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0 |
● 오래된 가게 - “부채, 이젠 여름에만 팔리는 것이 아니에요”
관리자(2007-12-24 19:03:31)
전주 중앙동 우체국 사거리의 무궁화 공예사
“부채, 이젠 여름에만 팔리는 것이 아니에요”
오래된 가게는 대개 허름하고 투박한 간판으로 그 세월을 말해준다. 전주 중앙동
우체국 사거리, 한때 전주 시내의 기준으로 여겨질 만큼 영화의 세월을 누렸던 곳.
하지만, 지금은 쇠락해가고 있는 구도심의 상징이 되어가고 있는 그곳에는
영화로웠던 시간의 흔적을 말해주듯 오래돼 보이는 간판들이 즐비하다.
무궁화 공예사도 우체국 앞 사거리에서 50여 년이 넘는 세월동안 흥망과 성쇠를
함께 해오고 있는 가게다. 무궁화 공예사라는 이름 밑으로 84국으로 시작하는
전화번호가 눈에 들어온다. 그 옆으로는 태극선과 합죽선 도산매라는 문구가 보인다.
간판에 간혹 떨어져 나간 글자도 있다.
건물의 한 귀퉁이 공간을 내어, 가게는 좁고 길쭉하다. 하지만, 가게 안에 비치되어
있는 물건은 비슷한 물품을 취급하는 여느 가게보다 알차다.
“50년대 중반에 생겼는데, 저도 자세히는 몰라요. 시집오니까 시부모님들이 이
가게를 하고 계시더라고. 시어머니한테 얼핏 듣기로는 처음에는 조화(造花)집으로
시작했대요. 그때는 꽃집도 많이 없었잖아요.”
지금 가게는 이윤자(53) 씨가 지키고 있다. 1983년 시집을 와서, 1996년부터 남편과
함께 이 곳을 운영하고 있다. 2대째 한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조화로
시작했던 가게는 이윤자 씨가 시집오기 훨씬 전에 합죽선과 태극선을 다루는 부채
전문점으로 바뀌었다. 가게 벽면마다 아름다운 문양의 태극선과 묵향 가득함은
합죽선들이 걸려 있다. 한쪽 벽면엔 합죽선을 담은 상자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그렇다고 부채만 취급하는 것은 아니다. ‘공예사’라는 간판답게, 가게 안에는 각종
목공예품과 한지공예품, 노리개 등 각종 공예품들이 가득했다. 도장도 파고, 담배도
판다.
“옛날에는 장사가 잘 되니까 많이 물건을 많이 갖다 놨었는데, 지금은 잘 안팔리니까
물건이 얼마 없는 거에요. 예전에는 담배도 얼마나 많이 팔렸는데요. 지금은 담배도
잘 안팔려요. 사람이 다녀야지.”
올 여름에는 부채마저 예년에 비해 많이 안팔렸다고 한다.
“솔직히 요즘에는 부채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잖아요. 선물을 하려거나 사지. 직접
쓰시려고 사는 손님들은 주로 연세 드신 어르신들 정도밖에 없어요. 그래도 여름에는
저렴한 것들 위주로 많이 나가고 했는데, 지난해부터 영 안되더니 올해는 더
안되네요. 더군다나 전엔 이런 공예품 팔던 곳이 많질 않았는데, 요즘 많이
생겼잖아요.”
이제 더 이상 부채가 더운 여름을 나는데 꼭 필요한 물건은 아니지만, 부채의 수요는
여전하다. 시원한 바람을 얻기 위한 것으로서의 부채가 아니라, ‘작품’으로서의
부채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겨울에도 ‘좋은 작품’들을 찾는
발걸음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까진, 추석 선물로도 좋은 합죽선들의
인기가 꽤 있었다고 한다.
“단골손님들이 대부분이지, 뜨내기들은 거의 없어요. 우리집에 있는 물건들이 거의
문화재급들이 만드는 것들이 대부분이니까, 모르는 사람들은 왜 이렇게 비싸요 하고,
아는 사람들은 물건 자체를 보고 아주 잘 만들었다고 하고 그러죠.”
이 가게의 부채값은 천차만별이다. 편하게 쓸 수 있는 몇 천원짜리 저렴한
것에서부터, 비싼 것은 그림 없이 부채 값만 1백만 원짜리 합죽선도 있다. 부채살도
일반 부채에 비해 많이 들어가고 한지엔 황칠을 했다. 무궁화 공예사에 찾아가면
친절한 설명과 함께 언제든지 구경할 수 있다. 물론, 구입은 하지 않아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