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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 |
● 서평 ◎ 『눈 오는 날 싸박싸박 비 오는 날 장감장감』
관리자(2007-12-24 19:07:56)
전라도 말의 새로운 가치를 읽다 『눈 오는 날 싸박싸박 비 오는 날 장감장감』은 저자 김규남의 어린 시절의 회상과 지역주민들의 생생한 구술, 문헌자료를 통해 전라도 말의 역사적 생성 과정과 사회문화적 가치를 내 이웃의 이야기처럼 ‘곰살맞게’, 몹시 부드럽고 다정하거나 친절하게 때로는 눈이 시리도록 투명하게 서리서리 풀어놓은 책이다. 이 책엔 처마 밑 꾸지뽕나무의 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곶감을 남 몰래 빼 먹었던 어린 시절의 아찔한 즐거움과 동학(同學)으로서 갖는 남모를 부러움이 있다. ‘싸박싸박’이나 ‘장감장감’, ‘꾀 벗다’, ‘꾀복쟁이’ 등과 같은 어휘에 대해서 방언학자들은 그다지 주목하지 않는다. 이는 이제까지 방언학의 관심사가 소리의 변화를 설명하는 음운론에 지나치게 치중한 나머지 어휘론이나 어원론을 소홀히 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방언 자체가 갖는 사회문화적 가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였거나, 사회문화적 가치를 너무 소홀히 다루어왔기 때문이다.   문화지리학자인 J. E. Spencer에 의하면, 인류의 생활과 역사는 자연 환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문화는 인류가 자연 환경에서 적응하는 과정에서 학습된 인간행동과 활동양식이다. 언어 또한 후천적으로 학습되어질 뿐만 아니라 역사성을 띠고 있으며, 지리적 분화를 보인다는 점에서 문화를 형성하는 한 요소이다. 따라서 전라도 말의 변화 과정 속에는 전라도 사람들의 정서나 사회적 갈등, 지역 문화가 고스란히 살아있기 마련이며, 또한 전라도 말은 그 자체로 전라도 사람들의 지역 정체성이나 유대감을 표현하는 하나의 장치로서 작동하기 마련이다. 저자 김규남은 이러한 사실을 놓치지 않는다. 『눈 오는 날 싸박싸박 비 오는 날 장감장감』을 통해 쏟아 놓는다. 전라도 말이 갖는 사회문화적 의미가 그의 수십 년간 방언조사의 경험과 실증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언어학적 지식을 통하여 오늘날 전라도 사람들의 삶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표출된다. ‘어떤 행위를 할 때 여유를 가지고 서둘지 않는 모양’을 나타내는 부사 ‘싸박싸박’과 ‘서나서나’를 통하여 자연 환경이 가져다주는 전라도 사람들의 문화적 토양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꾀 벗다’와 ‘꾀복쟁이’를 통하여 전라도 사람만이 갖는 정서가 무엇인지를 토해 낸다. 그의 말대로 ‘꾀 벗다’와 대응할 법한 표준어 ‘발가벗다’로, ‘꾀복쟁이’를 ‘죽마고우’나 ‘소꿉친구’로 바꿔 버리는 순간 전라도 사람들의 정서는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만다. ‘꾀 할딱 벗고 갱변이서 지지배 머스매 할 것 없이 멱 감던’ 어린 시절은 낯부끄러운 장면이 되고 만다.   “하아따, 성님! 차암 오래간만이요잉-” “얼라? 야아, 이 사람, 잘 있었는가? “살다봉게 이렇게도 만나네요잉-” “그려잉, 참 반갑네잉-” <눈 오는 날 싸박싸박 비 오는 날 장감장감> 중에서 여기에서 주복해야 할 것은 ‘-잉’이다. 전라도 사람이라면 말끝에 습관적으로 붙여 쓰는 ‘-잉’이 전라도 사람들의 감정을 살갑게 드러내는, 다시 말해서 전라도 사람들 간의 유대감을 확인하는 장치임과 동시에 다른 지역 사람들에 대해 전라도 사람임을 구분 짓는 정체성 표지임을 넌지시 말한다. 『눈 오는 날 싸박싸박 비 오는 날 장감장감』에는 전라도 말을 바라보는 저자 김규남만의 시각과 해학이 살아 있다. 그는 전라도 말이 갖는 문화적 다양성을 표준어에 견주어 이야기할 수 없음을 전라도 사람들의 일상을 통하여 드러내고, 전라도 말이 갖는 해학적 가치를 유감없이 드러낸다. 전라도의 평야지대인 전라우도와 산악 지대인 전라좌도의 문화적 토양은 서로 다르다. 동편제와 서편제가 그렇고, 좌도풍물굿과 우도풍물굿이 그렇고, 좌도민요와 우도민요가 그렇다. 전라도 말 또한 좌도와 우도가 서로 다르다. 키의 방언형 ‘치’는 전라우도에서만, ‘칭이’나 ‘쳉이’는 전라좌도에서만 쓰이는 말이다. 전라도라는 같은 지리적 조건과 문화적 토양 속에서도 좌도와 우도의 말은 미묘한 차이를 드러낸다. 이러한 차이들도 저자 김규남의 시각을 통해 사회문화적 가치를 부여받은 전라도 말로 거듭 태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이길재/ 전북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호남문화정보시스템’ 개발 전임연구원과 전북대 강사 등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자료조사부 연구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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