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2 |
[문화시평] 윤길현 개인전
관리자(2007-12-24 19:36:50)
◎ 윤길현 개인전
익살 속에 깃든 외로움을 읽다
우진문화재단에서 후원하는 ‘청년작가초대전’이 벌써 30회를 지나고 있다. 해마다
5-6명 의 작가들이 재단의 지원을 받아 개인전를 열고 있다. 열악한 지역의 미술여건
속에서 작업하는 젊은 작가들에게 그동안 조그만 숨구멍과 같은 역할을 해오지
않았나 싶다. 10월 초 29회 청년작가 초대전으로 ‘윤길현전’이 있었다.
전시장을 찾았을 때 기존에 간간히 보아오던 다른 작가의 작품과 너무 흡사한 경향의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내심 의아했다. 나중에 전시 관계자를 통해 최근 개인적
사연으로 이름을 바꾸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잠시 동안의 오해가 풀렸다. 작가
윤길현과는 전시장에서 가끔 마주치면 가벼운 인사를 주고받고 막연하게 좋은
작업을 하는 동료작가로 여겨온 사이였다.
원고청탁을 받고 막상 글을 쓰려하니 전시 카탈로그마저 보이지 않았다. 마땅히
자료가 없어 작품을 다시 보기위해 얼마 전 윤길현의 작업장을 찾았다. 작업실은
남고산성 아래 위치해 있었다. 전주에 30년 넘게 살면서도 남고산성이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작업장은 과수나무들 가운데 위치해 있었고 한쪽엔
벌통들이 즐비했다. 작업장 주변의 산성과 굿당, 사찰들은 함께 어우러져 꽤
그럴듯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작업장 한쪽에서 다시 본 작품은 전시장에서와는 분명히 다른 느낌이었다.
전시장에서는 작품의 형식적 측면에 주목했다면, 이곳에서는 작품 외적인 부분과
작품간의 문맥을 다소 엿볼 수 있었다. 사실 자신의 작업에 대해 설득력 있게 이야기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더욱이 타인의 작업에 대해 언급하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간혹 화려한 수사와 모호한 문체로 글쓴이의 현학적 깊이만
드러내는 경우를 보게 된다.
문화는 시대를 살아온 민중들의 총체적 흔적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민중들이 문화의
주체세력으로 떠오른 조선후기에 흔히 보이는 민화는 그들의 소박한 삶과 바람을
담아내고 있다. 수복(壽福)을 기원하기 위해 십장(十長)을 그렸고, 집안에 들어오는
나쁜 기운을 막기 위해 호랑이를 그렸다. 하지만 악귀가 무서워 달아나야할 민화 속
호랑이는 전혀 무섭지 않다. 엉성하게 그려진 호랑이는 이웃의 어수룩한 화공의
실력만큼 친근하다. 사대부들의 작품에서 보이는 서권기, 문자향(書卷氣,
文字香)과는 거리가 멀다.
윤길현의 작품은 다분히 민화적이다. 민화에서 볼 수 있는 해학과 익살은 작품의
중요한 기반으로 작용한다. 민초들의 삶이 그러했던 것처럼 작품을 통해 자신의
사고의 폭과 철학적 깊이를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생활과 삶의 이야기가
배어있을 뿐이다.
얼마 전까지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던 곳은 이젠 그만의 공간이 되었다. 어릴 적
신나게 뛰어 놀던 마당은 용접기가 있고 그라인더가 돌아가는 작업장이 되었다.
주변의 나무하나 돌맹이 하나도 누구보다 익숙하다. 여태껏 자신을 키워준
산성주변의 풍광은 여전히 작업의 필요한 재료와 모티프를 제공하고 있다.
‘E.F소나타가 있는 삼경사 신선’을 전시장에서 처음 보았을 때 스님의 익살스런
표정과 포즈는 실소를 금치 못하게 했다. 같이 갔던 딸아이도 무척 즐거워했다.
윤길현 특유의 익살과 해학이 잘 살아있는 작품이었다. 인물의 형태는 재질이 다른
자연석과 구리를 이용해 만들었고 뒤편의 갈라진 자연석 사이로 동선(銅線)을
이용해 만든 소나무가 솟아올라 있었다. 작가에 의해 채택되어진 서로 다른 재질의
돌맹이들은 어느덧 신선이 되었다. 삼경사 신선의 포즈는 ‘남고사 호랑이’의 표정과
다르지 않다. 발끝에 걸려도 어느 누구가 관심을 갖지 않는 흔하디흔한 돌맹이가
장난기 가득한 형상을 하고 낄낄대고 있다. ‘말’의 형상 역시 우람함과 속도감과는
거리가 멀다. 노새나 조그만 조랑말을 연상시킨다. 윤길현의 작품에는 면면히 민중의
삶 속에 배인 소박한 해학이 있다.
‘바바리 맨’에서도 진지함을 직접 드러내지 않는 특유의 화법이 잘 드러난다. 관객이
자유롭게 여닫게 만들어진 바바리 맨의 옷을 열어 제키면 엉거주춤하게 두발로 선
염소가 자신의 성기를 아크릴 판으로 가리고 있다. 마치, 비 오는 날 여학교 주변의
전설이 된 바바리 맨의 돌출행동처럼 관객들에게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작가는
고단한 삶 속에 생의 에너지 대부분을 소진해 버린 동네 노인의 인상에서 염소의
이미지를 보았다 한다. ‘바바리 맨’에는 웃다 보면 어쩐지 우울해지는 블랙유머가
짙게 배어있다. 누군가가 바라봐 주길 바라며 여기저기를 서성이는 바바리 맨은
어쩌면 올 여름 전시를 준비하며 비 오는 작업실에 갇혀 버린 작가 자신이며 나아가
그가 바라보는 익명의 동시대인 일수 있다.
세발자전거를 이용한 작품 ‘놀아줘’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된다. 어릴 적
동네친구들과 함께 세발자전거를 타고 놀았던 유쾌한 추억은 누구나 있을 듯싶다.
하지만 모두의 관심에서 벗어나 석양녘 골목 한 귀퉁이에 방치된 세발자전거에는
외로움과 막연한 기다림이 있다. 세발자전거가 염소가 되었다. 염소를 닮은 촌노의
모습에서 작가는 또 다른 자신을 보고 있는 듯 하다. 한편으로 염소는 번식력이 좋은
동물로 잘 알려져 있다. 동물이 새끼를 잘 낳는 것은 주인 입장에서는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이다. 더구나 얼마 전 결혼해 2세를 기다리는 작가의 경우 더욱 남다르리라
여겨진다. 염소는 방치된 세발자전거의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는 희망으로 존재한다.
이제는 누군가 한번쯤 찾아줄 것 같은 희망과 외로움이 교차하는 삼십대 중반의 젊은
조각가의 갈등이 세발자전거에 실려 있다.
이제 작가는 가장(家長)이 되었다. 그가 느끼는 삶의 책임과 무게는 공사현장에서
떼어낸 벽돌조각과 녹슨 철근으로 제작된 ‘사라져 가는 것이 많은 사람들’에서 잘
드러난다. 재건축 공사현장의 용도 폐기된 재료는 감정을 드러낸 유기체가 되었다.
가는 철근 조각에 새긴 인물의 표정은 힘겹고 우울하다. 자신의 몸보다 열배는 큰
돌덩이를 혼자서 혹은 둘이서 짊어지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인간의 외로움과
나약함을 앙상한 가늘고 긴 인체조각으로 표현한 스위스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 1901~1966)를 연상시킨다. 삶의 무게와 살아가는 현실
그리고 인간의 삶을 분리할 수 없듯이 짊어진 돌덩이와 바닥의 벽돌, 인체를 형성한
철근은 하나가 되었다. 단지 알 수 없는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고 있을 뿐이다. 이제
작가는 우리 모두에게 부여된 삶의 무게와 사회적 책임을 자신을 비롯한 모두에게
묻고 있다.
작품과 작가의 생활을 분리시켜 이해할 수 있을까? 이처럼 윤길현은 자신의 경험과
신변에서 이야기를 찾고 재료를 구한다. 작업장 바로 위 삼경사 스님의 모습과
조카의 버려진 세발자전거, 때로는 가문의 시조 윤신달의 탄생설화에 나오는
잉어에서 작업의 모티프를 찾고 주변의 자연석을 이용하여 작업한다.
재료적인 측면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자연석에 동이나 철을 조립시켜 만든다는
점이다. 작가는 자연석이라는 것에 나름의 의미를 찾고 있는 듯 하다. 작품 ‘생명을
가지고 있었다’에서는 자연석을 최대한 가공하지 않은 채 여치, 바퀴벌레, 하늘소 등
그 명칭을 정확히 알 수 없는 곤충의 이미지를 제시한다.
산성 근처의 바위들은 누군가의 손에 깍이고 옮겨져 한동안 제 역할을 하다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허물어져 버렸다. 역사의 뒤편에서 세인들의 무관심속에
방치된 채 돌덩이는 이제 또 다른 생명을 부여받게 되었다. 무너진 성터의 돌덩이는
세월에 의해 살아있는 곤충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따라서 그의 작업은 오랜
역사의 공백을 메우는 조그만 창조행위로 작용하게 된다. 이미 수명을 다한
건축물에서 분리된 철근과 벽돌 역시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자연석과 동 그리고
벽돌과 철근의 만남은 맛있게 끊인 라면에 신 김치와 같은 만남이랄까? 주말 가족과
함께 경험한 맛있는 간식과 같은 전시였다.
글을 마무리하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몇몇 작품에서 재료들 간의 이질감을 보게
된다. 예를 들어 <놀아줘>의 안장이나 거울 등 몇 가지 요소들이 조형적으로
융화되지 못하고 생경함을 일으키는 아쉬움이 있었다. 아울러 작품의 크기가 조금
다양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크기가 작품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시회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하나의 요인이 되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윤길현의
다소 거칠고 덜 가공된 비릿한 날것의 이미지는 오히려 신선하다. 왜냐하면 그는
아직 ‘청년작가’이기 때문이다.
최정환/ 전주 신흥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원광대학교 일반대학원 조형미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다섯 번의 개인전을 가졌고 현재 전라북도미술대전 초대작가,
무등미술대전 초대작가, 구상작가회원 등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