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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 |
[아시아아프리카 문학페스티벌] 양 대륙의 조우, 새로운 세계관을 모색하다
관리자(2007-12-24 19:33:14)
아시아아프리카 문학페스티벌 양 대륙의 조우, 새로운 세계관을 모색하다 11월 7일 개막해 8일간 전주 일원과 진안 등에서 펼쳐진 2007 전주 아시아아프리카 문학페스티벌이 지난 11월 14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아시아아프리카 문학페스티벌은 지난 80년대 후반까지 활동했던 비동맹 아프리카아시아 작가회의의 정신을 이어 받은 축제로, 지난날 냉전체제의 해체와 함께 단절되었던 양 대륙 작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끊어졌던 연대의 끈을 다시 잇고, 세계 문학·문화·인류 가치의 새로운 대안을 모색한 자리였다.   이번 대회 최대의 성과는 양대륙 작가들의 만남의 의미를 확인하고 이에 대한 후속작업까지 명시한 <전주선언>의 채택.   <전주선언>으로 인해 전주와 한국은 21세기 세계문학의 지각변동을 일으킬 중심지로 부각되었다.   이병천 조직위원장은 폐막 기자회견을 통해 “전주 아시아아프리카 문학페스티벌은 지난날 냉전체제의 해체와 함께 단절됐던 양 대륙 작가들의 연대를 잇고, 세계 문학과 문화, 인류 가치의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페스티벌이었다”며, “그동안 유래를 찾아볼 수 없었던 최대규모의 문학페스티벌이 전주에서 펼쳐졌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밖의 성과도 많았다. 전북대학교 진수당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진안전통문화전수과 등에서 아시아아프리카 42개국 80여명이 참여해 디아스포라, 언어, 여성, 평화, 분쟁지역으로 나누어 열띤 토론을 가졌던 학술대회에서는 동일한 아픔을 가진 두 대륙이 세계 평화를 위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한 자리였다.   ‘작가와의 만남’, ‘특별 토크쇼’, ‘시낭송회’, ‘맞장토론’ 등 작가가 동시대 작가와 만나는 자리를 비롯해, 작가들이 직접 학교로 찾아간 ‘문학교실’은 열띤 호응 속에 모두가 만족할 만한 시간을 가졌다는 평가다.   하지만, 축제 운영에 있어서는 아쉬움이 많았다. 축제의 첫 문을 여는 개막식 행사에서는 조직위원장의 개회사 원고의 누락, 개막 연설자 세 명 중 한명의 발언 사양, 영문자막이나 통역상의 미숙처리 등 실수를 연발해 국제 행사로서는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 진행을 보여줬다.   시낭송회, 작가와의 만남, 젊은 작가 맞장 토론, 작가사인회 등의 특설무대와 국내 30여개 문학출판사의 도서 전시와 할인판매 등 독자들을 위한 대부분의 행사가 벌어졌단 ‘AALF문학관’에서는 홍보부족으로 시민들의 참여가 저조한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김병용 사무처장은 “행사 입안부터 실행까지 전 과정을 문학인들이 수행하다보니 행사운영이나 홍보 등에 있어 서툰 점이 많이 노출됐다”며, “그러나 한국 문학인들이 가지고 있는 새로운 기획연출력을 선보인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시아아프리카 문학페스티벌 조직위는 “앞으로 2년에 한번씩 열리는 비엔날레 형식의 축제를 계획하고 있다”며, “이를 위해 이번 <전주선언> 기초위원을 중심으로 해외 프로그램 실무위원단을 구성 하겠다”고 밝혔다. 실무위원은 차기 대회 참여 작가의 선정과 섭외, <전주선언>을 근간으로 하는 문학상과 번역상 제정 등에 관한 실무 논의, 아시아-아프리카 공동 문학잡지의 발간 검토와 추진, 조직위 확대와 국제기구화 등에 관한 의견 등에 관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학술 연구 기능 강화를 위한 부설 연구원 설립과 이번 행사에 대한 반성을 기초로 하여 필수 요원을 보충하는 사무처 조직 개편도 추진할 계획이다.   이밖에, 2009년 2차 대회를 위해 남미 지역 작가의 참여 유도와 국제기구의 지원 유도 작업을 병행하고, 내년에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젊은 작가 20명을 초청해 레지던스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 작가의 알프 참관기 마음의 고향이 게 어디뇨? 가을이 깊어질 대로 깊어져 낙엽이 시각을 다투면서 떨어지고 스산한 바람 때문에 바닥에 뒹구는 낙엽들이 이리저리 몸을 뒤채고 있었다. 사르륵, 발에 밟히는 낙엽 소리를 기분 좋게 들으며 길 가에 서 있는 관광버스 쪽으로 걸음을 향했다. “이 버스가 전주 가는 거 맞나요?” 그렇다는 기사 아저씨의 대답을 듣고서 나는 근처 편의점에서 오렌지 주스를 하나 사들고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 안에는 아직 아무도 없었다. 모자란 잠이나 자야겠다, 생각하고는 눈을 감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면서 점점 버스에 오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사람들이 속속 도착하고 졸린 눈을 떠 얼핏 보니 한국의 문인들과 더불어 낯선 외국인 작가들의 얼굴도 몇몇 보였다. 얼마 안 있어 시동이 걸리고 버스는 이내 출발했다. 늦가을의 햇살이 내려앉아 버스를 감싸고 있었고, 나는 나른하게 졸고 있었다. 버스는 ‘제 1회 아시아 아프리카 문학 페스티벌’이 열리는 전주로 향했다. 이번 행사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대륙 45개 나라의 작가들 70여 명과 수많은 국내 문인들이 참가했다. 세계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는 서구 문화에 대해 별다른 검증 없이, 또한 서구의 시각에 의해 제3세계라 불리며 변방의 문학으로 치부되고 있는 두 문화권이 서로 만나 새로운 장을 열고 한쪽으로 치우친 문학의 균형을 회복하자는 취지에서 결실을 맺게 된 행사였다. 그래서 내건 주제가 ‘경이로운 충돌’이다. 말 그대로 나라 안팎에서 300여 명의 문인들이 한꺼번에 모여 대규모의 행사가 열리기는 한국 문학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 했다. 그러나 고백하자면, 버스로 이동하는 내내 나는 행사에 대한 얘기보다는 처음 가는 도시인 전주에 관한 얘기를 더 많이 했었다. 내 옆자리에 우연히 소설가 최인석 선생이 앉게 되었고, 그의 고향이 남원이란 것과 전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는 얘길 들었다. 그래선지 전주에 내려올 때마다 고향이란 느낌이 들고 더 편안하게 느껴진다고 하면서 선생은 잠시 어린 시절을 회상이라도 하고 있는 듯, 전주로 향하는 내내 편안하고 정감어린 표정을 짓고 계셨다. 그 얘기에 화답이라도 할 요량으로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으나 부모님이 임실 분들이어서 어릴 적에는 전북 지역에 가끔 왔었노라고 말씀드렸다. 그랬지만, 임실도 서울도 내 고향은 아닌 느낌이었다. 분명 서울이 내가 태어난 곳이지만 어쩐지 고향이라는 단어를 거기에 갖다 붙일 수는 없는 기분이었다. 왜였을까?   생각해보면 고향이란 말이 갖고 있는 느낌은 서울의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고향은 뭔가 풀냄새가 나고, 정감어린 곳이며, 동시에 내가 온 곳이란 속뜻을 갖고 있지만, 서울은 그런 느낌을 주는 곳이 아니니까. 말하자면, 심상 지리적인 측면에서 볼 때 나는 고향이 없는 셈인 것이다. 최인석 선생은 좀 더 나이가 들면 고향으로 돌아갈 거라고 얘기했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 온 곳을 모르겠으니 돌아갈 곳 또한 내겐 없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이제까지 삼십 년이 훨씬 넘는 세월을 살아오면서도 뭔가 안정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지 못하고 늘 허방을 디디고 있는 것처럼 느꼈던 건 아닌지…. 나는 전주에 도착하기까지 내내 그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전주에 도착하자마자 숙소인 전주 관광호텔에 짐을 풀고 일행은 또 버스에 올라 타 전북대로 이동했다. ‘처음’이란 수식어에 걸맞게 전북대에서 열린 개막식은 두 대륙에서 모여든 문인들로 꽉 들어찼다. 배우 문성근씨의 사회로 진행된 개막식은 다채로운 공연과 아시아 아프리카 문학 페스티벌이란 주제에 걸맞게 평화와 어울림, 그리고 새로움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하지만, ‘처음’이어선지 백낙청 조직위원장의 개회사 원고가 누락되거나, 영문 자막처리나 통역에 약간의 문제점이 드러나기도 했었다. 개막식이 끝나고 저녁식사를 겸한 리셉션이 진행된 후에는 여러 문인들이 어우러진 술자리가 전주에서 시작되었다는 막걸리집으로까지 이어졌다.   전날 새벽까지 이어진 술자리 때문에 피곤했지만, 나는 일찍 눈을 떴다. 페스티벌 프로그램의 하나로 마련된 ‘문학교실’ 행사 때문이었다. 이번 알프(아시아 아프리카 문학 페스티벌) 행사는 외국작가들과 국내 작가들이 모여 디아스포라, 언어, 여성, 평화, 분쟁 등 5개의 주제를 가지고 학술 토론을 벌이는 행사를 비롯해, 문학교실과 문학 카페, 문예백일장이나 빨강 우체통 등 일반인들도 쉽고 편하게 참여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마련되었다. 그 중 문학교실은 국내 여러 작가들이 전북 지역의 각 학교에 직접 가서 학생들과 만나 얘기를 나누는 행사였다.   나는 전주시에서 조금 떨어진 완주군의 고산고등학교로 향했다. 직접 마중 나온 고산고등학교 선생님의 차를 얻어 타고 가면서 고산고등학교에 대해 약간 얘기를 들었었다. 연합고사 성적으로 컷트라인을 정하고 거기에서 밀려난 학생들이 전주시 외곽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하며 고산고등학교는 그런 학교 중 하나라는 것, 그래서 학생들은 늘 열패감을 느끼며 학교와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겉돈다는 것 등이었다. 한 시간 여 동안 이어진 학생들과의 만남에서 나 또한 그 비슷한 느낌을 받았었다. 학생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그 시간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제각기 겉돌았으며 그저 어쩔 수 없이 앉아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뭐랄까. 세상이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듯 했다. 그래서 나는 무슨 얘기를 해야 하는지 좀 당황했었다. 그러다 과연 세상에서 소외된 느낌을 저 학생들만 느끼고 있는 것일까, 에 생각이 미쳤다.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다. 늘 세상은 거대한 하나의 시스템으로 굴러가며 나는 거기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부속품처럼 느끼지 않았던가. 또한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이미 세상은 너무나 거대해져 버렸고, 그 속에 살고 있는 각각의 인간들의 가치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 얘기를 해 주었다. 나 또한 사회 부적응자였으며 그 때문에 글을 쓰게 되었고, 글을 쓰면서 나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노라고.   행사가 끝나가고 있을 무렵, 서넛 학생들의 시선이 달라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학생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고 허방을 딛고 있는 듯한 느낌에서 벗어나 마음 자리를 제대로 찾을 수 있을까? 그럴 수만 있다면, 그것이 문학이란 것이 해야 할 역할이 아니겠는가, 하는 어줍잖은 생각도 했었다. 각자 자신 안에 있는 고향을 찾는 것,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좀 더 단단하게 삶을 지탱해 나갈 수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것은 또한 아시아 아프리카 문학이 헤쳐 나가야 할 과제가 아니겠는가 말이다. 서구 중심의 사고방식과 문화 양식에서 벗어나서 제각기 고향을 찾아가 제 얘기를 하는 것…. 그래서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땅 뿐 아니라 우리 자신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게 해주는 것…. 고산고등학교를 나와 다시 전주로 향하면서 나는 그런 주제넘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저녁나절엔 알프 행사장에 들러보았다. 마침 소설가 윤후명 선생의 ‘독자와의 만남 행사’가 진행 중이었고, 문학을 좋아하고 또 문학을 하고 싶어 하는 젊은 사람들이 객석을 채우고 있었다. 그 옆으로는 여러 출판사들의 전시장과 함께 이철수, 남궁산 등의 판화가가 직접 제작한 알프 공식 판화전이 열리고 있어서 나도 남궁산 선생의 엽서 크기만 한 판화 작품 하나를 골라들었다. 주로 가족끼리 그리고 친구들끼리 둘러보고 있는 전주 시민들의 표정은 스산한 늦가을답지 않게 밝았다. 많은 사람들이 행사장에서 직접 작가들을 만나고 책을 구입하거나 판화 작품들을 둘러보고 있는 풍경을 보고 있자니, 이제 문학도 자신의 방에서 혼자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넓은 곳에 나와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호흡해야 할 어떤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행사를 마치고 이튿날 전주를 떠나면서 나는 마음의 고향을 가진 모든 이들이 부러워졌다. 그리고 숙소 앞에 길게 흐르던 천변이 떠올랐다. 천변 양안에는 사람 키만큼 불쑥 자라난 억새가 밭을 이루고 있었다. 늦가을의 풍광이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고향에 대한 느낌이라면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싶고, 마음껏 그 풀냄새를 들이마시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박 삼일 동안이나 전주에 머무는 동안 그곳을 산책 한 번 하지 못한 것이다. 나는 그것이 제일 아쉬웠다. 풀냄새 나고 어느 쪽으로든 조금만 가면 흙냄새를 맡을 수 있는 곳이 아니던가. 그러니, 나는 당연히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부러울밖에. 그들이 딛고 있는 땅이 부러웠으며 그 땅에서 나는 냄새가 그리웠다. 그것은 단순히 특정 지역에 한정된 그리움이라기보다는 내 마음의 고향에 대한 원초적인 그리움일 것이다. 내가 어디서 왔으며, 그럼 과연 나는 누구인가, 라는 중요하지만 우리가 잊고 사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있는 것일 것이다. 나는 대체 어디 가서 내 마음의 고향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나고, 온 곳을 알아야 앞으로 어느 곳으로 나아가야 할는지 알 수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아시아 아프리카 문학 페스티벌에 참가한 문인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다시 물어야 할 질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기왕이면 그 천변에 길게 펼쳐진 늦가을의 장관을 바라보면 더욱 좋지 않겠는가. 다시 말하지만, 천변에 가득 들어찬 억새밭은 그야말로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니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이 아니더라도 소중한 사람과 더불어 거닐어볼 일이다. 거기에 인공의 도로가 아닌 자연의 길이 끝없이 이어져 있으니까…. 김이은/ 1973년 서울 생. 200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작품집으로 『마다가스카르 자살예방센터』가 있다. ● 마당수요포럼 ◎ AALF 아시아아프리카 문학페스티벌 가능성과 방향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작가들이 참여하는 아시아아프리카 문학페스티벌이 지난 11월 7일부터 14일까지 ‘경이로운 충돌’을 주제로 전주에서 열렸습니다.   이번 행사는 그동안 변방으로 인식되던 아시아와 아프리카 두 대륙의 구미를 거치치 않고 직접 한자리에서 만났다는데 커다란 의의가 있었습니다. 특히, 창조적 표현과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정치적 위협과 폭력을 가하며, 성, 인종, 계급, 국적, 종교 등을 이유로 인간의 존엄성을 거부하는 모든 행위의 반대와 다양한 문학을 서로의 언어로 번역하고, 훌륭한 창작자와 번역자에 수여하는 문학상을 제정하는 등 지속적인 프로그램을 개발함으로써 각각의 고유한 언어와 문학, 전통에 대한 존중심을 증진하도록 노력하고자 한다는 내용의 <전주선언> 채택은 이번 대회의 가장 커다란 성과였습니다. 국내에 유래가 없는 대규모 문학행사를 치러내어, 전주와 한국이 세계문화사의 중심에 설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놨다는 점은 전주의 큰 자랑입니다.   쉰아홉 번째 마당 수요포럼에서는 ‘아시아아프리카 문학페스티벌 가능성과 방향’을 주제로 이번 축제의 성과와 앞으로의 과제를 짚어보았습니다.   김병용 아시아아프리카 문학페스티벌 사무처장이 발제자로 나섰고, 이종민 전북대 교수가 사회를 맡았습니다.   “지속을 위한 전제조건 만들자” 아시아아프리카 문학페스티벌은 지난 20여 년간 단절되었었던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작가들의 만남이 다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를 갖는 행사였다. <전주선언>을 채택하고 이를 구성한 기초위원을 중심으로 실무위원단을 구성함으로써, 지속 가능성도 열어놓았다.   하지만, 전주뿐만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그동안 없었던 대규모 축제의 첫 해였던 만큼, 행사 운영에서 많은 허점을 드러냈다. 지속 가능한 축제를 위해서는 선결해야할 과제도 많다.   11월 27일 최명희문학관에서 열린 쉰아홉 번째 마당수요포럼은 ‘아시아아프리카 문학페스티벌 가능성과 방향’을 주제로 이번 축제의 성과와 문제점, 그리고 앞으로의 방향을 모색했다. 먼저 정성엽 전주한옥마을예술공동체 단장이 말문을 열었다. 정성엽 단장은 “축제기간 내내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작가들이 한 자리에 만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가 궁금했다. 이번 축제를 보면서 상당히 낭만적인 사람들이 만든 느낌을 받았다. 왜냐하면 어떤 결론이나 성과를 도출해내기 보다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작가들이 한 자리에 만난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큰 의미를 두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며 이번 축제의 소감을 밝힌 뒤, “하지만, 공공적 개념에서 보자면 작가들의 만남은 작은 부분이고, 작가들이 대중들과 만나는 것에 더 중점을 둬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이번 축제의 두 줄기인 ‘작가대회’와 ‘문학축제’ 중, ‘문학축제’ 부분에 좀더 힘을 실었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김영배 김제지역자활센터 관장은 이번 축제의 홍보 부족을 문제 삼았다. 그는 “아시아아프리카 문학페스티벌이라는 이름 자체가 굉장히 낯설었다. 특히나 언론에는 ‘AALA’라는 이름이 크게 부각되어, 더욱 친근하지 못하게 느껴졌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시민들이 친절하지 못한 홍보 때문에 행사장을 찾을 생각을 못했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번 축제에서 집행위원 역할을 맡았던 안도현 시인은 “처음에는 국내작가들과 독자들과의 만남이나 외국작가들과 독자들 간의 만남 등 다양한 대중행사들을 많이 기획했었다. 하지만, 예산집행상의 문제 등으로 인해 정작 축제 때는 이런 프로그램들이 제대로 운용되지 못했다”고 말했고, 김병용 사무처장은 “이번 축제에서 문제가 되었던 ‘작가대회’와 ‘대중행사’ 사이의 균형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고민해봐야 하는 문제인 것 같다”며, “올해는 조직 면에서 대규모 대중행사를 치를만한 여건이 되지 못했고, 외국작가들이 많이 왔는데 어찌됐건 먼 나라까지 온 이들에게 한번 씩이라도 발언할 기회를 만들어주려다 보니, 작가대회 쪽으로 무게추가 쏠리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김병용 사무처장은 “대중행사는 언론에 발표를 하더라도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힘들다. 언론에서는 작가 쪽에 집중하기 마련이다. 그러다보니 언론을 통해 비쳐진 이번 축제가 작가대회 쪽에 집중되어 나타나게 된 것도 사실이다”고 덧붙였다.   전라일보 송근영 기자는 “이번이 첫 번째 축제임에도 불구하고, 홍보에 비중을 두지 않아 아쉬웠다. 축제를 알리는 홍보물 같은 경우에 있어서도 ‘문학관’에만 치중되어 있었고, 그 외의 프로그램들은 언론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전북매일신문의 장라윤 기자는 “학술대회 같은 경우 관심이 있는 사람들만 가게 된다는 한계점이 처음부터 있긴하지만, 주제에 따라 대학생들의 참여라도 얼마든지 이끌어 낼 수 있었을텐데, 이런 부분을 신경쓰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지금을 인문학 위기의 시대라고 하는데,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대학생들의 참여를 일부러라도 유도할 필요성이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이종민 전북대 교수도 “실제로 이번 축제와 연관 지을 수 있는 학과의 교수들 같은 경우, 같이 협조할 수도 있었을 텐데 축제 측에서 이런 시도가 없었던 것 같았다며 아쉬워했다”고 거들었다.   이런 지적들에 대해 김병용 사무처장은 “대학생들의 참여 부분이나 학교 측과의 협조 부분에 있어서는 공문 등을 통해 협조를 요청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학생들의 참여를 유도해 내지 못한 것은 우리들이 학교나 학생들을 설득하는데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승민 마당 기획실장은 “올해 축제를 통해 드러난 문제점을 토대로 효율적인 인력배치와 운영에 대한 고민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고, 이 지적에 대해 김병용 사무처장은 “시간이 촉박해 단기간에 행사를 치러낼 수 있는 조직으로 꾸리다보니, 조금은 폐쇄적으로 보였던 것 같다. 다음번 행사에는 타장르와의 협조를 비롯해 올해 축제가 가졌던 많은 문제점들을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논의는 다음 축제를 위한 앞으로의 준비로 모아졌다.   이종민 교수는 “알프 행사를 매년 치러내기 힘들다면, 문학관에서 진행되는 시 낭송회 내지는 작가와의 대화 같은 소규모 프로그램을 꾸준히 진행하면서, 이를 통해 축제의 지속성과 인력 인프라 같은 것도 꾸준히 구축해 나가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고 조언했다.   정성엽 단장은 “가장 중요한 것이 올해 문제가 되었던 예산확보인 것 같다. 그때그때 하려고 한다면, 올해같이 예산집행 등의 문제 때문에 또다시 급하게 행사를 준비해야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열리고 있는 비엔날레의 경우를 참조해서 예산 확보와 집행이 어떤 시스템으로 이뤄지는지를 알고 미리 대비해야 할 것이다”며, “2년에 한번씩 축제를 하겠다는 것은 조금더 알찬 축제를 만들기 위한 준비기간을 그만큼 길게 갖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축제의 조직도 상시 조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김영배 관장은 “문학이 주제인 축제이긴 하지만, 다양한 장르가 공존해야 한다. 다양한 장르의 문화예술 자원과 열어놓고 결합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어 놓아야 한다”며, “예산확보의 문제에 있어서도, 꼭 행정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학교나 출판사 등과도 함께 연계해 다양한 예산확보 루트를 만드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종민 교수가 예산문제에 대한 의견을 덧붙였다. 그는 “예산의 상시적인 확보가 중요하다. 전라북도 등에 상설예산으로 배정받을 수 있도록만 해놓는다면, 앞으로 전주에서 축제를 계속하는데 커다란 힘이 될 것이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세금을 쓰는 명분을 잘 정리해 내야 한다. 이번 축제를 통해서만도 충분히 어느정도의 명분은 충분히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향후 전망에서도 이런 명분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면, 상설예산 확보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고 말하며, 이날 포럼은 끝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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