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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2 | [특집]
'특별함'에 대한 열망, 그 '특별한' 코드 여대생의 일상으로 본 20대 문화
김회경 문화저널 기자(2003-04-18 17:04:30)
비슷한 사회적 경험과 문화적 정체성을 지닌 인구집단을 일정한 성향으로 묶어내거나 이를 통해 사회적 역할과 위치를 규정해 가는 작업은 이미 우리 사회를 읽는 중요한 코드로 자리잡고 있다. 이른바 '세대론'이다. 특히 2002 한일월드컵 광장 응원전과 대통령선거를 거치면서 20대들에 대한 관심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이는 '가볍고 파편화 된 개인주의'라는 20대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일정부분 해소해 내는 결과를 낳았는데, 공동체 문화의 회복이나 자발적인 정치 참여 등에서 고무적인 현상이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는 지금의 20대들에게 '세대론'은 무의미한 구분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특성과 문화 정체성을 읽어내기 위한 기성세대들의 분석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꾸준히 이어져 왔다. 그것은 미래세대에 거는 기대와 그 반대축에 늘 도사리고 있었던 불신이나 불만이 표출되어 온 결과다. 요즈음의 20대들을 보면서 가벼운 '재미'나 피상적인 이미지에 몰두한다며 여전히 우려하는 축이 있지만, 여론을 형성하고 새로운 문화현상과 담론을 생성해낼 줄 아는 20대들의 변화된 모습은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지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최근 들어 유난히 20대들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읽힌다. 규정하기 힘든 다양한 욕구를 지녔으며 그것을 분출하는 방법 역시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는 세대, 요즘의 20대는 분명 풍요와 자율을 누리는 세대다. 그것이 비록 힘들게 싸워 얻은 '투쟁의 산물'은 아니라 하더라도, 그것이 그들을 책망할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시대적인 갈등이나 개인적인 경험은 충분히 21세기의 20대들에게도 시련과 투쟁의 대상이 될 수 있고, 그것은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도 있어왔던 20대들의 과제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 20대들이 맞닥뜨린 사회 현실은 어떤 모습이며, 그 속에서 그들은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있고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 걸까. 그리고 미래세대인 20대들의 날개는 누가 어떻게 달아줘야 할까. 어느 스물다섯 여학생의 일상과 이야기에서 그 단서들을 찾아 나섰다. 치열한 경쟁사회, 안정된 직업만이 살 길 겨울방학이라고 해도 엄씨는 쉴 틈이 없다. 아침 9시부터 12시까지 영어학원에서 토익공부를 하고 점심을 먹고 나면 곧장 도서관으로 향한다. 도서관에서도 역시 영어공부를 한다. 그리고 오후 다섯시부터는 아르바이트로 과외를 하고,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는 이메일 체크와 인터넷 서핑을 즐긴다. 요즘 엄씨의 하루는 그렇게 채워진다. 79년생인 엄씨는 정상적(?)으로 전북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전주교육대학에 재입학했다. 사회 진출이 늦어질 수 있다는데 대한 부담이 있을법 한데, 그렇다고 대단한 결단이 필요했던 건 아니라고 말한다. 남들의 시선도 자신의 판단에 그리 중요한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다. '나이 서른에 내가 뭘 하고 있을 것인가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20대의 투자는 기본'이라고 여기고 있다. "요즘은 전문직 아니면 살기 힘든 세상이잖아요. 고학력 시대에 경쟁은 자꾸만 더 치열해지는 세상인데, 남들보다 더 행복하고 풍요롭게 살아가려면 전문성을 갖춘 안정된 직업이 필수조건이라고 생각해요. 남들보다 사회에 진출하는 시기는 늦어지게 되지만 기회비용이란 게 있잖아요. 얻고 싶은 게 있다면, 포기할 수도 있고 과감하게 투자할 수도 있어야 하니까요." 지금의 20대들에겐 재수와 편입학, 재입학에 대한 부담이 크게 줄어들고 있는데, 실제로 입시학원과 학생들의 전공 전환, 재입학이 잦아지고 있는 상황은 엄씨의 경우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80년대에 대학 '5학년' '6학년'을 양산했던 원인으로 학생운동을 꼽을 수 있다면, 지금은 안정된 직업과 확실한 투자가 대학 5학년, 6학년들을 만들어 내는 주된 원인이 되고 있는 셈이다. 명분보다 실리가 우선이다 전북대에 다닐 때에는 임용고시를 통과해 교사가 되는 게 '단계적인' 목표였다. 원하는 서울 지역에 발령을 받자면 임용고시를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해야 하는데 얼마를 공부해야 치열한 경쟁을 뚫을 수 있을지 불안과 중압감이 이만저만한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그래서 비교적 임용고시가 쉽다는 교대에 다시 입학할 결심이 섰다. 나름대로 좀 더 쉽고 안정적인 길을 찾아 나선 결과다. 물론 초등 교사는 진정 하고싶은 일을 하기 위한 발판이다. 말하자면 '단계적인' 목표인 셈이다. 교대 3학년인 그는 얼마전 사립학교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았는데 어느 쪽이 더 유리할 것인지 타산중이다. 남보다 1년 더 빨리 취업하면 호봉수가 늘어날 것이고, 예정대로 졸업해 국립학교에 들어가면 사립학교에 비해 안정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몇 년정도 안정된 직장에서 돈을 벌게 되면 유학을 갈 요량이다. 대학 교수가 되는 게 그의 최종 목표다. 그런데도 굳이 서울 지역 학교를 고집하는 것은 치열하게 경쟁하더라도 자신을 추동해 주고 자극해 주는 환경이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어엿한 직장인이 되어 있을 때 자신은 몇 년동안 여전히 '학생' 신분으로 지내야 하지만, 20대는 자신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결국 명분보다 실리를 택한 경우다. 샤넬 화장품에 열광하지만 등록금은 자력으로 모범생과 명품은 얼핏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는 보수적인 견해를 들이대자면, 그는 두 대학에서 모두 A학점 이상을 받은 '모범생'인데도 명품에 대한 관심이 높다. 과외 아르바이트로 한달 평균 60만원~80만원 정도를 버는데 얼마전 그 돈을 다 털어 샤넬 화장품을 구입했다. 명분보다 실리를 중요시 여기면서도 수십만원어치 수입 화장품을 주저없이 사는 이유. "자기 만족도 만족이지만 사실 '대외용'이거든요. 친구들이나 남들 앞에서 샤넬 마크 찍힌 화장품을 꺼내 들 때 그 기분 참 괜찮아요. 명품을 가졌다는 게 스스로에게도 큰 만족이구요." 명품을 좋아하는 것은 타인과의 차별화, 즉 남들보다 특별하다는 자기 만족감에서 비롯되는 듯 하다. '나는 나' '난 특별하니까' 식의 광고 카피는 '나'라는 지극한 자기 존재감의 표출, 그리고 특별함에 대한 열망을 절묘하게 포착한 신세대 정서론에 바탕을 둔 것이라는 게 입증되는 대목이다. 수십만원어치 수입 화장품에 열광하면서도 등록금은 혼자 힘으로 해결한다. 장학금을 놓치지 않은 덕이다. "놀 땐 놀고 공부할 땐 공부하자거든요.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소홀히 하지 않아야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들에게서 신뢰를 얻을 수 있고, 그 신뢰가 바탕이 되면 내가 하는 행동에 대해서도 시간을 갖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되는거니까요." 고아는 되도, 장남은 싫다? 연애관도 확실하다. 공부해야 할 시기에 연애로 골머리를 앓거나 방해를 받는다면 그것은 서로에게 일종의 구속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연애도 실리형이다. 배우자감은 무엇보다 경제력이 우선돼야 한다. 그런데 아무리 돈이 많아도 부양가족이 많은 자수성가형은 딱 잘라 '안된다'고 말한다. 농담 반 진담 반 "고아는 되도 장남은 싫다"고 이야기한다. 돈이 많다는 기준은 지극히 상대적이다. "돈이 많다는 기준요? 그건 간단하죠. 남들보다 많이 버는 거예요. 남들이 그렌저 탈 때 나는 기왕이면 아우디를 타고 싶다, 그런 거죠. 솔직히 나는 못 벌어도 남편은 잘 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하다고 해서, 사회나 정치 문제에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한참 지문날인이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을 때, 주민등록증을 재발급 받으면서 끝까지 날인을 거부해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기도 했다. 이번 대선에서도 당연히 투표에 참여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동조를 보내고 개인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부분은 실천해 가고 있지만, 깊숙한 개입은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적극적인 정치 참여나 개혁을 외치는 사람들은 일정부분 자기 희생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촛불시위나 반미운동, 그리고 대학생들의 정치 참여는 당연히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대로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존재들이니까요. 하지만 내가 뭔가를 적극적으로 개혁해 보고 싶다거나 깊이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은 안해요. 왜냐면 자기 희생이 필요하니까요." 지금 그의 최대 고민은 사립학교냐 국립학교냐의 선택이다. 그러나 목표가 있고 스스로 길을 선택해 걸어가다 보면 뭔가가 보이고 될 것 같은 예감, 현재 자신의 20대를 지탱해주는 힘은 그것이라고 말한다. 20대들이 처해 있는 사회 환경과 시대 흐름 속에서 그들의 공통된 정서나 특징을 읽는 유력한 문화 코드들은 늘 존재해 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20대의 성향을 한마디로 단정짓는 것은 무모한 시도일 수 있다. 20대들이 자신만의 원칙과 소신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다는 우려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사회 변화와 함께 복합적이고 다양하게 해석되고 판단되어야 할 부분이다. 20대의 '특권'인 혼란과 방황, 미숙함 등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건강하게 자리잡도록 도와줄 것인가는 바로 기성세대와 우리 사회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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