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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 |
[문화저널과 함께 했던 젊은 날의 추억] ‘집세’에 연연하지 않고 행복했던 이십대
관리자(2007-12-24 19:12:26)
‘집세’에 연연하지 않고 행복했던 이십대 문화저널이 20주년을 맞이했다.   젊은 치기와 거침없는 말발로 사회를 향해 일갈을 내뱉는 김현진이라는 이십대, 당찬 시나리오 작가는 얼마 전 『당신의 스무살을 사랑하라』는 책을 펴냈다. 스무살을 맞은 <문화저널>의 특집원고 청탁을 받고 나서 내 눈길을 잡은 문구가 바로 그녀의 책 제목이다. 사람이든 뭐든 스무살은 충분히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는 세월이다. 문화저널의 20주년과 거의 그 세월 전에 고사동 시대와 중앙동 시대에 걸쳐, 5년 동안 문화저널과 부대꼈던 나의 이십대는 거의 동급으로 중요하다.   <문화저널>은 나에게 많은 것을 준 삶터였다. 남편을 비롯해 내가 맺은 인간관계의 폭은 거의 <문화저널>에서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십여 년이 흐른 지금도 어디를 가던 그 때 그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곤 한다. 아니 거의 그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산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역마살, 자타가 공인하는 나의 기질이다. 나의 역마살 역시 <문화저널>과 무관하지 않다. 격월로 진행하는 백제기행은 우리문화에 대한 건강한 인식을 갖게 했고 전통문화를 비롯해 생태 및 지속가능한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갖게 했다. 백제기행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것은 일이 아니고 놀이였다. 아직도 가장 빠른 시간에 해낼 수많지 않은 일 중 하나가 ‘짐꾸리기’인 것 같다.   그 옛날부터 지금까지 문화저널의 가장 큰 재산은 사람이다. 이곳을 거쳐간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시간과 열정에 주머니마저 떨어가며 문화저널을 풍요롭게 만들었고 다시 그들도  풍요로워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나의 문화저널 시대 중 초장기 2년 정도는 사무실에 컴퓨터가 없었던 이유로 모든 업무가 아나로그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원고는 원고지, 물론 원고지에 색볼펜으로 돼지꼬리와 이음줄, 줄바꾸기 표시로 교정을 봤고, 지금도 원고지에 직접 쓴 글을 보면 아련한 향수가 느껴진다. 정판사에서 인화지에 사식활자를 뽑아오면 두꺼운 모눈종이에 좌우열을 맞춰 편집을 하는데 그걸 ‘대지작업’이라 불렀다. 그리고 마무리는 Rotring 펜으로 선을 정리해 주는데 비용절감 차원에서 편집의 초짜인 편집위원과 나의 마무리는 늘상 선 두께가 일정치 않거나 잉크가 살짝 번져 깔끔하지 못했다. CAD가 개발되기 전에 발행된 문화저널을 보면 초짜들의 겁 없는 펜질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그래도 그 당시 지역에서 문화저널 만큼 세련된(?) 잡지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문화저널에서 하는 거의 모든 일이 배우면서 하는 식이었다. 그렇게 책이 나오면 가장 힘쓰는(?) 일이 남는다. 정기구독회원수가 어중간해, 발송을 직접해야 했다. 발송준비를 위해 미리 누런 봉투에 회원들의 주소를 매월 반복해서 쓰다보니 전주시내 우편번호는 자동으로 외웠고, 웬만한 회원이 어디에 사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유난히 사람에 대해 잘 기억해내는 나의 탁월한(?) 능력은 아마도 이 때 훈련한 덕분이 아닌가 싶다. 보다 번듯한 일도 많이 했는데 이상하게 어설펐던 기억이 더 선명하다. 그렇게 5년여 세월을 보낸 곳이 <문화저널>이다.   몇 달 전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라는 영화를 보고난 후 영화속 대사 한마디를 적어 컴퓨터 모니터에 붙여두고 자꾸 불거지는 마음을 다독이곤 한다. ‘Job paid rent’ 모든 샐러리맨들이 공감하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집세에 연연하지 않고 행복했던 이십대가 있었다. 정들었던 <문화저널>을 떠나며 이별의 아쉬움에 뒤돌아서 눈물짓던 때가 있었다. 생각만 해도 따뜻한 미소가 번지는 그 때가 이십여 년 전, 사랑스런 나의 이십대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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