없이 잘 자란다고 생각하고, 송아지 낳은 기념 헌금도 빠지지 않고 한다.
옛 교회당 옆에 둘레가 9.6m나 되는 첨성대를 닮은 돌로 쌓은 종탑이 있다. 이 교회에 멋진 교회 종이 있었는데, 일제 강점기에 교회 종을 공출 당했다고 한다. 해방 후 산소통을 가져다 치기도 하다가, 두부장수들이 손으로 치는 조그만 종으로 교회종을 대신 했다고 한다. 6.25 한국전쟁 뒤 대구에 가서 직접 무쇠종을 사다가 종으로 썼다고 한다. 나무로 지은 종각 건물이 낡아 돌로 쌓은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교회에서 행사가 있거나 새벽예배 때, 화재나 도둑이 들었다든가 하는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종을 쳤다고 한다.
지금은 이 종을 쓰지 않고 자동으로 된 차임벨 종을 쓴다. 다른 마을에서는 소음 때문에 종을 치지 못하지만 이 마을은 전체가 교인이어서 낮 12시면 교회종을 울린다. 77세의 송용섭 장로가 좋을 치자, 어렸을 때 시골 교회에서 듣던 댕그렁 댕그렁하는 소리가 그대로 가슴속에 파고들었다.
100년전 이 산골마을에 어떻게 교회가 생겨났을까?
계남면 신전리는 땔나무 신(薪) 밭전(田)자를 쓴다. 땔나무 밭이라는 산골중의 산골인 이 마을에 말을 타고 선교를 다니던 강운림(康雲林)이라는 우리말 이름으로 불리는 클라크(W. M. Clark 1881~1965)선교사가 나타났다. 호남지역 선교부 소속으로 한때 신흥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던 클라크 선교사는 전주 동남지역 즉 상관면, 무주, 진안, 장수 지역을 담당하던 선교사였다. 비록 땔나무 밭이라는 이름의 깊은 산골이지만, 남해 원주간 19번 국도 변에 위치해있어 비교적 사람들의 왕래가 잦았을 것이다. 당시 선교사들은 말을 타고 이곳저곳을 다니며 선교를 하고 있던 때였다.
1907년 11월 19일 클라크 선교사는 박래문, 문귀선, 김사일, 박승기, 정세갑 5인을 음신마을에서 만나 예배를 드리면서 선교가 시작되었다. 1911년에는 박래문이 가옥 한 채를 매입하여 예배처로 삼고 신앙생활을 하다가 1924년 목조건물 3칸을 예배당으로 신축하며 본격적인 교회 활동이 시작되었다. 박래문은 할아버지 때부터 부유한 집안으로 서당에서 글을 배우고 마을에서 비교적 지식층에 속해 있었다. 클라크 선교사가 마을을 다니면서 선교를 할 때 예수 믿기로 작정하고 복음을 받아들였다. 나무를 하러 갈 때도 성경책을 지게에 걸고 다녔으며, 논밭에서 일을 할 때도 항상 찬송을 했다고 한다. 전주 서문교회에서 사경회(寫經會)가 있을 때에는 기름과 소금을 보내주었으며 항상 참석하며 은혜를 받았다고 한다.
2007년 12월 23일 장수 계남 신전교회에서는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의 등에 업힌 갓난아이까지 107명의 교인이 “족보에 담긴 성탄의 복음”이라는 주제로 성탄 예배를 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구약에서는 14대씩 ~죽고~죽고~죽고 계보가 내려오다 신약성서에는 ~낳고~낳고~낳고로 시작한다는 것이다. 성탄을 우리 문화에서 가장 익숙한 족보로 예수가 태어남의 의미를 새기고 있었다. 파워포인트로 영상 자막이 뜨고 그 앞에서 목사님이 설교하는 모습은 도심의 큰 교회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올해 99세의 이판순 할머니는 교회 나이보다 한살 적다. 이 할머니는 시집와서부터 지금까지 교회에 다니고 있었다. 52세의 김종귀 이장님은 마을 43호 중 두집 빼고 96%가 선전교회의 교인이기 때문에 “서로 잘 통한다”고 말하면서 그 힘이 원동력이 되어, 계남면 내에서 사과와 100여 마리의 한우를 키워 잘 사는 마을이 되었다고 자랑을 한다.
어떤 할머니는 “천국갈 수 있고 걱정이 없어서 좋다”고 연신 교회 다니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 마을 사람들은 보통 30~40년간 교회에 다닌 사람들이어서 결혼식이나 여행가는 일은 일요일은 피한다.
현재 음신마을에는 1955년 5월에 건립한 신전교회 예배당이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남아있고, 2000년 2월에 신축한 현 건물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종탑과 옛 건물을 잘 보존 관리하여 100년의 역사가 있는 교회당을 지닌 마을로써 자부심을 잘 간직해 나가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