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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 |
[명인명장] 내가 살아온 세상
관리자(2007-12-24 19:24:18)
짚신 삼는 노인 - 김형철 할아버지 “저거 하나 맨들라믄     하루 죔드락 맨들어야혀” 구술  김형철 ㅣ 정리  최정학ㅣ 사진  유백영 墜茵落   (추인낙혼). ‘한 가지의 꽃잎이 바람에 날리어, 방석 위에 떨어지기도 하고 뒷간에 떨어지기도 한다’는 뜻으로, 운명에 따라 처지가 달라지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짚풀에게도 운명이 있나 봅니다. 여름 내 한자리에서 몸을 비볐을 짚풀들도, 어느 것은 거름이 되기도, 또 어느 것은 소의 여물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 어느 것은 장인의 손기리을 거쳐, 짚신이나 망태기가 되어 전혀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도 합니다.   전주 아중 저수지 너머 깊숙이 들어선 호젓한 마을, 왜막실에 김형철 할아버지는 살고 계십니다.   김 할아버지의 집 마당 여기저기에는 올해 수확되었을 짚풀들이 널려 있습니다. 집 바로 옆 텃밭 한켠에 세워놓은 아담한 비닐하우스는 김 할아버지의 작업장입니다. 마당에 말려 놓은 짚풀들은 비닐하우스 안에 들어가 김 할아버지의 손끝을 거쳐 전혀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김 할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 미투리를 직접 삼아 신었다고 합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손재주가 좋았던 아이는 그냥 당연히 그런 줄 알았습니다.   이제 그의 나이 여든여섯. 이제는 백발 성성한 노인이 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짚풀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 넣는 일로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구이 살다가 그래가지고 거그 있다가. 저기 구이라고 가믄 문정핵교라고 있어, 그 안에 그 동네서 살다가. 도로 인자 이꼴짝(왜막실)로 들왔어. 인자 여기 들오기 전에 거기 일본사람이 있었는디. 울아부지가 일을 잘했거든. 쟁기질을 잘했는디. 쟁기질을 하는디, 질어. 그 일본사람 논이 질어. 여덟마지기 논인디 지다라녀. 그때만혀도 황소로 가는디. 저리 갔다가 이리오믄 일본사람이 여기 논두렁 와서 쪼그려 앉았다가. 저그서 이리 왔다가 또 저리가믄 또 그리 가서 주저앉고 그래쌌드랴. 조선말을 잘 못했어 그 영감님이. 아들은 조선말을 잘했는디. 낮에 점심을 먹고 그러더니, 논 열두마지기를 지라고 줘서, 거그서 인자 논 열두마지기를 지면서, 농사 지으면서 인자 원세. 그때 한마지기에 한섬썩이었어 세가. 인자 주고 쪼께 남은 것은 아부지하고 나하고 내 동상하나하고 어무니하고 묵고 그러다가.   인자 일루 이사온게 아부지가 쌀을 짊어지고 와서 여까지 들이네. 할머니 할아부지가 여기 계신게. 그러고 인자 동상이 있고. 농사짓고 또 보리농사 지믄 또 보리도 갖다주고. 그리된게 우리 작은아부지는 머리가 좋은 양반이라, 소를 내다가 논 갈아주고, 장작을 패서 맨날 짊어지고 팔고 해서는 돈 쪼께 장만해서는, 너마지기냐 너마지기하고 집 한채 사가지고 저기 삼례로 이사를 가버렸어. 작은 아부지가. 그거 때문에 우리아부지하고 여기 들와서 살게 되았지.   우리 작은 아부지는 인자 거가서 소를 한 마리 사가지고 인자 논 갈고 밭갈고 논 갈고 밭 갈고 그래싼게 아 차차 차차 늘어나 작은 아버지는. 그래서 인자 거그서 괜찮게 살다가 작은 아부지는 어렸을 때부터 속병이 있었는디 그 뒤로 얼마 못살거 돌아가시고. 얼마 못살고 돌아가셨는디. 우리 아부지는 야든야닯살에 돌아가시고, 우리 할아부지는 야단아홉에 돌아가시고, 우리 할무니도 야든아홉살에 돌아가시고, 우리 어무니도 야든아홉살에 돌아가시고. 인자 내가 야든 여섯 살이네 지금이. 그래서 지금 이러고 있는디. 내가 오남매여. 아들 삼형제에다 딸 형제고 그런디. 지금 우리 큰 아들은 제주도로 가서 처녀하나 만나갖고 와서 지금 저 아중리에 살아, 아들 삼형제 낳고 살고. 못허는 것이 없어. 아주 거참 조각쟁이야. 다 맨들어. 돌로 깎아서 맨든 것도 있지. 막대기 깎아서 맨들지. 여그도 울 아들이 맨든 것이 만어. 지금은 집 지으로 댕겨. 엊그저께는 저그 저, 여그서 시간 반이나 걸리는 데 가서 방둑 놔주고 왔는디, 구들장. 구들장 놔주고 왔어.   어려서서 울 동네에 농악이 있었거든. 우리 동네가 네 개 부락이여. 이 꼴짝이 네 개 부락인디. 근디 여기 농악이 두 개가 있어. 여그서 아홉 살인가 구이 갔다가, 열여섯 살인가 먹어서 여그 들왔을 것이여. 들와가지고는 그때는 인자 어렸응게 어른들 농악하는 것을 봤거든. 어른들 고깔질 하는 것을 본게 나도 모르게 그런 것을 연습하고 버릇이 되았는게벼. 아 그래가지고 누가봐도 고깔질을 잘하고 그런게. 인제 동네가 인자 장구치는 사랑 꽹메기 치는 사람이 있었응게 그양반들이 치면서 오라고 그래. 그래서 너 처라 그래. 아 글믄 그 양반들하고 치믄 잘하거든 그렁게 잘한다 잘한다 하믄서 너 어떻게 어떻게 해라. 근디 그것도 순서가 있거든 농악도 순서가 있는 것이여. 보통 그냥 치는 것인줄 알아도 농악도 순서가 있고 고깔 돌리는 것도 순서가 있는디.   인자 전주서 굿을 헌다. 일본놈들이 싱가폴 함락했다고 그래가지고, 그 치로가자 가서 일등하믄 돈 얼메 찾은게 거 가자, 그래가지고 그때부터 발을 들여놨거든. 그래서 전주가서 점드락 치고 가가지고 그 뒤로부터 참 굿만 칠라믄 나를 찾으러 댕기네. 우리동네도 그때만해도 사람이 참 많았었어. 한 오십명 되았어 청년들이 우리 네 개 부락에서. 그래가지고 네 개 부락에서 건립을 할라는디, 둘밖에 없어, 나 하나하고 다른사람하고 둘밖에 없어. 그런디 굿을 할라믄 사람이 많아야 되아 한 7,8명 되아야 되아. 그래야 굿판이 어울리거든. 그서 젊은 사람들 다 불러다놓고 대갈빡에다 그걸 뒤집어 놓고 돌리라고 헌게 다 못돌려. 이 양쪽으로 돌려야하고 오른쪽으로 돌려야하고 왼쪽으로 돌려야 하고 에려워 그게 근디 한쪽으로 돌리는 사람도 없어.   인자 그러고 지냈는디, 정월달 되믄 요 아랫사람이 자꾸 오라고 글믄 우리 부락서 둘이 가. 근디 다른 사람은 외상모밖에 못했어. 외상모 한쪽밖에 못돌렸다고. 한쪽으로밖에 못돌렸다고. 아 그래그저 댕기다가 또 가고 또 가고 그런 것이 그저 늙도록까지 댕기게 되고 있당게. 돈도 못받고. 그러다가 때가 되믄 농사 짓고, 나무나 해다 팔고. 또 날궂으믄 나무 짊어지고 시내나가네. 시내 나가는디 재수가 있으므는 가다가 금방 팔리고, 재수가 없으므는 안팔려.   모집이 나오는디, 제비를 뽑아 한번은 여름인디, 인자 나무를 솔가지를 쳐다가 묶어가지고 허청에다가 쟁여놔. 쟁여놓으믄 이듬해 되믄 새파래 말라서 짐짝 같이 생겼지, 말라가지고. 근디 이놈이 넉다발이믄 한짐이여. 넉다발이믄 한짐인디, 그놈을 짊어지고 시내를 가네. 근디 이것이 개법도 안혀 무거. 무거. 그놈을 짊어지고 시내를 갖단 말이네. 근데 아 이놈으거 누가 사는가. 아침밥 먹고 갔는디, 가가지고 시방 동부시장으로 해가지고 거그서 안팔린게, 그 전말로 오거리라고 해가지고 그전 정거장 있는디 저 유곽있는디 해서 완산정거장으로 해서, 남부시장으로 남문 밑으로 돌아댕긴게 아 사야지. 해가 넘어가는디 아 울었네 울어 팔리든 안허고. 그러다가 팔린 것이 저저 멋이여, 숲쟁이라고 해서 거그까지 갖다주고. 지금 말하자믄 예수병원 밑이여.   거 꼴짜기 까지 갖다주고 와갖고 밤중에 혼자. 지금인게 질이 이렇지만 그 전에는 댕기는 질이 쪼그만 했었거든. 아 근디 거그를 혼자 오는디 아 뭣이 시커먼 것이 앞으로 오네. 어쯔케 무섭든지 막 고함을 질렀더니. 개라는 놈이 쫓아왔던 개비여. 그래가지고는 희떡 비켜서 갔는디 집에와서 본게 목이 뻣뻣혀 괴함을 어떻게 질렀던가.   그러고 있다가 일본놈들한테 붙들려 가지고 평양북도 갔었어. 채굴하러 탄광에 갔었어. 무연탄. 거그가서 한 구멍에 사람이 여섯이 들어갔는디, 여 동상사람 삼례사는 사람들이 모여가지고 일을 하는디. 굴 속에 들어가서 파 들어가는디, 위에서 푹 빠져가지고 이렇게 메워왔어. 이걸 파내랴. 굴이 질어. 굴이 질은게 옆구리를 가깝게 뚫을라고 했는가벼. 이놈을 파낼라고 하는디, 질이로 보믄 섯길 이상이나 되아. 짚어 그렇게 높드라고. 섯길이믄 지금 열여덟자 아녀. 그래갖고 요리 뚫고 들어갈라고 하는디, 들이밀믄 다다다다 뚫고 들어가는 것이 있어. 근디 여섯이 들어갔는디 다 못하고 나 볶에 못허네. 이놈을 대고 있으믄 몸이 막 울린게. 그렁게 아 다 못혀.   근디 거기에 일본 스파이가 있었어. 돌시마라고 그랬어. 스파이여 말하자믄. 도망갈 사람 붙잡으믄 죽인게 그때는. 나하고 그때 한 오십명이 갔는디, 그중에 한사람이 도망가가지고 붙들려왔는디 어쯔게 그냥 보는데서 맞어. 도망갔다가는 요렇게 맞는다고 보여준거지. 볼짝 할딱 까놓고 그냥 빠따방맹이로 어떻게 때렸는가 앉도 못혀. 안죽을 만큼 맞어. 매칠을 그냥 그렇게 앉도 못허면서도 안죽을라면 밥은 먹어야 할거 아녀. 그걸 본게 아 정 떨어져. 그래가지고는 야 도망가다 그렇게 맞아 죽으나 요행히 살아나가거나 그러고 가자 그래가지고는 여섯이 도망을 갔어. 도망을 가는디, 아 질을 알아야 빤뜻이 가는디. 밤 새도록 도망가서 길을 물은게 삼십리밖에 못도망왔댜. 이놈을 빤뜻이 갔으면 괜찮은디 돌아서 온거여.   아 그래가지고는 오다가 참 놈의 옥수수 밭에서 옥수수 따서 구워먹고. 그러고 오다가 저 황해도라는데 나 혼차 거그가서. 그때도 오다가 배가 고픈게 밥 얻어먹으로 간다고 둘도 가고 셋도 가고 그렇게 시나브로 다 가불고 나 혼자만 남았네. 그래가지고 저 황해도에 가가지고 밥 얻어 먹으로 들어간게. 아 강냉이만 한사발을 주데. 여그 남도식으로 나중에 밥을 줄란게 해서 먹었는디, 아 세그릇을 묵어도 무뎐혀. 긍게 그게 저녁이었는게비여. 거그서 일 사흘하고 돈 삼원. 그때 일원씩 삼원 벌어가지고. 거그서 또 기와공장 가서 한달 반 일해가지고 돈 육천원 벌어가지고 글로 서울로 그렇게 와갖고 집에와서 있었지. 그때가 내가 열여덟살인가 열아홉살인가 그때 그렇게 먹었어.   그러니 사람이 사람도 안같으고 글고 집에 있응게 또 인자 모집이 나오네. 동네에서 보내라고. 모집이 나왔는디, 여 뒷골 사는 성철이라는 사람하고 둘이 제비를 뽑아. 다른 사람 다 뽑고 똑 두장이 남았는디 두 장중 하나가 뽑히믄 인자 가는판이여. 근디 그사람은 시내로 나가서 안왔고, 성님인디 성님이 대리로 뽑았는디 그사람이 그걸 뽑았네. 그래가지고 그사람이 가가지고 중간에 도망해가지고 어디가서 죽어부렀디야.   아 그러고 있는디 일본놈들이 또 가자고 해서 붙들려가지고는 여수로 해서 항구로 해서 저 일본 북해도까지 갔다왔네. 북해도까지 삼년만에 오는디, 거그는 어떻게 갔냐고허니. 그때 내가 삼월달에 여그서 갔는디, 닷샌가 이렌가 걸려서 갔어. 그때만해도 간게 대판이라는데가, 일본 대판이 얼마나 좋길래 돈벌러 가냐는 노래도 있었거든. 가본게 대판이 부산마냥으로 이 바닷가에 있드만, 근디 큰 굴뚝이 얼마나 많이있다고 해서 봉게 그러든 않고 드문드문 그래도 여러개 보이데. 그로고 지내다가 또 동경에 갔는디, 이층삼층 집은 없고 단층으로 해서 새까매서 들판이여. 끝이 안뵈아. 그때 본게.   차탈라고 전거장가보믄 철이 그냥 사방으로 깔려가지고 어디로 가는지도 몰르겄어. 동경간게 우리 한국 식당으로 치자믄 4인상 있잖어. 근디 둘이 먹는 소반 딱 한국상 같은디 그렇게 차려주더라고. 근디 일본 여자들이 ‘어서오세요. 어서오세요’ 그래쌌드만. 글서 거그서 하룻저녁 밥 먹고, 하룻저녁 자고 바로 차타고 인자 광산 거그로 가는디. 가다 이러고 본게 산이 희끗희끗 혀. 그래서 여그는 산이 백산이 있는게비다. 그랬더니 가다가 이렇게 본게 희뜩희뜩헌 것이 차창밖으로 지나가. 눈이여 눈 그것이. 여그서 삼월달에 갔는디, 삼월 스무사흘날 갔어. 근게 삼월달이 지났지 한 사월달쯤 되았지. 그런디 거그 가서본게 눈이 꽉 차있어. 산이고 뭣이고 눈이. 음력으로 사월달인디.   그래가지고 눈위에서 한달간 훈련 받고는 거그서 뭔 일을 했는고허니. 천지가 뒤집어 졌다고 개벽됐다고 땡이 할딱 뒤집어 졌다고. 독을 캐고 흙도 캐서 차에다 실으믄, 거가 쇠하고 납하고 있어. 그걸 녹혀가지고 쇠도 내고 납도 내고 허는거여.   거그서 비가 한번 오기 시작하믄 밤낮으로 비가 오네 그냥. 그라고 눈이 한번 오기 시작하믄 밤낮이 없어. 그러니 사람이 사람도 안같으고. 긍게 눈이 한번 오믄 첫 번엔 쪼깐씩 오지만 나중에 눈이 오믄 요렇게 치고 요렇게 치고 허므는 시방엔 이렇게 댕기고 허지만은 나중에는 치고치고 해서 너구리마냥 눈 속에 길을 내고 댕겨.   근디 지붕은 뭘로 하냐하믄 여그마냥 기와로 하는것도 아니고. 거그는 잘 지은 집은 함석, 함석으로 지은 집이고. 그 다음은 이 얇은 송판으로 대놓고 비늘 껍데기로 대패 껍데기, 밥도 싸먹고 그런디 요 딱 대패껍데기 같은걸로 손바닥만썩혀. 요놈을 달아. 이 안에다가 화덕불을 피워. 석탄을 얻어다가. 그러믄 눈이 자꾸 녹아 내리지. 그런디 함석으로 지은 집은 눈이 오믄 치워야혀. 짜그러져버린게. 아 눈이 그냥 며칠이 오는지 몰라.   그래도 가서 삽질만허고, 삽질만허고 흙만 파주고 그러고 있다가 해방된 후에야 와가지고 그대로 있응게. 6.25가 왔잖어. 6.25가 돌아온게 아 자꾸 노무자로 자꾸 가자고 해쌌네. 노무자. 저 군인들 차 타고 댕기면서 밥 갖다주고 심바람꾼으로 쓸라고. 그래도 내가 형제만 있으믄 가겄는디 내가 외아들이라, 이 새끼들도 없고 헌게. 이놈을 안갈라고 이리 피해댕기고 저리 피해댕기고 참 별짓 다했네. 그러고 이제 저녁에 노무자 잡으러 오네 허는 기분이 들믄 숨어버려. 그럼 이놈들이 와가지고, 군인들은 후퇴허고 유격대라고 있어. 이 꼴짝 지켜주는 유격대. 그 사람들이 이번에는 노무자 몇 명 잡아올리라 그러믄 지서에서 또 몇 명이 올린다 말여. 그러믄 이 꼴짝에 사는 놈들이란 말이여. 그럼 누집에 누가 있고 누 집에 누가 있는지 뻔히 알잖어. 아 그런게는 인자 그래도 안잡힐라고 그 사람들 데려다 술도 받아 맥이고 술도 사주고 담배값도 주고 헌 놈은 안데려 가고 그것도 저것도 안허므는 잡아가네.   아 그래가지고는 그것도 저것도 못허고 있응게 이놈들이 잡아갈라고 애를 쓰네. 그려 이리저리 피해댕기다가 난 노무자를 안갔지. 노무자를 안갔는디. 그 뒤로 인자 가만히 있응게 누가 전주로 일하러 가자고 그래. 우리 동네 사람이 그네 외삼춘네 집을 짓는디 달구방아를 짓는디 그걸 지러 가자고 그려 그래서 인자 거그를 갔단 말여 갔는디. 인자 주인 맡아서 짓는 사람이 또 델꼬왔어 달구방아 짓는 사람들을. 또 여그서 몇 명이 가고. 그래가지고는 인자 주인 맡은 목수가 데리고 온 사람들을 쓴다고 인자 우리는 가라고 그러네. 인자 그때만해도 노무자도 가끔 잡고 그런 판이여. 그래서 댕길라믄 조심스럽게 다니던 판이여.   목수일 톱질이라는 것은 참 에로워 근디 그 목수라는 사람이 여그서 살던 사람인디 그 사람이 우리아부지랑 계군했던 사람이라 우리 아부지랑도 잘 아는 사람이여. 그래서 내가 ‘선생님, 내가 선생님한티서 일좀 배워야겄어라우’ 그랬더니 그사람이 쳐다보더니 ‘그려 한번 해봐라. 너 아무날 아무 때 오니라’ 그래서 사흘 나흘만인가 그래 갔어. 거그를 인자 넘한테 돌치하나 얻어가지고 갔어. 일을 시키는디, 톱으로 나무를 자르는디 금을 그려줘. “요리는 파내고 요리는 썰어라. 요리는 썰고 요리는 파내라” 그려. 그래서 거그서 일을 했단 말이여. 거그서 일을 하는디 영감들이 한 너덧이 어울려서 일혀. 아 일을 해야 삯 준다고 하니께. 목수일은 암것도 못혀도 배우로 들어가믄 품삯을 쪼깐씩 주는 것이여. 근디 가서 일을 하는디, 뭐 하는거 보므는 뭐 허는 것 같은게비여. 톱질을 허고 있으믄 “너 언제 뭐 톱질좀 해봤냐” 그려. 내가 나무 끊어서 장작 패는 톱질은 해봤지 그런디 이 목수일 톱질이라는 것은 참 에로워. 왜 그런고하니, 먹줄로 그려놓은 것을 그놈을 쪼끔 땡기고 썰어야지 아주 냄겨도 못쓰고 썰어도 못쓰고 그려. 이게 짜루믄 구멍이 뻔혀. 엄헌테 썰어노믄. 글고 더 썰어노믄 구멍에 들어가들 안혀.   그렇게 참 몇 해를 하다가 인자 또 그래도 윗사람이 마음씨가 고운 사람은 품삯을 좀 주는디, 하나도 안주데. 먼저 배운 사람도 우리아부지가 나 갈쳐주라고 여그서 배추 한보따리씩 짊어주고 그랬어도, 내가 별거 없어도 니 품삯은 주마 그랬어도 하나도 안주고. 다른 사람한티도 하나도 받도 못허고 다 띠어 버리고, 그사람도 죽어버리고. 긍게 삯도 받도 못허고 똑 헛질만, 넘의 일만 했네.   이거 삼을라믄 참 골치아퍼 짚신은 내가 어려서부터 내가 신을 삼아 신었어 짚새기굴로. 아모 내가 신을 삼어 신었는디. 왜 내가 지금 신을 삼고 있는고허니. 참 공설운동장 가서 신을 삼고 있응게 영감들이 와서 옛날 신이라고 하믄서, 옛날 미투리 신을 하나 사 신어야 겄는디 그런거 다루는 사람이 없다고 하드라고. 그래가지고 육날미투리하고 신을 하나 삼는디. 그거 참 에루워. 아 그것 삼아볼라고 하는디 천지 삼을 수가 있는가. 그래가지고는 잘 삼는 사람한티 가서 물어볼라고 해야 물어볼 수가 있어야지.   신날이 여섯 개라 육날 미투리라고 허는디, 여섯갠이 요 가운데 치를 어따 박을줄을 모르겄어 어따가 박는지. 벨스럽게 다 해보다가 내가 생각을 해보다가 여그서부터 삼는단 말이여. 여그서 넣어가지고 삼는디, 이거 안갈쳐주믄 몰라. 절대로 몰라. 그래가지고 몇켤레를 삼었다가 풀었다가 해서 삼는디. 신촉하나 비비는데 부지런히 해야 이틀걸려. 부지런히 이틀걸려. 젊어서는 손바닥에 심이 잘들어가는디 지금은 안돌아가 미끄러져. 그래서 침발라 가지고 하믄 쥐란 놈이 다 뜯어먹어. 그렁게 침 안발르고 물 발라서 이놈의 것을 할랑게 이틀걸린다 말이여.   그래가지고는 경기장, 거그를 갔어. 거그를 갔더니 “얼매요?” “4만원 주쇼” 그랬더니 어떤 영감이 가믄서 그래 “거 도둑놈이네” 그러더라고, 그래서 내가 그놈하고 죽일라고 쌈을 할라고 그랬는디, 옆에 사람이 어떻게 말려가지고 내가 말았는디. 아 이거 4만원이라믄 비싸지. 근디 이틀걸렸단 말이여. 이틀. 재료값도 든단 말이여. 이틀 걸려서 4만원 받으믄 재료값 빼고 뭐가 남겄냔 말이여. 뭔 돈벌이가 되냔 말이여.   그렁게 이것을 안허고 이것을 해봤자 알아주는 사람은 알아줘. 사다 신는 사람은 자꾸 사다 신고 그려. 금년에는 또 아 영감 자꾸 찾아댕기다가 인자서 만났다고 하믄서 몇 켤레는 사갖고 가고 그렸어. 군말도 없이. 아 그러고 서울서도 또 사가고.   지금 맨들고 있는 것은 지게, 삼태기, 바작, 그러고 물레, 물레허고 여그 저 장구채, 우렁징채, 우렁같이 꾸부러 졌잖어. 긍게 이게 옛날 징채여. 이걸 찾는 사람이 있더랑게. 왜 이런걸 안만들었냐고. 찾는 사람이 있어서 맨든 것이여. 그러고 신, 미투리 신, 미투리 신허고 꽃신. 미투리 신도 육날 미투리 신도 있고. 육날 미투리 신도 처음엔 안삼을 판인디, 이거 삼을라믄 참 골치아퍼. 여기 몇 번 돌르믄 여그는 또 몇 개. 요놈은 쩍고 요넘은 많고 하믄 안맞어서 안되아. 안맞은디 맞출라고 자꾸 잡어댕기다보믄 자꾸 쪼그라들어서 짤룩해지고 그런 것이여. 이거 삼는디도 올애기 이거 하나만 잘못 넣어도 틀리고 틀리고 한단 말이여. 똑같이 잡어야 그래야 좋제. 긍게 이게 까탈스럽당게. 이것도 아는 사람은 알지만은 모른 사람은 몰라. 긍게 그래서 이걸 삼어 봤는디, 요놈은 바닥만 맞으믄 여그 끈만 쪼금 잡아댕기믄 맞어, 또 쩍으믄 쪼끔 늘리믄 맞고 그러제. 이거 운전하는 사람들이, 기사들이 신으믄 참 오래신어.   글고 저 금구에 사는 어떤 여자 중이 한번 찾아왔어. 찾아와가지고, 풍남제전에서 한 켤레 사갔는디, 일년만에 왔어 또. 일년만에 와가지고, 아 신에다가 이놈을 고무 바닥을 댔어 여따가. 고무바닥을 대고 왔는디, 암상토 안혀 일년을 신었다는 디. 그 사람이 무좀이 있어가지고 다른 것은 못신고 똑 이것만 신는댜. 꼭 여름만 되믄 이것을 신는다고. 그 후로 또 4년 만에 왔는디, 신이 그냥 바들바들 허드랑게. 이것도 떨어지고 저것도 떨어지고 해서 내가 또 고쳐주고 그랬는디. 고무바닥을 대서 암상토 안혀.   그래서 그 여자가 다섯켤레는 사갔는디, 인자 그놈 갖다가 또 몇 년을 신을지 몰라. 바닥에 고무만 대믄 암시랑토 안해. 구두방가서 바닥 대주라고 하믄 그냥 달아줘. 이놈 신으믄 땀이 안낭게. 암만해도 구두보담은 양발이 쬐까 쉽게 떨어지지 암만해도. 사는 사람이 더러 있어.   근디 지금은 전주라는디가 지금 살기가 참 좋다고 왜 그런고허니 여자들이 장구채를 많이 사가. 옛날같으믄 어디 장구치고 머덜 시간이 있간디, 그러지만은 다 여유가 있응게 그런거 아녀. 긍게 테레비를 보믄 여자들이 먹고 운동허고 많이 허잖어. 이 긍게 먹고 살기가 좋은게 그러지. 지금 살기 참 좋아. 우리 어려서보믄 참 나락이 없어가지고, 보릿고개 그때 어떻게 고생시럽던지 쑥 안먹고는 못살었어. 어디고 방방곡곡이 쑥 뜯어다가 개떡 쪼개 해서 먹고 맹물에다가 갈아서 먹고, 방아 찌믄 쪄(겨)있잖어. 쪄 그놈을 몽땅 쪄, 이놈을 개떡 마냥이나 쪄가지고 그거 한 두개 먹고, 쌀 쬐께 구해가지고 그거 국물 내가지고 그거 쪼께 마시면서 살고. 그렇게 산 사람들이 우리 또래, 우리보다 너뎃살 덜묵은 사람, 서너살 더 묵은 사람들이 참 고상 젤로 많이 했어. 지금 말하자믄 70 이짝 저짝에서 90 이짝 저짝. 그게 고상 젤로 많이 했어. 먹을 것도 못먹고 일도 그저 죽게 허고. 일본놈들헌티 죽게 허고.   노무자 잡은다고 해가지고 이놈들이 와가지고 안열어 본데가 없어 그냥. 저런 뒤주까지 다 뒤지고. 여그 저그 옥상에 올라가믄 황이 있어. 거그다가 곡석을 가시리 해자기고 우리어무니가 그리 하나 담뿍 쟁여놨었어. 아 그런디 이놈들이 와서 노무자 잡을라고 와서는 심지어 황짝까지 다 뒤졌는게비여. 긍게 안잡혀갈라고 황속에도 숨는 사람들이 있었는게비여. 긍게 이놈들이 거그를 뒤져보는디, 딱 열어본게 나락이 있어 그러믄 또 그 밑이가 사람이 있는가 찔러본당게. 아 그런데 하룻밤 자고 일어나본게 우리 어무니가 그려. 아무것이야 우리 곡석 다 빼갔다. 그려 가서 본게 우리 나락을 싹 다 퍼가버렸어. 나락을 싹 퍼가버렸어.   세월을 보내고 앉었지 앞으로는 하고 싶은 거는 없지. 헐일도 없고. 이런 것이나 하까. 인자 추워서. 여름이 되믄 여가 또 뜨겁네 여가. 여름엔 뜨겁지 겨울엔 춥지. 그러니 인자 추우믄 못허지 이것도. 내가 생각헐때는 허다못해 덕석. 덕석 알어 멍석. 덕석도 찾는 사람도 있더라고. 그런디 그것도 못헐 것이. 얼마가 되든지 해달라는디 덕석 맨드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라. 그걸 맨들어볼까 어쩔까 하다가도. 그럴라고 짚도 몇다발 말려놓고 그랬는디. 그걸 맨들라면 널룬데서 맨들어야 하고, 여름에 인제 7월달에나 인자 그때 맨드는 것이여 그게. 널룬디서.   그런디, 시방은 추워서도 못허고. 지금 여러 가지거 내가 생각허는 것은 그저 저런 몽태기 같은 것이나 맨들까. 인자 저런 것도 꽃놔서 잘맨들라믄 품이 많이 드는디, 내가 저것도 나이론으로 색색으로 쬐끄만허게 맨들었어. 손바닥만해. 그래도 하나 맨드는디 하루 죔드락 걸려. 그래서 그걸 갖고 나갔는디, “얼매여라” “오천원 주쇼” “비싸구만” “그럼 사천원만 주쇼” 그래서 몇 개 팔었지.   색색으로 맨들어서 보믄 좋지. 여자들은 보믄 “아이고 이거 이쁘다 아이고 이쁘다” 그러는디. 하루죙일 하나 맨들어서 사천원썩 받고 팔지. 긍게 이런거 저런거 맨들어서 팔고 그러는디. 중국산이 들어와서 싸서, 그런거 알아주도 안허고.   저놈은 채반인디, 근디 저것도 저 날 박는 것이 일곱 개를 박어야해 원칙이. 일곱 개 박어야 허고. 그래서 칠생채반이라고 하고 그려. 근디 저것다 해서 적을 뭍혀가지고 해서 놨다 먹으믄 배탈이 안나. 옛날 할머니 옛날 어른들 만들어보믄. 글고 꽝기리라고 허는 것은 아홉 개썩이여 날이. 구구는 팔십일개가 되아. 옷을 말려가지고 꽝기리에다가 놔뒀다 입어야 어디가서 시비가 안걸린다고 그려.   긍게 그런줄은 모르고 지금. 저것이 시방 시장에 나온 것은 네 개도 받고 다섯 개도 받고 해가지고 국산 채반이라고 나오는디. 그건 싸. 그건 몇 개썩 안가. 돈 만원이믄 사. 근디 내가 맨들믄 만팔천원, 만칠천원 비싸다 그려. 나는 일곱 개씩 꼭꼭 박아서 만드는디. 네 개나 다섯 개 박아서 만드는 것은 만 이천원 삼천원이믄 사는디, 나는 만칠천원 이만원 돌라고 하믄 비싸다고 그려. 저거 하나 맨들라믄 하루 죔드락 맨들어야혀. 하루 죔드락 맨들어서 만칠천원 팔천원 받아봤자. 그래서 맨들다 말다. 그냥 놀게 없응게 그저 허고 그러지. 암껏도 안허고 있으믄 낮잠이나 자고 그러지 뭐. 시내 나가믄 돈들고. 오고 가는디 이천원이지, 가서 점심 먹으믄 삼사천원 들지. 또 그냥 올수 있가디 어린 것들 사탕이라도 사다줄라믄 돈 만원 들어. 그래서 집이서 세월을 보내고 참 이런 것을 만들고 앉었고. 글서 세월을 보내고 앉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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