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2 |
[문화저널과 함께 했던 내 젊은 날의 추억] 내 삶의 뿌리, 문화저널에서의 7년과 바램
관리자(2007-12-24 19:14:28)
(아직 내가 인생을 운운할 나이는 아니지만) 꽃과 가지와 뿌리가 있다면 내 삶에서의
뿌리는 문화저널이다. 나는 문화저널을 통해서 세상을 알았고 사람들을 알았고
문화를 알았다. 그것은 지금도 내 인생의 토양이 되고 있다.
지금까지 내 인생 최고의 자랑은 문화저널의 유일무이한 ‘편집장’이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나를 ‘원편집!’이라고 불렀고 그때 내 손에서 문화저널 10주년과 통권
100호가 지나갔다. 그 문화저널이 이제 20주년을 맞고 있다. 참으로 ‘어지간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학원 박사과정에 막 입학한 조야한 사회학 연구자(지금도 여전히 조야하다)가 첫
번째 했던 기획특집은 ‘6월 항쟁의 사회적 의미’였다.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빨개지는 ‘X볼’ 차는 기획이었건만 편집위원들께서 첫 작품이라고 기꺼이 봐 주신
것이다. 수없이 많은 ‘X볼 기획’에도 불구하고 나는 문화저널에서 원없이 기획하고
원없이 쓰면서 인생을 갈고 닦았다.
편집기획부터 문화강좌, 백제기행, 전시, 공연 등등 수많은 기획물들이 문화저널
사무실을 통해서 들고 나갔다. 편집위원회는 아이디어의 보고였다. 편집위원들
자체가 숨은 명인들이었다. 그들이 만나고 그들이 접하는 인생이 곧 지역문화의
요체였다. 편집위원회를 통해 수많은 명인들이 전주를 찾았다. 나는 그들의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는 스탭이었다.
결과적으로 문화저널을 통해서 나는 지역문화를 만났고, 그들을 통해서 한국의
문화적 저변을 접했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 임동창, 장사익, 슬기둥, 어울림, 임진택,
유홍준, 옹기장이 이현배 등등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 설레는 인물들이 내가
편집장으로 ‘놀던’ 시절에 전주에 다녀갔다. 지금은 스타가 된 ‘화려한 휴가’의
박철민도 문화저널이 주관한 임진택의 연극 <직녀에게>를 통해서 예술회관 무대에
섰었다. 그 무거운 세트를 하나에서 열까지 사람 손으로 들고 높은 계단을
오르내리며 땀방울 흘렸던 시절은 아마 내 삶에서 가장 반짝반짝하는 순간으로 남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은 문화저널에서 있었던 7년(햇수로)의 세월 동안 내가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사랑해주었다. 몸은 고달프고 인생은
가난했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들을 얻었다. 물론
그것은 나 개인에 대한 애정이 아니라 문화저널에 대한 애정이었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래도(!) 나는 내가 사랑받았다고 주장하고 싶다. 그때 받았던 그 사랑이 너무
그립고 애잔해서 그렇다.
백제기행은 일선 실무자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종합예술이었다. 어디로 갈 것인지,
무슨 주제로 갈 것인지, 누구를 강사로 할 것인지 큰 그림이 대략 정해지면, 나는
바빠졌다. 기행을 안내하는 섹시한 카피를 쓰는 일부터 버스섭외와 자료집
만들기까지의 전 과정은 종합예술이었다. 부안의 어느 여관방에서 윤덕향 교수에게
들었던 백제부흥운동의 진실은 지금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내 손으로
고집부려서 기획한 1995년 분단 50주년 특별기획은 사건의 연속이었지만
제주도부터 휴전선까지 하나하나가 짜릿짜릿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추억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끝이 없다. 그러나 문화저널의 20주년을 추억으로
마무리할 수는 없다. 왜냐면 문화저널은 10년 전에도 치열한 전선이었고 지금도
뜨거운 전선의 한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김용택선생이 남긴 유명한 어록, ‘문화는
건설이 아니다’는 지금도 내 가슴에 철학으로 새겨져있다. 진실로 문화는 건설이
아니다. 문화저널 20년은 건설된 것이 아니라 땀과 눈물이 쌓여진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땀과 눈물을 흘렸다. 내가 보기에 문화저널이 지금 긴긴 슬럼프에 빠져
있는듯 보이지만, 문화저널은 충분히 강하고 의미있는 존재다.
문제는 문화저널이 아니다. 문화저널을 둘러싼 시대가 늘 문제였다. 시대가 팍팍할
때 문화저널은 시대의 힘이 되었다. 문화저널이 20년을 버텨온 것은 사람의 힘이
아니라 문화의 힘이다. 어떤 문화도 스스로 자립하지는 않는다. 문화저널의 20년
세월에 대해서 이제 전라북도가 뭔가 태도를 취해야 한다. 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문화저널은 분명히 전북 문화의 한 축이다. 문화저널을 하나의 상수로 보고 그것을
운용하는 관점이 있어야 한다. 문화저널 20년은 지역문화 모두의 것이고 이제 그
대답도 지역문화 전체에서 나와야 한다. 문화저널에 가장 크게 빚진 나부터 고민은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