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2 | [특집]
각기 다른 세대가 보는 '20대...'
편집부(2003-04-18 17:07:00)
21세기 새 지도자를 선출한 지난 대통령 선거와 촛불시위, 월드컵 응원전 등을 통해 ‘20대론’에 대한 논객들의 분석이 뜨겁다.
감성과 이미지, 상징을 중요시하는 20대 보편적 특성이 디지털과 인터넷의 확산, 탈정치화, 명품 지상주의 등의 문화 현상으로 표면화되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가벼운’세대들로 기성세대들의 우려와 반감들 사왔던 20대들이 지난 한해 새로운 문화의 확산, 특히 기성세대들의 공감과 참여를 이끌어낸 월드컵 응원 문화나 인터넷을 통한 적극적 선거 참여 등으로 신뢰를 얻어가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거품론도 만만치 않다.
대선 투표율이 30대 이상의 60~70%에 비하면 47%에 불과하다는 것, 그리고 인터넷과 디지털의 보급이 비단 20대만으로 국한된 것이 아니다는 것 등‘20대’의 긍정성이 그리 과신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문화저널에서는 이러한 20대들의 문화,‘20대들의 실체’를 각 세대간의 눈을 통해서 들여다보기로 했다. 이번 설문은 50대부터 20대까지, 총 6명의 남녀에게 공통된 질문을 줌으로써 각 세대들이 느끼는‘20대 문화’를 다양하게 들어보았다.
<공통 질문>
질문1) 월드컵과 촛불시위, 대선을 통해 20대가 주목받고 있다. 20대의 적극적인 사회참여라는 평가와 거품 또는 허명이라는 평가가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은?
질문2)‘20대는 정치도 재미가 없으면 뛰어들지 않는다?’20대가 추구하고 말하는 ‘재미’를 어떻게 보고 있으며, 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질문3) 20대에게 주문하고 싶은 것은?
20대, 사회변혁 역사변혁 중심체
이십대의‘끼’울림 있도록 해야
권오표(53. 교사)
권오표씨는 문화저널 운영인사로 있다. 97년도에는 시집 『여수일지』를 내고 현재 완산고에 재직 중이다. 권씨는 20대들의 활기 넘침을 올바르게 이끌어 줘야 한다고 밝혔다.
답1)
한 시대의 가치는 개인적 경험과 사회적 환경에 의해 다양한 색채를 띈다. 오늘의 20대는 빈곤과 전쟁을 모르고 풍요 속에서 굴절 없이 자란 세대다. 그들은 보편화된 인터넷 환경 속에서 자신의 주장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기존의 질서와 가치를 조롱하고 차별화된 '폐인'을 자처한다.
관심 있는 분야엔 맹목적이다시피 열광하지만 그렇지 않는 것엔 극도로 무관심하다. 그들은 기성세대의 권위를 거부한다.
20대가 이제까지 정치에 무관심(?)한 것은 수구세력인 기성세대의 정치행태에 대한 침묵의 저항이었을 뿐 결코 정치에 등을 돌린 것이 아니었다고 본다.
이번 대선을 통해 20대가 보여준 정치적 현상을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재단하기엔 조심스런 점이 많다. 선거 당일 온라인 상에서의 열기가 오프라인으로 옮겨와 투표를 통해 순식간에 선거의 판도를 그들이 원하는 쪽으로 바꿔놓은 점을 일과성으로 가벼이 넘길 일은 아닐 성싶다. 20대가 꿈꾸는 신바람 나는 현실정치 참여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그들은 여전히 사회변혁과 역사 변혁의 중심에 우뚝 서 있다.
답2)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20대만의 전유물인양 생각하는 것은 기성세대의 뻔뻔한 직무유기다.
천박한 상업자본주의를 앞세운 우리 현실은 서점이 설 자리를 잃는 대학가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단순히 수요의 구조로만 돌릴 것인가? 성마저 상품화하고 도구화하여 즐기는 자들은 어느 세대인가? 20대가 추구하는 '재미'는 기성세대의 가식과 위선 앞에 던지는 조롱과 냉소의 또 다른 해방구는 아닌지. 그들의 주체할 수 없는 '끼'를 좀 더 울림이 큰 신명난 판으로 불러들여 우리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문화로 정착되도록 진지하게 고민할 시점이다.
답3)
그대, 가고 싶은 길을 가라.
그 길은 빛나는 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여전히 사회인식 저조한 ‘20대’
내공 있는 20대 보고싶다
이재규(41·시민행동21 대표) 1988년부터 전북지역 시민사회운동에 참여해온 이재규씨는 현재 시민행동 대표로 있으면서 자유기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씨는 지금의 사회변화를 ‘20대의 것’으로 국한시키는 건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답1)
세 가지 모두 20대만으로 국한하기 어려운 사안입니다. 겉보기에 20대가 주도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들 사건은 보다 폭넓은 세대와 계층의 참여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봅니다. 스포츠 서포터즈는 아무래도 20대가 보다 주요하게 활동할 수 밖에 없는 측면이 있지만 촛불시위와 대선은 뜨거웠던 민주화운동 시절을 경험한 30대-40대가 더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시위 현장에서 가족의 손을 잡고 나온 이들 다수가 이들이었고 인터넷 여론공간에서도 적극적인 전파역을 담당한 사람의 상당수는 30대 이상의 직장인이 더 많았습니다. 대선 실제 투표율과 각 대학 부재자투표 신청 수가 보여주듯 현재 20대는 사회의식이 이전 세대에 비해 현저하게 낮다고 생각합니다. 20대가 빠져나간 진공을, 역사의식의 세례를 받은 30대가 채워넣음으로써 노무현이 간발의 차이로 승리했다고 봅니다.
답2)
그동안의 정치가 너무 권력중심적이고 근엄주의 일변도 였다는 점에서 20대의 정치관은 변화한 대중의식에 맞는 새로운 정치활동을 주문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정치를 직업정치인들만의 것에서 대중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것은 적극 동의합니다. 그러나 정치‘소비자’(유권자)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 20대 유권자가 그들의 선호도와 달리 실제 정치공간에서는 행동하지 않는 관망자라는 점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미디어에 의존하는 이미지 정치, 이벤트 정치의 다른 한편에 진지한 논의와 실천이 사라져가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답3)
제발 책 좀 읽으시죠. 영화나 게임 리스트는 줄줄이 외우고 또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서는 전문가적 안목까지 보여주는 ‘콜렉터’ 자질은 풍부하지만 균형 잡힌 역사의식과 인문 교양은 바닥을 치는, ‘내공없는’ 20대는 그만 보고 싶다.
지난 세대가 남긴 ‘역사’의 유산을 꼼꼼하게 되새겨 볼 줄 알고 ‘나’ 밖의 다른 나와 우리의 문제에도 진지한 관심을 기울이는 진중한 젊은이를 만나고 싶다.
20대 지닌 순수 열정 사회적 잠재력 커
오피니언 리더로서 건강한 대안 아쉬워
김종표(38·기자)
김종표씨는 전북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전북일보 교육문화부 기자(차장대우)로 활동하면서 대학생들과 잦은 만남을 가졌다. 김씨는 젊은이다운 열정이 사회에 고스란히 반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답1)
자기표현에 솔직하고 기성세대에 비길 바 아닌 순수한 열정을 지닌 20대에겐 엄청난 사회적 잠재력이 있다. 그리고 특별한 계기가 마련되면 그 열정은 활화산처럼 한꺼번에 분출된다. 이상과 신념보다는 현실의 무게에 점차 기울어지고 있는 30∼40대들에게 경종을 울리며 행동하는 양심의 기폭제가 된 것도 항상 20대였다.
광화문 촛불시위에서 나타난 것처럼 온라인 사이버공간의 위력은 대단하다. 사이버세계에서 20대의 위상과 비중도 여전히 막중하다. 그리고 사회 구동축으로서의 사이버공간의 힘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 사회에서 월드컵은 욕망을 분출시키는 통로가 됐고 그 통로를 열어준 것은 20대다.
사회 변방에 머물렀던 20대가 이제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이 같은 행동을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사회참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각각의 개체가 지닌 자율성과 욕구실현의 관심사가 특정 사건을 계기로 응집·분출된 것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순간적으로 부풀어올랐다 터져버리는 거품도 분명 아니다.
답2)
20대 대학생들이 즐겨 읽는 책은 단연 환타지 소설이다. 현실성이 떨어지는 내용이기 때문에 그들에겐 더 매력적일 수 있다. 직접 책을 쓰지 않더라도 창조와 상상의 세계에 푹 빠질 수 있는 색다른 재미도 있다.
X세대에서 N세대, 그리고 월드컵과 함께 등장한 W세대를 거쳐오면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신세대들의 문화코드는 ‘개성’이다. 유행을 거부하면서 자신들의 세대적 가치관을 적극 표면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기성세대와는 다른 문화적 욕망을 거리낌없이 표출한다.
그러나 월드컵 응원에 열광했을지언정, 투표에는 별 관심이 없다. 냉소와 무관심. 그들에게 특별한 이유는 없다. 특정 분야에 능통하고 초인적인 열정을 쏟아붓는 만큼 관심없는 것에 대해서는 놀랍도록 차갑다. 형식적인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다.
20대들에게 ‘재미’는 관심과 열정이다.
답3)
사회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함께 건강한 대안을 내놓을 수 있는 오피니언 리더로서의 역할이 아쉽다. 이번 대선에서 대학가에 투표참여 운동이 벌어지고 몇몇 대학에 부재자투표소가 설치된 것에 대해 일부에서는 20대의 정치혁명이라는 말로 의미를 부여했다. 분명 투표와 정치를 축제화 한 신세대 정치 읽기는 새로운 흐름이다.
그러나 아직은 정치적 무관심과 냉소주의가 우세한 것이 사실이고 이념이나 도덕률에 대한 진지한 토론보다는 고막을 흔드는 음악소리에 더 익숙해 있는 게 20대다.
대학행사 때마다 학생들을 찾으러 다녀야하고 학생회 선거에서는 투표율이 미달돼 재선거를 치르기 일쑤다. 스스로의 손으로 자치기구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주장은 낡은 구호에 불과한 것일까.
20대가 사회적·정치적 발언권을 포기한 채 단지 ‘소비의 주체’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도 분명히 되짚어보아야 한다.
월드컵과 촛불시위에서 보여주었던 열정의 이면에 젊은이다운 진지한 고민과 자기성찰의 모습을 기대한다.
20대 규정짓기보단 개체로 봐야
연대·소통 통해 사회참여 유도
최을영(28·자유기고가)
최을영씨는 전북대 신방과를 졸업하고 현재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며, 저서로는 ‘만화에 살다’‘상상력과의 전쟁’(공저) 등을 냈으며, 최씨는 20대를 개체가 아닌 단순히‘20대’로 규정짓고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답1)
사실 20대라는 세대를 규정하고 그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것을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내가 대학에 들어갈 때 불었던 신세대 담론 때문이다. 나 자신은 별로 신세대라 생각하지 않았는데, 다른 이들은 나에게 신세대란 딱지를 붙였다. 특히 언론에서 만들어낸 그 세대론은 오히려 20대 초반의 나를 다른 20대들과 구별짓는 척도가 되었고, 급기야는 '개인'이었던 나를 집단 속의 나로 규정해버렸다.
현재 불고 있는 20대에 쏟아지는 현란한 조명도 그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2002년에 특기할 만한 사건이 많이 일어났기 때문에, 또 그 사건에 20대가 앞장 선 사례가 많았기 때문에, 개인화·파편화되어 있다고-기성세대에 의해-판단되었던 20대가 어떤 사건을 두고 다양한 통신매체를 통해 결속하는 일이 잦았기 때문에, 그리고 기존의 권위나 사회현실에 상대적으로 구속받지 않는 20대 고유의-젊음에서 발화된-자유로움 때문에, 20대가 오늘날 집중적으로 조명 받는다고 생각한다.
이를 두고 적극적인 사회참여라든가, 거품이라든가 하는 평을 내리기에는 무리다. 20대가 다양한 개인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지난 6월 붉은 티셔츠를 입지 않았던 20대도 있고, 촛불시위에 무관심한 20대가 있는가 하면, 대선에 무관심했던 20대는 전체 20대의 반을 넘는다. 그런데 왜 갑자기 20대인가? 난 그것을 언론에서 만들어낸 또 다른 신세대 담론이라고 판단한다. 다양한 개인을 한 세대로 뭉뚱그려 판단해, 그들을 과신한다거나 그들에게 등을 돌리는 일은, 코끼리 다리를 만지고 코끼리를 다 알았다고 생각하는 장님과 다를 바 없다.
답2) '재미'라 하면 사람들은 흔히 오락적인 재미만을 말하는 듯 하다. 그러나 '재미'란 말은 그렇게 협소한 의미만이 아니다. 문제는 '무엇'에서 재미를 느끼는가 이다. 지난해에 보았듯 20대의 재미는 월드컵으로, 촛불시위와 대선 참여로 분출되었다. 월드컵은 차치하고 서라도, 촛불시위와 대선을 어떻게 재미라고 말하는 이도 있을지 모르지만 진지한 재미가 있게 마련이다. 내가 20대여서 그런지 몰라도 내가 느끼는 재미란 어떤 활동을 통해 보람을 느끼거나, 내 주장을 당당하게 펼치는, 그런 모든 것을 포함하는 재미다. 어쩌면 흥미라고 말해야 더 정확할 것이다.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 정치는 재미있으면 안 되는가? 나는 '20대는 정치도 재미가 없으면 뛰어들지 않는다'라는 말에서, 20대 전체를 가벼운 세대로 매도하고, 정치를 상아탑에만 가둬두려는 음모를 본다. 정치는 재미있어도 된다. 아니 재미가 있어서 사람들의 관심을 더욱 많이 끌면 더 좋다. 정치가 관여하지 않는 삶의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답3) '연대와 소통', 그리고 사회현실에 대한 관심이다. 우리 위의 세대가 실패했고, 지금도 20대 젊은이들이 사회에 발을 디디면, 즉 사회 메커니즘 속에 빠져들면 급속히 사라져 버리는 연대와 소통을, 또 사회현실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20대 젊은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이건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월드컵·촛불시위
투쟁과 고민이 빠진 이벤트성 짙어
20대, 용기와 집념으로 변혁 이끌어야
홍미정(26·회사원)
1년동안 월간 리크루트 기자로 활동하면서 20대들의 가치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 바 있는 홍미정씨는 현재 협회에서 사보를 담당하고 있다. 홍씨는 같은 20대들에게 사회를 바라보는 깊은 눈과 진지한 고민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질문1)
아직까지 우리 20대 문화는 '적극성'을 논하기에는 아직 미흡한 단계라 생각됩니다.
특히 대선이나 월드컵, 촛불시위로 주목받기 시작한 20대의 사회참여 현상이라는 것은 언론이나 기타 매체와 인터넷 네트워킹 망을 통한 '거품 현상'이라는 것에 대해 동의합니다.
한 세대의 문화는 일원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 비판 및 분석 등을 통해 올바른 여론 형성이 가능할 때 성숙할 수 있다고 보여집니다. 그러나 앞서 거론된 지난 한 해의 가히 혁명적(?)인 현상들은 아직까지 성숙하지 못한 20대 세대의 '따라하기 혹은 군중심리'가 크게 작용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들은 큰 이벤트를 벌였고, 참여했으며 적극적으로 홍보까지 했지만, 이 이벤트에는 386세대와 다른 커다란 한 가지 요소가 빠졌습니다.
사회와 나라에 고민하고 투쟁했던 386세대와 달리 지금의 20대에 '고민'과 '투쟁'은 너무나 거리가 있는 단어인 것 같습니다.
단적인 예로 미선이와 효순이의 장갑차 사건에서 불거진 촛불시위의 경우, 그 사건의 심각성과 우리의 대응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적극적인 해결방법을 모색하려는 움직임보다는 일종의 '이벤트'가 되어 젊은이들을 광화문 거리로 내몰았음을 느끼게 됩니다. 또한 지적한대로 선거의 경우에도 20대의 목소리는 높았지만 기대와는 달리 20대의 투표율은 저조했습니다.
월드컵 또한 우리의 젊은이들에게는 축제였고, 놀이였고, 특별 이벤트였습니다.
함께 힘을 모으는 데에는 성공했다고 보여진다면, 이제 그 힘으로 좀더 고민하고 좀더 '세련된' 방법으로 20대 여론을 형성하는 데 힘써야 할 시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질문2)
앞서 20대는 힘을 모으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그 힘을 어떠한 세련된 방법으로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없다는 지적을 했습니다. 재미가 있고 흥미롭기 때문에 너도나도 휩쓸려 힘은 모았지만, 그 다음 힘을 적절히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그다지 고민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정치든, 일이든, 재미없으면 하지 않는 게 우리의 20대 젊은이들이라는 지적은 이들이 정치라는 것에서조차도 재미를 유도해 즐긴다는 긍정적 의미가 될 수 있는 반면, 자칫 정치가 하나의 유흥거리가 될 수도 있다는 위험한 우려를 표명한 지적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것이 유흥거리가 되었을 경우 시간이 지나고 놀만큼 논 젊은이들은 분명 다른 '더 재미난 무언가'를 찾아 떠날 채비를 서두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치가 재미있어 이것에 관심을 두고 같이 참여하여 즐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고민하지 않은 정치는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그 속에서 뛰어 논다 하더라도 변화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20대에게 부족한 것은 바로 이러한 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질문3)
같은 세대를 살아가고 있는 20대로서, 저는 우리의 20대 문화가 '끓는 냄비 문화'가 아니기를 바랍니다.
사회의 모순에 대해 진심으로 고민하고 치열하게 투쟁하는 20대였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넷 여기저기에 추모리본을 뿌리기 이전에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우리의 상황을 이해하고, 이것을 개선하기 위해 진정으로 우리가 해야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더 많이 고민하기를 바랍니다. 정치를 변화를 말하면서 진심으로 정치를 변화시키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먼저 깊이 고민하고, 고민이 끝났으면 그 다음에는 우리의 용기와 집념을 모아 변혁을 기꺼이 시도할 수 있는 ‘바른 청년’들이 많아지기를 희망합니다.
20대, 새로운 세상 이루는 구성요소
사회 모순에 당당히 맞서야
안규백(26·대학생)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안규백씨는 현재 원광대에서‘이윤보다 인간을 위한 행동연대’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원광대 제 34대 일대반격 민주적 총학생회 사무국장도 맡고 있다. 안씨는 20대는 사회의 당당한 주체로서 불온 한 것들에 저항하는 할 줄 아는 사고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답1)
월드컵과 촛불시위, 그리고 이번을 대선을 통해 20대가 보여준 현상은 적극적인 사회참여를 넘어서 현실에 대한 문제 제기 또한 함께 포함했었다고 봅니다. 비록 이러한 현상들이 직접적인 표현은 아니었을지라도 현실적인 의미를 넘어서 그 현상이 포함한 내재적인 의미까지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왜 그들이 그곳에 열광했었는지...하지만 이러한 문제들은 사회참여라는 부분보다는 현재의 사회가 어떠한 구조로 또 어떠한 시스템으로 굴러가고 있는가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붉은 악마의 700만 응원 물결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무엇인가(?)에 한없이 억눌려있었던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 표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촛불시위는 이러한 붉은 악마의 응원. 그리고 그 참여로서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루어냈었던 경험적인 부분에서부터 기인했었다고 봅니다. ‘참여하지 않고선 그 무엇도 바꿔 내지 못한다’대한민국의 역사상 첫 정치인 온라인 펜클럽‘노사모’일부에서는 M세대라고도 하는 요즘의 세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로 표방되는 20대. 정치를 바꾸어보려는 의지로부터 시작한 이 모임은 참으로 많은 일을 해냈다고 생각합니다. 기성세대는 이러한 현상들이 혹시나 자신들의 권위가 실추되지는 않을까? 라는 의구심에서부터..... 군사주의 문화에서부터 출발된 권위주의..... 일부에서 거품과 허명이라는 평가를 하고 있다는 것 또한 이러한 문화적인 코드에서부터 시작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답2)
일단 많은 20대의 재미는 소비향락의 문화로 대변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사회가 절대적인 다수에 의해 돌아가지 않듯, 제 자신을 그렇게 만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20대가 추구하는 재미는 무한한 자유로부터, 거침없는 자기표현으로부터 시작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20대가 추구하고 말하는 재미가 왜 자꾸 소비 향락적인 문화에서만 기인하게 되는 것일까요? 이 문화를 생산하고 조장하는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요? 소비의 주체로서 20대를 세우고, 그것으로부터 무한이윤을 창출하려고 하는 지금의 세태들..... 이러한 작태들이 변하지 않고선 그러한 현실 또한 비판할 자격 또한 없다고 생각합니다.
답3)
20대는 가장 순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옳지 않은 현실에 당당히 저항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지금의 세상은 너무나도 많은 모순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모순들을 자꾸만 너무나도 정당화시키고 합리화시키려고만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속에서 20대들 또한 자꾸만 이곳에 물들어 가고 옳지 않은 현실에도 떳떳하게 제기 하지 못하고 하루하루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20대도 이제는 사회의 한 부품으로서가 아니라 당당한 사회의 주체로서 당당해지길 희망합니다. 세상에 조금이라도 찌들지 않았을 지금, 옳은 현실에 당당히 동의하고 함께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나"보다는 "우리"를 고민하며, 몇 안 되는 가진 자들의 편에 서기보다는 사회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서민과 민중의 편에 설 수 있는 20대가 되어가길 간절히 희망해봅니다. 20대는 더 이상 20대로서가 아니라 이 사회의 당당한 주체로서 불온한 모든 것들에 저항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구성해 나갈 수 있는 그런 20대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