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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 |
[문화저널과 함께 했던 내 젊은 날의 추억] 문화저널이 만들어준 두 얼굴의 사진
관리자(2007-12-24 19:15:11)
-문화저널이 만들어준   두 얼굴의 사진 새천년을 맞이하며 들썩이던 1999년 12월 31일, 나는 후배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20세기의 끝이 아니라 20대의 마지막을 남겨놓고 싶어서였다. 문화저널로부터 원고청탁을 받자마자 그때 찍은 사진이 떠올랐다. 그래서 오랜만에 앨범을 뒤져 20대의 마지막 내 모습을 돌아볼 수 있었다.   사진 속 내 모습은 한마디로 촌스러웠다. 그때는 그렇게 멋있게 보이던 생활한복이었지만 지금 보니 어색해 보였다. 문화저널 이름이 하얗게 새겨진 최초의 ‘마이카(my car)’ 타우너는 매달 문화저널 책을 싣고 배부처와 우체국을 돌아다니며 사무실에서 효자노릇을 했다. 하지만 이것도 지금 보니 어떻게 타고 다녔나 싶을 정도였다. 사진 찍는다고 세차까지 깨끗이 했지만 어째 ‘뽐새’가 나지 않았다.   표정은 더 가관이었다. 무표정하니 눈동자도 풀려 보였다. 새로운 천년과 30대의 새로운 잔치를 기다리는 청년의 비장함은 없었다. 잘나가는 애인도 있었는데, 무엇이 그렇게 우울했는지 오히려 슬퍼 보일 정도였다. 20대가 끝나서일까? 밝은 미래가 안보여서? 집도 없이 이집 저집 하루하루 신세지며 사는 것이 서글퍼서? 아니면 월급은 적은데 일은 힘들어서 그랬나? 문화저널에 입사한 지 1년하고도 10개월이 지난 뒤의 내 모습은 이렇게 힘들어보였다. 하지만 사진을 다시 찬찬히 훑어보니 또 다른 내 모습을 찾을 수가 있었다. ‘뽐새’가 나지 않는 차였지만 나는 당당하게 ‘문화저널’ 이름을 좌우옆면과 뒷면까지 아로새기고 시내를 돌아다녔다. 그만큼 문화저널은 나에게 자랑거리였기 때문이었다. 지금 거리를 보더라도 생활한복을 입는 20대를 보기가 어렵다. 생활한복을 입은 내 모습, 저 얼마나 앞서간 패션인가?! 아무튼 남들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사진 속 표정을 보면 무슨 젊은 애가 저리도 심각한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때 나는 그렇게 고민이 많았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문화저널을 위해, 그리고 기자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꿈은 무엇인가? 꿈이 있기나 한 것인가? 이런 고민을 안고 살아왔다. 동료들이 인상 더럽다, 사무실 분위기 험악하다고 말할 정도였으니 더 말해 뭐하랴! 하지만 그런 고민은 지금의 나를 만든 밑바탕이었다. 1999년에 지나자마자 나는 전북대학교 대학원(문화인류학 전공)에 진학하게 됐고, 지금까지 공부를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저널에 근무한 사람은 누구나 이야기한다. 힘들다고, 배고프다고. 그래서 사진을 본 첫인상처럼 우울하고 슬프고 힘들어하는 얼굴로 일을 하게 된다. 하지만 또 이렇게 이야기한다. 문화저널에 있을 땐 참 열심히 살았다고, 무엇인가 끊임없이 하고자 했다고. 그래서 사진에서 비치는 또 다른 얼굴처럼 늘 고민이 가득하고, 끊임없이 자기를 채찍질하는 심각한 얼굴로 일했다고 기억한다. 또한 그 채찍이 지금도 자기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고 모두들 말을 한다. 나도 누구에게나 이렇게 말한다. 문화저널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었다고. 그래서 문화저널에는 늘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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