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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 |
영화 대학, 오래된 TV
관리자(2008-01-18 22:19:04)
함께 늙어가는 우리의 애인 장만옥 둥근 광대뼈, 큰 입술, 올라붙은 듯한 눈, 장만옥은 그리 예쁜 배우가 아니다. 그러나 <완령옥>에서 어깨 아래로 내려오는 치파오를 입은 채 왼손은 계단참을 쥐고 오른손은 그 팔뚝을 붙드는 고개 숙인 장만옥의 자태는 아름답다. 빛이 쏟아지는 창 옆 계단을 오르는 장만옥을 통해 히스테리와 우울, 좌절과 불안, 혐오와 고통 속에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던 완령옥이 잘 와 닿는다. 촬영 당시 완령옥처럼 스캔들에 시달리던 장만옥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장만옥은 완령옥을 연기하면서, 우리는 장만옥을 보면서 화면 속 우리가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는 거다. 볼 것이 홍콩영화 밖에 없던 그 때, 우리 무슨 생각을 했을까. 동양 배우는 아무리 예뻐도 영어가 안 되면 유럽과 미주에서 클 수가 없다. 본토태생이지만 영국에서 자라 유창한 영어를 쓰는 64년 용띠 장만옥은 83년 수영복 입은 미스 홍콩 출신이다. 84년에 데뷔 한 후 그렇고 그런 영화에 출연하다가 왕가위 감독의 데뷔작 <열혈남아 1987>에서 유덕화랑 공연하지만 사실 내용은 뻔하다. '발 없는 새' 장국영의 애인 수리진으로 나온 저주받은 걸작 <아비정전 1990>이 아무래도 출세작일 것. 어디에도 발붙이지 못하는 남자 아비가 버린 여자로 경찰관 유덕화를 따라 걷는 매표원 아가씨 장만옥은 젊다. 장만옥은 스물일곱에 찍은 <완령옥> 이후로 우리의 기억에 남는 영화들 속으로 몸을 던진다. <신용문객잔 1992>과 <동사서독 1994>에서는 워낙 임청하의 카리스마가 강하기에 묻힌 듯하지만 고전물에서도 결기 있는 아름다움을 잘 드러낸다. 맥도날드 아가씨로 나온 진가신 감독의 <첨밀밀 1996>에서 우리의 애인은 억척스런 현대여성으로 자리를 잡는다. <차이니즈 박스 1997>를 지난 후, 홍콩 어느 골목의 검은 바탕 창에서 쏟아지는 불빛 아래 국수그릇용 보온병을 들고 벽과 계단을 오르내리던 꽃무늬 프린팅 민소매 치파오를 입으신 리첸 여사의 <화양연화 2000)를 우리 어찌 잊을 것인가. 갈 수 없는 나라. 장예모 감독의 무협대극 <영웅 2002>에서 눈밭의 흰옷, 가을의 붉은 옷을 입은 비련의 여검객을 지나 <화양연화> 속편인 엇갈린 시간 속에서 부재하는 사랑을 찾는 2004년에 찍은 <2046>에서 도박사가 된 잊혀진 여인으로 출연하지만 "사랑은 타이밍이다." 라는 말 빼고는 사실 별로다. 역시 붉디붉은 치파오만 아름다울 뿐.   2004년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영화 <클린>에서는 우리의 여신은 폭탄 머리의 현대여성으로 나온다. 마약하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장만옥은 파격적이다. 음반을 취입하려는 락커 에밀리 역의 절망에서 프랑스 애인과의 고통을 읽기도 하지만 서구적 마스크의 동양여성이라는 그녀의 매력은 끝이 없다. 그녀를 생각하면 화양연화에 빠지는 우리, 애인처럼 함께 늙어갈 배우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신귀백ㅣbutgoo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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