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2 |
[정현숙의 잘 사는 이야기] 도처에 청산, 강호엔 고수들이
관리자(2007-12-24 19:26:49)
도처에 청산, 강호엔 고수들이
완산구청 옆에 계시는 한 백반집 사장님이 김치 넣고 수제비를 끓일 테니 오라고
하셨다. 마침 전주에서 행사가 있는 날, 가을비까지 촐촐히 오길래 우루루 몰려가서
매운 수제비 곱빼기를 먹고 밥까지 비벼서는 너 요만큼 책임지고 나 요만큼 책임지고
해 가면서 몽땅 먹었다.
아, 이 시골에는 어찌 이렇게 도처에 몸 비비고 마음 풀어놓을 데가 많은지. 수제비 한
그릇을 먹어도 차 한 잔을 마셔도 이야기가 있고 어우러짐이 있다. 전라도는
아기자기해서 마음만 먹으면 한 시간 안에도 명승지를 찾거나 뜻을 품고 자기만의
길을 가는 장인들을 만날 수 있다.
이 바쁜 가을, 나도 햇살을 따라 잠시 마음을 내고 간 곳이 더러 있다. 코앞에 있는
내장산부터 꽃무릇 핀 선운사, 절 마당에 바다가 들어 앉은 망해사, 구절초 만발한
이웃 산내면의 옥정호……. 피는 꽃만 쫓아 다녀도 한 해가 가는 줄 모르고
저물어간다.
우리 고장에는 또 소리가 있다. 새로 나온 베토벤 영화를 보고 잊고 있었던 ‘합창’을
다시 맛보던 날, 후기현악사중주의 울림까지 기억에서 살아나 우리 집 창고에 고이
잠자고 있는 LP판들이 무척 그리워졌었다.
그런데 다음 날 정읍 한 켠의 ‘샘소리터’라는 사제(私製) ‘풍류방’에서 한 판
소리마당이 있었다. 이름하여 어울마당. 여기서 나는 베토벤을 그리워했던 마음을
달래고 또 다른 경지인 국악의 정겨움으로 젖어들었다.
정읍의 한 선생님이 20년 풍류방의 꿈을 실어 잘 지은 한옥집에서는 가끔
아마츄어(?) 음악회가 열리는데 그것이 어울마당이다. 회원은 전부 한 50여 명.
어울마당에는 누구나 가서 저녁밥 먹고, 마당에서 구워주는 밤도 까 먹고 차도 한 잔
마시고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연주자는 샘소리터 회원들일 수도 있고 국악원이나 예술학교의 학생들이 섭외되어
오기도 하고 전문 연주가가 소박한 무대에 봉사하고자 오기도 한다. 출연료는 꽁짜.
아마츄어 회원들이라고 공연이 대충인 것은 절대 아니다. 사회 보시는 선생님은
틀리면 또 어떻습니까 하지만 내가 몇 번 가 본 중에는 눈물이 날 만큼 감동적인
공연들이 있었다. 갑자기 오느라 의상도 평상복 그대로 입고 서도창을 했던 분의
소리가 그랬다. 가냘프고 어여쁜 아가씨였는데, 굽이굽이 서도창을 어찌나 절절하게
부르는지 가슴이 다 아렸다.
공후인이라는 전설 속의 악기를 본 것도 이 샘소리터에서 였다. 고구려에서
‘공무도하가’라는 노래를 연주했다고 되어 있는 악기인데, 그리스 신화에나
나옴직한 모양을 하고 있는 이 악기를 작년에 복원되었다며 가져 와서 초연을 여기서
했다.
학교에서 체험학습 한다고 하루 종일 뛰고 온 어진이는 저녁밥 먹고 바깥에서 또래
형이랑 집 이곳저곳을 쑤시고 다니며 놀더니 첫 번째 가야금 산조에서 벌써 깊은
잠이 들어 따뜻한 방바닥에 누워 끝까지 자 버렸다. 그런들 어떠랴.
이번 공연은 나름대로 또 흥미로웠다. 가야금산조(굉장히 고난도의 뭐라는데 곡이
상당히 정교했다는 것밖에는 모르겠다)와 경기민요에다가 판소리, 그 다음에는
신곡발표의 무대였다. 가야금과 가요가 만난 퓨전, 그리고 소리를 배우던 동아리의
데뷔신곡 발표. 젊은이들의 무대는 우리 감성과 약간 다르지만 TV에서나 볼 법한
찌르는 춤까지 곁들여 신선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구불구불한 내장산길도 한결
정겨웠다. 밖에 나다니면 집에 일은 언제 하느냐던 남편까지 왠일로 함께 간
길이어서 더 좋았다.
도처에 청산. 산이 좋아서가 아니라 도처에서 만나는 인연들이 좋아서 하는 말이다.
뿐만 아니다. 나는 요즘 낯선 자리에서는 되도록 조신하려고 노력한다. 예의 때문이
아니라 고수들이 워낙 많아서이다. 뭘 아는 척 하다가 민망할까 봐 조심하는 것이다.
농사 10년 지었다지만 아직 초보지, 된장 10년 만들었어도 아직 헤매는 수준, 요가와
명상하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10여년 어울렸지만 뭐가 된 것 같지도 않고. 그리고
어찌 된 게 10년 주기로 길을 바꾸며 사는 통에 지금쯤 수십 년 한 길을 갔으면
나름대로 갖추고 있을 내공이 갖추어질 겨를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골에서는 뭐 하면 척 나오는 대가들이 도처에 있다. 이 시대는 모든
분야의 잘난 사람들이 수도권에서 책도 쓰고 글도 쓰고 말도 하지만 그 실상은 우리
삶의 밑바닥 시골 사람들에게 있는 것 같다.
몇 년 전 정읍 소성 부근에 우연히 갔던 한 조그만 시골집의 풍경이 떠오른다. 지나는
길가 정말 조그만 집이었다. 집에 붙어있는 바위가 더 클 정도로. 주인 할머니가 안
계신 그 집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바깥벽에 못이 쳐져 있고 몇 개의 고리가 있는데,
나는 내 평생 그렇게 닳아 있는 호미와 칫솔을 본 적이 없다. 해마다 몇 개씩 사서
건사도 잘 못 하는 내 호미가 얼마나 부끄럽든지.
할머니의 호미는 너무 닳아서 이미 호미의 기능을 할 수 없는 지 오래 된 수준이었다.
칫솔은 뿌리가 보일 정도로 닳아서 그 역시 치솔로도 솔로도 쓸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런 물건들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그것들이 모두 아무데나
던져진 것이 아니라 깨끗하게 씻어져 금방이라도 쓸 것처럼 제자리에 걸려 있다는
것이었다.
어제는 우리 집 밭일 도와주는 아주머니가 오셨는데, 차 드세요 했더니 척 앉아서
차를 내시는데 품새가 보통이 아니었다.
우리 비닐하우스 옆에서 농사짓는 그 동네 옛 이장님은 백여시가 그냥 백여시가
아니라고 하셨다. 여우가 오래 살면 백여신디, 농사도 오래 지은 사람이 백여시라서
오래 농사지은 사람이 하는 걸 잘 보라는 뜻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분이 농사짓는
걸 보면 두 내외분이 하루도 쉬지 않고 움직여서 항상 우리보다 한 박자 빨리
준비하신다.
그러니, 누구 앞에서 쉽게 아는 척 할 일이 아니다. 생태가 뭔지도 모르는 할머니가 집
안에 바위를 들여놓은 채로 사시는 그 생태, 밭고랑에서 험한 일을 하다가도 탁 털고
앉으면 아름답게 차를 낼 줄 아는 아주머니.
이 소박한 고수들 뿐 아니라 전라도 시골의 도처에는 무림처럼 정말 고수가 많다.
뭔가가 누군가가 필요해서 찾아보면 언제나 멀지 않은 곳에 누군가가 있었다. 청산을
찾고 강호의 고수를 찾는 것이 시골살이의 또 한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