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9 |
[신귀백 영화엿보기] 우리를 잊지 말라던 영화 밖 이야기
관리자(2007-09-15 12:07:25)
우리를 잊지 말라던 영화 밖 이야기
사식집이 즐비한 을지로 3가, 네거리에서
나는 사막을 체험한다.
여러 갈래길, 어디로 갈테냐
을지로를 다 가면
어느날 윤상원로가 나타나리라.
사랑하는 이여
이 길은 隊商이 가던 비단길 아니다
살아서, 여럿이, 가자.
황지우의 시집 <나는 너다>에 나오는 시다. 윤상원? 모르는 사람도 많을 터. 1980년 5월 27일 새벽, 광주도청에서 진압군의 총에 생을 마친 청년. 그를 모르는, 혹은 잊게 된 내 또래의 사람과는 도쿄돔의 홈런 소식이나 미국의 서브프라임 위기가 가져올 여파를 이야기 한다. 서로의 영역을 밟지 않기 위해서, 다치지 않기 위해서. 그렇지만 나도 승엽의 홈런이 기쁘다. 그리고 몇 푼의 펀드가 불어나는 것이 좋다. 그러므로 나는 너다. 아시다시피, 아직 광주에는 윤상원로가 없다.
기우(杞憂)
한참 <캐러비안의 해적3>로 돈을 벌고 있던 동네 극장 사장님이 물었다.
"<화려한 휴가> 100억 든 대작인데, 사람 좀 들까요?”
답을 하기 어려웠다.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있고 고별사로 보내줄 수 없는 시절이 있는 것. 붙들고 있기도 내려놓을 수도 없는 어떤 것이 '광주' 아닌가. 진상규명이나 책임자 처벌이 안 된 상황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눈을 뜨고 살아있는데, 의미 있는 혹은 매혹적 장면을 만들기가 쉽지 않을 텐데. 글쎄, 주제는 어쩌고, 스타일로서 강건체가 아닌 우유체의 광주는 과연 가능할까? 도대체 무고하게 죽어간 사람들의 그 아픈 사연을, 잔인무도한 군바리들과 미국의 애매한 태도를 어떻게 두 시간에 줄인단 말인가? 아니, 그 후로도 오래도록 유령처럼 맴돌던 공포와 슬픔과 상처, 무력한 언론에 대한 극도의 절망감을 과연 어떻게…….
이 작은 투자자는 나의 "글쎄요?"에 섭섭해 하는 눈치였다. '잘 될까?'에서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지만, 솔직히 관객이 안 드는 쪽에 걸고 싶었다. 음, 졸전은 고사하고 자뻑만 없어도 좋을 텐데. 아무리 잘 만든 5월이라 해도 운하를 만들겠다는 이가도 좋고 아빠 만세의 박가도 나쁘지 않다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현실에 대한, 학습효과였을 것. 심한 말로 심형래는 다시 개그를 하면 되지만 이 영화가 뒤집어지면 이것은 치명상이 될 터이니까.
뮤직 비디오
너무 가지 말자.
너무 가면 없다!
너는 자꾸 마음만 너무 간다. (황지우 시 나는 너다 중 130-1)
나도 봤다. 중산층을 향한 내 현실적응감각은 틀렸다. 다행이다. 이것저것 다 넣으려는 욕심에 대한 절제, 복잡하지 않다. 고통스럽긴 하지만, 신념을 강요하거나 계몽에 집착하지 않는다. 택시 운전하는 착한 형과 공부 잘하는 동생의 이야기는 <태극기 휘날리며>처럼 역시 형제 코드. 일상을 살아가는 약소자와 간호사의 사랑이야기는 소박하고. 역사가 개인적 운명에 영향을 미치지만 홈드라마 형태로 수위를 낮추려는 것. 운전수 주변인물로 범위를 넓히면서 혁명가나 지식인도 아닌 프롤레타리아 둘을 섞어 진한 농지거리로 무게를 잡지도 않는다. 먹물들이었다면 필요한 말들 아니면 벅찬 언어로만 되어있을 대사들이었을 텐데, 강박을 잘 헤쳐 간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라는 애국가에 맞추어 금남로에는 꽃잎처럼 붉은 피가 뿌려진다. 살육. 지옥을 드러내는 공들인 뮤직비디오에 사람들이 운다. 나도 눈 위로 손이 올라간다. 시민군의 대화는 우리에게 부산앞바다에 항공모함을 파견한 혈맹 미국은 무엇인가를 묻지만 오래 붙들진 않는다. 그랬을 것이다. 비디오보다 참혹하면 외면할까봐, 감독은 속도와 감정선을 잘 조절한다. 발포와 학살에 맞서 “우리는 폭도가 아니다”는 최소한의 외침과 “우리를 기억해주세요”라는 신애의 절규는 짧게 잡고 휘두르는 스윙. 웃음과 로맨스 그리고 신파로 안전판을 담보하기에 간호사의 살인이나 총을 드는 신부 장면이 그리 부담스럽지 않다. 전형적 인물들임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자뻑은 없다.
주인공들의 표준말 사용은 이것을 단지 전라도 영화로 만들지 않겠다는 감독의 계산이었을 것. 동막골의 강원도 사투리는 모두의 이해가 같기에 흉내 내고 싶지만, 이 동네 사투리는 아니다. 왜? DJ의 사투리는 그의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를 한 지역의 지도자로 만들고 마는 것이 보수신문의 꼬투리거늘. 사투리, 문제없다. 오란씨와 교련복과 장발 등 당시의 코드도 잘 살렸다. 됐다. 썩 좋지는 않지만, 이정도면 잘 만든 대중영화 아닌가.
마지막 장면. 죽은 자들은 모두 웃고 산자 신애만이 어리둥절해 있는 결혼사진은 그래도 고급독자를 위한 장치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일 것. 다큐식으로 드라이하게 갔으면 예술성은 살 지 모르지만 '저 새끼들 하는 짓이라니' 그런 평가를 들었을 것이 뻔한 일. 사실 이 이야기는 미니멀이다. 너무 많은 비극중의 지극히 작은 이야기이고 시작이니까. 앞으로도 짐승들의 잔인함에 대한 증언과 어깨 펴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의 괴로움에 대한 새로운 버전은 계속 만들어져야 한다.
팝콘 든 젊은이들
나무를 심은 사람 윤상원이 등장하지 않은 것, 하나도 서운치 않았다. 감독이 오버하지 않으려 애쓴 것처럼 나도 울지 않으려 눈꺼풀에서 눈물을 말렸다. 그리고 영화 속 김상경이 살아남기를 바랐다. 살아남는 것 또한 아름다운 일이란 것을 보여준다면, 그날 물러서고 외면하던 사람들과 변심보다는 좀 바빠서 모른 척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지 않을까 해서 하는 말이다. 그래서 이승엽과 펀드 수익률을 이야기한들 무에 그리 나쁘랴.
나는 칼숲 거리의 계엄령이 인간의 영혼에 어떤 재갈을 물리는가를 체험한 세대다. 하지만 4.19에 대한 추억은 단지 교과서 속의 사진 몇 장과 수유리에서의 참배 뿐. 이 영화를 만든 김지훈 감독이 71년생이란다. 그 역시 책과 화면 속에서만 5월을 기억할 터인데, 기특하지 않은가. <목포는 항구다>라는 쉬운 영화를 만든 혁명가 아닌 이 대구 청년은 충격과 공포, 불심검문과 굴욕의 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사람이기에 덤빌 수 있었을 것이다. 작년, 화염병으로 <괴물>을 퇴치하자는 유쾌한 설정, 이 영화에 100억을 파이낸싱한 제작자, 스크린을 500개나 확보한 배급사를 차린 386들은 돈 말고도 '뭔가를 알려야 한다'는 문화적 가치와 사명감을 잊지 않은 것. 수익률이 최우선일 이 판에서 밥 먹는 세대들의 이 느긋한 연대에서 나는 느린 희망을 본다.
다시 극장 안. 고급 츄리닝에 팝콘을 들고 히히덕거리는, 끈으로 윗몸을 가린 젊은 처녀애와 카키색 밀리타리룩 반바지에 스니커즈 차림으로 다리를 앞좌석에 올리는 싸가지 없는 머시마들에게도 광주의 오월은 전해진다.
나는 경청을 방해하는 저들이 밉지 않다. 예쁘다. 젊은 관객의 참여가 중요한 관건이니까.
제아무리 영화가 쉽다 손치더라도 이들에게 광주는 관찰이나 경험이 불가능한 영역의 페이지일 것. 글쎄, 이 영화 한 편으로 젊은 것들이 역사의 만리장성을 쌓겠냐마는 이 젊은이들에게 최소한의 기억과 해석은 가능할 것 아니겠는가. 혹시 이들 중 몇이라도 윤상원을 검색엔진에 넣어보는 이도 있을 테니…….
벌써, 80년생이 서른 살이 다 되간다. 서른 살에도 광주를 아는 사람이 있고 오십에도 광주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다시 몇 년 후에는 광주 이후에 태어난 젊은이가 만든 또 다른 광주가 나오지 않겠나.
우리를 잊지 말아 달라
“우리를 잊지 말아 달라.”고 절규하던 장면을 386동창회 내지는 노땅들의 술자리 회고담 같다는 젊은이의 리뷰가 있었다. 그럴 수 있겠다. 원인적 모순과 저항의 알맹이는 쏙 빠졌다고 말하는 평론가도 있다. 역사가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새로운 해석이라는 점에서 별로 새로울 것이 없다는 말에도 일리가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일단 나는 몇 학번이냐고 묻는다. 나이를 벼슬 삼기 위함이 아니라 그를 이해하기 위하여 묻는 것. 그런 그에게 나는 말한다. 우리 사회의 수준이 <디 워>정도라면, 이것은 전략이라고. 이제 그만 하자며, 광주를 지역의 문제로 폄하하는 이재오 김문수 류의 트랜스포머들 앞에서 보여줄 수 있는 어쩔 수 없는 최소한의 전술이라고. 어디에도 없는 ‘윤상원로’가 어딘가에 있지 않겠냐고.
새벽은 밤을 꼬박 지샌 자에게만 온다.
낙타야,
모래 박힌 눈으로
동트는 地平線을 보아라.
바람에 떠밀려 새 날이 온다.
일어나 또 가자.
사막은 뱃속에서 또 꾸르륵거리는구나.
지금 나에게는 칼도 經도 없다.
經이 길을 가르쳐 주진 않는다.
길은,
가면 뒤에 있다.
단 한 걸음도 생략할 수 없는 걸음으로
그러나 너와 나는 九萬里 靑天으로 걸어가고 있다.
나는 너니까.
우리는 自己야.
우리 마음의 地圖 속의 별자리가 여기까지
오게 한 거야. (황지우 시 나는 너다 중 503)
며칠 전, 시인으로 살던 같은 동네 친구 서 권 선생이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소설가로 등단했다. 축하한다. 구태여 그의 이름을 거론하는 이유는 그의 소설 「검은 선창」이 우리를 잊지 말라는 5월 광주의 한숨 비명 신음 절규에 대한 화답이기 때문이다. 나는 또 그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