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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9 |
[오래된 가게]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동네 사진관
관리자(2007-09-15 12:01:56)
오래된 가게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동네 사진관전주시 한옥마을, 우뚝 솟아 있는 은행나무 아래로 펼쳐진 경기전 돌담길을 따라 걷다보면 정겨운 풍경들이 펼쳐진다. ‘뽑기’기계가 앞에 놓인 아주 작고 야트막한 문방구며, 연탄가게, 아직도 흑백텔레비전을 취급할 것 같은 가전제품 수리점. 흡사 시간이 멈춘 듯, 오랜 세월의 때를 안고 있는 가게들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名家의 사진’도 이곳에서, 이제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필름 사진’의 시대를 추억하고 있다. 허옇게 색이 바랜 ‘名家의 사진’이라는 간판 밑에는 아직도 두 자릿수 국번의 전화번호가 새겨져 있다. 넓은 유리창에는 선명한 ‘증명사진, 속성사진’이라는 글자가 이곳이 사진관임을 보여주고 있다. 온통 ‘디지털’이라는 문구와 현란함으로 무장한 요즘 사진관의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어렸을 적 보았던, 동네 사진관의 모습 그대로다. “간판만 보고 와서는 여기서 영화촬영도 몇 번 해갔어. 단막극 같은 거는 뭐 수도 없이 많이 나왔고.” 이곳의 주인은 엄진섭(68) 씨. 교동에서 태어나 평생 교동과 풍남동 일대를 떠나본 적이 없는 한옥마을 토박이다. 사진을 찍기 시작한지는 40여 년이 흘렀다. 처음 1960년대 중반에 풍남문 근처에  서 ‘남문사진관’을 운영했다. 그때는 사진관도 많이 없었던 시절, 돈도 많이 벌었다. 그로부터 10여 년의 세월이 흘러서는, 중앙동 사거리에서 중앙예식장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예식장과 함께 사진관 운영도 엄 씨가 직접 맡았다. 이곳으로 이전한지는 약 10여 년 전이다. “옛날에는 손님 참 많았지. 증명사진, 가족사진, 애들 백일사진, 돌사진은 많을 때는 하루에도 대여섯 건 씩 찍고. 회갑사진이나 칠순잔치만해도 일주일이면 서너 번 씩은 출사 나가고 했었는데. 지금은 그런 잔치도 없지. 그리고 여기는 외진대라 이제는 사람들도 잘 안와.” 사진을 찍는 방은 검은 커튼으로 가리워져 있었다. 커튼을 열고 방으로 들어서자 조명기기기와 반사판, 은막이 벽 마다 빼곡히 들어차 있고, 그 앞으로 작은 의자가 놓여져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의자에 앉아 사진을 찍었을 것이다. 하지만, 저 의자에 마지막으로 사람이 앉았던 게 언제일까. 엄 씨의 보물인 사진기는 벽 안쪽에 검은 천으로 덮여져 있었다. “이것은 ‘후지 GX68’이고, 이건 ‘지나’여. 카메라 중에는 ‘왕 중에서도 왕’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여. 이것만 있는 것들이 아니여. 사진관 안에만 사진기가 몇 대나 있는지 몰라. 그 중에는 핫셀브라드도 있고. 처음으로 달나라 갈 때 가지고 간 것인데,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핫셀브라드 500CL’이라고 구형이여. 나온지 한 40년도 넘었지. 그때 돈으로도 꽤 비싸게 주고 샀어. 지금도 그 돈 주면 최고급 디지털 카메라 사고도 남을 거여. 오래 됐지만, 지금도 얼마나 깨끗하게 잘 나오는지 몰라. 끝내줘.” 하지만, 지금은 이 좋은 사진기들을 쓸 일이 별로 없다. “정말로 좋은 사진기들인데, 지금은 디지털 카메라에 밀려서 써먹을 디가 없어. 누가 사진 찍으러 오도 않고. 요새는 전부 영업하는 사람들도 다 디지털 카메라로 찍으니까. 필름값도 안들지. 여러 장 찍어놓고 괜찮은 것으로 골라 쓰지. 찍은 다음에 손도 볼 수 있지. 그러니 누가 요즘 이런 거 쓰겠어.”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사진관에 더 이상 사람들은 오지 않는다. “지금 아무도 안와. 인자 사진하고 나하고는 종쳤다고 봐야지.” 하지만, 오늘도 엄 씨는 해가 질 때까지 사진관 문을 닫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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