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0 |
영화 대학, 오래된 책
관리자(2007-12-24 19:06:32)
바베트의 만찬
아이작 디네센
소설 <바베트의 만찬>은 얇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원작자 덴마크 출신의 여류
작가 아이작 디네센(Isak Dinesen : 1885-1962)의 작품. 이 짧은 단편 소설을 가브리엘
액셀이 각본 감독을 맡아 102분 영상에 담았다. 1987년도 작품으로 88년 아카데미
외국어 작품상을 수상했다. 꼭 보아야 할 영화, 여기 등장하는 음식 역시 죽기 전에 한
번은 먹어보아야 할 것.
마음을 여는 음식
때는 프랑스 혁명기. 덴마크의 바닷가 근처 시골 거의 무채색에 가까운 동네 작은
교회에 자매가 살고 있다.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는 이들 할머니 자매의 삶은 기도와
봉사 뿐. 마을 사람들 역시 재미와 놀이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 이들에게도 젊은 날
사랑은 있었으니 마르타나에게는 왕실 근위대의 로한스 대위가, 소프라노 가수를
포기한 동생 필리파에게는 궁정 오페라가수 파판과의 사랑이 있었다. 쫀쫀한 아버지
목사님의 반대에 애틋한 사랑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한 채, 교회와 이웃에게 헌신을
이어가며 늙어가는데.
어느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 이 두 할머니에게 '바베트'라는 프랑스 여인이 찾아온다.
파판이 보낸 뭔가 비밀을 가진 이 가정부 아줌마는 검소한 그들에게는 부담스러운
존재였지만 요리의 달인. 어느 날 바베트가 가게에서 구입한 프랑스 복권 만 프랑에
당첨되면서 지루한 이야기는 급변한다. 부자가 된 그녀가 당연히 마을을 떠나리라
예상하는데, 바베트는 목사의 추도모임잔치를 준비하겠노라고. 화려한 식탁 등
격식을 갖춘 만찬장은 생동감을 띠는데, 요리풍경 자체가 시각적 진수성찬이다.
사람을 먹이는 자의 따듯한 한 턱이여.
사람이 너무 알뜰하면 너그러움과 재미가 없는 법. 절제의 청교도적 신앙에 절어
삶의 즐거움을 억압하던 마을 사람들의 닫힌 마음은 바베트의 요리를 음미하면서
아이스크림처럼 점차 녹아내린다. 근엄한 분위기의 목사관은 이제 웃음과 농담,
부드러움과 사랑이 넘치는 공간이 되고, 만찬 후 사람들은 달빛 아래 서로를 안고
춤까지 준다. 그 음식은 바로 하나님의 은총이었던 것. 앓아누워 죽을 먹고, 나았을 때
자장면을 먹고서 회복을 확인하는 것처럼 이들이 먹은 음식은 곧 사랑 그 자체.
혼자 남겨진 빈털터리 바베트는 와인 한잔을 달게 기울이며, 걱정하는 두 자매에게
‘예술가는 결코 가난하지 않다’고 응답한다. 만찬 후, 동생 필리파는 파판의 진실한
사랑을 읽었고, 또 언니 마니타는 출세를 위해 떠났던 로한스 장군이 오래도록
자신에게 가져왔던 사랑을 감지한다. 사람을 먹이는 복된 일이여.
금메달 보다 값진 영화 한 편
디네센의 소설에 바탕을 두었기에 간결한 대사, 실감나는 요리 장면, 유머와 재치로
시종 미소를 머금게 하는 화면들은 바베트가 차리는 식탁처럼 격조 있다. 이 작은
덴마크의 영화 한 편은 로테르담 영화제 작품상 등 20여회가 넘는 영화제에서
수상을 휩쓸어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인구 600만의 소국 덴마크 국민들은 잘 만든
영화 한 편이 올림픽 금메달 몇 개 보다 낫다고 생각한다고. 혹 오래된 비디오
가게에서 이 작품이 궁글어다니면 무조건 구입하시라. 주인이 눈썰미가 있으면 만
원은 주어야 한다.
이 영화를 보신 후에는 반드시 테이블 보자기를 깔고 유리장에 든 와인을 꺼내서
맛을 음미해 보시길. 물론 사람을 초대해야 한다. 음식을 함께 하는 일은 복 짓는
일이거늘. 신귀백ㅣbutgood@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