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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9 |
[문화시평] 비보이 피노키오
관리자(2007-09-15 12:10:52)
문화시평-비보이 피노키오 아쉬움이 큰, 그러나 의미있는 시도...                   장지영ㅣ국민일보 문화부 기자 “잊혀진 춤 비보이를 국제적인 예술 장르로 바꿔 놓았다” 뉴욕 타임스가 지난달 12일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가한 한국 비보이팀 라스트포원의 ‘스핀 오디세이’ 공연을 소개하며 이같은 찬사를 던졌다. 신문은 또 “브레이크 댄스는 25년 전 미국 브롱스에서 힙합의 하부 장르로 출발했지만 오랫동안 잊혀져 있었다. 그러나 신세대의 노력으로 ‘새로운 스타일의 춤’으로 부활했다. 비보이는 이제 전통적인 브레이크 댄싱과 재즈, 브라질의 혼성 댄싱 카포에이라, 곡예와 무예가 어우러진 안무로 완성도를 높여 주류 관객과 정통성있는 무대에 다가가고 있다. 유럽과 아시아에 일고 있는 새로운 브레이크 댄스 물결의선두 주자인 한국 비보이는 팝스타와 같은 대우를 받으며 광고, 잡지, 드라마를 장식하는 국가적 자랑거리가 됐다.”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이 공연의 주인공인 라스트포원에 대해서도 “전주 출신 멤버들로 구성돼 있으며, 힙합 월드컵인 독일세계대회에서 2005년 우승했다”고 소개했다. 뉴욕 타임스 외에도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이 열리는 스코틀랜드의 최고 유력지 스코츠맨 등도 올해 축제에 참가한 한국 비보이 공연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에 대해서는 “현란한 비보이 춤과 잘 짜여진 이야기 구조가 조화롭게 공존한다”는 평과 함께 별 다섯 개 만점을 줬다. 세계 최대의 공연예술축제인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을 강타한 한국 비보이 열풍은 2000년 이후 ‘배틀 오브 더 이어’(독일), ‘UK 비보이 챔피언십’(영국) 등 세계 주요 대회를 잇달아 석권한 한국 비보이들의 성장세에 기인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공연예술로 진화한 계기는 2005년 12월 전용관을 마련하고 장기공연중인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우아한 발레를 추던 발레리나가 비보이를 사랑하게 되며 ‘비걸’로 변신한다는 내용으로 국내 젊은 관객은 물론 해외 관객들에게 큰 인기를 얻자 공연계는 ‘난타’ ‘점프’에 이은 공연계의 새로운 한류로 비보이를 점찍게 됐다. 이에 따라 ‘마리오네트’ ‘피크닉’ ‘비쇼’ ‘비보이 코리아’ ‘비보이 아가씨와 건달들’ 등 지난 1년 여 동안 비보이를 소재로 한 뮤지컬, 비언어극 등 10여 편이 쏟아져 나왔다. 이런 비보이 붐을 타고 전주에 있는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이 ‘B-BOY 피노키오’를 제작했다. 8월 9∼19일 연지홀 무대에 오른 이 작품은 전국문예회관연합회(이하 전문연)가 지역 문예회관 활성화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기획 제작 프로그램’에 뽑힌 작품이다. 지역 문예회관은 최근까지 건물만 지은 뒤 운영을 제대로 하지 않은 곳이 상당수였다. 이에 따라 2004년부터 문화예술계에 투입된 복권기금을 지역 소외층의 문화향수를 지원한다는 목표 아래 그 관련사업으로 문예회관 활성화 계획을 세우고 우수 공연을 전국 문예회관에 저렴하게 유통시키는 ‘우수 공연프로그램’과 함께 문예회관의 제작 능력을 촉진하는 ‘기획 제작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이 제작한 ‘B-BOY 피노키오’는 지난해 말 전문연 심사에서 높은 평가를 얻었다. 지방문예회관 가운데 운영과 프로그램 면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온 전주의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이 인근 도시인 익산, 정읍의 문예회관과 함께 작품을 공동제작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문예회관들이 공동으로 작품을 제작하고 유통하는 것은 경기도 지역 문예회관들로 이뤄진 경기도문예회관연합회(이하 경문협)에선 3년 전 시도되고 있지만 그 외의 지역에서 보기드문 사례다. 소리문화의전당이 산하단체가 없기 때문에 장기 레퍼토리로 만들기 위해 어린이 공연 분야에서 오래 활동해온 극단 수레무대와 공동으로 제작한다는 점도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또 누구나 아는 동화 ‘피노키오’에 한국 공연계의 핫이슈로 떠오른 비보이를 덧붙여 가족극을 만든다는 의도가 관심을 끌었다. 물론 지난해 우후죽순 선보인 비보이 공연들이 1∼2개를 제외하곤 드라마가 약해 생명력이 짧았던 사례가 있기 때문에 ‘B-BOY 피노키오’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으나 단순히 비보이 춤을 보여주는 공연이 아니라 드라마 중심으로 이끌고 나가겠다는 한국소리문화의전당과 극단 수레무대의 발표에 기대를 갖게 됐다. 드디어 무대에 오른 ‘B-BOY 피노키오’는 총 제작비로 2억원이 소요됐다. 이중 40%인 8000만원을 복권기금에서 지원받았으며 나머지 1억 2000만원 가운데 9500만 원을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이, 2500만원을 익산 문예회관에서 분담했다. 처음 취지는 세 문예회관이 공동으로 제작하는 것이었으나 정읍에서 중도에 포기했고, 익산만 참여하게 됐다. 익산의 경우에도 공연을 코앞에 둔 6월에서야 최종 확정이 되어 사실상 이 작품은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이 제작한 뒤 익산에 유통시키는 방식을 취하게 됐다. 복권기금에서 지원받기로 확정된 올초부터 본격 작업에 들어간 이 작품은 3월에 대본을 완성한 뒤 무대와 인형, 의상, 가면 등에 대한 컨셉트를 정하고 배우를 캐스팅했다. 또 라스트포원의 주니어그룹 라스트마스가 참여한데 이어 전주에서 활동하는 비보이들을 대상으로 오디션으로 실시해 작품에 출연할 앙상블을 선발했다. 제작의도나 과정을 볼 때 이 작품은 지역 문예회관의 제작역량을 키우고 주민들에게 다양한 공연을 관람케 한다는 취지에서 매우 바람직하다. 또 작품 제작 전반에 걸쳐 한국소리문화의전당과 극단 수레무대가 노력한 흔적이 역력했다. 하지만 막상 무대에 올려진 공연은 그다지 만족스럽다고는 할 수 없다. 이 작품의 매력은 뮤지컬, 인형극, 그림자극, 애니메이션, 비보잉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결합한 데 있지만 이것이 동시에 단점이 되기도 한다. 각 장르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아서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특히 애니메이션과 인형 조종은 다소 거칠게 느껴졌다. 또 현란한 비보잉을 기대하고 온 사람들에게는 실망스러울 만큼 무대에서 보여주는 비보이는 단조롭다. 라스트포원의 주니어그룹이라긴 하지만 라스트마스의 역량이라면 좀더 다양한 비보잉을 보여줄 수 있지 않았을까. ‘피노키오’의 원작을 비틀어 피노키오가 서커스단 대신 비보이팀에 들어가는 것으로 설정함으로써 비보이와 피노키오를 연결하고 있지만 비보이의 역할이 전체 극에서 눈요기 정도에 불과함으로써 비보이를 내세운 타이틀에 미치지 못했다. 물론 기존의 비보이 공연들이 현란한 춤에만 의존하고 드라마는 약하다는 지적과 달리 이 작품은 드라마 전개에 충실하지만 비보이의 매력을 살리고 있지는 못하다. 이와 함께 아이들이 관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 작품에서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피노키오’의 뒷이야기, 예를 들어 피노키오가 여우와 고양이의 꼬임에 넘어가 금화를 빼앗기고 목이 매달려 죽게되는 잔혹한 장면을 굳이 보여줄 필요가 있었나 싶다. 전반적으로 재미가 부족한 탓에 아이들의 관극 분위기는 덤덤한 편이었고, 오히려 공연이 끝난 뒤 로비에 전시된 피노키오 인형을 만져보거나 사진찍는 것에 더 흥미를 느끼는 모습이었다. 이 공연은 여타 지역 문예회관처럼 무료로 관객을 동원하는 대신 주말 2만5000원 (R석)/2만원(S석), 평일 2만원/1만6000원, 프리뷰 1만5000원 등 유료이기 때문에 전석이 꽉 차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런 관객이야말로 전주의 공연문화를 지탱하는 소중한 관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많다. 또 지역 문예회관에서 이렇게 유료 공연을 기획하고 제작한다는 점에서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의 시도는 충분히 칭찬받을만하다. 이런저런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B-BOY 피노키오’는 극의 구성과 전개 등을 좀더 보완한다면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의 레퍼토리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사실 국내 공연계에서 초연부터 완성도 높은 작품을 선보이는 것은 무리이고, 제작기간이나 예산, 제작여건 등 서울에 비해 열악한 지역에서는 더욱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소리문화의전당과 극단 수레무대 측도 문제점을 계속 고쳐나가겠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다음 재공연을 기다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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